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57
556화.
하지만 단순히 마음속 불길을 태우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케일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크윽.”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를 내려다보던 이들 중 한 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야. 그러게 왜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지랄을 떨었어?”
케일은, 김록수는 저를 향한 말을 흘려보냈다.
‘이럴 때가 아냐.’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조금씩 일어섰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김록수의 몸이 앙상했을 때였다.
그 탓인지 이 연약한 몸뚱아리는 능력자의 발길질 한 번 맞았다고 이렇게 힘이 없다.
“큭!”
누군가의 비웃는 소리가 들린 순간이었다.
“크윽!”
케일은 제 종아리를 걷어차는 발길질에 다시 한번 시멘트 바닥을 굴러야 했다.
대자로 뻗어 하늘을 다시금 바라봐야 하는 케일.
“야.”
그런 그에게로 한 명이 쪼그려 앉으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네가 왜 이렇게 맞고 있다고 생각하냐?”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남자의 이름을 머나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박진태였던가?’
이 쉘터의 대장 자리에 있는 놈이었다.
쉘터.
그곳은 대격변이 벌어진 초기, 괴물들이 언제 어느 때에 나타나 지옥을 선사할지 알 수 없는 이곳에서 괴물들이 접근하지 않는 곳을 뜻했다.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인간 몇 명에게 ‘능력’을 부여해 준 것처럼, 쉘터 또한 괴물과 싸울 인간을 위해 내려준 하나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있던 이 쉘터의 지금 지배자가 박진태고.’
폭군처럼 모든 것을 제 의사에 따라 휘두르는 놈.
능력자와 아닌 자를 철저히 구분했으며, 능력자들을 상당히 우대했다.
더불어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효용 가치가 있을 경우에는 나름 인정을 해주었다.
그래서 박진태의 기준 안에 든 사람은 이 쉘터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케일은, 김록수의 20대 시작은 이 박진태가 지배하는 쉘터의 가장 바닥이었다.
박진태의 미움을 받고 있었으니까.
“김록수. 대답 안 해?”
부드럽게 웃는, 여우 같은 인상의 박진태는 사뭇 다정한 목소리와 달리 케일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케일은 그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은 뭘까? 환상일까?’
지금껏 가끔씩 기절하면 나오던 그런 꿈일까?
그렇다기엔 케일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온 고독이자 절망이라고 했던 핏빛 눈동자를 떠올렸다.
‘나를 원하게 만들어주마.’
그놈이 했던 말.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부르거라. 나만이 네 절망을 부서뜨려 줄 수 있으니.’
마치 케일에게 절망을 선사해주겠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절망이 싫으면 저를 따르라고.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죽음의 신도 그렇고.
이 핏빛 눈동자 새끼도 그렇고.
‘왜들 이렇게 지들 마음대로야?’
짜증이 확 일어났다.
“야, 김록수. 대장님이 대답하라는 소리 못 들었냐?”
박진태 뒤의 한 남자가 케일을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다시 발을 들어 올려 케일을 걷어찰 것만 같았다.
“후우. 그만해. 이러다 이 새끼 죽어.”
“네. 대장님!”
박진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록수야.”
케일의 시선이 하늘이 아닌 주변으로 향했다.
건물들이 보였다.
건물 벽이 무너져 내렸거나 금이 가고 부서진, 원래의 그 높다란 형태는 거의 사라져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
앙상한 철제 구조물만을 간신히 드러내고 있는 건물들도 많았다.
그중 하나.
3층 정도 높이의 모서리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건물이 보였다.
그나마 다른 곳은 멀쩡한 건물.
하지만 다른 건물들과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곳.
박진태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속삭였다.
“그래. 네가 보고 있는 저 건물. 쉘터로 돌아가고 싶지?”
그래. 저 건물이 쉘터다.
대피처라고 해서 특별한 모습도, 멋들어진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장소.
하지만 인간들은 겨우겨우 저 쉘터를 찾아내어 목숨을 이어갔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대격변 이후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쉘터.”
“그래, 그래서 그나마 가장 안락한 곳이지.”
빌어먹게도 ‘쉘터’의 장소는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어제 괴물들이 쳐들어오지 않던 쉘터가 다음 날은 괴물들이 들이닥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 대신 다른 건물이 새로운 쉘터가 되었다.
영원한 안식은 없다는 듯 쉘터마저도 인간들의 피를 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곳.
케일이 바라보는 저 3층 건물은 첫 대격변의 날부터 지금까지 쉘터로 유지되어 왔다.
‘그런 장소가 각 지역별로 하나씩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쉘터를 ‘중심 쉘터’라고 불렀다.
박진태가 속삭였다.
“그리고 저 중심 쉘터의 주인이 나지.”
케일의 시선이 박진태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네가 주인은 아니었지.’
케일은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기억 속 사실 중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케일의, 김록수의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진태가 지금 여기의 왕이죠.”
박진태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를 대장이 아닌 박진태라고 부르는 그 시건방진 모습에 평소라면 화가 났겠지만, 그를 왕이라 인정하는 저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박진태는 화가 가라앉았다.
