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5
54화.
히죽 웃어 보이는 툰카의 얼굴이 썩 보고 싶지 않은 케일이었다. 하지만 아미르는 차분하게 열심히 설명했다.
“밥은 위퍼 왕국 사람이라고 해요. 작은 해안가 마을 부족민인데,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왔다가 어떻게 잘못해서 표류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네. 작은 물고기들 잡으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하하하하,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는지.”
퍽이나 소소하게 살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미르는 케일의 속내를 모른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젯밤 배에 함께 타서 저희 수색하는 것을 도와줬지요.”
부족민을 바라보는 아미르의 눈빛은 깨끗했다. 케일은 주위를 살짝 훑어보았다. 아미르와 달리 몇몇 이들에게서 툰카를 향한 탐탁지 않은 시선들이 보였다.
위퍼 왕국 부족민. 야만인을 향한 눈빛이었다. 케일은 그 눈빛들을 대충 훑어보다가 툰카와 시선이 마주쳤다. 툰카가 히죽 웃어 보였다.
“공자님이 수도에서 커다란 방패를 펼쳐 모두를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강하신 분이라 들어 한번 뵙고 싶어서 영애님께 부탁해 따라왔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툰카의 눈초리가 얇아졌다. 그 순간 직감했다.
위험하다.
케일의 입이 바로 열렸다.
“그래서 요양 중이네.”
“…요양이요?”
“어, 강한 힘이 아니거든. 약하지.”
아미르가 거들었다.
“맞아요. 과도하게 힘을 많이 쓰셔서 지금 요양 겸 여행 중이세요.”
아미르는 그런 케일을 안쓰러움과 감탄, 여러 가지를 섞어서 바라봤으나, 툰카는 달랐다.
“아, 그래요?”
딱 흥미가 떨어진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케일을 슬쩍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래, 저래야 툰카지.’
남을 위한 희생? 영웅? 그딴 것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는 놈이었다. 오로지 강함. 그것에 집착했고, 약한 놈은 같은 편이라도 무시하고 때에 따라서는 죽여 버리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폭군이었다.
“그럼 갈까요?”
아미르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귓가로 툰카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네. 근처에서 강한 냄새가 나는데.”
역시 귀신 같은 놈이다. 케일은 허공을 바라봤다.
-나 냄새 안 난다.
투명화한 검은 용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툰카는 수인족보다 더 강한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케일은 오늘 어느 때보다도 약한 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소용돌이가 어떻게 갑자기 사라졌는지 현재 조사 중이에요. 곧 아버지와 영지 내 마법사들도 함께 올 예정입니다.”
케일은 중앙 섬에서 잔잔한 바다를 보며 아미르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얼른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잘한다.
검은 용의 말은 가벼이 무시했다. 케일은 담담한 눈빛으로 바다 위를 바라봤다. 아주 소란스러웠다. 마을 어부들도 모두 나왔고, 해군 기지 건설을 위해 온 사람들도 조사를 하고 토론 중이었다.
여전히 주변 소용돌이들이 내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아주 시끄러웠다. 이를 보며 케일은 덧붙였다.
“얼른 다른 소용돌이들도 사라졌으면 좋겠군요.”
-거짓말 또 한다. 인간, 일 년은 더 소용돌이를 유지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용의 말은 가벼이 무시했다. 아미르는 케일의 말에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원인을 파악해 다른 소용돌이들도 없앨 겁니다. 많은 곳에서 도와주고 기회를 맞이한 만큼 그 기회를 거머쥐어야지요.”
열정적인 아미르의 모습에 괜히 케일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을 열었다.
“아미르 영애와 우바르 가문이라면 해내실 겁니다.”
“…고마워요. 케일 공자의 말에 마음이 든든해져요.”
차분한 미소를 머금은 아미르의 따뜻한 눈빛이 케일을 향했다. 그런 그녀에게 케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햇볕에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데, 그늘에서 좀 쉬었다가 와도 되겠습니까?”
한 배 위에서 어부, 조사대와 함께 있는 툰카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멀리서 툰카는 케일 쪽을 이따금씩 쳐다봤다. 여전히 그 강한 냄새를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검은 용을 툰카가 찾아낼 리 없었다. 오러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의 한계였다.
“아, 그럼요. 요양 중이시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네. 그럼.”
케일은 여유로이 중앙 섬의 숲으로 향했다. 그늘로 향하는 그를 아미르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양 중임에도 할 일을 하는 케일은 확실히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이였으나, 그의 모습은 병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곤해 보일 뿐.
“그게 대단한 점이지.”
차기 영주를 꿈꾸는 아미르. 그녀도 저런 굳건한 자세를 가져야되겠다 생각했다. 차분한 눈동자에 열정이 맺히고, 그녀는 조사대원들에게 다가갔다.
한편 케일은 중앙 섬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쪽에는 조사대도 없었고 대충 시간 때우기 좋았다.
-거기에 시체가 있는데, 안 무섭나? 넌 간도 작지 않은가.
검은 용의 말을 다시 한번 못 들은 체하며 케일은 반대편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인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뭐야?”
-난 아니다! 난 하지 않았다!
검은 용이 격렬하게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에 케일은 그 목소리를 미처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인어 시체가 있던 바위 근처로 다가갔다. 그는 바위가 있던 근처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파세톤이 한 짓인가?’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인어 시체가 어쩌다…….”
