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7
536화.
대회의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소란스러웠다.
소리는 없었지만, 이 공간을 채운 101명의 눈빛은 각기 다른 감정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100명의 시선이 허리를 숙인 소년의 등으로 향했다.
‘이런.’
그 100명 중 한 명인 게르세이 제사장은 저도 모르게 부채를 접은 채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저 아이는 뭘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건가?’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지. 저 녀석이 뭘 알겠어? 그냥 제 생각대로 지른 것이지.’
쓸데없는 신념과 헛된 용기가 만들어낸 행동이리라.
다만 그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버렸다.
게르세이 제사장은 소년의 등에서 시선을 돌려 대회의장을 둘러보았다.
뜨겁다.
96명의 귀족 대기자들.
마치 작은 폭발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수십, 수백 개의 폭발이 더 일어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게르세이의 눈동자가 다른 귀족 둘에게로 향했다.
‘…큰일이군.’
모크 백작과 후베샤 백작.
둘 다 나르를 무모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그의 행동과 제안에 끌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 역시도 숨어있는 것에 지쳤으니까.
‘하지만 안 된다.’
지금은 안 된다.
게르세이와 하얀 별은 대업을 앞당기기 위한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워두었다.
안 그래도 대업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획기적으로 앞당길 계획은 이번 ‘축제’가 아니면 안 되었다.
게르세이와 하얀 별의 눈동자가 짧은 순간 서로를 향했다.
둘은 서로의 뜻이 같음을 깨달았다.
하얀 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때였다.
“맞습니다! 더 이상 숨어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멈칫.
열리려던 하얀 별의 입이 다물어지고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벌떡.
한 사람이 일어섰다.
96명의 귀족 대기자들 중 한 명이었다.
“엔더블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합니다! 이 힘을 숨기고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순간 모크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귀족 대기자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앉아주십시오.”
“…저는 건의를!”
“앉으십시오. 방금 발언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일어섰던 이는 주먹을 꽉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모크 백작이 하얀 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르 공작 대리인의 의견이 꽤 합당하게 들립니다. 저하.”
자리에 앉은 귀족 대기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른 귀족 대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게르세이 제사장은 모크 백작의 생각을 대번에 읽어냈다.
‘…이런…. 욕심쟁이군.’
분쟁, 전쟁. 그 모든 것들은 더 높은 자리를 탐내는 다크엘프 노인에게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모크 백작이 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다크엘프들은 전투를 치렀는지라. 또 다른 전쟁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치고 나간 뒤 슬쩍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허리를 굽히고 있던 나르의 담담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퍼졌다.
“뱀파이어들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습니다. 병력은 준비되었습니다.”
여전히 굳건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하얀 별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나르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허리를 숙인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싸우면 뱀파이어들이 가장 먼저 다칠지도 모른다. 나르, 우두머리로서 이를 알고 있느냐?”
케일은 그 말에 잠시 멈칫하였다.
알다마다.
이를 모르겠나.
하얀 별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스웠지만, 적어도 그가 한 말의 뜻은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뱀파이어들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인데.’
프레도 공작이 했던 말이 케일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뱀파이어들도 다 똑같네.’
그리고 그 말에 케일은 공감하며 평범하게, 전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뱀파이어들에게 그를 믿고 따르라고, 혼란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했다.
케일은 천천히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는 하얀 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얀 별의 눈동자에 순간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사라졌기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잠시 게르세이 제사장을 바라보았고, 제사장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단은 장단에 맞추란 신호였다.
하얀 별도 이를 알고 있었다.
‘…더 묶어뒀다간 줄을 끊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96명의 강자들.
이들이 미쳐 날뛰며 도망가기 전에, 한 번쯤 풀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는 순하게 묶여있을 줄 알았던 나르 본 이젤른. 이제는 가장 날뛰면서도 순하게 저에게 허리를 굽히는 조카에게 말했다.
“이 안건에 대해선 한 번 고심해보도록 하지.”
그리고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내일 저녁. 회의를 이어가도록 한다.”
나르의 안건.
이에 대한 회의를 내일 저녁에 이어간다는 말이었다.