김록수.
이 시건방지고 독기 가득한 놈이 박진태를 여기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어디서 대장님의 성함을 함부로 불러? 진짜 이 새끼가 죽고 싶나!”
박진태는 부하의 윽박질에도 저를 가만히 응시하는 김록수의 시선을 그도 마주 응시했다.
“…진태야.”
그때 쉘터 건물에서 한 할머니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등장에 박진태 수하를 자처하는 이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화나 짜증보다는 불편함이 서렸다.
백발의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박진태와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그만하는 게 어떻겠니? 록수에게는 내가 말을 잘해놓으마.”
순간 케일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머나먼 기억 속에 이제는 죽어버려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김씨 할머니.
이름은 다들 잘 몰랐다. 그저 성이 김씨인 것만 알았고, 그녀를 김씨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 쉘터에서 박진태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케일은 저를 걱정스레 살펴보는 김씨 할머니의 눈빛을 살짝 피했다.
눈을 뜨자마자 배를 걷어차인 것보다.
종아리를 걷어차인 것보다.
지금 더 아프다.
그때, 케일에게 박진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네가 현실을 깨달았나 보네.”
내가 왕이라는 현실을.
그 뒷말을 박진태는 내뱉지 않았고, 케일은 담담하게 그 말에 응수했다.
“그렇죠. 현실은 인정해야죠.”
박진태가 묘하게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케일은 생각했다.
그래,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자.
핏빛 눈동자의 시험이든 뭐든.
이 상황이 결국 사라질 허상이든 말든.
케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회는 없애자.’
이 기회에 후회는 없애자.
그는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씨 할머니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담담히 되새겼다.
‘이 쉘터는 곧 무너진다.’
지금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
등급 외 괴물의 등장을 알리는 경고처럼.
이맘때쯤 지구에 존재하는 초기의 ‘중심 쉘터’가 모조리 다 그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 말은 중심 쉘터가 괴물들의 습격을 받아 무너진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침공 수준의 괴물들의 공격이 이어져 온다.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괴물들이 중심 쉘터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 말은 다른 중심 쉘터가 나온다는 소리지.’
첫 번째 중심 쉘터가 무너진 후, 정확히 24시간이 지난 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중심 쉘터가 나온다.
박진태와 그 따까리 놈들은 싫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을 죽게 둘 순 없다.
나, 김록수.
그리고 김씨 할머니. 그 외의 몇몇 사람들.
이수혁 팀장이 구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박진태가 야심을 드러내기 전.
이곳의 대표는 이수혁이었다.
‘지금은 팀장이 떠나고 없지만.’
지금은 더 위험한 다른 곳으로 떠난 이수혁 팀장이 박진태 이전의 이 중심 쉘터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팀장은 김씨 할머니와 박진태에게 이곳을 부탁했지.’
그 당시에만 해도 김씨 할머니와 박진태는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박진태가 팀장이 떠나자마자 제 야욕을 드러내며 이 중심 쉘터를 독재자처럼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이수혁 다음가는 공격형 능력자인 그의 발아래에서 중심 쉘터는 새로운 체제를 이뤄야 했다.
그리고 그 체제는 박진태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박진태도 김씨 할머니는 어려워했지.’
박진태는 치유 계열의 능력을 지닌 김씨 할머니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는 할머니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케일을 바라봤다.
“다음부터는 그 현실 파악한 대로 행동하면 좋을 거야.”
박진태가 손을 내밀었다.
케일은 그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박진태는 김록수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 손을 곧바로 놓았다.
그러곤 뒤돌아 쉘터 건물에서 멀어졌다.
“사냥하러 간다.”
그 말에 수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의 오른팔 격인 이철민이 박진태 옆으로 따라붙으며 입을 열었다.
“김록수 그냥 둘 겁니까? 이참에 한번 뒤질 정도로 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박진태의 여우처럼 길게 늘어진 눈꼬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시선에 이철민이 살짝 어깨를 떨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박진태의 입이 열렸다.
“저 새끼가 유일했어.”
“네?”
“…김록수는 이 쉘터의 왕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이수혁이라고 생각한 유일한 초기 쉘터 구성원이지.”
중심 쉘터에는 대격변 초기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중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초기 쉘터 구성원이라고 불렀고 박진태는 ‘이수혁의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자그마치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어려운 지역을 도우러 간다는 이수혁은 돌아오지 않았고, 김씨 할머니를 비롯하여 이수혁의 사람들은 하나둘 박진태의 체제를 인정해갔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도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김록수.
능력도 쥐뿔도 없는 그놈만큼은 박진태를 이곳의 주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니지. 그놈은 ‘왕’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놈이지.”
사실 김록수의 인정 따위 필요 없었다.
그놈도 여기 쉘터에 기생하며 목숨을 유지하는 다른 쓸모없는 것들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독기 가득한 눈동자가 거슬렸다.
지금도 능력자인 이철민은 박진태 자신의 심기를 거슬렸을까 봐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록수는 달랐다.
