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6
55화.
눈빛이 맛이 간 툰카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를 몽둥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며 살벌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너냐?”
툰카는 입맛을 다시며 혹등고래에게 다가갔다. 2m에 달하는 툰카도 혹등고래 앞에서는 아주 작아 보였다.
“흐흐, 고래랑 싸우는 건 또 처음인데?”
역시나 툰카는 고래가 수인인 줄도 모르는 듯했다. 그냥 강해 보이니 싸우고 싶을 뿐. 머릿속에 든 건 싸움과 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혹등고래는 툰카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리고 이를 케일은 쪼그려 앉은 채로 바라봤다.
-뭐 하냐?
검은 용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지만 케일은 어느 정도 뒤로 물러선 채 가만히 쪼그려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새우보다 약한 케일은 등이 터지고 싶지 않았다.
“고래는 그냥 때려죽이면 되려나?”
툰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고는 가볍게 발로 땅을 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야.”
케일은 감탄하며 더 뒤로 물러섰다.
순간 허공에 뜬 툰카의 몽둥이가 혹등고래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때 케일은 고래가 비웃음을 어떻게 짓는지 처음 보았다. 혹등고래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고래가 움직였다.
15m를 넘는 거대한 몸이 순식간에 회전을 하더니 커다란 꼬리가 툰카를 향해 내려쳐졌다. 하지만 툰카는 순간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땅으로 내려앉았고.
콰아앙!
툰카가 뛰어올랐던 자리는 고래 꼬리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촤아아악-
그 여파로 파도가 생겨 해안가를 덮쳤고 케일은 꼴딱 젖어버렸다.
‘제길.’
비에 젖은 생쥐 꼴도 아니고. 그러나 케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산산이 부서진 바위가 너무 임팩트가 컸다. 그리고 정신 나간 툰카도.
“크하하하! 아주 좋아, 좋아! 더 덤벼!”
어서 덤비라고 아주 날뛰었다. 고래 꼬리를 향해 툰카가 아주 빠른 속도로 뛰어가 몽둥이를 내려쳤다. 이를 고래는 피하기는커녕 꼬리를 들어 올려 툰카에게로 휘둘렀다.
콰앙!
꼬리와 인간이 부딪쳐서 날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툰카는 다시 땅바닥에 내려왔다. 파스스. 몽둥이는 가루처럼 부서졌다.
“역시 몽둥이 따위를 드는 게 아니었어! 주먹으로 싸워야 제 맛이지! 하하하!”
그 미친 꼬라지를 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이러다가 사람들 다 오겠는데.’
이미 사람들이 알아챘을 것 같기도 했다. 케일은 생각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나만 조용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쟤들이 싸우든 말든 케일이 알 바는 아니었다.
케일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가루를 대충 닦아내며 전투 영역 밖으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때였다.
“누나! 그러다가 저분이 다친다고!”
조막만 한 고래가 드디어 이곳까지 당도했다.
툰카가 멈칫했다.
“…쥐똥만 한 고래가 말을 해?”
그 말에 혹등고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툰카를 노려보았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동생이 쥐똥만 하다고?”
툰카는 더 놀라며 소리쳤다.
“이것도 말을 해?”
아주 난장판이다. 케일은 툰카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호라, 수인이구나, 수인! 진짜 재밌겠는데?”
이제 툰카는 소리 내 웃지 않았다. 하지만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지금 그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케일은 혹등고래가 힐끗 자신을 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바닷물과 돌가루를 뒤집어쓴 채 저를 올려다보는 인간 케일. 혹등고래 수인, 위티라.
그녀는 약한 생물을 보호하는 바다 수호자로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그녀와 케일 사이로 고래화한 파세톤이 끼어들었다.
“누나, 나 살아 있어.”
“파세톤.”
혹등고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눈동자에 물기가 조금씩 어렸다.
그때 파세톤은 툰카 쪽을 보더니 다급히 지느러미를 물 밖으로 내어 케일 쪽을 가리켰다. 찰싹찰싹. 지느러미의 움직임에 따라 물이 튀어 물방울이 케일의 얼굴을 때렸다.
