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89
588화.
“이, 이거 이래도 되는가?”
강 의원은 웃지 않는 이수혁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우가 말을 잃을 정도였어.’
허세 빼면 남는 게 없는 김우.
사사건건 이수혁과 관련된 일에 트집을 잡고, 자신의 권력이 줄어들거나 흠이 잡힐 것 같으면 득달같이 날을 세우던 놈.
그놈이 연산동에 구조 지원을 다녀온 이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물론 한두 마디는 남기긴 했다.
김우는 중심 쉘터로 돌아와 허숙자와 강 의원, 마승진과 마주했었다.
허숙자를 비롯한 세 명은 김록수 일행이 어땠냐고 김우에게 물었으나 김우는 그들을 지나치며 한껏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것들이 나타나서.’
그 말의 의미를 강 의원이 생각하려던 찰나, 뒤이어 나머지 구조 지원조와 구조대가 도착하였다. 그들은 구조대원을 통해 모든 전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강 의원은 생각했다.
‘진정으로 등급 외 괴물이 서면을 덮친다면, 저자들을 붙잡아야 한다!’
그 뒤에 강 의원은 수혁이에게 더 자세히 김록수 일행에 대해 들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수혁은 김록수 일행 중 남매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며 훌쩍 떠나더니, 그가 훈련장에 있다는 소리에 찾아가니-
‘저리 싸우고 있었지.’
강 의원은 김록수 일행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저렇게 싸움을 벌이다가 사이가 틀어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급히 김록수와 최한을 데리고 왔으나.
‘왜 저리 태연해!’
두 사람 다 태연함을 넘어 어딘가 느긋했다.
“아니,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게좋게 대화로-”
강 의원은 훈련장 안 사람들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야! 문 닫으라잖아!”
박진태가 최한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채 외쳤다.
그 모습에 강 의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 저놈은 처맞고 있으면서-”
기가 차다는 음성이었다.
“한아.”
이수혁이 한 번 더 최한을 나직이 불렀고, 최한은 가만히 박진태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구 철문으로 향했다.
그때, 최한은 제 뒤를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뒤돌아보니, 케일이 서 있었다.
“록수 형?”
케일은 이수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난 간다.”
최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때, 뒤에서 박진태가 외쳤다.
“왜 안 보고 가? 나 얻어터지는 거 보고 싶은 거 아니었냐?”
순간 케일의 시선이 박진태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말했다.
“난 말이야.”
박진태는 투명한 유리알처럼 가만히 저를 비추는 김록수의 동공을 보았다.
정말로,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의 주인이 박진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앞만 보고 가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박진태는 허탈감이 제 몸을 억누르는 것을 느꼈다.
올곧은 김록수의 눈동자에 박진태는 흘러가듯이 담겼다.
“…하.”
박진태의 입에서 힘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일은 그런 박진태에게서 미련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구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였다.
등 뒤로 이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록수야.”
케일은 이수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요?”
이수혁은 대답 없이 그저 케일을 바라봤다.
그는 이성원과 이진주에게서 그간 박진태가 리더로 있을 당시 쉘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김록수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도, 나아가 김록수가 초기 쉘터 사람들과 인근의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고 구했는지도.
잔잔한 호수와 같은 눈동자의 김록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수혁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딱히 미안할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런 케일의 곁으로 최한이 다가왔다.
“최한.”
“네.”
케일은 최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박진태는 사격 국가대표였어. 상당한 운동 신경과 반사 신경을 지녔지.”
문밖으로 향하는 케일과 최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럼에도 박진태는 팀장의 상대가 안 돼.”
이수혁은 배우, 그중에서도 액션과 스릴러 쪽에 뜻을 두었다지만 박진태만큼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오지는 않았다.
“이 말의 뜻을 알겠지?”
최한은 아무 말 없이 또렷한 눈동자로 케일을 응시했다.
케일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팀장의 한계가 어딘지 모른다.”
순간 최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케일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수혁은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했다.
그가 가진 힘은 완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수혁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고, 특히나 검에 있어선 최고로 평가받았다.
