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88
587화.
알베르는 제 볼을 쿡쿡 찌르는 기묘한 손길을 느꼈다.
천천히 그의 눈꺼풀이 걷어지며 그의 눈동자는 그 손길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어! 진짜 찌르니까 일어나는데!”
“왕세자야!”
범인은 라온과 홍이었다.
어째 이 둘은 날이 갈수록 케일을 닮아 자신을 무슨 옆집 삼촌 대하듯이 했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으음.”
알베르는 자신의 바로 옆. 침대 옆에 자리한 이를 보고선 짧은 침음을 삼켜야 했다.
‘…보면 볼수록.’
론 몰란이 가만히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참 살벌하단 말이지.’
케일의 시종일 때부터 뭔가 남다른 면모가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체가 한때 동대륙 뒷세계를 호령하던 다섯 가문 중 가장 우위에 있던 몰란 가문의 가주라는 것을 알자 새삼 그 정체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겪으면 겪을수록.
은근히 인간이 살벌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인자한 미소를 그리며 묻는 론이 이상하게도 알베르는 떨떠름했다.
알베르는 시종처럼 론이 건네는 물잔을 받아들고서 입을 열었다.
“몰란 가주가 이렇게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소가주까지 말이야.”
침대 옆에는 론, 침대 머리맡에는 비크로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론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이 시간만큼은 저하께서도 무방비하신 상태이니, 누구라도 지키고 있어야 하지요. 그리고.”
론은 미소를 그렸다.
“누군가 지켜야 한다면, 비밀을 요하는 이런 일에는 은밀한 자가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물론 제 아이는 다음부터 물리겠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서서 온을 품에 안고 있던 비크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습니다, 아버지. 저도 저하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그렇다는군요, 저하.”
순간 알베르는 생각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나를 지키겠다?
은밀한 호위?
누가 그 속내를 모를 것 같은가.
알베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케일 헤니투스와 최한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서겠지.’
그렇기에 그는 저를 둘러싼 묘족 아이들과 검은 용, 몰란 부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둘 다 잘 지내. 일단 아직까지는 쓰러지거나 기절하거나 크게 다친 적은 없다.”
순간 평균 9세의 표정이 밝아졌다.
“히히. 난 그럼 밥 먹으러 간다! 인간이 끼니는 꼭 챙기랬다!”
“나도 많이 먹고 클 건데!”
홍과 라온이 미련 없이 알베르의 곁을 벗어나 천막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온도 비크로스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 뒤를 따르다가 비크로스를 쳐다봤다.
다른 아이들도 순차적으로 바라봤다.
“…으음.”
비크로스는 그 시선에 고민하다가 결국 그도 천막 입구로 걸어갔다.
“애들 밥 먹이고 오겠습니다.”
슬쩍 옷에 붙은 털을 떼어내며 밖으로 나가버린 비크로스와 그 뒤를 따른 평균 9세들이었다.
그 덕에 천막 안에는 론과 알베르만이 남았다.
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저하. 정말로 말씀을 안 하실 작정이십니까?”
“무엇을 말인가?”
론은 모른 척하는 알베르를 보며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저 공자님, 최한과 대화가 가능하고 잘 지낸다는 말씀 외에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으시니, 도통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론이 알베르를 응시했고, 알베르도 그 시선을 마주했다.
알베르는 처음 암흑 호랑이가 된 후 잠에서 깬 뒤, 케일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케일, 최한과 잠을 통해 통신이 가능하다는 말만 전했다.
알베르는 가만히 론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꽤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궁금한 것은 참아.”
론의 인자한 미소가 짙어졌다.
“단.”
그때, 알베르는 말을 덧붙였다.
“케일은 열심히, 꽤 잘 지내고 있어.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네.”
인자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서늘하게 가라앉은 무표정한 얼굴의 론 눈동자가 알베르를 찬찬히 바라봤다.
그러다 곧 다시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의 입이 열렸다.
“아무래도 동대륙 왕국들이 이대로 하얀 별의 손을 잡을 것 같습니다.”
알베르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우리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고?”
“네. 몰든 왕국을 제외한 모든 왕국에서 하얀 별의 손을 순차적으로 잡을 것이라 판단되며, 벌써 손을 잡은 일부 왕국들은 용병 길드를 왕국 영토에서 내쫓고 있다고 합니다.”
알베르는 기가 차다는 얼굴이었다.
“하. 몰든 왕국 이야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분명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몰든 왕국의 엘리스네 1세.
하얀 별의 수하이자 환각사인 그녀 때문에 케일과 엘프들이 몰든 왕국에 잠입하여 싸우는 일이 있었고.
엘리스네 1세의 동생 조피스가 엘리스네 1세의 뒤를 이을 계획이었다.
그 모든 전반의 문제에 대해 알베르가 나서서 동대륙의 왕국들과 논의를 진행하였고, 모두 이쪽의 의견을 수긍했다.
‘동맹국은 아니나, 최소한 협력을 할 줄 알았건만!’
그런데 알베르가 이 마계의 문 싱크홀 인근을 포위하며 하얀 별과 싸움을 시작하려고 하자 동대륙 왕국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그들이 하나둘 하얀 별과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지?’
도대체 왜 갑자기 동대륙 왕국들이 하얀 별과 손을 잡는단 말인가?
조피스가 있는 몰든 왕국을 제외하고선 모두가 로운 왕국에게, 알베르에게 등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케일이 돌아와도 동대륙에서 하얀 별과 싸우기 힘들어진다.’
아니, 힘들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도리어 케일과 용병 길드, 몰란 가문, 서대륙의 왕국들이 동대륙의 땅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침략자가 될 터.