“이분이 내가 인어 독에 중독되어서 죽을 뻔한 걸 구해주신 분이야.”
거대한 혹등고래의 동공이 흔들렸다. 작은 고래는 최대한 해안가 가까이 다가와 케일을 살폈다.
“이런, 물에 다 젖으셨군요. 이 돌가루들도. 죄송합니다. 오늘 밤에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케일은 돌가루를 털어내며 답했다.
“괜찮다. 넌 몸이 이젠 괜찮나?”
“네. 덕분에 이제 거의 다 나았습니다.”
당황한 혹등고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때였다.
“나랑 싸우는데 그렇게 정신을 팔면 안 된다고! 죽고 싶다는 소린가!”
툰카가 혹등고래 수인 위티라에게로 날아오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혹등고래에게 닿지 못했다. 고래가 사라졌다.
취이이익. 대신 그 자리에 엄청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수증기 사이로 한 여인이 해안가 바위 위에 내려섰다. 타탁. 경쾌한 구두 굽 소리와 함께 내려선 여인은 인간화한 위티라, 그녀였다.
“누나!”
파세톤이 위티라를 불렀다.
그 순간 케일은 조금 놀랐다.
‘이건 엘프를 오징어로 만드는 수준이 아닌데?’
말 그대로 폭발적인 미모였다. 엘프를 바퀴벌레로 만들어 버릴 만한 외모였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싶었다.
푸른 머릿결과 푸른 눈동자.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이 눈앞의 이일 것 같았다.
그때 케일의 머릿속으로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이 더 멋지다. 용이 인간 되면 더 멋지고 아름다울 거다. 분명 세상 최고일 거다.
케일은 그 목소리를 깔끔히 무시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쁘고 멋지고를 떠나 인간화한 고래 수인은 지상에서도 아주 강하고 난폭했다. 그런 그에게 위티라가 말했다.
“…물러서지 말아요. 다치지 않을 테니까.”
“맞아요. 누나는 말한 것을 지킵니다.”
파세톤도 곧 인간화해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위티라는 동생의 종아리 부근에 찢겨진 바지와 그 바지 사이로 보이는 할퀴어진 흉터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분노가 맴돌았다.
그때, 툰카가 천천히 걸으며 다가왔다.
“자꾸 쓰잘머리 없는 놈한테 신경 쓴다고 이렇게 미적미적 굴어도 되겠어? 얼른 싸우자고. 그게 더 재밌잖아.”
케일과 툰카의 눈이 마주쳤다. 툰카의 입가에 비웃음이 그려졌다.
“이 새끼는 아무나 막 구하고 다니나 보네.”
쯧. 케일은 ‘이 새끼’라는 단어에 혀를 찼다. 이제 아예 ‘밥’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가면은 집어 던진 듯했다. 이 모습이 진짜 툰카였다. 상대가 귀족이든 힘이 세든 그냥 막말을 하고 보는 그런 모습.
케일에게는 지금 이 모습이 더 익숙했다. 책 속의 인물이 나타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케일은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마탑을 팔고 난 뒤에 뼈저리게 후회를 해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곧 벌어질, 아니, 케일의 손으로 만들 미래를 알았기에 케일은 담담했다.
가명 밥. 참 이름 하나 잘 지었다. 케일이 칠 뒤통수의 밥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검은 용의 화난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을 울렸다.
-구하는 건, 살리는 건 위대한 일이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욕은 나쁘다. 이런 베니온 같은 놈이 다 있나!
…자기만 아는 게 용인데, 어쩌다 이 검은 용은 이렇게 되었을까. 케일은 검은 용이 원래 용의 습성과 달라진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슬쩍 몸을 위티라 뒤로 이동시켰다.
짜증 난다고, 약한 놈이라고 툰카가 죽일까 봐 조금 무서웠다.
“…정의로운 행동을, 그 선의를 폄하하지 마라.”
그런데 어째 위티라도 화가 난 것 같다. 케일은 위티라에게서도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를 보며 위티라는 차분히 말했다.