“나는 적어도 이번 전투로 팀장을 내가 알던 때까지로 힘을 끌어올릴 거야.”
케일의 목표 중 하나였다.
최정수의 문제는 최한에게 맡겼다면, 이수혁의 문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맡아야 했다.
“그러니 너도 한번 봐.”
케일은 최한을 지나 완전히 훈련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수혁의 센스는 타고났으니까.”
최한은 그가 지나치면서 내뱉은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잠시 뒤 문고리를 잡으며 문밖의 케일에게 말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훈련장과 복도를 구분하는 철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케일은 닫히는 문 사이로, 안에서 이수혁이 박진태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진태야. 너는 나한테 내 뜻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이수혁은 쉘터에 있을 당시, 박진태를 상당히 믿었었다.
“적어도 쉘터만큼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고. 그랬어.”
그리고 지금 감정 없는 목소리로 이수혁은 박진태에게 그들이 했던 약속을 언급했다.
“그리고 쉘터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 진태야, 그걸 잊었냐?”
“…빌어먹을.”
박진태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훈련장 문이 닫히고 있었기에 그 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건만 어떤 상황일지 눈에 선했다.
다시 이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라. 대련 마저 해야지.”
“제기랄!”
박진태의 고함소리와 함께, 그 뒤 누군가의 달려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분명 박진태가 이수혁에게 달려드는 소리이리라.
피식.
케일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저래 고생하겠어.”
이철민과 박진태는 앞으로 매일이 고될 것이다.
오늘은 아마 시작일 확률이 높았다. 이수혁은 아마도 박진태와 이철민에게 제대로 된 배움을 나눠야 한다며 상당히 달달 볶을 것이다.
케일은 그 광경 역시 눈에 선해 피식피식 웃으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복도를 걸었다.
“…록수야!”
“형!”
그때, 케일은 복도 모퉁이에서 이씨 남매와 김씨 할머니가 빠르게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매는 케일을 불렀지만 다른 말을 못 꺼낸 채 입술을 달싹이기만 했다.
“록수야.”
반면 김씨 할머니는 케일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참 따뜻한 손이었다.
“록수야.”
“네, 할머니.”
“마음에 응어리는 이제 없는 거니?”
케일은 그 말에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마음의 응어리라.’
김씨 할머니는 박진태와의 일을 묻는 것이겠지만. 케일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려왔다.
마음의 응어리.
머릿속에 기억된 절망과 후회. 그리고 책임감.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전 요즘 좋습니다.”
요즘 케일은 꽤 좋았다.
봉인된 신의 시험이라, 절망을 느껴보라고 한 시험이라 이런 말을 하면 그럴 수 있으나.
정말로 좋았다.
조금씩 하나씩 바꿔 가는 것 같아,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의 응어리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물론 잊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들이 잊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기억들 옆에 좋은 기억이 새로이 자리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지.”
김씨 할머니는 케일의 손을 꼭 한 번 잡고는 그 손을 놓으며 미소를 그렸다.
이씨 남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을 살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누나랑 성원이도 나중에 보자.”
케일은 그런 세 사람에게 미소를 그려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지.’
케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상해.’
봉인된 신은 케일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놔둘까?
케일이 등급 외 괴물을 비롯하여 그의 절망으로 남은 순간들을 순순히 바꿀 수 있도록 내버려 둘까?
‘그랬다면 죽음의 신과 태양신이 방관했겠지.’
케일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신이 둘이나, 게다가 이 시험에 사람 두 명을 보내며 끼어들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케일은 다짐했다.
‘부순다.’
신의 방해 따위, 모조리 부숴버리리라.
***
왕세자와 암흑 호랑이를 오가는 생활을 꽤 오랫동안 반복했던 알베르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때였다.
펄럭!
천막 입구가 열리며 늦가을의 끝자락에 머무는 차가운 바람이 훅 안으로 불어왔다.
“저하!”
“성자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알베르는 급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보며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섰다.
“허억, 헉.”
성자 잭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베르에게 다가왔다.