론이 나직이 말했다.
“곧 이곳에서 철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계의 문 근처에 자리 잡은 이 병력들은 동대륙 왕국들의 압력에 철수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잠입은?”
론은 그 물음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현재 각 왕국의 왕성 혹은 수뇌부의 저택으로 몰란 가문의 정보원을 파견하여 잠입을 시도 중입니다.”
알베르 측은 압력이 온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얀 별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해 현재 몰란 가문의 정보원과 암살자들이 은밀히 동대륙 곳곳으로 퍼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또한.
“…내가 잠든 동안 고래족에게서 온 연락은 없나?”
“아직 없습니다.”
“그렇군.”
알베르는 서대륙의 왕국 및 여러 종족들과 논의를 하며 판을 뒤흔들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로잘린 씨는?”
“현재 메리와 함께 서대륙의 일을 잘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알베르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나?”
그는 이번에 잠들기 전 케일로부터 한 가지를 부탁받았다.
“네. 없었습니다. 아마 한 시간 뒤에 연락이 오시겠지요.”
현재 저 마계의 문 싱크홀.
엔더블 왕국 수도에 숨어있는 에르하벤.
‘저하.’
‘왜?’
‘에르하벤 님과 하루에 한 번 영상통신을 하신다고요?’
‘그렇지. 서로 상황을 주고받아야 하니까.’
‘그러면 한 가지 제 말 좀 전해주십시오.’
‘뭔데?’
케일은 꽤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내가 돌아갈 때까지 살아 계세요.’ 이 말을 전해주십시오.’
알베르는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께 연락이 오면 바로 나한테 연결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저하.”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이내 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천막 입구로 향했다.
아마 알베르가 말한 것들을 전하기 위해서일 터.
“그리고-”
알베르의 목소리에 론은 걸음을 멈췄다.
그때, 알베르는 케일이 한 부탁을 한 가지 더 떠올렸다.
“고대. 아니, 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으는 것은 어떻게 되고 있지?”
“현재 성자님과 케이지 씨, 그리고 테일러 스텐 후작이 중심이 되어서 정보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군.”
“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나도 곧 나가지.”
론이 이내 소리 없이 천막 밖으로 나가버렸고, 알베르는 홀로 남았다.
그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케일이 한 말을 떠올렸다.
‘봉인된 신 말입니다.’
‘어.’
‘그 정보 좀 모아주세요.’
‘왜?’
‘아무래도 이 세상이 이상하거든요.’
‘뭐가 이상한데?’
케일은, 김록수 모습의 케일은 조용히 읊조렸다.
‘최한에게 죽음의 신이 흘러가듯이 그랬다고 하더군요.’
알베르는 케일의 눈동자에 감도는 이채를 보았다.
케일은 나직하지만 힘 있게 말했다.
‘봉인된 신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재주는 없지만 또 다른 차원을 비집고 들어가는 재주는 있다고요.’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말이죠.’
이어진 말이 알베르의 귓가에 크게 박혔다.
‘신이 흘러가듯이 무의미한 말을 할까요?’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아니.”
신이 무의미한 말을 할 리 없다.
신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힌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알베르는 암흑 호랑이가 되어 본 세상을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그 세상은 허상이 아냐.”
허상이라기엔 너무 정교했다.
‘그리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알베르는 낮게 읊조렸다.
“…다 가짜일 리 없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가짜일 리 없다고.
알베르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
“여기가 훈련장입니까?”
“그렇다네!”
케일의 물음에 강 의원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덤덤한 케일과 달리 강 의원은 안절부절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강 의원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다만. 아무래도 이게-”
노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케일과 최한을 번갈아 바라봤다.
케일은 노인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정면의 문을 응시했다.
실내 훈련장으로 향하는 곳에 자리한 문은 철로 된, 상당히 무겁고 튼튼해 보이는 문이었다.
“열까요?”
최한의 물음에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강 의원은 차분한 최한과 케일의 모습에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서는 케일 쪽과 척을 지기 싫어 이렇게 두 사람을 불러온 것인데, 왠지 모르게 예상과 반응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끼이익-
문이 쉽게 열렸다.
저 높은 곳에 천장을 둔, 거대한 실내 훈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이전보다 더 큰 굉음과 함께 세 사람의 눈앞에 훈련장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는 사람이 보였다.
“커헉!”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 사람을 날려 보낸 장본인의 입이 열렸다.
“진태야.”
이수혁이었다.
그리고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이는 박진태였다.
“허억, 헉.”
케일은 훈련장 한구석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이철민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케일의 시선이 이수혁에게로 향했다.
이수혁의 검은 훈련장 한구석에 놓여 있었고, 이수혁은 장갑을 낀 채 박진태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케일과 최한, 강 의원이 들어선 것을 알고 있을 것임에도 이수혁은 이쪽에 시선 하나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태야. 일어나야지.”
그는 천천히 박진태에게로 다가갔다.
박진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손발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와 달리 멀쩡한 모습의 이수혁은 나직이 물었다.
“형이 오랜만에 한 수 가르쳐준다는데. 진태야, 싫냐?”
순간 케일은 박진태와 눈이 마주쳤다.
박진태는 케일의 시선을 피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크윽, 퉤!”
그는 입안에 가득 찬 피를 내뱉고는 자세를 똑바로 하며 이수혁에게 말했다.
“누가 싫다고 했어?”
그제야 이수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태야, 그래야지.”
그러고선 케일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록수야. 한아. 문 좀 닫아라.”
이수혁은 이제 웃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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