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91
590화.
하얀 창을 바라보던 알베르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신물이군.”
신물. 신의 물건.
“하!”
알베르는 그저 웃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듯이 올라갔다.
크로스만 가문.
이 핏줄을 지닌 자들은 항시 태양신의 눈길을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 덕에 국정에 소홀하거나 놓을지언정 적어도 나쁜 길은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로운을 이끌어왔으나.
‘어느 누가 신의 저주를 그저 편한 마음으로 견뎌왔겠는가.’
늘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품고 삼아야 했다.
특히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크로스만 가문의 가주일 경우에는 말이다.
그리고 다크 엘프의 피를 숨기며 살아야 했던 알베르에게는 더욱.
저도 모르게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무얼 해줬다고.”
순간 흘러나올 것 같은 원망을 알베르는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삼켰다.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그리고.
“태양이 되어라.”
알베르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원래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 근래 케일의 시험과 연관되며 이런저런 것들을 겪어서 그런가.
‘신이 말하는 대로 하기는 싫은데?’
태양신이 말하는 태양이 왠지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알베르는.
“뭐. 그래도 태양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
로운의 태양이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태양이 될지에 대해서는 요즘 생각이 많았다.
‘케일 헤니투스가 원래 살던 지구는 이곳과 너무나도 다르다.’
최한에게 듣기로 과거에는 지금 이 알베르가 사는 땅처럼 신분제가 존재했으며, 현재도 일부 국가에서는 왕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최한이 산 한국에서는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케일이 바쁜 틈에 알베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모두 알베르에게 새로운 이야기였고, 약간 그의 생각을 벗어난 부분도 많았다.
알베르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픽 웃음을 흘렸다.
“…꽤 스승 같긴 해.”
은근히 최한은 타인을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에 재주가 있었다.
원래 꿈이 무술가 겸 선생님이라고 했던가?
“왕세자야!”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알베르에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자야, 이게 뭐냐?”
라온이 스윽 알베르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빼꼼 내밀어 하얀 창과 돌에 새로이 새겨진 글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알베르는 라온의 통통한 앞발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봤다.
태양신의 물건.
백창.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이게 무엇이냐?
이건.
“제 겁니다.”
내 거다.
알베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태양신의 태양으로 살 생각도 없다.
다만 내 뜻대로 살기 위해.
쿵. 쿵. 쿵.
조금 전부터 그의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드는, 저 하얀 창이 알베르에게 흘려보내는 저 거대한 힘을.
그는 가질 것이다.
“라온 님. 조금만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알겠다!”
왕세자는 혹시 모르니 라온을 제 등 뒤로 물렸다.
라온은 그 손짓을 따라 물러서면서도 양 앞발에 마나를 모았다. 언제라도 실드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알베르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어느새 피가 멎은 손과 다른 손. 두 손을 모두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하얀 창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안녕하십니까?
“뭐야?”
알베르는 황급히 두 손을 창에서 떼었다.
세상이 조용했다.
알베르는 제 두 손을 보다가 다시 손을 뻗었다.
창에 손이 닿았다.
-안녕하십니까?
그의 귓가로 상당히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이다!’
이 창에서 분명 알베르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미친.”
지켜보던 라온이 알베르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왕세자야! 왜 그러냐? 아프냐? 왕세자는 인간이랑 달리 그런 말 자주 안 하는데! 무슨 일이냐!”
라온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지만, 알베르는 그 목소리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하얀 창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그게 조금 이상했다.
-사용자 등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상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신물이 있단 말인가?
-본 제품은 제3 지구의 최고 장인이 만드신 공격형 무기로서 특수한 능력을 품고 있습니다.
‘……!’
알베르는 분명히 들었다.
‘제3의 지구라고?’
최한과 케일 헤니투스가 살았던 행성의 이름이 지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거기다가 제3이라고?
그러면 제1과 제2가 있단 말인가?
알베르는 무언가 자신이 엄청난 물건을 손에 넣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기가 강해서가 아니라.
