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
5화.
‘이른 아침에 성문에서 한번 쫓겨나지?’
최한은 정들었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묻어주고 난 후, 마을 사람에게 들어 기억하고 있던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 방향은 웨스턴 시.
최한은 고 1 때 넘어왔지만 수십년을 살아왔다. 물론 어둠의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틴 생존의 시간이었는지라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철이 들었지만. 여하튼 그는 생각보다 이성적이었다.
‘영주성에 보고하러 오지.’
외딴 마을. 하지만 해리스 마을은 헤투니스 백작가의 영지였다. 그렇기에 최한은 작은 장례식이라도 치뤄주고 싶어 웨스턴 시부터 찾았다.
그리고 잠시 이성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다 죽여버린 그 자들에 대한 정보도 찾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복수보다 망자의 넋을 기리는 게 먼저였다.
‘참, 어떻게 보면 정이 많은 놈인데.’
하지만 몇십년 만에 생긴 소중한 이들을 한번에 잃었으니, 잠시 마음 상태가 비틀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때 케일이 시비를 가끔씩 걸다가 한번 크게 그의 역린을 건들고 만다. 그는 책 속의 케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깟 버러지 같은 것들 수십 죽어도 그게 우리 영지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마시는 술 한잔이 너네 버러지들 목숨값보다 비싸.”]그리고 그 말에 최한은 웃으며 물었다.
[“재밌는 생각이네. 그 생각이 변할 지 변하지 않을지 아주 궁금해.”] [“실험 해볼까?”]그 실험이 케일을 죽지 않을 정도로 죽을만큼 패는 것이었다. 그리고 케일도 대단한 것이 그렇게 처맞으면서도 끝까지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아, 소름.”
케일은 팔에 우수수 소름이 돋아난 것을 보며,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다. 빌로스가 놓고 간 차를 얼른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창밖을 본 순간,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저 놈이야.’
이른 아침 막 성문을 개방한 순간. 여기 저기 불에 탄 것마냥 새까만 자국이 가득한 옷을 입고 들어서는 한 소년. 최한이었다.
케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최한을 관찰했다.
보통 마차로 일주일이 걸릴 거리를 미친듯이 달려온 그 속도가 경이로웠지만 그 때문에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물론 마을에서 겪은 일로 엉망인 탓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들어선 최한은 경비병들에게 가로막혔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경비병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분증패가 있는지 묻는 것이겠지.’
웨스턴 시의 경비병들은 대체로 온순했다. 하지만 규칙은 철저히 지켰다. 영주인 데르트 백작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쫓겨나네.”
예상대로 최한은 순순히 다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최한은 반항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달려온 덕에 살아난 실낱같은 이성이 그에게 죄 없는 이를 죽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최한은 이대로 밤까지 기다렸다가 밤이 되면 성벽을 넘어서 몰래 들어올거야.’
그러다가 밤에 술 처먹고 노는 케일과 마주치게 된다.
끼이익. 케일 혼자뿐이라 그가 일어서며 의자 밀리는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 카운터의 빌로스에게 일러두었다.
“잠시 나갔다가 다시 올거야. 내 자리 치우지 마.”
“네. 공자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케일은 통통한 볼살과 함께 지어보이는 빌로스의 해맑은 미소를 무시한 채 찻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부수지 않았다니!”
찻집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오늘 그는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얻기 위한 밑밥을 깔아야 했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
물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가까운 것을 꼽자면 마법사의 실드와 비슷한 무형의 방패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아주 달랐다. 마력보다는 초능력과 비슷한 힘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힘을 만들어내었지만 죽어버리고만 인간은 신을 모셨지만 파문된 이였다.
‘아주 이상한 게 잡다하게 섞였지.’
모든 판타지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이 세상에도 고대의 역사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고대에는 마법도 발달하지 않았고 견고한 검술이나 창술도 발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초자연적으로 우연히 얻거나, 선천적인 재능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은 초능력과 신성력, 자연의 힘과 같은 것들이었다. 원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힘들 중 몇몇은 어떠한 장소나 물건 속에 남겨져 오랫동안 대륙 곳곳에서 존재해왔다. 몇가지의 조건만 해결하면 얻을 수 있는 힘이었다.
