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40
539화.
“갑자기 무슨 소리지?”
하얀 별은 모크에게 물음을 던지며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모크는 그 목소리에 긴장하였지만, 애써 어깨에 힘을 주며 답했다.
“제가 유용한 정보를 하나 찾아왔습니다.”
“정보?”
“네.”
피식.
하얀 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 몰래 수집한 정보란 말인가?”
흠칫.
모크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는 천천히 숙였던 허리를 펴며 하얀 별을 바라봤다.
가면을 쓰지 않은 하얀 별의 무심한 눈동자가 그를 향해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너무 다르군.’
가면을 쓰지 않은 하얀 별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모크는 절로 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물론 자주 마주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군.’
오랜 시간 주군으로 모셨던 모크도 이제 세 번째였다.
일정 주기로 찾아오는 특별한 순간. 그 짧은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오늘은 지금일 뿐이었다.
가면을 쓸 때와 쓰지 않았을 때.
하얀 별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렇기에 모크는 공작 자리까지는 노릴지언정 감히 왕의 자리까지 탐내지는 못했다.
힐끗.
모크의 시선이 잠시 하얀 별이 몸 담고 있는 욕조로 향했다.
검은 액체.
죽은 마나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얀 별은 평화로워 보였다.
‘지독한 인간.’
모크는 하얀 별이란 지독한 인간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서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가타부타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변명은 안 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하얀 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래서 자네가 가져온 케일 헤니투스의 약점이 무엇이지?”
“…어둠의 숲에 있는 검은 성을 아십니까?”
‘어둠의 숲’. 그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하얀 별의 눈동자가 번뜩였으나 허리를 숙이고 있던 모크는 이를 보지 못했다.
“아니. 검은 성은 알지 못한다.”
모크는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것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프레도 공작이 작성하였고, 나르에게서 받았던 정보 문서.
그 문서를 바탕으로 모크가 새로이 작성한 문서였다.
온전히 자신의 공으로 하기 위해서.
“이리 가져오도록.”
모크는 하얀 별에게로 다가가 문서를 내밀었다.
“흐음.”
사락 사락.
서류 페이지가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졌고, 그럴 때마다 하얀 별의 표정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모크는 천 년이 넘는 반복된 삶으로 지친 눈동자에 조금씩 열기가 감도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됐다!’
그 순간, 그는 이 작전이 시행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오랜 세월 주군으로 모셔온 감이었다.
탁.
서류가 덮였다.
“좋군.”
하얀 별은 짧은 말과 함께 모크에게 다시 서류를 건넸다.
모크는 조심스럽게 그 서류를 받아들고선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서 있었다.
하얀 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나의 운명의 적수지.”
한쪽은 마계. 한쪽은 신.
“서로 다른 초월한 존재들에게 인정받은 자.”
그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촤르르륵-
검은 액체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그의 몸을 감싸며 회오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달라.”
하얀 별의 눈동자에 지친 기운이 사라지고 열기로 가득했다.
“나는 초월한 존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자는 신이 될 수 없을 터.”
하얀 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창밖을 보던 몸을 돌려 모크를 내려다봤다.
“백작의 계획대로 해보도록. 다만.”
“내 대업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될 거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모크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모크는 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에게로 하얀 별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르를 끌어들인다고 했던가?”
“네. 폐하.”
“다치지 않게 잘 부탁하네.”
모크의 시선이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사뭇 다정한 표정이 그림같이 지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쓸 만한 재목인지도 알아보고.”
모크의 어깨가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하얀 별은 이전처럼 다정한 표정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모크에게 차갑게만 들려왔다.
“이번에 보니, 프레도 공작 정도의 강자가 될 것 같은 기개를 지녔더군. 그러니 확인할 수 있도록 위험하지 않을 때 한 번씩 앞세워 봐.”
모크는 생각했다.
“나르는 엔더블의 미래 아닌가?”