신의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이 무기 자체의 정체가 케일과 알베르에게 큰 힌트가 될지도 몰랐다.
-특히 본 제품의 경우, 최악의 괴물이라 평가받았던 Ex급 괴물의 뼈로 만들어진 창으로서 상당한 내구성을 자랑합니다. 유일하게 그 괴물의 뼈를 부술 수 있는 칼로, 장인의 인생 역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가 또 한 번 멈칫했다.
‘최악의 괴물?’
제 3의 지구. 그리고 최악의 괴물.
그리고 저 Ex급이라는 단어.
왠지 모르게 케일이 김록수로 살 적에 지구에서 지정했던 괴물의 등급과 뭔가 유사해 보였다.
“…이것 봐라?”
알베르는 상황이 묘하게 흘러감을 깨달았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슬금 올라갔다.
그때였다.
-성함이 ‘이것 봐라’ 이십니까? 이것으로 등록을-
딱딱한 음성에 알베르는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취소합니다. 이름을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알베르는 라온이 ‘이 왕세자가 뭐 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희한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를 모른 채 입을 열었다.
차분하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알베르 크로스만이다.”
-부러지지 않는 창의 첫 번째 사용자 ‘알베르 크로스만’을 등록합니다.
파아앗!
딱딱한 음성과 함께 하얀 창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왕세자야! 네 이름 말하니까 창이 빛난다!”
알베르는 그 하얀 창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바로 자야겠는데.’
얼른 케일을 만나야 했다.
아무래도 태양신이 준 물건에 무언가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다.
***
강철 매가 암흑 호랑이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멍 때릴 때랑 아닐 때랑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냐?”
알베르가 빙의하지 않은 암흑 호랑이는 케일의 뜻대로 움직였지만, 그저 조용했다.
“레이디. 그런 말씀은 실례입니다.”
강철 매가 미스터 래빗의 말에 그를 무슨 찌그레기 쳐다보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흥. 실례는 얼어 죽을. 점잖은 척하기는! 귀로 싸대기나 때리는 놈이!”
“…그런 말씀은 좀-”
“몰라!”
강철 매는 가볍게 미스터 래빗을 무시하고는 케일을 바라봤다.
“동생.”
“네, 누님.”
케일은 강철 매의 부름에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요즘 이 근처를 날아다니면서 내가 머물 곳을 찾아봤어.”
케일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그라들었다.
‘정했나 보군.’
케일은 이 두 마리의 우두머리 괴물과 특별한 거래를 하나 하였다.
그 내용은 손쉽게 말해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공존.’
인간은 이 두 괴물에게 머물 터전을 내어주고, 대신에 이 괴물들은 인간에게 협조하며 제 영역 안과 그 근처의 몬스터들이 인간을 습격하지 못 하도록 관리한다고 하였다.
2, 3등급 괴물들에게 두려움과 압박감을 선사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우두머리 괴물이기에,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괴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님. 어디서 머물고 싶으십니까?”
“난 지리산이 마음에 들어.”
“그렇군요. 그러면 지리산 근처 중심 쉘터 사람들과 한번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거치적거리는 괴물들 싹 다 정리해줄 테니까! 내가 지리산에서는 왕이 되는 걸 인정해달라고 해!”
본질적으로 이 우두머리 괴물은 한 구역의 왕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우두머리 괴물에게 한 구역을 넘겨주는 게 상당히 위험하고 불안 요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이 이렇게 된 후, 산이나 깊은 숲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곳이 된다.’
산과 숲, 바닷가는 말 그대로 괴물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그런 곳에 차라리 인간에게 우호적이고 자신이 우두머리로서 괴물들을 깔아뭉개고 싶어 하는 괴물이 자리해 있다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케일은 이 우두머리 괴물들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약점을 하나씩 들어뒀지.’
이 계약의 성사 전, 강철 매와 흰 토끼는 케일에게 자신들의 약점을 알렸다. 그리고 이는 기록에 남은 정보와도 상당히 유사했으며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었다.
‘더불어 등급 외 괴물과의 전투가 끝나면.’