“체력도 안 좋으면서, 좀 천천히 가지.”
그리고 그 뒤로 성녀였던, 소드마스터 하나가 들어섰다.
그 둘의 등장에 알베르가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하지만 하나는 그런 알베르에게 대충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천막 입구를 꼼꼼히 닫았다.
더불어 기감을 펼쳐 주변에 다른 이가 있나 살폈다.
이를 알베르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상당히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알베르는 겨우 숨을 고른 성자 잭과 마주했다.
“성자님, 무슨 연유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찾았습니다!”
“네?”
성자 잭은 얼굴에 다급함과 기쁨이 서려 있었다.
“봉인된 신에 대한 정보가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알베르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성자 잭은 알베르의 물음에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그를 바라봤다.
“교황청에 위치한 교황의 집무실에는 몇 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고서로, 신에 대한 조사를 위해 그 고서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그 책은 성자, 성녀. 그리고 교황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알베르는 성자 잭이 품에서 비단으로 감싼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비단보를 펼치는 성자 잭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으음.”
곧 알베르의 눈앞에 하얀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당히 낡은 책이었는데, 잭은 그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사락 사락.
그런데 알베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안 보여요.”
하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 저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잭 오빠뿐이죠.”
“사실 저도 그냥 읽었다면 그 책 속의 내용이 무슨 뜻일지 몰랐을 겁니다.”
잭은 페이지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세 가지의 고서가 전해져 오는데, 그중 이 책은 초대 교황께서 남기신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형태가 기록보다는 마치 태양신의 말씀을 옮겨 적은 듯한 모습을 띠고 있죠.”
잭의 손이 멈췄다.
“여깁니다.”
알베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잭은 그 페이지에 새겨진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서로를 마주 보는 거대한 두 절벽 사이로 태양은 떠오른다. 태양이 떠오르는 자리에 태양의 기억이 묻혀 있으리라.”
순간 알베르의 어깨가 멈칫했다.
잭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태양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태양의 저주를 이겨낸 자.”
알베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자만이 바위 아래에 묻힌 기억을 꺼낼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읽은 잭이 알베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태양의 기억이 태양신의 기억이 아닐까 추정되며, 그 기억 속에 봉인된 신에 대한 정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를 토대로 연구하면-”
그때였다.
“…하!”
성자 잭과 하나는 알베르가 탄식을 터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알베르는 쌍둥이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툭 내뱉었다.
“이건 내 얘기잖아?”
“네?”
“뭐?”
쌍둥이가 놀라서 반응했지만, 알베르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로운 왕가의 표식.’
대리석으로 된 절벽과 화강암으로 된 절벽이 마주 보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그렇다면.’
성자가 말한 기록 속 태양이 떠오르는 자리.
그곳은 로운이리라.
아니.
‘크로스만 가문이다.’
알베르는 태양에 도달할 수 있는 자가 누군지 눈치챘다.
‘나야.’
자신이었다.
더불어 마지막 말.
‘그자만이 바위 아래에 묻힌 기억을 꺼낼 수 있으리라.’
로운 왕궁 도서관에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숨겨져 있었다.
오로지 당대 크로스만의 주인만이 갈 수 있는 곳.
지하에는 석실이 하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석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거대한 바위.
그 바위에 새겨진 문장들이 떠올랐다.
알베르는 흰색과 검은색이 뒤엉킨 영상통신구를 움켜쥐며 쌍둥이에게 말했다.
“잠시 케일 헤니투스와 대화를 나눠봐야겠습니다.”
“네? 저하, 아직 이 정보가 정확히 도움이 될지도 알 수가 없는데요? 일단 기록을 찾아서 그곳에 봉인된 신의 정보가 있는지 찾아보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바위 아래.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있으리라.
알베르는 확신과도 같은 직감을 느꼈다.
***
“그러니까, 그 바위 아래에 정보가 있을 것 같다, 이 말씀이시죠?”
“그래.”
암흑 호랑이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고, 케일의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오늘은 11월 3일.
그날까지 3일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