그리고 인어의 시체는 가루가 되어 있었다. 케일이 시체를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시체임을 알았지,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그저 바위 가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엄청난 힘.
분명 고래의 짓이었다.
그것도 분노한 고래의 힘.
철썩, 철썩. 갑자기 해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다 밑에서 무언가가 올라온다. 아주 빠르게!
케일은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했다.
촤아아악. 해수면을 가르며 거대한 무언가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회색의 무언가. 그것은 생물이었다. 그것의 눈동자가 케일을 향했다.
고래다.
그것도 혹등고래.
바다의 수호자라 불리며 약한 생물을 보호하는 혹등고래. 대대로 고래족 왕은 혹등고래 수인이었다.
쿵. 쿵. 쿵. 케일의 심장이 뛰었다. 고래의 눈빛은 살기와 탐색, 본능과 이성이 뒤섞여 케일을 직시하고 있었다. 케일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약자로서 강자의 시선을 마주했다. 강자는 케일을 내려다보며 하나하나 탐색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게 미쳤나!
검은 용의 분노한 음성이 케일의 머릿속을 울렸다. 동시에 무형의 힘이 공기 중에서 파동을 일으켰다. 케일을 향했던 고래의 눈동자가 그 파동으로 향했다.
-감히 내 약한 인간을 그딴 식으로 쳐다봐?
공기 중에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고 해수면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등고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15m에 달하는 고래는꼬리를 들어 올려 바다를 내려쳤다. 촤아아악. 해수면이 크게 요동쳤다.
그 행동에 케일은 직감했다.
저건 고래 수인이 확실하다.
쿵. 쿵. 케일은 뛰는 자신의 심장을 가라앉혔다, 위기를 느낀 심장의 활력이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덩달아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반응했다. 고대의 힘은 제 주인을 가장 우선시했다. 고대의 힘은 언제든지 그 힘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케일은 마나가 일렁이는 허공, 검은 용이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먼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자는 게 아니에요.”
마치 전설 속 세이렌처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혹등고래가 서서히 얼굴을 해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내었다.
“이야.”
케일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엄청 컸고 엄청 무서웠다. 저 고래 얼굴만 들이박아도 케일은 죽을 것 같았다.
-대가리는 왜 드냐? 지금까지 한 게 싸우자는 거 아닌가! 하찮은 고래 주제에!
케일은 제 머릿속에 울리는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마나가 일렁이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화난 4살은 무서운 법이었다.
무엇이든 부술 것같이 일렁이던 마나는 케일의 손을 따라 길을 터주었다. 고래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동그란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용의 머리였다. 케일은 무심하게 이를 툭툭 쓰다듬었다.
“화내지 마라. 그러다가 너 다쳐.”
마나의 일렁임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안 다친다. 난 강하다.
“알지. 잘 알지. 그래도 조심해야지.”
4살짜리 아이를 다독이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럭저럭 용은 케일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약한 인간 너나 조심해라.
마나 파동이 가라앉았다. 케일은 그제야 고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고래는 그 거대한 머리를 케일 쪽으로 서서히 숙였다. 케일은 그 크기에 놀라 흠칫했지만 가만히 서 있었다. 고래 눈동자의 살기가 사라져 있었다.
케일 바로 앞에까지 고개를 숙인 혹등고래의 거대한 입이 열렸다.
“하나 물어-”
그때였다.
저 멀리 수평선 쪽에서 작은 고래가 미친 듯이 해수면을 가르며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15m의 고래에 비하면 아주 작고 연약해 보이는 고래였다.
그 고래는 아주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외쳤다.
“누나, 씹어 죽이면 안 돼!”
케일의 코앞에 있던 혹등고래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촤아악, 일렁이는 바닷물이 케일에게로 쏟아졌다. 케일의 옷이 젖었다.
하지만 케일은 이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역시 그 혹등고래인가.’
지금 오는, 저 고래치고는 조막만 한 고래가 파세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누나라 불린 존재는 단 하나였다.
현 고래 왕의 딸이자, 다음 대 왕이 될 자.
최한과 함께 인어들과의 싸움에서 가장 정면에 섰던 자.
케일은 뒤돌아선 혹등고래 등의 엑스 자 상처가 보였다.
위티라.
그녀가 틀림없다.
거대한 고래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케일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혹등고래 남매의 만남에 더 이상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작은 고래는 한 번 더 외쳤고.
“절대로 죽이면 안 되는 분이야!”
검은 용은 머릿속에 말했다.
-안 싸우는데. 저 작은 고래는 무슨 소리 하는 건가?
그러게나 말이다. 케일은 우렁찬 작은 고래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반대편이 더 시끄럽고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러면 저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다 여기로 왔으리라.
혹등고래와 작은 고래의 만남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였다. 검은 용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참고로 하나가 더 온다.
뭐? 하나 더?
케일은 뒷걸음질하던 것을 멈추고 숲 쪽으로 뒤돌아섰다.
“크하하하하! 냄새가 나, 냄새가!”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풀어 헤친 미친놈이 나타났다.
툰카였다. 눈빛이 맛이 가 있었다. 그는 숲을 미친 속도로 빠져나오며 외쳤다.
“강한 냄새가 난다!”
그 순간, 케일은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 덕분에 툰카와 혹등고래의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새우 등 터지기 전에 케일은 쪼그린 채로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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