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83
582화.
***
케일은 드러눕고 싶었다.
암흑 호랑이의 등 위에.
“으음.”
그리고 그것을 암흑 호랑이, 다시 잠들어 이 세계로 넘어온 알베르가 어찌 알아챘을까.
“하지 마라.”
“뭘요?”
“뭐든 하지 마라.”
이야. 눈치 빠르네.
케일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저기. 록수야.”
케일은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곳엔 김포철과 김민준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정면과 케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냐?”
김포철의 질문에 케일은 정면을 바라봤다.
위이이이- 위이잉-
뎅뎅, 뎅! 뎅! 뎅!
온갖 경고음이 다 울리는 와중에 철로 된 거대한 북쪽 문을 굳건히 틀어 잠근 채, 그 주위에서 케일과 일행들을 향해 창과 검, 활 등을 겨눈 사람들이 있었다.
“으음. 너무 늦은 시간에 왔나?”
케일의 말에 김포철은 순간 답답함에 제 가슴께 위를 두드렸다.
“하이고! 록수야, 늦은 게 문제가 아니고!”
거기까지 말한 김포철은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김포철은 뒤에서 상당히 젠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문제인가 보오?”
김포철은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위로 했다.
3m에 달하는 귀엽게 생긴 흰 토끼가, 귀엽게 생겨서 더 무서운 흰 토끼가 가만히 내려다봤다.
흰 토끼는 암흑 호랑이를 올라탄 케일의 왼편에 자리해 있었다.
“흥!”
그리고 케일의 오른편에는 강철 깃털 매가 한껏 날카로이 날개를 돋운 채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강철 매는 저에게 활을 겨눈 인간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네가 말한 이수혁이라는 놈만 내가 들어가서 낚아채 오면 되는 것 아니냐?”
날개가 들썩였다.
“감히, 나에게 무기를 겨누다니! 죽고 싶은 것이겠지!”
무기를 겨누고 있던 이들의 표정이 더욱더 급박해졌다.
그때, 성문 양옆 성벽에 올라서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떠한 존재도 이 성벽을 함부로 넘을 수 없다!”
유도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수혁은 넘겨줄 수 없다!”
그녀를 바라보는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나중에 부산 구역장이 되는 사람.’
그리고 반대편 성벽 위에 올라선 이들 중 한 명이 또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케일 쪽이 아닌 중년 여성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누님. 그냥 싸우죠.”
망토 같은 것을 어깨에 두른, 마찬가지로 중년의 남자였다.
케일은 저 남자도 알고 있었다.
‘대전 최대 길드의 리더.’
아니, 저 둘뿐만이 아니었다.
성벽을 지키고 있는 이들 중 추가로 두세 명은 미래 김록수의 기억 속에서 꽤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었다.
“흐.”
케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웃음에 성벽 위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케일의 일행들도 긴장한 채 케일을 바라봤다.
현 상황은 팽팽하게 당겨진 가는 실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를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케일은 웃음이 나왔다.
‘…진짜 여긴 괴물들이 다 모여 있었군.’
이곳 부산 서면 중심 쉘터에 미래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에서 이름을 날릴 괴물과도 같은 능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공격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치유, 방어, 서포트 등등 다양한 방면의 괴물 같은 능력자들이었다.
‘물론 어쩌다 모인 것이지만.’
다들 고향도 터전도 달랐다.
다만 여러 가지 우연과 다양한 이유들이 겹쳐 이 능력자들이 한데 머물고 있었다.
물론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 이들 말고도 괴물과도 같은 능력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그 사람들도 끌어들여야지.’
그리고 케일은 그 능력자들도 곧 데려올 작정이었다.
케일은 저를 향해 활을 겨눈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 미소에 사람들은 더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케일은 강철 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 안 돼요, 누님. 인간 안 죽이기로 했잖아요?”
성문 앞의 사람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상에, 누님이래.”
곳곳에 경악이 서린 표정이 드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 매는 웃는 얼굴의 케일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날개를 갈무리하며 고개를 한쪽으로 팽 돌렸다.
“흥. 네 얼굴을 봐서 참아주지.”
그러곤 케일을 향해 경고하듯이 말했다.
“거래는 꼭 지켜야 돼.”
김포철의 입이 열렸다.
“…거래?”
“그래. 거래가 있소.”
흰 토끼가 젠틀한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래봤자 귀여웠지만, 그래서 살벌했다.
