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4
53화.
케일은 생각했다.
‘이대로 튈까?’
하지만 저 고래족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었는지, 파직, 동굴 바닥을 파고드는 손가락이 보였다. 다 죽어가는데도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고래족이 인어 독에 다쳐?’
순간 스쳐 가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혼혈.
답은 그것뿐이었다.
문득 케일의 머릿속으로 ‘영웅의 탄생’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용만큼 적은 개체수를 가진 고래족. 그들 사이에 혼혈은 없었다.
‘하지만 죽은 혼혈이 하나 있다고 했지.’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고민했다.
“커헉.”
고래족은 더 이상 기어오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 케일의 머릿속으로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그냥 둘 거냐?
검은 용이 은근슬쩍 물었다. 케일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쓸데없는 동정, 쓸데없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그것은 사절이었지만.
“이봐.”
케일은 혼혈일 고래 인간에게 다가가 그 쓰러진 이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엎어져 있던 고래 인간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장발의 남자. 역시 고래족답게 엘프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릴 폭발적인 미모의 남자가 케일을 바라봤다.
“…살려-”
그런 이에게 케일은 무감각하게 답했다.
“그래. 살려줄게.”
혼혈 고래인간. 케일의 예상이 맞다면 이 자식은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이 될지도 모를 놈이었다. 그걸 분명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고래족 왕이 라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바다의 중재자이자 고래족의 왕. 그는 푸른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이였다. 지금 케일을 바라보는 이의 얼굴은 어둠 속이라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고래족 왕을 묘사한 모습과 거의 일치했다.
케일은 그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잠시 자도록. 깨어나면 다 괜찮아져 있을 거다.”
천천히 푸른 눈동자가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감겨져 갔다. 케일은 정신을 잃는 혼혈 고래족을 지켜보다가 이내 다가가서 다리를 살폈다.
“어때?”
혼혈 고래족이 정신을 잃자, 검은 용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불빛 구를 띄웠다. 다리가 제대로 보였다.
“엉망이네.”
고래족의 피부는 아주 두껍고 질겼다. 그 매끈하고 티끌 하나 없는 외견과 달리 아주 강했다. 그러나 혼혈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어의 공격에 당해 독이 피부 속으로 침투한 것이리라.
검은 용은 남자를 살피는 케일을 묘한 얼굴로 쳐다봤다.
“…넌 참으로 이상한 인간이다. 약한 주제에 이상하다.”
“그런 말은 됐고.”
케일은 남자를 가리키며 검은 용에게 지시했다.
“얘 좀 물에 담가라.”
“…거짓을 말한 건가.”
검은 용의 얼굴에 충격이 드리워졌다. 파충류의 충격받은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인간, 너는 약하지만 약속은 지키지 않았나, 그런데 물에 담그라니! 익사를 시키려고!”
하. 케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는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불빛 구를 손으로 잡았다. 뜨겁지 않았다.
“살리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저 자식 물에 담그고 나면 낮에 본 시체 기억하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건가?”
“뭘 시키긴. 시체 팔 한 짝만 잘라와.”
검은 용의 입이 벌어졌다. 케일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저리 행동해도 안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검은 용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하겠다.”
역시 검은 용은 말을 잘 들었다. 케일은 뒤돌아보지 않고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마을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얼른 해결하고 돌아가야 했다.
동굴은 깊지 않았다. 금방 끝이 나왔다.
‘찾았다.’
툰카가 발견한 기연. 그것은 ‘작은 웅덩이’였다. 케일은 잠수복 주머니에 챙겨왔던 물건 중 하나를 꺼냈다. 알람 장치였다. 타인이 이 근처를 접근하면 케일에게 그 알람이 전해져 오는 일종의 마법 장치였다.
‘떠나기 전에 챙기면 되겠어.’
케일은 작은 유리병에 그 웅덩이의 물을 조금 담았다.
‘불을 제압하는 물.’
원래 물은 불에 강하다. 하지만 이 물은 그 강함의 의미가 조금 달랐다. 라크가 구해올 물건을 이 물에 담가 그 속성을 스며들게 하면 아주 진귀한 물건이 탄생할 것이고.
말라가는 정글을 구할 보물이 될 것이다.
