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53
552화.
케일은 코튼의 눈동자에 맺힌 두려움을 가만히 응시했다.
‘왜 저렇게 게르세이가 쫓아오는 것을 겁내지?’
케일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에르하벤이 입을 열었다.
“게르세이를 우리가 붙잡아야 할까?”
하지만 코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좋지 못해요.”
그녀는 고룡에게는 말을 높였다.
“게르세이 성격이라면 분명 내 수하들을 제압한 후, 곧바로 하얀 별에게 연락을 취했을 거예요. 그 뒤에 이 지하 통로로 들어설 겁니다. 그는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아요. 철저한 편이거든요.”
에르하벤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게르세이를 제압하기보다는 하얀 별이 오기 전에 이곳을 무너뜨리는 편이 낫다?”
“네. 맞아요.”
그녀는 품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들었다.
“동굴을 무너뜨리려면 안쪽에서부터,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게 나아요.”
그녀는 그 지도를 보면서 동굴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니, 뛰었다.
“세 번째 장소가 가장 중요한 곳이니, 거길 무너뜨리는 게 효율적이야!”
죽은 마나 저장고야, 아깝지만 반드시 없애야 할 시설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쿠웅! 쿵! 쿵!
계단 위쪽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르세이 심복들이야! 서둘러!”
그녀는 마음이 급해졌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으엇!”
그 순간, 그녀는 제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그녀의 두 발은 바닥에서 떠올랐다.
“뭐야?”
그녀의 시선이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온 케일에게로 향했다.
“서두르려면 빨리 가야지. 뛰어선 늦어.”
케일의 발끝과 그녀의 발끝에 회오리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버드와 에르하벤도 이미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갈 준비를 해두었다.
코튼은 제 발끝을 내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안내할게!”
그녀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케일은 그 옆에서 함께했다.
그의 눈동자에 수십 개의 죽은 마나 유리관들이 담겼다.
저 안에 담긴 수많은 생명의 목숨도 함께 다가왔다.
‘그러니 이 시설을 모조리 부숴야 한다.’
케일이 그리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서두르지? 두려움이 심해 보이는데?”
코튼은 깨물고 있던 입술을 떼었다.
“…내가 세 번째 장소가 중요하다고 했었지? 그 근거도 있다고.”
“그래.”
쿵. 쿵. 쿵.
여전히 뒤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게르세이의 심복들은 누구길래 이다지도 큰 소리를 내며 지하로 오는 것일까?
케일은 유리관 끝에 자리한 벽과 문이 보였다.
코튼 역시도 그 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곳곳에서 죽은 마나를 제공 받았어.”
“모고르 제국?”
“그래. 모고르도 그중에 하나였지.”
버드가 놀라서 입을 물었다.
“제공 받은 데가 더 있다고?”
코튼이 미간을 찌푸린 채 버드를 휙 돌아봤다.
“그런 거 일일이 말할 시간 없어!”
그녀는 연신 지도를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하얀 성이 생겼을 때 지하 시설도 함께 만들어졌어. 나는 그 과정에 참여했지만 이 시설의 가장 안쪽. 세 번째 시설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들을 수 없었지.”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 엔더블 왕국은 건설부터 완공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20대로 보이는 부제사장이 그 과정에 모두 다 참가하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겉모습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어.’
케일은 비로소 그녀가 환각사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막연히 중요한 곳이란 생각은 했지만, 그 뒤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어.”
케일은 다시 코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모고르 제국에 닿아있던 우리 쪽 힘이 끊어진 후, 게르세이가 세 번째 시설에 주기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
“생각보다 오래된 일은 아니네.”
피식.
케일은 자신의 말에 실소를 흘리는 코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케일을 은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루에 24개 생명체의 목숨이 매일 사라져야 했던 시간인데?”
“…뭐?”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고 코튼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8시간마다 한 번씩. 게르세이는 심복들을 데리고 이 세 번째 시설에 ‘먹이’들을 보냈어.”
“그 먹이가 사람이었나?”
“…사람일 때도 있고 다른 생명체일 때도 있었어. 무엇이든 여덟 목숨을, 하루에 세 번씩이었어.”
게르세이의 움직임에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의 하루 일과를 관찰하던 코튼은 어느 날부터 게르세이의 그런 움직임을 알아채었다.
