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17
616화.
케일은 눈을 감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싶었다.
‘쉘터 성문을 지나는 것 같은데.’
이 이동식 침대가 어디쯤인지, 어디로 가는지.
모두 눈을 뜨고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모습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람들의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왠지 불안하다.’
케일은 묘한 익숙함과 함께 불안함이 밀려왔다.
“흐윽.”
“큽.”
그러다가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순간.
‘왜 저러지?’
케일은 불안감이 극에 달해 눈을 뜨고야 말았다.
그리고 목격했다.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다양한 감정이 담긴 눈동자는 피로 범벅인, 창백한 안색의 케일을 살피고 있었다.
대다수의 눈동자가 흐려지거나 떨렸다.
‘…아.’
왠지 케일은 로운 왕국에서, 서대륙에서, 저쪽 세상에서 무수히 겪었던 일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지금 침대에 누워 눈만 뜬 자신의 모습이 예전에 열손가락 산 엘프 마을에서 눈을 떴을 때 세계수 화관을 쓰고 있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했다.
-케일. 모두 너를 보고 감동한 표정을 짓는데?
짱돌이 평온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괜찮아요?”
그에 김민아가 놀라서 말을 거는 모습에 케일은 얼른 구긴 표정을 펴며 최대한 괜찮다는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다.
본인 나름대로는 부드러운 미소였으나, 라온이 보았다면 찌그러진 사과파이 같다고 차라리 사기 칠 때 짓는 미소를 지으라고 했을 것이다.
“어. 괜찮아. 나 멀쩡해졌어.”
“…하… 정말… 그쪽은…….”
김민아가 깊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돌려버렸다.
‘쟤 왜 저래?’
케일이 멀뚱멀뚱 눈을 뜬 채 그런 김민아를 바라볼 때, 배푸름이 김민아 어깨 너머로 말했다.
“힘들면 눈 감고 있어요! 괜히 힘든데 눈 뜨고 있지 말고요.”
“…괜찮다니까? 그리고 눈을 뜨고 있어야 뭐가 어떻게 됐는지 파악이 가능할 거 아냐?”
“아오!”
배푸름이 드물게 성질을 내며, 그도 고개를 돌려버렸다.
‘얘들이 왜 이래?’
이 세계의 김록수도 이상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게. 왜 저러냐?
그에 짱돌이 무심히 답했다.
-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영웅이 된 것 같은데?
-…….
“…….”
케일은 그냥 눈을 감았다.
이 이동식 침대야.
‘뭐 어디든 가겠지.’
그냥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다만.
“다들 다친 데는 없죠?”
눈을 감으며 그 한마디를 건넸다.
잠시의 침묵 뒤, 박진태와 이수혁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빌어먹을.”
“록수야. 우린 다친 데가 없어.”
케일은 박진태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이수혁의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이렇게만 한다면 다들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낼 것이고.
등급 외 괴물이든 봉인된 신이든.
누구든 간에 치워버릴 수 있을 터.
케일은 통증이 상당수 사라져 개운해진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들을 정리해나갔다.
그런 그를 동료들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중 최정수.
머리맡을 미는 최한과 달리 발 쪽 침대 기둥을 밀고 있던 그는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등급 외 괴물이 눈과 독니를 빼앗기고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도망쳤다.
앞으로의 일이야 알 수 없지만,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작은 환호나 기쁨이라도 쉘터 안에 자리해야 했다.
하지만 기뻐하던 이들도 곧 김록수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 그 미소를 삼켰다.
최정수는 그 마음을 상당 부분 이해했다.
‘이런 참혹한 모습에 웃을 수가 없지.’
김록수 본인 말대로 이전보다는 덜 아픈 것이 맞는지, 몸 전체의 자잘한 떨림이 줄어들어 있었고 더 이상 피를 토하지 않았다.
최정수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이대로 죽지 않겠구나 싶어 안심했지만.
“…세상에.”
사람들의 경악에 가득 찬 반응을 보며, 최정수는 자신이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저 모습조차도 상당히 위중한 상태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힐끗.
그의 시선이 잠시 최한에게로 향했다.
언제 황색 괴물의 눈과 독니를 빼앗은 사람이냐는 듯, 그는 지금 극도로 차분해져 있었다.
하지만 담담한 표정과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거대한 불길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최정수는 그것을 분노로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케일을 살펴보고 난 뒤 최한의 시선이 기민하게 사방을 살피고 있음을.
