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73
572화.
하지만 알베르의 눈동자에 담기는 것은 그저 담담한 케일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로운 왕국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얼빠진 호랑이 얼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빙의?”
그런 그의 두 눈에 착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과 최한의 모습이 담겼다.
둘 다 참으로 무덤덤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알베르는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살짝 성질이 났다.
케일은 그런 기색은 눈치채지 못한 채 입을 열어 덧붙였다.
“참고로 라온과 최한, 그리고 저하만 아시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알베르는 차마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허.”
그저 기가 막혔다.
‘빙의? 빙의라고?’
‘빙의’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 팽팽 나돌았다.
웬만한 사실에는 놀라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알베르 크로스만은 상상치도 못한 사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본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케일이 한 말이 문자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전 지금 보이는 이 세상에서 36살까지 회사 다니다가, 어느 날 케일 헤니투스 몸에서 눈 떠 2년째 케일 헤니투스로 살고 있는 김록수입니다.’
2년 전이라면, 케일이 수도에서 ‘은빛 방패’를 펼쳤던 해였다.
알베르는 조금씩 머릿속에 케일에 대한 평판이 달라지던 때와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사람이 바뀌었으니, 그러한 것이겠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면.”
알베르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모습이 실제 네 모습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이 모습도 과거 스무 살 적의 모습이죠.”
“그래?”
“네. 아!”
케일은 답하다 말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최한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최한이 빙그레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저도 알리고 싶습니다.”
덩달아 최한을 바라봤던 알베르는 그의 말에 멈칫했다.
“…또 있냐?”
동시에 케일이 입을 열었다.
“최한은 제 친구의 당숙이십니다. 어르신이죠, 어르신.”
“…허.”
암흑 호랑이의 동공이 흔들렸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과 최한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케일 님 말씀대로, 제가 케일 님 친구의 당숙입니다. 그러니까, 케일 님 친구가 제 조카인 셈이죠. 그리고 참고로 저는 17살쯤에 차원 이동을 하여 현재 겉보기와 달리 나이가 좀 많습니다.”
“맞습니다, 저하. 최한 나이가 상당합니다. 아마 돌아가신 전대 폐하, 저하의 할아버님보다 나이가 많을 겁니다. 그렇지?”
“네. 당연히 많죠.”
“저하, 그렇다네요.”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알베르는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암흑 호랑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풍성한 갈기가 우아하게 흔들렸다.
“…이제 다 끝났냐?”
알베르는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더 있지만, 큰 맥락은 다 말한 것 같습니다.”
“저하.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조금씩 전해드리겠습니다.”
최한도 차분한 미소를 띤 채 순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을 알베르는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비밀은 별거 아니군.”
새삼 웃긴 얘기지만, 알베르는 최한과 케일의 정체를 알고 나니 다크엘프 쿼터라는 자신의 비밀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비밀을 말하는 최한과 케일의 덤덤한 태도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드는군.’
알베르는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기면서도 스스로가 한 생각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나를 믿고 있어.’
비밀을 말하는 두 사람의 심정이 와 닿았다.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주먹을 꽉 쥔 최한이나, 자신의 표정을 과하게 열심히 살피는 케일이나.
어찌 되었든 알베르를 믿고 비밀을 말했다.
암흑 호랑이의 입이 열렸다.
“마음에 드는데?”
“네?”
“…네?”
이번엔 최한과 케일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베르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은 지켜주지.”
툭 내뱉고선 덧붙였다.
“그럼 원래는 내가 동생인 건가?”
“제가 형 할까요?”
“아니. 그건 싫네.”
암흑 호랑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자네는 원래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 아닌가?”
케일은 그 질문과 함께 저를 빤히 응시하는 알베르의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케일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돌아가야죠. 당연히.”
한 번 떠나보냈던 과거의 인연들을 다시 마주하고 살아가는 것도 꽤 행복한 일이지만, 아직 아무도 떠나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인연들도 많이 소중했다.