고대의 힘.
그 힘은 영웅들이 가져갔고 그들의 주력이 되기보다는 가끔씩 써먹은 곁다리 힘 정도로 쓰였다.
그 힘들이 케일이 얻고자 하는 힘이었다.
‘물론 신성력은 제외.’
신이니 천사니 악마니. 하는 것들과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케일이 얻고자하는 힘은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힘이었다.
‘그래야 노력을 안해도 되거든.’
그리고 그가 원하는 힘에도 딱 알맞았다. 검술이나 마법은 결국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것은 싫었다.
다른 책과 달리 이 영웅의 탄생 속 고대 문명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인류가 발전하며 이룩한 자연을 이용한 마법과 규칙을 정립한 정령술에 비해 고대의 원시 문명이 남긴 자연의 힘은 보잘 것 없었다. 초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줍잖은 초능력은 오러 한방에 날라간다.
괜히 영웅들이 깔짝깔짝 곁다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줍잖은 것들을 모아서 적당히 강해지는 것이지.’
흡족한 목표였다.
그는 또한 그 어줍잖은 힘들을 강화시키는 고대의 힘도 알고 있었다.
케일은 그 목표를 하나 이루기 위해 웨스턴 시에 묻힌 고대의 힘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그 힘을 얻는지 안다.
“고,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땅에 머리라도 닿을 듯 허리를 숙이는 빵집 주인에게 케일은 고개만 까딱이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헉. 빵집 주인이 숨 들이키는 소리를 냈지만 케일은 망나니인 자신때문에 벌벌 떠는 빵집 주인이 안쓰러워 애써 모른 척하며 할일부터 했다.
“빵 줘.”
“네?”
케일은 빵집 진열대의 빵들을 모두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땡그랑. 케일이 꺼낸 금화 하나가 카운터 위에 빙글빙글 돌았다.
“포장해.”
굳어버린 빵집 주인에게 케일은 덧붙였다.
“참고로 금화 두 세개 더 주면 일주일 치 빵값 되겠지?”
금화를 보고 있는 빵집 주인의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차고도 넘치는 빵값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향해 케일은 무뚝뚝하게 응했다.
“싫으면 다른 데 가고.”
“아, 아닙니다! 공자님! 최대한 빨리 하겠습니다!”
이전과 다른 의미로 매우 공손하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빵집 주인은 움직였다. 케일은 이내 포장된 빵들이 담긴 포대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서 빵집을 나왔다.
빵이라도 꽤 무게가 나갔다. 그 무게에 한껏 케일의 얼굴이 찡그려졌고 그는 마중 나오는 빵집 주인을 무시하며 거리로 나섰다.
케일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이들이 흠칫하며 시선을 피하고 대부분의 이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구석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었다.
‘확실히 한국과 다르네. 역시 판타지 세상.’
전형적인 판타지 느낌을 풍기는 시장을 거닐며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읍.”
그럴 때마다 눈이 마주친 상인들이 흠칫 놀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쯧쯧. 어지간히도 망나니 짓을 했나 보네. 케일은 케일 자신을 욕하며 시장을 벗어나 웨스턴 시 서쪽으로 향했다.
서쪽에 가면 빈민가가 있다. 아무리 부유한 영지라도 빈민은 있는 법이다. 보통 이럴 경우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 불쌍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 얻을 수 있는 기연이구나?’
그러나 아쉽게도 아니었다.
케일은 빈민가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힐끗거리는 시선들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나태하게 어쩌면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아무리 빈민이라도 영주 얼굴은 몰라도 케일 얼굴은 알았다. 시장이건 주점이건 광장이건 어디서든 깽판을 치는 놈을 없는 사람들은 더 잘 알아야 했다.
“쯧.”
그러나 망나니임에도 케일에서 풍겨져오는 고소한 향 때문일까 따라붙는 시선들이 있었다. 케일은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비싼 가죽 구두코가 구정물에 조금씩 더러워져 갔다. 알 수 없는 구린내가 케일의 코끝에 맴돌았고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그의 걸음이 더욱 더 빨라졌다. 빈민가는 작은 언덕의 한 면을 타고서 옹기종기 낡은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 언덕의 꼭대기로 향했다. 그러자 따라붙는 시선도 걸음도 점점 줄어들어 갔다. 케일의 날카로운 시선 탓도 있었다.
