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79
578화.
하지만 무기를 쥔 이들에게 완전히 해가 뜬 순간.
케일은 담담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일단은 지금은 쉽시다.”
박진태의 입이 열렸다.
“…어?”
쉬자고?
지금 이 상황에서?
박진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2, 3등급은 빠른 속도로 물러서며 멀어졌지만, 아직 살아남은 1등급 괴물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눈동자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지난밤.
그 지옥과도 같은 혼란 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그 광경이 펼쳐진 장소는 최한과 케일이 주로 싸웠던 곳.
“…저 괴물들은-”
사방에서 밀려들어 왔던 2, 3등급 괴물 시체 더미 아래에 유독 큰 괴물들이 깔린 채 그 시체가 차갑게 식어있었다.
유독 다른 1등급 괴물들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괴물들이었다.
문득 배철호는 떠오른 것을 내뱉었다.
“두 번째 맛보기 괴물?”
3등급과 2등급 사이에 맛보기 괴물들이 나왔듯이, 1등급과 2등급 교체 시기에도 맛보기 괴물이 등장한다고 하였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 번째 맛보기 괴물들입니다.”
케일은 인간들이 공격을 하지 않자 가만히 그 자리에서 대기하며 노려보고만 있는 1등급 괴물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덩치만 컸지. 두 번째 맛보기 괴물들은 첫 번째 때보다 훨씬 쉽습니다.”
덩치만 1등급 괴물보다 컸지, 그 공격력은 1등급과 2등급 사이로.
1.5등급 정도 되었다.
우두머리 괴물도 없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 첫 번째 맛보기 괴물이 이상한 거였다.
3등급에서 2등급 교체 시기인데, 맛보기로 1등급 괴물들이 나오고 더불어 우두머리라고 하여 1등급보다 훨씬 더 강한 괴물이 나타났다.
그러니 두 번째 맛보기 괴물이야말로 1등급 등장 직전의 1.5등급 괴물. 진정한 ‘맛보기’ 괴물에 어울렸다.
“그러니, 9시까지는 1등급 괴물들이 쉘터를 공격하지 않아 안전합니다. 다들 쉘터로 돌아가서 쉬시면 됩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케일 곁으로 최한이 다가가 섰다.
촤악.
최한이 검을 살짝 흔들었고, 괴물들의 피가 검에서 떨어져 땅에 흩뿌려졌다.
“…허.”
그 광경을 다른 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놀람과 경악이 가득했다.
‘그 혼전 속에서 맛보기 괴물들을 골라서 모조리 죽였다니. 저 둘은 정말로 사냥을 했군.’
‘…맛보기 괴물만 죽인 게 아냐. 1등급 괴물들도 가장 많이 죽였어.’
‘미친! 아주 괴물들 시체로 산을 쌓았네.’
배철호, 김민아, 박진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쉽게 도달했다.
‘대단해.’
‘역시 저 사람을 따라 서면으로 가야겠어.’
‘…미친 새끼.’
배철호의 읊조림대로.
“살았군.”
결론은 그 살아남은 지금에 대한 여러 감정으로 도달했다.
“다들 이리 와 보십시오.”
케일은 1등급 괴물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물러서며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원래라면 1등급 괴물들은 세 곳의 중심 쉘터를 공격하기 위해 세 무리로 나뉘어 있어야 했지만.
케일이 화염과 2, 3등급 괴물들을 통해 1등급 괴물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박진태가 모여든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케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케일은 일행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9시부터 12시. 3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쉘터가 사라집니다.”
중심 쉘터는 어제 낮 12시에 기능을 잃었지만.
다른 임시 쉘터들은 차례차례로 기능을 잃어갔다.
그리고 24시간 중 마지막 3시간 동안은 모든 쉘터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케일의 손가락이 하나 펴졌다.
“3시간 중 1시간 동안은 싸우고.”
손가락이 하나 더 펴졌다.
“나머지 2시간 동안은 방어에만 집중합니다.”
케일은 괴물들의 체액과 피, 그리고 자잘한 상처들로 엉망이 된 아군을 한 명씩 눈에 담으며 이어 말했다.
“장만수, 제하정, 김록수. 이렇게 세 사람이 각각의 중심 쉘터에 방패를 펼칩니다. 그리고 배푸름이 주호식과 함께 이동하며, 주호식이 각 중심 쉘터 방어자에게 능력을 사용해 보조합니다.”
“잠깐!”
배철호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김록수 씨… 당신, 방어 능력도-”
“있습니다.”
허.
배철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없었다.
“물론 방어전 때 다른 공격 능력자분들이 1등급 괴물들과 싸우긴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낮 12시가 되면.”
케일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또 한 번의 일식이 찾아올 겁니다.”
사람들은 그 일식이 이번 하루 동안 전쟁의 끝을 알리는 신호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챘다.