지금의 인연들과 미래를 만들고 싶은 것이 케일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지금 시험을 치르는 이 세상이 평행 세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보는 이들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김록수의 36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보냈던 추억들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없는 일이었다.
케일이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갈 때,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갈 겁니다.”
최한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에는 조금의 서글픔이 담겼다.
최한은 어제 오늘 케일의 곁에 머물며 ‘자신이 차원 이동을 했던 때.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적응을 못 할 거야.’
그는 스무 살로 돌아와 그럭저럭 적응을 잘해나가는 케일과 달리, 고등학생 최한으로 돌아가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불가능해.’
자신은 ‘최한’이라는 이름은 잊지 않았지만, 많은 것들을 잊었다.
또한 많은 것들을 새로이 경험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최한은 많은 감정들이 무뎌지고 깨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새로이 피어나고 살아나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이 좋다.’
하얀 별을 정리하지 못한 지금. 많은 것들이 불안정하고 최한과 그의 인연들에게 위험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럼에도 최한은 지금이 좋았다.
그러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최한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죽음의 신과 거래 당시 나눴던 대화를 한 토막 떠올렸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말하도록.’
정말이지.
케일 님 말대로.
“정말 신은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군.”
최한은 저도 모르게 내뱉었던 말에 멈칫했다가 알베르,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옳은 소리야.”
“최한, 좋은 말이다.”
최한은 아주 강하게 긍정을 표하는 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는 그런 최한과 한결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중에 말해야겠어.’
원래라면 알베르는 케일에게 하얀 별이 친 뒤통수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케일이 전투 중 보였던 절박한 얼굴과 이곳이 케일의 스무 살 적 과거란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내가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겠군.’
딱히 지금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던 터라, 알베르는 굳이 두 사람에게 지금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때였다.
툭. 암흑 호랑이의 털이 복슬복슬한 앞다리에 케일의 손이 올려졌다.
“자, 그러면 형님.”
“…왜?”
생글생글 웃는 케일의 모습이 알베르는 영 찝찝했다.
조금 전까지는 ‘저하’라고 하더니, 갑자기 형님이라고 하니 더욱더 저 미소가 의심스러웠다.
특히 케일이 최소 38살이란 생각을 하자, 갑자기 능글맞아 보였다.
“형님은 언제쯤 잠에서 깨십니까?”
“그건 왜?”
“형님이 깨고 나면 암흑 호랑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가 없어서요.”
찜찜함을 느끼던 알베르는 정상적이고 합당한 질문에 잠시 무언가를 탐색하듯 제 몸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몸을 지배하는 상태라, 내 의식이 없을 때는 네 명령대로 움직이라고 깨기 전에 일러두면 네 말대로 움직일 것 같군.”
그리고 다시 알베르가 잠이 들면, 암흑 호랑이로서 케일과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 좋네요.”
“…그렇지?”
이상하게 알베르는 저 미소에 떨떠름함을 느껴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이—-!”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알베르의 귓가에 닿았다. 암흑 호랑이의 검은 눈동자가 하늘을 향한 그때.
“왔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건물 밖에서 놀라서 뛰어오는 박진태를 볼 수 있었다.
“야, 김록수! 저거 1등급 괴물 아냐? 1등급 괴물이 왜 또 나타나? 분명 7마리랬잖아!”
그리고 하늘 위 회색의 딱딱한 깃털을 지닌 거대한 매 모습의 괴물 한 마리가, 또 다른 1등급 괴물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괴물은 일반적인 1등급 괴물이 아니었다.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저 녀석도 우두머리 같은데?”
지금은 괴물의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저 괴물은 또 다른 맛보기 우두머리 괴물이었다.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첫 번째. 정확히 5시. 맛보기 1등급 괴물의 우두머리가 중심 쉘터 근방에서 벗어났을 때. 2등급 괴물이 밀려온다.”
그리고.