“고마워요. 나중에 인사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인어족과의 싸움에서 가장 최전방에 섰던 여인. 그녀는 결코 싸움을, 시비를 피하지 않았다.
“오, 눈빛 좋은데? 이제 한판 붙을 마음이 생겼나 봐?”
툰카는 건들건들거리며 혀로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는 팔에 힘을 쭉 빼고 살짝 몸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쏠린 듯 기울였다. 툰카의 전투 자세였다.
위티라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내가 너 따위와 한판 붙는다고?”
그 미소는 비웃음인데, 순간 주변이 환해지는 듯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케일은 그 광채가 살벌해 보였다.
위티라는 오른손을 펼쳤다. 촤라라락. 손바닥 위로 물길이 치솟아 올랐다. 거대한 물 채찍이 그녀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녀는 채찍을 바다 쪽을 향해 휘둘렀다.
몇 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채찍이 바다를 가로질렀다. 다시 한번 해수면이 요동쳤고, 위티라는 서늘한 눈빛으로 툰카에게 말했다.
“우습네. 한판 붙는 게 아니라.”
까딱까딱. 그녀는 왼 손가락을 툰카에게 까딱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가르치는 거다.”
“이 몸을 가르친다고? 하하하!”
툰카는 진동이라도 날 것 같은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떠한 표정도 없이 냉정한 얼굴로 위티라를 바라봤다.
“그 입을 찢어야겠네.”
그리고 바로 위티라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위티라는 케일 쪽을 향해 왼손을 휘둘렀다. 물의 장막이 보호막처럼 케일과 파세톤을 감쌌다.
촤르르륵! 동시에 오른손의 채찍이 달려오는 툰카에게로 매섭게 내리쳐졌다.
쾅! 맨주먹과 채찍이 부딪쳤다. 위티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가르칠 맛은 있겠네.”
“크윽, 웃기는 소리!”
위티라의 채찍이 물러서려는 툰카의 몸을 뱀처럼 휘감아 허공으로 띄웠다. 툰카는 씩 웃더니 그 채찍을 손으로 쥐었다. 물로 이루어진 채찍은 손아귀에 잡혔다.
“크흐흐, 힘 싸움은 내 전문이지!”
툰카는 뱀처럼 감싼 채찍을 힘으로 풀었다. 위티라의 눈썹이 들썩였다. 하지만 툰카는 고래족 차기 왕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위티라는 오른손을 가벼이 움직였고 그 행동에 채찍이 빠르고 강하게 툰카의 몸통을 강타했다. 툰카가 다시 숲 쪽으로 날아갔다.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미르 우바르와 조사대, 기사들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툰카가 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위티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다급히 왼손으로 물줄기를 펼쳤다. 하지만 툰카의 속도가 더 빨랐다.
“다들 방패를 펼쳐!”
아미르는 날아오는 툰카를 피하기 힘들단 생각에 바로 기사들에게 명했고, 기사들이 곧장 방패를 펼쳤다. 툰카는 이를 보며 외쳤다.
“잘 막으라고! 내 몸뚱이 워낙 튼튼해서! 다칠 수도 있어. 크하하하!”
툰카와 부딪친 기사들은 가죽 갑옷이라 다칠 확률이 분명 높아 보였다. 이를 모두 보고 있던 혼혈 고래 수인 파세톤의 귓가로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 미치겠네.”
짜증과 여유로움이 함께 느껴지는 묘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파세톤은 눈을 크게 떴다.
쾅!
그리고 방패와 툰카가 부딪쳤다. 그러나 툰카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툰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등에 닿은 성스러워 보이는 은빛 방패.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감싼 날개.
“…뭐야.”
방패가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툰카의 시선이 급히 한쪽으로 향했다. 물의 장막을 펼치려 날아가던 위티라의 물줄기가 중간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뒤돌아섰다.
희미해지는 은빛 방패와 이어져 있는 남자. 케일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바닷물에 젖은 붉은 머리칼을 넘기는 케일의 모습은 나른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짜증으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아니라, 고래 싸움에 새우가 힘을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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