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60
559화.
침묵을 깬 사람은 이철민이었다.
“…너, 너 제정신이야?”
한번 입을 떼자 점점 수월하게 말이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 새끼가 미친 것 같더니만! 어디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못 하고 그딴 소릴 지껄여? 어?”
이철민은 케일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그의 멱살을 쥘 것 같았다.
“그만!”
그때, 박진태의 큰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만해라, 이철민.”
“대장님!”
“조용히 해!”
박진태의 드물게 매서운 목소리에 이철민은 화가 나던 것이 쑥 가라앉았다.
박진태의 시선이 김록수에게로 향했다.
“…제대로 설명해 봐.”
케일은 박진태를 보던 시선을 돌려 김씨 할머니와 남매를 바라봤다.
“…야.”
“형…이게-”
남매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반대로 김씨 할머니는 이 방 안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의연했다.
그녀는 케일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케일은 저 미소가 그녀답지 않게 억지로 지은 미소임을 알 수 있었다.
혼란으로 가득 찬 마음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말을 꺼낸 김록수를 위해.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록수야. 네가 한 말의 무게를 알고 있겠지?”
그렇기에 케일은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압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박진태에게로 향했다.
“제가 한 말 그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내일 낮 12시.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갑자기 일식이 벌어진다.
그것부터가 일반적인 일식은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1분 뒤.
다시 태양이 세상을 비추는 그때.
지구의 모든 중심 쉘터가 사라진다.
박진태는 하나하나 되짚으며 마지막 사항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괴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중심 쉘터를 공격한다.”
그 순간 김록수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려왔다.
“괴물들은 마구잡이로 함께 공격해오는 건 아닙니다. 등급에 따라 공격을 감행해오죠.”
“…등급?”
“네. 등급. 괴물의 힘과 능력에 따른 분류죠.”
박진태의 얼굴이 구겨졌다.
“…괴물의 등급이라니-”
이 시기는 아직 등급이 정립되지 않았다.
케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후에 이 중심 쉘터 상실 사건과 몰려온 괴물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물론 기억에 근거한 조사였지만, 사람들의 기억을 취합하자 꽤 많이 유용한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공격해오는 괴물들의 등급이었다.
“시작은 3급 이하. 그다음에는 2급. 마지막으로 1급으로 분류되는 괴물들이 공격해올 겁니다. 물론 1급이 가장 강합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이런 패턴을 두고, 어쩌면 이 괴물의 습격이 등급 외 괴물을 맞닥뜨릴 인간들을 위한 예행연습이 아니었냐는 소리도 나왔다.
물론 예행연습이라기엔 현실은 지옥이었지만.
박진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김록수를 바라봤다.
‘무언가 달라진 것은 느꼈지만.’
아까 한 대 맞고 난 뒤로 김록수가 평소와 달라져 있었다.
그것을 느꼈기에 그와 대화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
이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박진태의 입이 열렸다.
“…너 제정신 맞나?”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답이 들려왔다.
“내 능력을 의심합니까? 더 말하길 원하십니까?”
그 대답에 박진태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너 다중 능력자지?’
저를 향해 속삭이던 김록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반말에 화낼 수도 없는 큰 비밀이었다.
박진태의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켰다.
“하나 더 말하도록.”
내 비밀을 하나 더 말해라.
그 제스처에 케일은 피식 웃고는 박진태에게로 다가갔다.
박진태는 그 모습을 보며 소파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분명 내가 숨긴 능력에 대해 말할 거야.’
박진태는 긴장감이 밀려왔다.
그 순간, 김록수가 속삭였다.
“당신은 이곳에 위험이 찾아오면 가장 앞에서, 본인이 죽을 각오로 맞설 거야.”
박진태의 눈동자가 아까전보다 더욱더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노약자들을 싸움에 걸리적거린다면서 가장 먼저 대피시킬 거다. 그다음이 나와 같은 능력 없는 이들일 것이고.”
목소리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듯 차분했다.
그리고 김록수가 한 번 겪었던 사실이기도 했다.
“가장 마지막. 마지막의 마지막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당신은 그제야 도망칠 거야.”
케일은 귓가에서 멀어지며 박진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고 케일의 입이 열렸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죠.”
박진태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하,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긴 눈꼬리 끝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었다.
“…하아.”
그리고 그 끝에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이내 미소를 머금은 채 한숨처럼 내뱉었다.
“더 큰 비밀을 들킨 것 같군.”
그 순간, 김록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신도 살릴 겁니다.”
박진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뚫어질 듯이 김록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네 계획은 무엇이지?”
“대장님!”
가만히 있던 이철민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으나, 박진태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오로지 케일의 입만을 주시했다.
그에 응하듯 케일의 입이 열렸다.
“공격대를 꾸려야 합니다. 그리고 수성전을 펼쳐야 합니다. 수성전의 중심은-”
케일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대장님, 저놈 말만 믿고-”
“조용!”
탁!