엔더블의 미래가 아니라, 강한 수하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초대 귀족 중 유일하게 노인 모습인 모크.
그는 그만큼 오래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가 가진 나름의 연륜이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그는 하얀 별에게 허리를 숙였지만, 결코 하얀 별을 믿지 않았다.
“반드시 만족하실 만한 결과를 내어오겠습니다.”
“그래. 나가보게.”
“네.”
모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달칵.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하얀 별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제사장.”
그의 부름에 벽 한쪽이 움직이며 통로를 하나 만들었다. 그 통로 밖으로 게르세이 제사장이 두 손에 하얀 천으로 감싸인 흰 가면을 소중히 들고서 다가왔다.
“네. 저하.”
“모크 백작이 꽤 좋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렇네요. 백작 계획대로 하면 귀족 대기자들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고.”
게르세이와 하얀 별의 시선이 마주했다.
제사장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축제도 차질 없이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르세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업에는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하얀 별은 그 말에 눈을 감으며 욕조에 몸을 깊이 파묻혔다.
그 모습에 게르세이는 뒤로 조용히 빠지며 말했다.
“시간이 되면 가면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하얀 별은 죽은 마나 액체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
케일은 괜히 목이 갑갑해 손으로 목 단추를 매만졌다.
거울 앞에 선 그의 눈동자에 보랏빛 눈동자의 소년이 한껏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들아.”
그리고 그 소년의 어깨너머. 침상에 누워 병색이 완연한 모습의 프레도 공작이 자리해 있었다.
케일이 아무런 답이 없자, 프레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들아.”
“왜?”
“이제 대회의장에 가니?”
“어.”
프레도는 나르가 된 케일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참, 우리 아들은 대충 답하는구나.”
케일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침실 문으로 향했다.
그는 나름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밤을 새웠지만 자신이 발의한 안건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왕성으로 가는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케일이 문고리를 돌리기 전, 등 뒤로 프레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별을 우습게 보지 말거라.”
“…무슨 말이지?”
“그가 늘 쓰고 있는 가면. 그것은 마계에서 넘어온 물건이지. 그 용도는 하얀 별을 제외하고 우리 중 게르세이 제사장만 알뿐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네.”
역시 가면은 마계에서 넘어온 물건이었다.
등 돌리지 않은 채 문을 응시하던 케일은 파문된 신관 케이지를 떠올렸다.
“다만.”
그때, 프레도의 말이 이어졌다.
“가면을 벗은 하얀 별은 가면을 썼을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달라.”
케일의 등을 바라보는 프레도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맨얼굴의 그는 진실로 천 년 동안 끊임없이 삶을 반복한 자의 면모가 보이지.”
지치고 무심한 눈동자는 가면이 벗겨졌을 때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났다.
그리고 하얀 별의 진정한 분위기도.
“물론 마족이 되기 전까진 그 가면을 자주 벗을 수 없다고 했네. 특정한 때에만 벗을 수 있지. 이건 하얀 별, 게르세이. 그리고 부제사장만이 아는 부분이네.”
그리고 프레도도 아는 정보였다.
즉, 협력관계인 부제사장이 아는 부분이니 프레도도 안다는 소리였다.
문을 바라보는 케일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가 풀어지며 그 입이 열렸다.
“나는 아무도 우습게 여기지 않아.”
어제 레인저 부대원에 관련된 일로 프레도 공작의 새로운 면모를 안 후, 케일은 더 이상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없었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프레도를 바라봤다.
“어쨌든 네가 한 말은 머리에 새겨두지.”
가벼운 어투로 답하는 케일을 프레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배웅했다.
“그래. 아들, 잘 다녀와.”
케일은 그 인사를 무시하고선 침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탁.
곧 침실 문이 닫혔고 프레도는 그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새겨들으면 좋을 텐데.”
가면을 쓴 하얀 별과 맨얼굴의 하얀 별.
그 둘의 차이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다.