김포철은 조심스럽게 케일에게 물었다.
“거래가 뭐야?”
“으음.”
케일은 잠시 생각했다.
“공존?”
“…공존?”
“네. 서로 공존하자는 거래죠.”
그게 무슨 소리야?
김포철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암흑 호랑이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김포철은 이상하게 암흑 호랑이가 다른 두 우두머리 괴물보다 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른 두 괴물도 암흑 호랑이는 다르게 대했다.
그래서 그런지 암흑 호랑이는 조금 다른 존재, 조금 더 위엄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암흑 호랑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쟤가 왜 누님이야?”
“형님만 형님이라고 부르니, 그건 아쉽다고 자신도 누님이라고 불러달라던데요?”
“…허.”
알베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럴 때마다 갈기가 우아하게 흔들렸다.
“…하아.”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박진태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골 때리네.”
박진태는 참 골 때리는 광경이다 싶으면서도 그 골 때리는 광경보다 더 골 때리는 상황이 곧 자신의 앞에 펼쳐질 것을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안 먹던 술이라도 처먹고 싶었다.
‘이수혁이라니.’
케일은 이수혁을 만나러 왔다며 불러달라고 했다.
그 뒤 이런 웃기지도 않는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었다.
‘그 새끼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짓을 다 했는데.’
결국엔 다시 이수혁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박진태 제 발로 걸어와서.
‘얻어터지겠지. 아니지,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야.’
그는 스스로의 앞날도 빤히 보였다.
이수혁.
그 이름은 대격변 이후 박진태에게 있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러움. 존경. 질투. 열등감.
온갖 감정들이 뭉친 대상이었고, 알게 모르게 박진태는 이수혁이 리더로 있던 때 그의 오른팔을 자처하면서도 ‘내가 이 새끼보다 못한 게 뭐야?’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하지만 김록수.
변한 김록수와 지내면서 박진태는 질투도 어느 정도 닿을 수 있는 대상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록수의 그 능력들은 박진태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김록수를 따라서 이곳에 왔다.
“…후우.”
불안감과 긴장감을 담은 한숨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박진태였다.
“음!”
그러다가 알베르 크로스만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지닌 암흑 호랑이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하지만 이내 암흑 호랑이는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박진태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암흑 호랑이는 박진태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박진태의 앞 편에 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록수.”
알베르가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네.”
“저 뒤에 둘은 저리 둬도 되냐?”
케일은 알베르가 말하는 두 사람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정면. 정확히 북문을 응시하고 있던 케일이 슬쩍 뒤를 쳐다보았다.
어딘가 복잡한 얼굴의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최씨 가문의 남자들이었다.
최한과 최정수.
둘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하지만 공통되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최한은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최정수는 그런 최한의 등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최정수야 나름대로 몰래몰래 본다고 최한이 저렇게 다른 곳을 볼 때 그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겠지만.
‘글쎄.’
다른 인간도 아니고, 최한은 아마 최정수의 저런 시선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둘 다 마음이 복잡하겠지.’
경주에서 다시 부산으로 오는 길.
몇 번의 작은 규모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마다 최한은 케일이 말하지 않아도 맨 앞으로 나섰다.
그런 최한을 날이 가면 갈수록 최정수가 혼란에 가득 찬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최한은 최정수의 검술을 썼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한이 최정수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최씨 가문의 검술을 조금 더 발전시킨 형태로 펼치고 있었다.
그러니 최정수의 눈에는 최한의 검술이 자신의 가문에서 발굴하고 개량시키던 고대 검술과 비슷하면서도 더 한발 나아간 모습에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터.
하지만 아직까지 두 사람은 서로 직접적인 대화를 한 번도 나누지 않았다.
“복잡하군.”
알베르의 말대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케일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시작은.
저 두 사람의 대화의 시작은 케일이 아닌 그들 스스로 해야 했다.
그 뒤에야 케일이 끼어들어 조금 더 원활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더라도, 시작만큼은 저 두 사람이 했으면 하는 것이 케일의 바람이었다.
그때.
“대장님! 이수혁 씨가 오셨습니다!”
“오셨습니까?”
성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케일은 황급히 최한과 최정수에게서 시선을 떼어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하!”
케일은 탄성을 지르며 성벽 위에 올라선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성벽 위에서 케일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수혁이다.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만났다.
그때, 알베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자가 네가 말한 이수혁 같은데?”