케일은 다시 동굴 입구로 돌아왔다. 그새 다녀왔는지, 인어 팔 한 짝을 찝찝한 얼굴로 내미는 검은 용과 물에 푹 절어 있는 혼혈 고래족이 보였다.
“가자.”
케일이 말하자 검은 용은 한숨을 내쉬며 혼혈 고래와 인어 팔 한 짝, 그리고 케일까지 비행시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케일은 온과 홍의 격한 환영을 받아야 했다.
“제때 잘 왔어요!”
“방금 전부터 집사가 문을 너무 두드리는데!”
굳이 고양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문 너머에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울 기세였다.
“공자님, 깨우면 죽인다고 하셔서 들어가지 못하고 문을 두드리고 있답니다. 공자님,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케일은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 마법 상자에서 장치를 하나 꺼내 검은 용에게 던졌다. 그리고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문을 열어젖혔다.
“공자님, 아미르 영애께서 안전하신지 확인을 좀 해달라고 하셔서요. 그러니 제발 일어나셔서 문 좀-”
“왜?”
“오, 공자님! …씻고 계셨습니까?”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케일은 한스의 물음에 나른히 답했다.
“잠이 안 와서, 여기 해수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아, 욕실에 계셨군요. 그럼, 잠을 안 자고 계셨으니, 제가 죽을 일은 없겠군요.”
“…과연 그럴까?”
“죄송합니다, 공자님.”
크흠, 큼. 헛기침을 하더니 한스는 케일을 살펴보며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 지금 밖은 난리거든요. 아까 큰 폭발 소리들이 터지고 나서 바다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케일은 들어왔던 창밖을 바라봤다. 한밤중임에도 마을은 이제 완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바다로 향하는 불빛들이 보였다.
개발을 코앞으로 둔 시기이기에 소용돌이가 있음에도 결국 아미르는 과감하게 바다로 향한 듯했다.
“큰 소리가 나기는 하던데.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파악 안 되었고?”
“아미르 영애께서 바다에 나간다고 하시더군요. 금방 파악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마 아미르는 환호할 것이다.
중앙 섬의 소용돌이가 사라져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이 바다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그래?”
“네.”
“그럼 가봐.”
차갑게 축객령을 내리는 케일에게 한스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곤 얼른 방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검은 용이 투명화 마법 장치를 끄며, 인어 팔 한 짝을 배 위에 올린 고래족 혼혈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온과 홍은 인어 팔을 보더니 방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쓸데없이 겁이 많았다.
케일은 욕실로 가 대야에 해수탕의 해수를 퍼 담아왔다. 이를 검은 용이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케일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인어 팔 한쪽을 해수에 담가 버렸다.
치이이익-
불에 타는 것 같은 소리가 났지만 실제로는 삐쩍 마른 팔이 급격하게 팽창하며 제 모양을 찾아갔다. 시체의 급격한 변화에 온과 홍은 아예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 버렸다.
시체는 이렇게 팽창하다가 순식간에 부패된다. 케일은 고래족의 다리를 바라봤다. 이전과 달리 초록색의 진액과 함께 바닷물이 섞여 있었다.
케일은 칼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정신을 잃고 있던 남자의 눈꺼풀이 떨리고 그의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깨어나려는 것 같은데? 인간, 칼 치워라!”
검은 용이 외쳤고 남자의 눈이 떠졌다. 그 순간 케일은 칼을 높이 들었다. 케일은 눈이 마주친 고래족 인간을 향해 안심하라는 듯 씩 웃어 보였다. 고래족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칼이 움직였다.
푹.
인어의 팔 피부에 칼이 박혔고 그 칼은 피부를 갈랐다. 그 피부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인어의 피였다. 부패 전, 찰나지만 인어의 피도 해수에 복구가 되었다.
케일은 흔들리는 동공의 남자에게 말했다.
“잘됐네.”
흘러나온 피가 고래족 남자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치이이익. 다리 위의 초록색 진액이 인어의 피와 섞여 증발하기 시작했다.
케일은 피가 흘러내리는 그 팔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피가 썩기 전에 마셔. 그게 직방이야.”