얼마나 다른지.
“근본이 바뀌는 느낌이지.”
프레도는 케일이 돌아오면 다시 한번 그 느낌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기로 결심하고선 침대에서 일어섰다.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한 그는 거울이 없는 벽으로 다가갔다.
달칵.
그의 손가락에 따라 벽의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투명화한 채 몰래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 존재는 아침 일찍 케일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냥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자기 부하한테는 좋은 놈 같지만, 나한테 좋은 놈인 것 같지는 않거든?’
투명화한 통통한 앞발이 얼른 제 입을 막았다.
그 앞발의 주인. 라온은 저도 모르게 쏟아낼 뻔한 말을 꾹 삼키고 마음속으로 했다.
‘역시 우리 인간이 이런 머리는 잘 돌아간다!’
쿠우우웅-
프레도가 손을 댄 벽에 이내 동그란 아치형의 통로가 생겨났다.
타닥. 타닥.
프레도는 통로 안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인간아! 위대한 내가 다 알아낸다!’
라온은 프레도가 통로로 완전히 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슬며시 거울로 다가갔다.
톡.
아주 작게 두드렸다.
보통 이상의 청각을 지닌 이가 깊이 집중해야 겨우 들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그 뒤에 라온은 얼른 프레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지하로 향했다.
‘라온. 물론 네 안전이 최우선이다.’
라온은 케일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기에 언제라도 도망칠 마법 준비를 해놓고서 통로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스으으으-
거울이 열렸다.
거울 너머, 보통 이상의 청각을 지녔으며 어느 때보다도 깊이 집중하고 있던 이가 거울 통로를 통해 침실로 넘어왔다.
‘라온이 제대로 신호를 줬네. 아무도 없어’
그 사람은 최한이었다.
최한은 아무도 없는 침실을 확인하고는 열린 통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한. 넌 틈을 봐서 침실을 뒤져. 뭐든 쓸 만한 정보는 다 모아.’
최한은 케일이 내린 명령에 따라 침실을 소리 없이 뒤졌다.
그 몸짓이 얼마나 은밀한지 문밖의 집사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케일은 프레도의 심복 솔레나의 안내에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이제는 꽤 익숙한 마차에 몸을 기대며 케일은 솔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왕성으로.”
솔레나가 마부에게 명령했고, 곧 마차는 하얀 성으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케일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마차 창밖을 바라봤다.
‘가면을 벗었을 때와 안 벗었을 때. 차이가 크다고?’
그는 프레도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프레도는 몰랐지만, 케일에게 있어 ‘머릿속에 새겨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중히 기억해둔다는 말이었다.
기록해둔다는 말이었으니까.
‘마계의 물건이라.’
하얀 별과 그의 흰 가면.
조사해 봐야겠는데?
케일은 오늘 저녁 영상통신을 하기로 했던 파문된 신관 케이지를 떠올렸다.
그녀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 터.
케일의 머릿속이 하나하나 계획에 맞춰 그림을 그려나가는 동안 그의 마차는 하얀 성으로 점점 더 다가갔다.
***
“나르 본 이젤른이 발의했던 안건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크 백작이 어느 때보다도 힘찬 목소리로 대회의장에서 말했다.
100명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된 순간.
“그 결과는 ‘검은 성 파괴’ 작전입니다.”
순간 대회의장이 술렁였다.
안건 결과로 생각하기에는 의아한, 뜬금없는 작전 발표에 다들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이로 어젯밤의 일을 아는 자들은 각기 다른 눈빛으로 모크 백작의 입을 응시했다.
이번 대회의가 끝나면 더 이상 대회의가 없고 얼마 뒤 축제가 펼쳐진다.
축제를 앞둔 마지막 대회의.
“작전 내용은 간단합니다.”
모크 백작은 96명이 고대하던 ‘전투’라는 이름의 축제를 발표했다.
“케일 헤니투스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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