“두 번째. 맛보기 괴물 중 우두머리 괴물이 중심 쉘터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 이때도 5시가 되면 결국 2등급 괴물이 밀려들어 온다.”
마지막.
“세 번째.”
케일은 이진주와 눈이 마주쳤다.
“5시가 되기 전, 맛보기 우두머리 괴물이 중심 쉘터 근방을 떠나면 2등급 괴물이 5시가 되지 않아도 공격을 감행해온다.”
세 번째가 가장 끔찍했다.
우두머리 괴물은 없지만, 남은 맛보기 1등급 괴물들과 2등급 괴물들이 떼거리로 밀려올 테니까.
케일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이 건물을 향해 다가오는 또 다른 맛보기 우두머리 괴물인 1등급 강철 깃털 매.
저 매는 이 중심 쉘터와 가장 가까운 중심 쉘터를 침략한 놈이었다.
동시에 세 번째 경우로서, 이곳까지 침략하러 온 놈이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냥감이 왔군.”
케일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대화를 나눌 적인가?”
그 중얼거림에 알베르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앞뒤 사정을 잘 몰랐지만, 케일의 말에서 한 가지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너, 저놈을 여기에 잡아둘 작정이냐?”
케일은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약속된 신호였다.
그 순간, 이진주의 입이 열렸다.
{지금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정말로 할 줄이야!’
그녀는 김록수가 미리 전해주었던 말을 내뱉으면서도 심장이 떨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이진주의 목소리가 그녀가 닿을 수 있는, 이 근방의 또 다른 중심 쉘터 두 곳으로 향했다.
전날 밤 박진태를 통해 케일이 전해준 정보로 지금도 힘겹게 1등급 괴물들에게 버티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곳.
그녀는 그들에게 전했다.
{지금부터, 1차 지원 부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케일을 향해 다가오던 박진태는 걸음을 멈추고서 눈을 크게 뜬 채 이진주를 바라봤다.
아니, 다시 고개를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김씨 할머니가 김록수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 차례구먼.”
이진주는 이어 말했다.
{1차 지원 부대는 맛보기 괴물들을 모두 처리할 것입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최한.”
“네. 록수 형.”
최한의 대답에도 케일의 시선은 이진주를 노려보면서 암흑 호랑이 쪽을 힐끗거리는 강철 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저 강철 매랑 좀 놀아줘라. 5시까지. 넌 좀 쉬면서 이철민 훈련시키면 될 거다.”
순간 최한의 눈빛이 번뜩이다가 이내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음직한 대답에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는 그의 시선이 가까이 다가온 박진태를 지나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같이 좀 가시죠, 형님.”
허.
박진태는 우두머리 괴물과 함께 다른 중심 쉘터를 도우러 가자는 케일의 말에 기가 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암흑 호랑이의 입꼬리는 올라갔으며 숨겨져 있던 송곳니가 드러났다.
호랑이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차 지원 부대가 너랑 나인가?”
“몇 명 더 있습니다만.”
케일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일단.”
각각의 중심 쉘터 공격조에는 박진태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전력이 존재했다.
과거 맛보기 괴물에 중심 쉘터들이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케일이 준 정보로 아직 버티고 있을 것이다.
‘무너지면 신호를 쏘라고 했지.’
신호는 아직 아무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다들 힘겹게 버티고는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케일이 할 일은 하나였다.
“일단 도와주러 갑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다음에 역공을 준비해야죠.”
순간 최한을 제외한 박진태와 알베르의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여, 역공이라고? 우리가?”
박진태는 저도 모르게 더듬으며 물었다.
역공이라니, 저 괴물들을 상대로 우리가 어찌 역공을 가한단 말인가?
그게 가능해?
박진태는 자신의 물음에 저를 응시하는 케일의 담담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역공을 못 할 것도 없잖아?”
툭 내뱉는 목소리는 평화로웠다.
“계속 당할 순 없지.”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비틀리며 올라간 케일의 입꼬리에 박진태는 살짝 등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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