5권. 로잘린이 초반부에 뭣도 모르고 인어에게 달려들었다가 다친 라크를 살리기 위해 찾아낸 치료법이었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치료법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온, 홍, 검은 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국 남자는 나았다. 그 피를 마신 것이다.
다리의 진액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허망한 표정의 고래족 혼혈을 보며 케일은 제 할 말을 했다.
“왜? 이 팔을, 이 시신을 만든 이가 너 아닌가?”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케일은 그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인어 진액을 묻혀놓고, 죽였냐고 물으니 당황해하는 얼굴이 어벙해 보였다.
케일은 인어의 피를 마지막으로 고래족 남자의 다리에 떨어뜨리고는 대야에 팔을 집어넣어 버렸다. 팔은 해수 속에서 부패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를 물끄러미 보며 케일은 말했다.
“고래면 늦어도 아침에는 바다로 가야 체력 회복이 완전히 될 텐데. 자다가 알아서 나가.”
남자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최한과는 다른 의미로 날카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늘 비교당하며, 동족들보다 열등한 자신을 보고 살아오던 자. 그런 자 특유의 날카로움이었다.
“제가 고래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인어를 세 명이나 죽였는데, 누가 그렇게 하겠어?”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케일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은 감각에 대충 손을 흔들어 보였다.
“쓸데없는 네 이야기 들을 생각 없다.”
그래서 이름도 묻지 않았고. 그를 한스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
“나는 네가 살려달라고 했고, 그러겠다고 해서 그런 것뿐이야.”
케일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샤워를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피곤함이 더 앞섰다.
“잔다. 조용히 나가라.”
케일은 눈을 감았다. 용이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었다. 그는 고래 왕이 라크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족을 모두 잃어본 김록수는 오지랖을 한번 부렸다. 물론 손해를 볼 생각은 없었다.
왕의 은인. 지금 고래 왕이든 향후에 고래 왕이 될 여자든 언젠가 만나면 이 일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또한 무엇보다도 인어와 고래의 싸움에서 무조건 고래족이 이겨야 했다. 케일은 태평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파세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붉은 고양이 홍이 보고했다.
“나중에 밤에 다시 온대요.”
“굳이 그럴 필요는-”
케일은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잠시 뒤, 더욱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그를 덮쳐왔다.
“케일 공자!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왔어요!”
아미르 영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차분하던 그녀에게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바로 바닷가에서 온 것인지 그녀는 일행들을 대동한 채 우비 차림이었다.
“무슨 소식인지 아세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들뜬 아미르와 달리 케일은 담담했다. 아니, 떨떠름했다.
“소용돌이가, 중앙 섬 앞의 소용돌이가 사라졌어요!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요!”
제가 했습니다만. 케일은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도 못한 채 시선을 돌렸다. 아미르 옆에는 그 능숙한 어부와 기사들.
그리고 툰카가 있었다.
책 속에서 언급된 그대로, 사자처럼 뻗친 갈색 긴 머리칼의 남자. 오크의 뺨을 그냥 날려 버릴 것 같은 험악한 외모의 그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쉽네. 그 소용돌이에 한번 뛰어들어 보고 싶었는데. 다른 거라도 뛰어들어?”
역시 미친놈 툰카다운 말이었다.
그때 아미르는 케일에게 활기차게 말했다.
“공자! 헤니투스 백작가가 저희 투자자이신 만큼, 그 광경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평온한 우바르의 앞바다를요. 중앙 섬에 같이 가시겠어요?”
헤니투스 백작가 사람이 오기 전까지 케일은 이 일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했다. 케일은 아미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물었다.
“이 인원이 다 함께 가는 겁니까?”
“네.”
아미르의 단호한 대답에 케일의 입꼬리 끝이 살짝 떨렸다.
그 떨림은 보지 못하고 부드러운 미소만을 본 아미르는 툰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 사람은 처음 보시죠? 일전에 소용돌이에 휘말릴 뻔했던 사람입니다. 밥 씨, 이분은 케일 헤니투스 공자십니다.”
밥? 케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툰카는 그 험악한 얼굴에 씨익 미소를 그렸다. 오우거보다 무서운 미소였다.
“반갑습니다. 밥이라고 합니다.”
밥. 아주 가명을 써도 꼭 지 같은 걸 쓰는 툰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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