96명 귀족 대기자. 그들의 눈빛이 번뜩이며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만 오늘 회의는 끝내도록 하지.”
그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던 하얀 별은 회의를 강제로 끝냈다.
하지만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더 큰 회의가 내일 열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
회의가 끝나자마자 케일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식사 때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케일은 솔레나와 집사 멜른도의 인사를 대충 받고선 제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케일 님.”
“인간아!”
최한과 라온이 돌아온 케일을 반겼다.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소파로 가서 드러누웠다.
최한이 그런 케일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민 있으십니까?”
“글쎄.”
케일은 묘한 표정으로 말을 줄였다.
최한은 고민이 있는 듯한 케일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아! 인간! 버드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인간 없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끊었다!”
그 순간 최한과 라온은 케일의 표정이 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쩐다.’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래 여기서 난장판을 벌이려던 이유는 이곳 왕국민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일반적인 뱀파이어나 다크엘프들. 다 그냥 평범한 이웃 같았다.
‘곤란해.’
프레도 공작을 이제 ‘우두머리’로서 믿을 수 있을지라도, 뱀파이어들의 삶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케일은 뱀파이어들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일은 버드도 관련되어 있었다.
“연결해.”
케일은 라온과 최한에게 주변을 살피라 눈짓하고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라온이 연결하는 영상통신구를 응시했다.
우우우웅-
이내 빛과 함께 영상통신구 위에 화면이 나타나며 버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와씨! 뭐야!
버드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이 미친놈들! 케일 헤니투스를 어떻게 한 거냐!
“아.”
케일은 버드가 왜 이러는지 바로 알아챘다.
“나다.”
-뭐가 나야? 이 음흉한 뱀파이어 새끼! 결국 네가 케일의 피를 쪽 다 빨아먹었구나! 이 미친 새끼! 내가 바로 엔더블 가서 네 목 딴다!
“나라니까.”
-뭐가 나야?
버드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타오르며 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을 때.
그의 앞에 통통한 검은 앞발이 나타나 좌우로 흔들렸다.
“버드야! 얘 우리 인간 맞다! 변장 중이다!”
-아. 그렇습니까?
뭐야?
케일은 제 말은 믿지도 않더니, 라온의 말에는 바로 수긍하고 차분해지는 버드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 진짜, 맞네! 저 싸가지 없는 표정!
“…미쳤나?”
-크흠. 미안.
버드는 그제야 실실 웃으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엔더블 소굴로 갔다며?
“…거기까지 소문이 났나?”
-당연하지! 내가 저하께 연락했었거든. 아까 전에 네가 연결이 안 되길래.
잠시 말을 멈춘 버드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에 따라 영상통신구 화면 속, 버드 어깨 너머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
케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버드야! 거기 위험하다!”
라온이 놀라서 말을 걸었고, 케일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시신을 찾으러 간 건가?”
그의 물음에 버드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료의 시신을 이리 차갑고 험한 곳에 둘 수는 없지.
동대륙 북부 설산.
며칠 전에 레인저 부대원들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자, 케일과 버드 일행들이 간신히 도망친 바로 그곳에 버드는 와 있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산 곳곳을 수색하는 용병들이 보였다.
잠시 케일과 버드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결국 마음이 기울었다.
버드 쪽으로 말이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힘들겠군.”
-이상해.
케일, 버드. 두 사람은 서로가 내뱉은 말에 흠칫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음?”
-응?
멈칫하던 케일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무엇이 이상하지?”
버드는 케일의 물음에 뭐라 설명하기 힘들다는 듯 산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시신이 없어.
“뭐?”
이번에야말로 케일은 놀라서 되묻고야 말았다.
‘시신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나?
대략 천 명이나 되는 시신을 옮긴다?
그것도 눈사태를 피해 도망치던 놈들이 하루 이틀 만에 다 옮긴다고?
번뜩 떠오른 생각을 케일은 내뱉었다.
“적들이 시신마저도 다 치운 건가?”
-그건 아냐.
버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숫자가 안 맞아. 시신 숫자가 부족해. 절반 이상이나.