‘여긴 좀 낫네.’
한결 구린내에서 해방이 된 그는 언덕의 꼭대기에서 잠시 뒤돌아 웨스턴 시를 내려다봤다. 웃긴 게 영주성 높이보다는 작은 언덕이었다. 하긴 영주성에서 빈민가를 자신보다 높이 둘 리 없었다.
케일은 괜한 감상에서 빠져나와 꼭대기에 꽤 높은 원형 담 안에 자리한 나무로 다가갔다. 케일의 허리 정도로 둥그랗게 쌓인 담에는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나무 문이 썩어져 케일의 손에 부서졌다.
족히 몇백년은 산 듯한 커다란 나무였다. 빈민가에 위치한 나무는 보통 땔감이 되거나 나무 껍질을 벗겨 형편 없이 만들기 마련인데 그 나무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이유의 답이 케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까 빈민가 아래에서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시선 중 유일하게 끝까지 따라온 두 시선이었다.
“그, 그 나무는 다가가면 안돼요!”
케일은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되는데! 사람 먹는 나문데!”
사람 먹는 나무.
이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은 이들은 모두 하룻밤 사이에 미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나무에 피가 닿으면 그 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 나무 근처에는 흙 뿐. 풀이나 야생화 하나 없었다.
케일이 찾던 그 나무다.
아주 오래 전, 고대. 신을 모시는 자리에 있음에도 그 식탐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쫓겨날만큼 먹는 것에 집착하던 사람. 그 사람은 굶다가 죽었다.
그 위에 자라난 것이 이 나무였고 이 나무에 그 사람의 한과 힘이 깃들어 있다. 케일이 찾던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힘이.
이 얼마나 원시적이고 토속적이며 미스터리한가. 고대의 힘은 대개 이렇게 미스터리했다.
케일은 포대에서 빵을 꺼내 나무 밑둥의 성인 어른 머리 만한 구멍을 유심히 관찰했다.
일단 저 목소리의 주인부터 내쫓고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저 목소리를 내쫓기도 전, 쭈그린 케일이 담 밖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더 커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죽는데! 안 되는데!”
케일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어휴.”
꼭대기 사람 잡는 나무로 향할수록 따라오는 이들이 줄어들어 갔건만.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꼭 어딜 가든 오지랖 넓은 것들이 있다니까.’
케일은 잔뜩 얼굴을 구긴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10살 쯤 되어보이는 여자 아이가 남동생의 손을 잡은 채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케일이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빤히 바라보자, 여자 아이는 우물쭈물거리며 웅얼거렸다.
“사람 잡는 나문데. 주, 죽는데.”
“안 죽어.”
그는 포대에서 빵을 두개 꺼내 여자 아이 근처로 던졌다. 포장이 된 빵이라 땅바닥에 굴러도 상관 없었다.
“가지고 꺼져라.”
남자 아이는 덥석 빵을 주웠지만 여자 아이는 여전히 우물쭈물거렸다. 결국 케일은 그 모습에 자신이 가진 장점을 써야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담 밖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네 망나니 케일 모르냐?”
여자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동생은 물끄러미 케일을 바라보다가 누나 몫의 빵을 주워들더니 여자 아이를 끌어당겼다.
“누나.”
“으응.”
여자 아이는 끌려가면서도 나무와 케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죽으면 안되는데.”
끝까지 저런 말을 하는 여자 아이를 보며 케일은 한번 혀를 찼다가 이제 아무도 근처에 없음을 확인하고는 나무 밑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담 밖의 사람들은 이제 담까지 다가오지 않는 이상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었다.
“시작해볼까.”
그는 일단 실험으로 빵을 하나 포장을 뜯어 나무 밑둥 구멍에 넣었다. 손은 곧 나무 안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서늘한 기운과 함께 빵이 사라지는 것을 케일은 느꼈다.
손까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얼른 손을 뺐다.
나무 밑둥 구멍 속 어둠은 그대로였다.