최한은 누구보다도 지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명령을 완수해야 했으니까.
다만 최정수는 침대 기둥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것도 못 했어.’
그저 김록수의 옆에 있기만 했을 뿐. 다른 이들처럼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그 사실이 최정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정수야.”
그때, 이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록수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최정수의 눈동자가 이수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이수혁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건넨 말임을 그 눈동자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따로 이수혁과 별달리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최정수는 이상하게도 이수혁의 뜬금없는 이 위로가 낯설지 않고 그저 고마웠다.
이수혁은 최정수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마주 웃어주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쉘터 안의 소란스러운 침묵 속 감정들이 그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얼마 전까지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문.
이렇게 계속 싸운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지친 삶에 대한 괴로움이 담긴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사령관의 전투를 보며 의문이 사라졌다.
아니, 이 쉘터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싸움을 보며 의문을 잊고 있었다.
‘나도 절박했으니까.’
이수혁은 의문과 고민을 잊고, 그저 싸우던.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괴물에게 덤벼들던 자신의 모습을 되새겼다.
그는 비로소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계속한다.’
이 지긋지긋한 괴물들,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계속 싸우고 계속 달리고 계속 날뛸 것이라고.
‘그러다 보면 성장하겠지.’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은 나아갈 것이고.
다른 이들도 곁에 함께할 것이다.
오늘 자신과, 그리고 이 쉘터 전체를 가득 채우던 힘들처럼 말이다.
이수혁은 성벽 위에서 내려와 이쪽으로 다가오는 허숙자를 보았다.
“회의실로 갑시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사령관님은 병실로-”
“괜찮습니다.”
케일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저도 회의실로 가야죠.”
놀란 김민아와 배푸름의 입이 열렸지만, 케일은 손을 들어 동료들의 말을 막았다.
대신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괴물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령관이 쉴 수야 없지요.”
허숙자는 참으로 지독한 책임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회의실로 가시죠.”
하지만 그녀 역시도 한 곳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기에 저 책임감 아래 있는 수많은 감정을 짐작했다.
“각 조장들을 소집해 주십시오.”
“네.”
케일의 말에 허숙자는 곧바로 명을 수행하였다.
케일은 대회의실로 이동하는 침대 위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봉인된 신의 뒤통수.
죽음의 신과의 대화.
다시없을 격렬한 통증.
고대의 힘과의 연결.
더불어 이 몸의 진짜 김록수의 등장.
한순간 휘몰아친 일에 케일은 복잡했었다.
‘하지만 이제 하나하나 풀리고 있지.’
봉인된 신에게 뒤통수를 칠 방법의 발견.
상당히 줄어든 통증.
그리고 시력을 잃고, 독이 없어진 황색 머리.
‘이젠 끝내는 것만 남았다.’
째깍. 째깍.
시계의 시침이 새벽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암흑 호랑이.
저쪽의 하루가 끝나면 알베르 크로스만이 이곳에 오기로 하였다.
케일은 아침을 기다렸다.
***
탁.
알베르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우아하게 찻잔을 차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입안에 감도는 차의 향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죽은 마나 변형이라.”
그는 조금 전까지 론과 나눴던 대화를 되새겼다.
‘게르세이 제사장을 쫓아가니, 그는 마신전으로 진입하더군요.’
2구역 신전 지대에 존재하는 마신전.
‘그곳에서 일전에 말씀하셨던 하얀 별 조각상도 발견했습니다.’
베로우라는 존재를 모시는 신전.
그리고 그 베로우는 하얀 별로 추정되었다.
‘그 조각상을 중심으로 8개의 거대한 원형 유리관이 존재했고, 그 안으로 끊임없이 신관들이 어떤 액체를 옮겨 담았습니다.’
론은 그 모습을 본 뒤, 주변을 탐색하였다.
‘죽은 마나에 신관들이 들러붙어 무언가를 하니, 그 변형 액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탐색 후.
‘그 뒤, 다시 빠져나오는 게르세이 제사장의 뒤로 가 그를 기절시키고 바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가 혼자 빠져나왔던 건가?’
‘아뇨. 주렁주렁 신관들을 대동했더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놈이 뭔가를 소환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용케도 대놓고 납치를 했군.’
씨익 웃는 론의 미소는 인자했다.