“넌 접근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심복들은 외부에서 먹이를 구해왔어. 그때는 게르세이도 없지.”
이 지하 시설에 들어오는 일과 먹이를 세 번째 장소로 배달하는 일에는 반드시 게르세이도 함께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먹이를 구해오는 일은 심복들만이 주로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환각을 펼치며 그들의 뒤를 몰래 미행한 적이 있어.”
코튼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심복 한 명이 하는 말을 들었지. 게르세이 심복 중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는 놈이야. 그놈이 그러더군.”
타닥.
코튼의 두 발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녀는 곧바로 두 번째 장소로 향하는 문의 잠금장치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심복이 했던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괴물들에게 먹일 먹이를 빨리 구해야 해!’라고 말이야.”
“…괴물?”
“그래. 그리고 덧붙였지.”
케일은 코튼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 끔찍한 것들이 마침내 봉인을 푸는 그 날. 우리 주군과 폐하의 꿈을 모두 이뤄드릴 것이니 모든 것을 다 쏟아 주군의 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고?”
“들켰어.”
우우웅-
그녀 손가락 반지에서 기이한 진동이 퍼짐과 함께 잠금장치도 함께 진동했다.
철컥 철컥. 그녀의 손이 잠금장치를 조작하였다.
“게르세이 심복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바로 도망쳐야 했어. 겨우 살아 돌아왔지.”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골몰하던 버드의 입이 열렸다.
“봉인을 푸는 날 모든 꿈이 이뤄진다라. 아무리 봐도… 부제사장 말대로 세 번째 장소가 중요한 곳일 것 같은데.”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왠지 그 봉인이 풀리는 날이 축제 마지막 날 의례 때일 것 같은데?”
코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도 그 생각이야. 그래서 어서 그것부터 부숴야 해.”
버드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괴물에, 끔찍한 것이라면 우리가 부술 수 있을까? 우리도 위험한 것 아냐?”
“내가 약해 보이나?”
버드는 에르하벤의 말에 멈칫하며 두 손을 휘저었다.
“아. 에르하벤 님. 그게 아니라.”
에르하벤은 그 반응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봉인된 상태이고 게르세이와 그 심복이 먹이를 주러 자유로이 드나들 정도라면 그리 위험한 상태는 아닐 것 같군.”
“제 생각도 그래요.”
케일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서둘러야 하는 거네.”
그와 코튼의 시선이 부딪쳤다.
케일은 마저 말을 이었다.
“게르세이가 먼저 봉인을 풀어버리면 곤란하니까. 그가 오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거지. 맞나?”
“그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긴 하지.”
코튼은 그리 말하면서도 찌푸려진 미간을 풀지를 못했다.
“아, 왜 이리 안 열려!”
코튼이 비속어를 남발하며 잠금장치를 조작했다.
“비켜.”
“뭐?”
케일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코튼의 손이 속절없이 잠금장치에서 멀어졌다.
“한시가 바쁜데 이게 무슨-!”
“에르하벤 님.”
그 순간 코튼은 에르하벤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러서거라.”
그 말과 함께 코튼은 케일과 버드에게 한 손씩 잡힌 채 뒤로 물러서졌다.
동시에 그녀는 금빛 가루가 벽을 덮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찰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곧 크게 떠졌다.
콰아아아아앙!
“…미친!”
벽이 통째로 부서지고 있었다.
툭. 툭.
그녀의 어깨를 케일이 두드리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왕 들킨 거 이제 막나가야 할 때 같은데?”
“…미친놈.”
그렇다고 벽을 그냥 날려? 동굴 무너지면 어쩌려고?
코튼은 할 말이 많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케일은 그 뒤를 따랐고, 그 순간 그는 넓은 공간을 꽉 채운 수많은 기계와 여러 진들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의 시선에 코튼은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은 이곳에서 게르세이를 통해 여러 가지 ‘정화’ 과정을 거쳐야 했어.”
“정화?”
“인간의 몸을 정화시켜 마족에 어울리는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지.”
케일은 넓은 공동의 북쪽을 가리켰다.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저긴가?”
“그래. 저곳이 세 번째 장소야.”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르하벤과 버드를 바라봤다.
“부수면서 가죠.”
우우우웅-
버드의 검끝에서 푸른 오러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날이 기계 장치들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왔구나.”
에르하벤의 시선이 무너뜨린 벽 너머 첫 번째 장소 입구 계단으로 향했다.