“하, 하하-”
박진태는 오랜만에 시원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김록수가 있는 쪽은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사냥터로 향했다.
사냥.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사실은 그저 식량 구하기에 가까운,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갔다.
그의 책임이었으니까.
김씨 할머니는 멀어지는 박진태를 확인하고선 케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이그. 그러게 그냥 심부름 다녀오지 그랬니?”
케일은 서서히 왜 얻어맞았는지 떠올랐다.
심부름. 다른 말로 시비 걸기.
김씨 할머니 말대로, 박진태는 저를 인정하지 않아 눈에 거슬리는 김록수에게 항상 심부름을 시켰다.
오늘은 그런 심부름에 반발하다 얻어터진 것 같다.
‘환상이든 뭐든.’
케일은 제 배를 매만졌다.
아팠다.
일단 아프면 현실이다.
‘바꾸자.’
그 순간이었다.
-네 마음대로 될까?
흠칫. 케일의 어깨가 떨렸다.
그놈이다.
핏빛 눈동자. 케일을 이 상황으로 보낸 그놈의 목소리다.
-절망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나를 찾거라. 그러면 이제 이런 과거의 절망들 따위는 마주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순간 케일은 속으로 말을 내뱉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가? 난 빨리 돌아가야 돼.’
그리고 그 말이 들리는 것인지 상대가 답해왔다.
-난 아무 수작도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저 지켜보겠다?’
-그래. 그저 지켜볼 뿐이지. 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이 상황이 끝나나?’
-그래. 그리고 나의 도움을 받으면 넌 나를 받아들여야 해.
받아들여?
-마족이 되어 내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소리지.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족이 되라고?
그 순간, 핏빛 눈동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싫겠지.
-하지만 계속 그럴까? 무기력한 너를 보아도, 이 절망들을 다시금 계속 겪어도 너는 괜찮을까?
-그것 또한 지켜보면 될 터.
-나는 네가 나에게 올 날을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마.
희미해지는 목소리에 케일은 황급히 물었다.
‘이건 실제인가?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재주는 없지.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그저 끝없이 반복되는 절망이자 시험일뿐.
마치 무언가를 고대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절망 속에서 발버둥 쳐보거라. 절망 속에서 빠져나올 힘을 내가 줄 터이니.
더 이상 핏빛 눈동자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록수야.”
케일은 배 위에 올린 제 손을 덮는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김씨 할머니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난 네 기질이 좋단다. 하지만 조금만 더 유해지면 안 되겠니?”
그녀는 박진태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공격할 능력이 없었다.
오로지 치유 계열의 힘으로 다친 이들을 돌볼 뿐이었다.
그녀 덕에 김록수가 이수혁 팀장이 떠난 뒤에도 박진태 밑에서 살아남은 것인지도 몰랐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은 박진태랑 잘 지내봐야죠.”
김씨 할머니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이니?”
케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걸어가는 박진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놈은 독재자에, 사람을 능력에 따라 나누어 철저하게 극과 극으로 대하는 놈이지만.
중심 쉘터가 무너진 날.
‘마지막까지 여길 지켰지.’
박진태는 마지막까지 싸웠다.
그 덕에 김록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능력이 없음에도 도망칠 수 있었다.
‘뭐해? 왜 이리 굼떠? 능력도 없는 놈이 도망이라도 쳐야 할 거 아냐! 안 꺼져? 걸리적거리니까, 빨리 도망치라고!’
박진태가 저를 향해 외치던 말들이 케일은 조금씩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박진태는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었다.
김씨 할머니도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박진태는 미운 놈이고, 싫은 놈이지만.
‘어떻게 보면 목숨을 빚졌지.’
과거의 김록수는 그 덕에 살아남았다.
케일은 쉘터를 바라봤다.
후회는 하나씩 지운다.
이 쉘터를 구하고.
‘팀장과 최정수를 만나러 간다.’
부산 서면.
그곳에 처음으로 등급 외 괴물이 나타났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다들 잘 있으려나-”
라온을 시작으로 케일은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현실에서 자신의 상태는 지금 어떨까? 기절한 채일까?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사실 그들이 제일 걱정되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여길 벗어날 방법부터 찾자.’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핏빛 눈동자의 손을 잡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핏빛 눈동자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절망 속에서 발버둥 쳐보거라. 절망 속에서 빠져나올 힘을 내가 줄 터이니.’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케일은 앙상한 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절망 속에서 발버둥 치라고?
그럴 일은 없다.
‘더 이상 절망이 아니게 만들면 되니까.’
막연하지만, 왠지 모르게 절망을 부숴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이지.’
직감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분석도 들어가 있었다.
핏빛 눈동자가 한 이 말 때문이었다.
‘절망 속에서 빠져나올 힘을 내가 줄 터이니.’
마치 절망을 부술 힘만 있다면 이 상황에서 벗어나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또한 시험이라고 했다.
케일은 충분히 일리 있는 생각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지금 상황을 보았을 때.
‘해볼 만해.’
이 절망들을 지금의 케일은 부술 수 있었다.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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