알베르는 케일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작게 감탄을 흘렸다.
“으음. 네가 말한 것과 달리 상당히 사람이 분위기가 있-”
물론 케일은 알베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럴 정신도 없었고, 이수혁이 케일을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야, 너!”
이수혁은 기가 찬 얼굴로 연신 손으로 제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케일이 올라탄 알베르와 양옆의 괴물들.
그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그러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커졌다.
“너네도!”
그의 시선이 이진주, 이성원 남매와 김씨 할머니, 박진태, 이철민에게로 향했다.
그런 이수혁의 반응에 북문 책임자인 두 사람이 다가갔다.
“이수혁. 네가 아는 사람들이냐?”
“수혁아. 너 저 사람을- 야, 야! 너 뭐하냐!”
하지만 이수혁은 다가오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성벽을 훌쩍 뛰어넘어 성 밖으로 내려섰다.
그리곤 성큼성큼 케일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님!”
“위험하실지도 모릅니다!”
북문 밖에서 대기하던 능력자들이 이수혁에게 염려를 표했지만 이수혁은 손을 들어 보였다.
“괜찮아.”
그리 말하고선 우두머리 괴물 세 마리가 있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우두머리 괴물이 아닌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가장 선두에 선 이, 케일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가오던 이수혁의 입이 열렸다.
“야. 너 밥은 먹고 다녔냐?”
순간 케일은 그 질문을 듣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올라간 입꼬리를 본 것인지 이수혁도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내 찡그린 채로 말했다.
“꼴이 이게 뭐야? 왜 이리 비쩍 말랐어?”
순간 아무도 모르게 일행 맨 뒤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이철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를 아무도 보지 못했고, 서면 중심 쉘터 사람들이건 케일 일행이건.
모두 케일과 이수혁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케일은 알베르 등에서 내려 이수혁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내 꼴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그 말에 이수혁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진짜, 김록수 맞네.”
그리 말하곤 더 빨리 케일 앞으로 걸어왔다.
케일은 그런 이수혁을 보며, 미래 이수혁이 지금 이맘때쯤을 떠올리며 했던 말을 생각했다.
‘아주 잠깐 지쳤던 때가 있었어. 안 그렇겠냐? 지금이야, 명확하게 내 생각이 정리되었지만.’
‘그때는… 그때는 말이야. 나도 아직 어렸고, 내가 무슨 위인도 아니고. 좀 지쳤지. 힘들었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전투 복장은 괴물들의 피로 뒤덮여져 있었고, 그 몰골도 엉망이었다.
표정은 밝았지만 얼굴에 새겨진 피로감도 그대로 보였다.
미래의 팀장 이수혁과 달리, 지금의 이수혁은 사람을 구하고, 괴물과 싸우는 일에 조금씩 지치고 점점 더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게 미래의 또 다른 팀장 김록수의 눈에 다 보였다.
“…참 꼴이 말이 아니네요.”
이수혁은 그 말에 다가오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 제 몸을 내려다봤다.
“뭐.”
그러곤 다시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래도 멋지잖아?”
“얼어 죽을.”
케일은 코웃음을 치며 그 말을 받아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이수혁의 입이 열렸다.
“못 본 새에 좀 컸다?”
“원래부터 다 컸습니다.”
케일은 싱거운 이수혁의 말에 대충 답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하는 인사로.
어색하지 않은 인사로.
이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는 그 손을 가만히 쳐다보던 이수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새끼, 악수는 무슨.”
이수혁은 두 팔을 벌리며 케일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꽉 안았다.
“오랜만이다. 정말 반갑다. 록수야.”
툭툭. 등을 두드리던 투박한 손은 이내 케일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머리칼을 헤집었다.
“쉘터 사람들 걱정했는데.”
24시간의 전투.
부산에서 그 전투를 치렀던 이수혁은 자신의 첫 중심 쉘터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었다.
‘거기도 무너졌을 텐데.’
‘거기도 괴물들이 덮쳤을 텐데.’
‘내가 이렇게 혼자서 아등바등 거려도 결국 다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이수혁은 자신이 구했던 적이 있고, 또 이번에 살아남아 자신을 찾아온 김록수의 등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수혁은 나직이 말했다.
“고맙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록수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케일은 자신의 삶에 있어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이었으며 가족이기도 했던 이를 오랜만에 마주하며 생각했다.
‘이수혁은 여전히 이수혁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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