케일은 사람들이 알아들은 것을 보며 중심 쉘터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니 일단 돌아가죠.”
최한이 다가왔다.
“업히실래요?”
“됐어.”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쪽을 향해 손짓했다.
“크르르.”
암흑 호랑이가 다가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철 매와 흰 토끼도 다가왔고, 케일은 두 괴물들에게 말했다.
“말씀드렸던 제안은 일단 새로운 중심 쉘터로 이동한 뒤에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흥. 알겠다. 허튼짓을 꾸미면 큰일 날 줄 알거라.”
“좋습니다. 가치를 지닌 대화는 할 필요가 있지요.”
차례대로 강철 매와 흰 토끼가 한마디씩 하며 물러섰다. 그리고 케일은 고개를 숙인 암흑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탔다.
그 광경을 다른 이들이 가만히 바라볼 때, 케일은 진지한 얼굴로 최한을 불렀다.
“최한.”
“네. 9시에 깨우겠습니다.”
음?
지켜보던 이들의 머릿속에 의문표가 떠올랐을 때.
“그래. 난 좀 잔다.”
케일은 암흑 호랑이의 푹신한 털 위에 몸을 벌러덩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잠들었다.
최한은 그 모습을 꽤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두 우두머리 괴물들도 희한한 표정으로 그와 케일을 쳐다봤다.
그 표정에 최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록수 형이 기절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9시에 뵙죠.”
순한 미소와 함께 한마디를 남긴 최한은 터덜터덜 중심 쉘터로 돌아가는 암흑 호랑이 뒤를 따라 중심 쉘터로 향했다.
“…내 참.”
이를 지켜보던 박진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최한 뒤를 따랐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오로지 주호식만이 기묘한 눈길로 최한과 케일을 바라봤다.
“…저 둘의 힘은 조금 특이한 것 같은데.”
주호식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밤 내내 기도를 하느라 맞잡았던 손이었다.
종교는 믿지 않았지만, 기도하면 떠오르는 동작이라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손동작이었다.
그는 대격변 후 갑자기 생긴 자신의 능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신은 있는 걸까?
믿으라면 무엇을 믿어야 하지?
자신 빼고는 믿을 것이 없던 주호식은 본래 종교를 믿지 않았건만 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흐음. 둘 다 갑자기 나타났다지?”
김록수는 원래 고아라고 하였다.
최한은 갑자기 김록수의 친한 동생이라며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여느 인간들과 다른 힘을 사용했다.
‘믿음’이라는 능력으로 그들을 서포트해봤기에 더 확연히 그 이질감이 느껴졌다.
“…인간일까?”
저 두 사람은 정말 인간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주호식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띠우며 빛나기 시작했다.
“거, 주호식 씨!”
그때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겁니까? 왜 얼빠진 얼굴 하고 있어! 안 가요?”
앞서가던 박진태가 뒤돌아보며 주호식에게 짜증 어린 타박을 내뱉었고, 주호식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신의 중심 쉘터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찜찜하단 말이야.”
박진태는 그런 주호식을 탐탁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크르르.”
“끼기기—”
그 와중에도 아직 살아남은 많은 1등급 괴물들이 때를 기다리며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콰앙! 쾅! 콰아앙!
사방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1등급 괴물들이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공격을 감행해왔다.
치지직. 치지직.
-김민준 씨! 나 배철호요! 주호식 씨를 여기로 좀 보내주십시오!
김민준은 두 번째 중심 쉘터 배철호의 말에 황급히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곧 주호식 씨가 그리로 갈 겁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제하정이 겨우 버티고 있어요!
콰아앙! 콰앙!
배철호의 목소리는 굉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는 배철호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할머니!”
김민준은 무전기를 들었다.
-민준아! 푸름이 통해 주호식 씨 보냈다!
“감사합니다!”
-콰아아! 콰앙!
김민준은 무전기 너머 굉음이 들려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장만수 아저씨는 괜찮으십니까?”
-그래. 만수가 잘 버티고 있어! 민아도 안전하단다!
세 번째 중심 쉘터 방어를 맡은 이는 장만수였다.
-거긴 괜찮니?
김씨 할머니의 말에 김민준은 정면을 응시했다.
건물의 열린 문 너머.
-너희는 주호식 씨의 능력을 가장 덜 받았잖니?
방어전 시작 후, 제하정이 가장 많이 주호식의 ‘믿음’ 능력을 받았다. 그다음이 장만수였고.
김민준이 있는 이곳의 방어자는 가장 적게 주호식의 도움을 받았다.
-최한 빼고 다른 능력자들도 다 다른 쉘터로 갔고.
맞다.
공격을 맡을 번듯한 이는 최한 뿐이었다.