쿠웅!
케일은 굉음과 함께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 그곳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멀어 그들의 모습이 세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략적인 모습은 보였다.
“덩치가 다 좋은데?”
버드는 거대한 덩치의, 로브를 입은 다섯 명의 사제들이 내려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거리가 많이 멀어서 냄새를 맡을 수가 없네. 그래도 마법사는 없어 보이고,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닌-”
“닥쳐!”
코튼이 외쳤고 버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버드는 코튼의 말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미친-!”
콰아아앙!
콰아아! 콰앙! 콰아앙!
연달아 폭발음이 들려왔다.
버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저 유리관을-!”
한 명을 제외한 거대한 덩치의 사제 넷이 거대한 유리관을 부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죽은 마나 액체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그때 코튼의 목소리가 일행에게 들려왔다.
“저것들은 한 명 빼고는 모두 시체야! 그것도 죽은 마나 폭탄을 몸 안에 내장한 죽은 시체!”
코튼은 게르세이가 유리관을 부수도록 할 줄은 몰랐기에 절로 질린 표정을 짓게 되었다.
사제 넷의 덩치가 더 커졌다.
마치 더 많은 죽은 마나를 흡수해 거대해진 폭탄처럼.
쿵. 쿵. 쿵.
사제 넷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군.”
에르하벤은 이들이 정말 죽은 시체라는 것을 다가오는 생기 없는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맞아요! 저들은 이지가 없습니다! 오로지 게르세이의 말에 복종하는 존재일 뿐!”
코튼은 케일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따라와! 두 번째 시설이 문제가 아냐! 바로 세 번째로 가야 돼!”
케일은 그녀의 손길을 따라가면서도 물었다.
“넌 왜 저 게르세이 심복들을 두려워하지? 죽은 마나 폭탄이 터져도 넌 괜찮잖아?”
코튼의 몸이 잠시 움찔했다.
“난.”
그녀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난 죽은 마나를 흡수하지 못해. 난, 달라.”
“환각사잖아?”
“…이건 다 모르는 비밀인데.”
우물쭈물하는 코튼을 바라보는 케일은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버드의 목소리에 그 의문은 뒤로 미뤘다.
“미친! 저것들 왜 저렇게 빨라!”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쿠웅-! 쿠웅-!
아주 빠른 속도로, 죽은 마나 액체를 뒤집어쓴 풍선처럼 거대한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기랄! 저 시체들이!”
코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싸아아아-
그 순간 코튼의 몸이 아주 폭발적인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악! 야!”
“조용히 해!”
회오리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케일이 코튼의 목덜미를 잡고서 바람으로 등 떠밀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세 번째 장소로 향하는 문으로 향했다.
그때, 등 뒤로 저 멀리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막아!”
게르세이가 부채로 케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촤아악!
부채가 펴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로 회색빛 기운이 뭉쳐들기 시작했다.
“저건!”
북쪽 설산에서 저 힘을 본 적 있는 버드가 오러를 더 크게 일으켰다.
3미터는 넘게 치솟아 오른 오러가 넘실대며 다가오는 심복들과 게르세이를 겨눴다.
그 순간이었다.
“버드. 넌 기계들과 진을 부숴라.”
에르하벤이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그는 발로 동굴 바닥을 내리쳤다.
쿵!
금빛 가루가 에르하벤의 앞에 펼쳐졌다.
“막아라.”
순식간에 반투명한 금빛 벽이 나타나 동굴 통로를 막아버렸다.
첫 번째 장소와 두 번째 장소를 가르던 벽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에르하벤의 금빛 벽이 자리했다.
에르하벤은 등 뒤의 일행에게 말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틸 테니, 서둘러라.”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게르세이의 위에 자리한 회색빛 기운으로 향했다.
‘저것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케일이 성자 잭에게서 들었던 대로 마계의 힘일 확률이 높았다.
‘…최대한 버틴다.’
과연 용이 마계의 힘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삶이 얼마 남지 않아 전력을 쏟을 수 없는 용이?
에르하벤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은 삼켰다. 약한 모습은 보일 수 없었다.
“어서 열어.”
케일은 코튼을 작은 문 앞에 세웠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검은 문이었다.
코튼은 케일에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검은 문의 잠금장치를 향해 반지를 가져다대었다.