나무 팔걸이를 내려치는 손의 마찰음이 공간을 날카롭게 때렸다.
이철민이 놀란 눈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씨 할머니.
그녀가 이철민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사람이었다.
“록수야. 계속 말해 보거라.”
“네.”
박진태도 침묵으로 김씨 할머니의 뜻에 동의를 표했다.
케일은 이어 말했다.
“수성전의 중심은, 장만수. 그 사람이어야 합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름에 멈칫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이름이었으니까.
“아저씨의 능력이 수성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어진 케일의 말에 박진태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장만수 씨가 능력을 개화했다?”
“그렇죠. 내일 확인해보시죠.”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는 진실이라 여겨졌다.
이어진 케일의 말은 박진태를 향했다.
“그리고 공격대의 중심은 박진태 당신이 맡습니다.”
박진태는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중심 쉘터를 지키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다른 임시 쉘터로 가는 것이 낫지 않나?”
내일부터 괴물들이 몰려온다면 차라리 임시 쉘터로 모두 이동해 괴물들의 공격을 피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모든 인원을 나누려면 여러 임시 쉘터를 가야겠지만.”
중심 쉘터는 다른 쉘터에 비해 크기가 컸다. 그만큼 많은 인원이 모였기에 무리를 나눠 다른 쉘터로 퍼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계속해서 다른 임시 쉘터를 전전해야 할 것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곳이 일반 쉘터니까.
마냥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케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지 못한 방법입니다.”
“…어째서?”
“안타깝게도 임시 쉘터에도 괴물들의 공격이 진행됩니다. 물론 중심 쉘터보다는 숫자가 적지만요. 그래도 임시 쉘터에 머물 인원을 생각하면 적은 수가 아닐 겁니다.”
허.
누군가가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사람들은 더욱더 말을 잃어갔다.
케일은 담담하게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내뱉었다.
“또한 임시 쉘터는 중심 쉘터가 사라진 뒤 시간 순으로 점차 기능을 잃습니다.”
이번만큼은 이철민도 케일에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네 말은 결국 끝에 가면 쉘터 자체가 사라진다는 소리 아냐?”
“네.”
단호한 케일의 대답에 이철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건 지옥인데.”
지옥을 상상하는 목소리는 떨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쉘터가 사라진 세상은 단 3시간입니다.”
박진태의 눈동자가 김록수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중심 쉘터가 사라진 하루 뒤, 새로운 형태의 중심 쉘터가 나올 겁니다.”
“그곳에 가면 되겠네!”
순간 저도 모르게 내뱉은 이진주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을 버티면 말이죠.”
박진태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더 이상 케일의 말이 거짓이냐 진실이냐는 따지지 않았다.
이미 대격변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다.
최악은 언제나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 최악이 지옥이라면 더욱더 대비해야만 했다.
박진태의 입이 열렸다.
“…1등급 괴물이면 뿔이 세 개 달린 놈 정도의 힘을 지녀야 하나?”
아직 괴물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고 그 특성으로 대충 불리는 시대였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도 1등급 괴물 중 하나죠.”
“그것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3, 2등급이 지나간 뒤에요.”
이철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 그놈이 한 넷만 밀려와도 우리 공격대는 못 버텨! 무너진다고! 그런데 그게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고? 말이 돼?”
“물론 2, 3등급 괴물보다는 수가 적죠.”
“그거야 당연한 소리지! 원래 그리 강한 놈들은 개체수가 적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열은 넘을 거 아냐? 근방에서 다 몰려오면!”
“더 되죠.”
이철민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그때, 박진태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못 버텨.”
그는 이어 말했다.
“불가능해. 모두 사는 건.”
“아뇨.”
케일은 단호했다.
“버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지?”
망설임이 가득한 박진태의 목소리와 달리 김록수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우리는 한 명도 죽지 않고 새로운 중심 쉘터로 이동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
박진태의 눈동자가 물었다.
씨익.
김록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른 체격에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청년은 환한 미소를 그렸다.
핏빛 눈동자 놈은 큰 실수를 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데이터.”
박진태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데이터?”
케일은 김록수로서 발현되었던 능력을 ‘지금’, 현재는 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쌓아온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힘은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에 쌓아온 것들에게서 오는 것.
능력을 발현하는 것은 중요했지만, 딱히 그렇지 않아도 이번 중심 쉘터 전투를 해볼 만한 이유.
케일은 경험에서 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겐 괴물들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있습니다.”
지금 김록수 몸속의 케일이, 서른여섯까지 김록수로 살다가 케일의 삶까지 이어온 사람이 말했다.
“약점, 행동 패턴, 공격 형태 및 파괴력. 더불어 공격해 올 괴물들의 순서까지.”
그 목소리에는 점점 더 힘이 담겼다.
“모두 내 머릿속에 있습니다.”
절망을 마주하며 쌓아온 기록들.
그것은 희망이 되는 법이었다.