절반 이상 시신의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절반이 조금 못 되는 시신들은 찾았다.
그 말을 내뱉는 버드의 표정은 씁쓸했지만 그 눈동자에는 씁쓸함을 넘어서는 슬픔과 분노가 맺혀 있었다.
동시에 어떤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기대?’
케일이 그 감정에 의아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판이 설명했던 시신 형태 중 한 형태의 시신이 없어.
쥐족 판.
1,001명 레인저 부대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았던 레인저였다.
“빨리 말해.”
케일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천천히 말하는 버드를 재촉했다.
그에 버드는 잠시 숨을 내뱉더니, 곧바로 이어 말했다.
-또한 네가 판을 통해 구했던 몇몇의 레인저 생존자들 중에서도 한 가지 형태의 부상자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버드의 말은 이어졌다.
-판의 기억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고, 그의 기억 덕분에 시신들을 빨리 찾을 수가 있었어. 그런데 판의 기억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지.
맞다.
버드의 말대로, 판의 기억 속에 있어야 할 자리에 시신이 없다면 그것은 오류가 발생한 것이 맞았다.
그때, 버드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너 프레도 공작이라는 놈과 협력한다고 했지? 그놈이 너한테 호의가 있다고 했고.
갑자기 프레도 공작을 버드가 입에 올리는 순간.
“설마?”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판이 분명 나에게 말했어.”
그는 쥐족 판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뱀파이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흩어진 부대원 중 한 명의 시신을 찾았는데 피가 모두 빨려 있는 채였습니다.’
또 판은 프레도 공작을 처음 봤을 때, 울화통에 가득 차 외쳤다.
‘저,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우리 부대원들 피를 빨아먹은 놈들 우두머리 새끼가……!’
케일은 화면 속 버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피에 빨린 시신이 없나?”
-그래. 부상자도 없다.
순간 문 앞과 거울을 응시하며 잠자코 듣고 있던 최한이 놀라며 영상통신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때, 케일이 중얼거렸다.
“…판의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게, 그게 뱀파이어와 관련됐다?”
그의 시신이 비밀 통로인 거울로 향했다.
저 거울 너머 옆옆방에 프레도 공작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케일의 머릿속이 과거, 며칠 전 전투 속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판의 기억이 틀렸다는 건가?’
그럴 리는 없다.
나머지 시신은 그가 기억한 곳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순간, 긴장감을 담은 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환각사 찾았냐?
“아!”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북부 설산.
그곳에서 벌어졌던 적들의 공격. 그 공격을 펼친 적들은 찾았다. 하지만 한 가지를 찾지 못했다.
환각사.
그 존재는 누구일까?
버드가 속삭였다.
-…케일, 판이 피가 빨리는 부대원을 본 것이 환각이라면?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뱀파이어의 특기는 위장과 도망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우두머리의 특기는?
‘프레도가 환각사인가?’
아니면.
‘별도로 환각사가 존재하는 건가?’
그렇다면 환각사는 누구일까?
케일은 문득 프레도와 협력하는, 뱀파이어가 아닌 그의 동료를 한 명 떠올렸다.
“…부제사장?”
또 누가 환각사일 가능성이 있지? 도대체 환각사는 누구지?
케일의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각사가 누군지를 떠나, 케일은 차근차근 지나온 일들을 되새겼다.
케일은 프레도를 믿을 수가 없어, 그에게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프레도도 케일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프레도는 서슴없이 케일 앞에 나타나 케일과 거래를 하자고, 계약을 하자고 하였다.
무엇을 믿고?
“…있었던 거야.”
믿을 만한 게, 조건으로 내걸 만한 게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리 당당하고 막무가내로 나갔던 거지.
‘가령, 몰래 빼돌려 숨겨둔 레인저 부대원 같은 거 말이지.’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것 봐라?’
프레도 공작.
참,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었다.
“야. 버드. 잠깐 끊어봐.”
-…부탁한다.
영상통신구가 꺼졌고, 케일은 최한에게 말했다.
“거울 열어.”
프레도 공작을 다시 한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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