문득 케일은 치밀어오르는 의문을 내뱉었다.
“…너, 출입할 수 없다면서 이 문을 여는 방법은 아나?”
“몰라.”
뭐?
케일의 눈동자에 순간 불길이 일었다.
그는 제 등 뒤에 있는 버드와 에르하벤을 느끼고 있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제기랄! 왜 이리 기계들이 많아!”
버드가 기계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었고, 에르하벤은 땀을 흘리며 더욱더 금빛 벽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에르하벤 님!’
케일은 에르하벤을 무리시킬 수 없었다.
‘…잘못 데려왔나.’
그가 버드와 에르하벤을 이곳에 데려온 것은, 마계라는 미지의 것을 대할 때 냄새로 정체를 알아챌 버드와 많은 지혜를 품은 에르하벤이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잠금장치를 풀 줄 모른다?
케일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져 갔을 때.
“이 문을 찢어버릴 거야.”
코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찢어?”
문을?
케일의 눈동자에 의문이 어렸을 때, 그는 코튼이 품에서 꺼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이한 주문이 적힌, 붕대로 둘둘 말려 칼날이 보이지 않는 작은 단도였다.
쿵! 쿵! 쿵!
그 순간, 케일의 상의 안주머니 속 아공간 주머니가 맹렬하게 진동했다.
왜 이러지?
케일이 제 품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갈 때, 코튼의 입이 열렸다.
“이 문은 마계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 내가 열 수 없어. 하지만 이 물건이 있으면 찢어버릴 수 있지.”
“…그 물건이 무엇인데?”
“신물.”
순간 케일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코튼은 붕대를 풀었다.
단도가 드러났고, 그녀는 그 단도를 쥔 채 문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닿았다.
“전쟁의 신.”
물뿌리개.
케일은 그 존재를 떠올렸다.
클로페 세카의 저택으로 쳐들어가서 밭 근처 창고에서 주워온 전쟁의 신 신물.
“…그걸 네가 왜?”
그 신의 다른 신물을 코튼이 들고 있다고?
케일의 의문에 코튼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쟁의 신을 모시는 자는 언제나 숨죽인 채 전쟁의 중심으로 숨어들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단도를 휘둘렀다.
쫘아아악!
케일은 단단한 문이 종잇장처럼 찢겨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그 순간, 케일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찢겨진 검은 문은 점점 벌어졌고 그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헉!”
케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야! 괜찮아?”
놀란 코튼이 그를 부축하려 했다.
탁!
하지만 케일은 그 손길을 거부하고서 점점 더 벌려지는 검은 문 틈새로 다가갔다.
쿵. 쿵. 쿵.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마신전 조각상이 있던 공간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꼈던 서늘하면서도 불안한 공기.
그 공기는 지하로 내려오자 더욱더 심해졌다.
하지만 케일은 이 불길함을 흘려보냈다.
다가올 위험은 하나씩 맞서면 되니까.
그런데 이 검은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케일은, 김록수는 그 불길함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아챘다.
후각, 촉각, 시각.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록’이 기록하지 못하는 과거의 ‘감정’이었다.
무기력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
케일은 검은 문 틈새로 그 안의 광경을 보았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돌들이 천장에 별처럼 박혀있는 큰 공동.
그곳엔 아주 넓고 거대한 8각형의 높은 단이 있었다.
8각형 단 위에 기이한 제단들이 8개 있었다. 그 크기는 인간 세 명이 두 팔을 펼치고 벌려야 겨우 감쌀 만큼 컸다.
그 위에 검은 조각상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은 아니었다.
짐승도 아니었다.
케일은 그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조금 더 몸을 검은 문 틈새 가까이로 가져다 대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아.”
케일은, 김록수는 저도 모르게 검은 문의 틈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과거 김록수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 당시 지구 역사상 두 번째로 거대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기록되어지는 그 괴물의 출몰을 한 시간 전에 예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김록수는 이수혁 팀장과 최정수, 팀원들이 모두 죽은 상황에 홀로 살아남아 말했었다.
‘상황 보고입니다. 저 ‘등급 외 괴물’의 전투 패턴에 대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검은 조각상 중 하나를 바라보는 케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왜 한국에서 봤던 그 괴물이 여기 있지?
어째서?
팀원들을 모두 죽였던 그 괴물이 조각상이 되어 케일의 눈동자에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