‘꽤 힘들었지요. 차라리 죽이는 게 쉬었을 터인데.’
왠지 그 목소리가 알베르는 살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론의 판단은 아주 좋았다.
알베르는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부어.”
비크로스가 말없이 손에 들린 물통을 밑으로 쏟았다.
촤아아–
“크억!”
기절해 있던 게르세이 제사장의 몸이 들썩거리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검은 성의 한 방.
다른 동료들이 있는 곳과 떨어진 이곳.
바깥 빛 하나 들어오지 않게 창마저 가려, 양초 불만이 빛을 발하는 공간.
알베르. 론, 비크로스.
세 사람만이 제사장과 함께 이곳에 있었다.
알베르의 입이 열리며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든 것 다 아니, 굳이 계속 눈을 감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서걱. 서걱.
동시에 비크로스의 칼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르세이 제사장의 몸이 움찔하였다.
그때, 알베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자네가 눈을 뜨지 않는다면, 상상하고 있는 것은 모두 현실이 될 거야. 어때?”
상냥한 미소가 알베르의 입가에 걸렸다.
“자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까?”
그 순간, 게르세이 제사장의 눈이 떠졌다.
“읍, 읍!”
그리고 그는 입을 비롯하여 온통 결박된 몸을 움찔거리며 알베르를 노려보았다.
“흐음.”
알베르는 그런 게르세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문을 할 생각은 없지만.’
아쉽게도 자신도, 비크로스도 그냥 시늉만 하는 중이었다.
이곳은 라온의 성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용일지라도 어린애가 주인인 곳에서 흉한 짓을 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 시늉에 저쪽은 속은 것 같군.’
알베르는 저를 노려보는 게르세이의 눈동자에 스민 두려움을 읽었다.
아무래도 비크로스의 저 칼 가는 시늉이 잘 먹힌 듯했다.
하지만 알베르는 몰랐다.
게르세이는 비크로스보다 저를 탐색하듯이 내려다보는 알베르의 무심한 눈빛에 더 강한 경계심을 느꼈다는 것을.
게르세이 제사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저에게 다가오는 알베르를 보며 멈칫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알베르는 거리낌 없이 다가와 손을 뻗었다.
“게르세이. 자네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지?”
알베르의 손이 천천히 게르세이의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게르세이는 보았다.
“읍, 읍!”
엔더블 왕국의 백작 중 한 명.
나르 공자와 함께 이 어둠의 숲 검은 성에 쳐들어왔던 자.
다크엘프 모크 백작이 어디 관 같은 곳에 창백한 안색으로 눕혀져 있는 것을.
물론 그냥 기절시켜서 관에 눕혔을 뿐, 저 다크엘프는 3개월 동안 부상까지 치료되어 멀쩡했다.
그것을 게르세이는 몰랐다.
그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크 백작만이 보일 뿐.
그때, 그의 귓가로 알베르의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다면, 네가 아는 것을 최대한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 순간, 게르세이는 모크 백작이 누워 있는 관 근처에 서 있는 론을 보았다.
그는 론의 눈동자에 깃든 진심을 보았다.
죽인다.
그 진심을.
버둥거리던 게르세이가 조용해지자, 알베르는 게르세이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론을 바라봤다.
론은 언제 살벌하게 게르세이를 쳐다봤냐는 듯 인자한 얼굴로 알베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자의 입을 풀어주게.”
“네, 저하.”
론이 게르세이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며 알베르의 뒤로 물러섰다.
곧 알베르는 입을 열었다.
“봉인된 신.”
그 단어에 게르세이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베르는 말을 이었다.
“하얀 별은, 아니지. 케일 베로우. 그놈은 봉인된 신을 왜 따르지?”
알베르는 케일이 제 몸에 적어 내려가던 글자 중 일부를 떠올렸다.
마신전에 있는 것은 베로우란 자신의 성을 붙인, 하얀 별 본인의 조각상이었다.
케일이 전한 그 문장이 알베르의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
뒤이어 전해진 문장 때문이었다.
소중한 것은 다 잃는 저주를 받은 하얀 별.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세력을 모으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전혀.
알베르는 전혀 진심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별 반응이 없는 게르세이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하얀 별은 봉인된 신에게서 무엇을 탐하지?”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알베르의 그 질문에 게르세이의 눈동자가 파문이 일 듯 거세게 흔들렸다.
케일은 알베르에게 이어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