이수혁. 김민아. 최정수 등.
이 우두머리들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이 확보된다.
그러니 서로 경계하고 공존하며 살아간다면 상당히 괜찮은 구도를 이룰 확률이 높았다.
케일은 강철 매에게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누님. 다만 그 중심 쉘터 쪽에서 거부하면 다른 곳을 찾으셔야 합니다.”
“뭐, 인간들이 싫다고 하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역시 화통한 강철 매였다.
케일의 시선이 흰 토끼에게로 향했다.
“크흠. 저는 아직 모르겠군요. 저는 아무래도 분위기 있고 아름다운 곳이 좋아 조금 더 찾아봐야겠군요.”
“흥. 세상천지가 괴물들 투성이인데 아름다운 곳은 얼어 죽을!”
“크흠. 크흠.”
강철 매의 구박과 미스터 래빗의 모른 척하기가 발휘되었다.
그때였다.
똑똑똑.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훈련장의 문을 열었다.
최한이었다.
“록수 형. 오시랍니다.”
“그래.”
케일은 옷매무새를 점검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철 매는 그런 케일을 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흐응. 인간들이 또 지들끼리 신경전하고 난리겠는데? 우리 동생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나는 거 아냐?”
미스터 래빗이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과연 사령탑으로 김록수 군을 인정할지 알 수가 없군요.”
“그래도 뭐, 지들이 어쩌겠어. 우리 동생이 한다는데, 뭐라고 딴지를 걸게?”
케일은 투닥투닥 대화를 나누는 강철 매와 미스터 래빗에게 살짝 인사를 건넸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잘가, 동생.”
“나중에 뵙지요. 연설, 응원하겠습니다.”
케일은 두 괴물의 배웅을 받으며 최한과 함께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끼익, 탁!
문이 닫혔고, 최한이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연설 시간이 멀었는데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고 합니다.”
“그래?”
“네.”
최한은 짧게 답하곤 먼저 앞장서서 케일을 안내했다.
케일은 최한의 뒤를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두 사람은 서면 중심 쉘터 중앙에 있는 성을 빠져나와 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방 오네.”
케일의 눈앞에 중앙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꽤 큰 건물이 보였다.
본래 서면역 중심과 가까운 위치로, 예전에 이곳엔 대형 백화점이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대형 백화점 대신 멋들어진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대회의장 겸 강당이었다.
서면 중심 쉘터에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야 할 때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듣고는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지금.
“…부산은 처음이군.”
“하. 이 난리에 여기까지 올 줄이야.”
건물 앞의 돌계단을 오르며, 강당의 열린 정문을 향해 사람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 중 부산에 터를 둔 이는 거의 없었다.
“록수 형. 예상보다 더 많은 한국 각지에서 모였다고 합니다.”
이 한국 땅 곳곳에서 온 이들이었다.
가까운 창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수, 울산, 강릉, 춘천, 대전, 서울, 수도권 등등.
전국에서 온 ‘능력자 혹은 책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손에는 검은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케일은 강당에 다가가지 않은 채 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저들 하나하나가 최소 3등급, 나아가 2, 1등급으로 성장할 자들이다.’
아니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펼치기도 전에 싸우다가 죽거나.
“…강자.”
말 그대로 전국의 강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자들 중 한 명.
돌계단을 오른 이는 입구 근처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는 이를 향해 다가갔다.
“우 형님!”
김우였다.
“오랜만이다.”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냥, 뭐.”
“그런데 우 형님.”
창원 성산동 중심 쉘터의 리더가 김우에게 말을 건넸다.
“도대체 김록수라는 자가 누굽니까?”
그 목소리는 꽤 컸고 강당으로 모여들던 이들의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김우.
그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입이 열렸다.
“저기 오네.”
그 순간, 강당으로 들어서던 이들. 강당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들. 주변을 경계하던 이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곳으로 향했다.
김우가 말했다.
“저 사람이 김록수다.”
케일은 저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주목받는 것도 오랜만인데?”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즐거움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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