“데이터가 있으니, 우린 이길 수 있습니다.”
데이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다시 이 지구에 사회를 일굴 수 있는 기반이었으며, 괴물들과 싸우며 마침내 다시 일어나 약자에서 대등한 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내 데이터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다 삽니다.”
다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김록수를 바라봤다.
그때.
“난 늘 널 믿는단다.”
한 사람이 김록수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넌 선한 아이지. 그리고 의지가 강하고. 그런 너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니?”
박진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철민.”
“네, 네?”
“지금 당장 비상 체제로 전환한다.”
박진태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새 밖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는 케일을 지나쳐 문밖으로 향했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김록수 네 예지를 믿도록 하지. 이철민!”
“네!”
“공격 능력자들을 다 불러 모아!”
이철민이 바짝 기합이 들어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네, 알겠-”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낡은 건물이 살짝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으아악!”
이성원이 놀라서 주저앉으며 외쳤다.
“바, 밖에!”
“뭐? 괴물이 벌써 나타난 거야?!”
마찬가지로 놀란 이철민이 그 말에 반응했다.
‘무슨 일이지?’
이런 기억은 없는데?
케일도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처음이었다.
이곳에 온 후 이런 굉음은.
창밖의 노을이 보였다.
“…이, 이런 미친!”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허겁지겁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야, 너 왜 그래!”
박진태가 그 행동에 놀랐으나, 케일은 박진태를 밀치고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등 뒤에서 이진주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검은 용?”
케일의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저게 왜!
저게 왜 지금 여기에 있냐고!
하늘로 솟구치는 흑룡이 굉음을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그것도 반짝이는 흑룡.
“이 새끼가, 왜, 왜!”
케일은 무슨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향했다.
“야, 야! 김록수!”
1층에서 기다리던 장만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은 돌아볼 틈이 없었다.
뒤에서 박진태와 이성원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마찬가지로 뒤돌아볼 수 없었다.
케일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하늘로 솟구치던 반짝이는 흑룡은 이제 희미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 용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중심 쉘터 근방에는 괴물이 없었기에 케일은 거리낄 것 없이 달렸다.
저 멀리 뒤에서 박진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조금 더 나가면 경계선 밖이야!”
맞다.
그의 말대로 조금만 더 나가면 경계선 밖이라 이제 괴물들이 언제 나타나 김록수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야!”
저 멀리 다가오는 이가 보였다.
“…너-”
케일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이와의 거리가 점점 더 좁아졌다.
케일이 느려진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상대방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케일의 앞에서 멈춰 섰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너…네가 왜?”
상대방의 입이 열렸다.
“제 또래일 때 같으신데, 지금이 언제죠?”
케일은 잘 떼어지지 않는 입을 다시 열었다.
“최한.”
최한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반짝이는 흑룡.
그것은 최한의 기술이었다.
“…너 어떻게……?”
“끼어들어 왔습니다.”
“뭐?”
최한은 마르고 볼품없는 김록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케일 님은 검은 구 안에 정신을 잃으신 채 갇혀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다.
“저는 엔더블 왕국으로 갔지만 그 근처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지금 내가 검은 구 안에 갇혀 있다고?’
그의 시선이 최한에게 고정되었다.
이 세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지만 그 생김새는 이 한국에 어울리는 놈이 저를, 김록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케일 님의 정신 속으로, 시험 속으로 끼어들어 왔습니다.”
케일은 최한이 ‘시험’을 알고 있자 놀랐다.
“어떻게 끼어들어 올 수가-”
“죽음의 신과 거래했습니다.”
“…뭐?”
최한은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제가 죽음의 신과 거래를 했고 여기 이 시험에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케일 님을 도와야 하니까요.”
케일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보며 최한은 담담하게 말했다.
“혼자보단 같이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케일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입을 열었다.
“…네 무엇을 걸었지?”
무엇을 걸고 거래를 한 것이지?
케일이 물었고 최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제가 라온보다 오래 산다고 하더군요. 그건 싫었습니다. 전 홀로 남겨지긴 싫거든요. 그래서 라온의 수명에 맞췄습니다.”
“…죽음의 신에게 네 수명의 일부를 바쳤다고?”
“네. 홀로 살아갈 시간만요.”
케일은 결국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새끼!”
“제가 원했고, 전 혼자 남겨지긴 싫습니다. 고독은 그만 겪고 싶거든요.”
“너 미쳤어?”
순간 최한의 입가에 순한 미소가 어렸다.
“아쉽게도 전 이미 정상은 아닙니다.”
케일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야?”
“형, 이분은?”
어느새 뒤쫓아 다가온 박진태와 이성원의 목소리가 들린 그때, 최한은 밝은 미소를 띠운 채 말했다.
“밥값 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케일은 치밀어오는 감정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겨우 그의 입이 열렸다.
“미안하다.”
그가 이 순간 최한에게 건넬 수 있는, 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표현이었다.
“그리고 고맙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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