-아무리 암흑 호랑이가 있다지만. 너희 쪽이 가장 능력자 수가 적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준은 답할 수 있었다.
“여긴 안전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콰아앙! 콰쾅!
1등급 괴물들이 격렬하게 달려든다.
은빛 방패를 향해.
그 방패에서 펼쳐져 건물 전체를 감싼 두 날개를 향해.
하지만 방패는 굳건했다.
부서지지 않았다.
그 방패에 손을 대고 서 있는 김록수의 모습이 김민준의 눈동자에 담겼다.
방패가 워낙 커서 그런지.
아니면 김록수가 워낙 왜소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김록수의 온몸에서 방패와 두 날개가 돋아나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김민준은 그나마 다른 이들에 비해 김록수 근처에 위치해 있어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의 몸 역시도.
입가에는 조금 전부터 다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굳건한 등과 달리 손끝부터 시작해 팔이 서서히 잘게 떨렸다.
그때, 김민준은 이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시각 11시 55분.}
드디어 끝나간다.
김민준은 옆에서 이성원의 읊조림을 들었다.
“현재 시각 11시 55분. 방어자 김록수의 방패는 여전히 굳건하며 방패 밖에서 암흑 호랑이와 최한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반투명한 은빛 방패 너머 두 개의 검은 형체들이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암흑 호랑이와 최한이었다.
모든 1등급 괴물들을 막지는 못했지만, 상당 부분 최한과 암흑 호랑이가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케일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동안 김민준은 김록수, 최한, 암흑 호랑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지난 하루가 서서히 지나갔다.
치지직. 치직.
-민준아. 조금 뒤에 보자꾸나.
아직 끊기지 않은 무전기 너머 김씨 할머니의 목소리에 김민준은 작게 답했다.
“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동시에 이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시각 11시 58분.}
이제 2분 남았다.
세 중심 쉘터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태양으로 향했다.
지난 24시간이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갔다.
지옥과도 같았던 순간이었는데, 지금은 살아서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었다.
이는 케일도 마찬가지였다.
“크윽.”
케일은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꾹 참으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은빛과 함께 방패가 흔들림 없이 펼쳐져 있었다.
{현재 시각 11시 59분.}
1등급 괴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콰아앙! 콰앙!
손, 발, 머리. 가지고 있는 모든 공격 수단으로 괴물들은 케일을, 방패를 노렸다.
“허억. 허억.”
케일은 방패 너머 최한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았다.
최한은 아주 강했지만, 그도 인간이라 체력의 한계는 존재했다.
케일과 최한도 이제 지쳤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말로 조금만 있으면.
{10.}
이진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9. 8. 7…}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4. 3…}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이제 곧.
{2. 1}
지금.
태양이 어둠에 가려졌다.
괴물들의 공격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케일은, 김록수는 그때서야 비로소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바꿨어.”
나의 과거를.
나의 기록을.
나의 후회를.
나의 절망을.
드디어 하나 바꿨다.
케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태양이 그림자에 가려져 어두운 이때.
저 멀리 아름다운 빛무리가 보였다.
마치 땅으로 내려선 오로라와 같았다.
그리고 그 오로라에 감싸인 거대한 성이 보였다.
멋들어진 한옥 기와지붕이 눈에 띄는 몇 층짜리의 거대한 성.
그리고 그 성을 중심으로 하여 생성된 현대식 건물들.
이진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보시는.}
이 근방의 모두가 케일이 누누이 말해왔던 그 장소를 보고 있었다.
{지금 보시는 저곳이 우리의 새로운 터전입니다.}
{다시 태양이 나타난 순간.}
{우리는 저곳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1분이 지나고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1등급 괴물들은 약속한 것처럼 뒤로 물러서며 흩어졌다.
케일은 방패를 걷어냈다.
“록수 형.”
“고생했다.”
케일은 다가온 최한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뒤돌아섰다.
그는 건물 안에서 하루 내내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라고.
그리고.
“새집으로 갑시다.”
어서 빨리 새로운 중심 쉘터로,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하자고.
***
사람들이 ‘첫 번째 중심 쉘터 파괴 사건’이라 불리는 일에 유일하게 ‘사망자 무’라는 큰 공을 세웠던 세 중심 쉘터의 주요 능력자들이 새로운 거대 중심 쉘터 한가운데 자리한 성에 모였다.
그 성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회의실.
“김록수.”
박진태는 케일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네 말, 아니, 네 ‘예지’대로라면.”
박진태는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억누르며 겨우 입을 떼었다.
“곧 부산 서면에 ‘등급 외 괴물’이 나타난다고?”
박진태, 김민아, 배푸름 등등.
많은 이들이 케일의 입을 바라봤다.
그런 케일 뒤에 최한이 경호원처럼 서 있었다.
케일의 입이 열리며,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어.”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산 서면으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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