“역시 억울하게 죽으면 그 한을 풀어줘야지.”
사람 먹는 나무는 사람을 먹는 나무가 아니라 뭐든 먹는 나무다.
못 먹고 죽은 이의 유일하게 남겨둔 힘이 남긴 여파였다. 이런게 고대의 힘이라니. 우습지만 오히려 토속적인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저 검은 색이 없어질 때까지 먹여야 된다고 봤는데.’
나무 밑둥 구멍 속 어둠은 그늘이 만든 어둠이 아니었다. 한이 만든 어둠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와 함께 하는 것도 안된다. 반드시 한 사람이 일정량 이상의 한 음식을 제공할수록 어둠은 점차 사라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빛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빛을 먹으면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힘이 케일의 것이 된다.
“왕창 먹어라.”
케일은 포대의 입구를 아예 나무 구멍에 대고는 빵을 탈탈 털어넣어버렸다. 만약 보통의 상황이라면 그리 크지 않은 나무의 구멍이 빵으로 가득 차야 했지만 포대를 치우자 여전히 어둠만이 공허하게 자리한 구멍이 보였다.
“한 열 포대 정도 더 넣으면 되겠네.”
아까 전보다 구멍의 어둠이 희미해졌다.
열 포대. 삼백만 켈론이 용돈인 케일이라서 가벼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우웅-
기이한 울음 소리가 나무에서 울려퍼졌다. 배고프다고 더 달라는 소리 같았다. 어둠이 꼭 그를 잡아당길 것 같았다.
“…조금 무서운데.”
얼른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놈의 한이 뭐라고.”
식탐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내일 또 올게.”
우우웅거리는 나무에게 사람 대하듯 인사를 건네고 케일은 원형 담 밖으로 나왔다. 그는 담 밖의 빈민가로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빵을 먹는 남매를 볼 수 있었다.
언제 사람 먹는 나무라고 안된다고 하더니 빵을 아주 잘 먹고 있었다. 맛있는지 여자애도 남자애도 아주 얼굴이 좋았다.
“어이구.”
케일은 그 모습에 콧방귀를 끼고는 빤히 바라보는 두 남매의 시선을 무시했다. 저 시선은 자신보다 빵이 있던, 하지만 지금은 빈 포대로 향해 있었다. 아마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어떻게 하겠나? 뭘 할 수 있겠나?
어차피 겁나서 사람 먹는 나무 근처에도 못 갈 애들이다. 하지만 조금의 방비는 해주면 좋을 것이다. 괜히 애들이 다가갔다가 구멍에 머리를 집어 넣었다가 먹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영웅의 탄생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케일은 그래서 두 남매에게 말했다.
“내일도 빵 먹고 싶으면 입 닫고 있어.”
두 남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입을 닫고 있었다. 아까 우물쭈물하던 게 누구인 것 마냥 여자아이는 남동생의 입을 꾹 틀어막고는 케일을 못 본 척 했다. 꽤 영리하단 생각에 케일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보이곤 가볍게 빈민가를 빠져나왔다.
꼭대기에 케일이 갔다왔음을 아는 빈민가 사람들은 또 무슨 미친짓을 하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케일은 그 시선이 좋았다.
빈민가 밖의 사람들도 케일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케일은 이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녀오셨습니까?”
다시 찾은 찻집에 케일이 들어서자 빌로스가 꽤 반갑게 맞이했다.
“응. 차 한 잔 새로. 이번엔 시원한 거로.”
케일은 다시 3층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꽤 붐빌 시간이었지만 3층에는 사람 하나 없었다. 다들 망나니를 피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케일은 여유를 만끽했다.
“여기 차 내어왔습니다. 디저트도 몇개 내왔습니다.”
“아, 그래. 고마워.”
케일은 창밖의 성문만 주시한 채 시원한 차를 들이켰다. 빌로스는 묘한 눈빛으로 고맙다고 말한 케일의 얼굴을 관찰하다가 조용히 3층을 떠났다.
그 뒤 케일은 몇번이나 차와 디저트를 주문하며 창 밖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며 이내 밤이 찾아와 어두워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성 밖에서 들어올 무서운 놈을 건들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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