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32
631화.
-감히 내 목소리가 들리거늘, 맨발로 뛰쳐나오지도 않아?
건들건들한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딱 기다려라. 이 위대한 몸의 잠을 깨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여. 내 직접 두 발로 찾아갈 테니.
이야, 기다리래. 나를 찾으러 온대.
케일은 절로 웃음이 더 커져만 갔다.
-으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지켜보도록 하죠.
도도리 엄마의 우아한 목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왜, 왜 저렇게 웃지?”
툰카는 호탕하게 웃는 케일을 아주 생소한 물체를 본다는 듯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것과는 영 다른 행동이었다.
‘케일 헤니투스가 저리 밝게 웃다니! 그것도 안 좋은 상황에서!’
케일은 막 신의 시험을 이겨냈다고 들었다.
그 뒤에는 휴식이 필요하거늘, 또다시 대륙을 뒤덮으려는 위험에 케일 헤니투스는 쉴 수 없었다.
툰카는 문득 참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진정한 영웅입니다, 대장군.’
아.
툰카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역시 내 벗은 영웅……!’
툰카는 책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툰카의 수하들은 이 지식이 너무나도 없는 주군이 책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온갖 수를 다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참모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툰카에게 무심히 건넨 책.
전혀 툰카의 취향이 아닐 것 같은 제목의 책. 하지만 대장군은 밤이 새도록 이 책을 읽었다.
참모장이 건넨 그 책은 케일 헤니투스의 대 활약 중 위퍼 왕국과 관련된 것으로, 위퍼 왕국에 영웅 소설처럼 퍼지던 것이었다.
툰카는 거대한 위험 앞에서 호탕하게 웃는 케일을 향해 다시 다가갔다.
“역시! 내 친우는 엄청나구나! 하하하하하!”
그 역시도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뒤편에 서 있던 정글의 지배자 리타나는 웃는 케일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갈수록 창백해지고 있어.’
리타나는 처음 안개 숲 동굴에서 케일 공자를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썩 건강한 안색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우리가 왔다고 반갑게 웃다니.
리타나는 속이 쓰리다 못해 쓴물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어찌하여, 케일 공자는 세상의 평화라는 큰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려는 것일까.’
정글을 다스리는 그녀.
자신은 그것만으로도 버겁거늘, 저 창백한 안색의 영웅은 이 세계를 구하려 한다.
리타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미소마저 지우면, 일그러진 얼굴로 케일 공자를 마주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 알베르가 툰카와 리타나 앞으로 다가갔다.
“일찍 오셨군요.”
“저하! 저하아!”
동시에 시종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알베르의 귓가에 박혔다.
위이이이잉—위이잉-
그리고 사방을 뒤흔들 것만 같은 경고음이 이곳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왔다.
‘…침입자?’
이 경고음은 허락되지 않은 이가 억지로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려고 할 때 발생하는 소리.
“전하!”
“시종장, 무슨 일인가!”
알베르는 시종장에게 다급한 물음을 던졌다.
리타나와 툰카의 얼굴도 굳었다. 현 상황을 대강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엔 곧 서대륙 곳곳의 대표들이 방문한다.
벌써 정글과 위퍼 왕국의 대표들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침입이 발생했다?
‘절대 안 될 일이지!’
알베르는 일부러 오늘 모임을 몇몇을 제외한 이들에게 비밀로 부쳤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안전이 중요했으니까.
시종장은 툰카와 리타나를 힐끗 보고는 귓속말을 전하려고 하였다.
“그냥 하게.”
하지만 알베르의 손짓에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저하! 지금 웬 남자가 북쪽 하늘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려고 합니다!”
“뭐?”
하얀 별인가?
순간 각 수장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그때, 알베르의 팔을 누군가 움켜쥐었다.
“저하.”
케일이었다.
알베르는 언제 웃었냐는 듯 굳은 얼굴의 케일을 보고 멈칫했다.
‘…응?’
저 굳은 얼굴.
당황함도 분노도 아니었다.
‘…귀찮음?’
딱 귀찮은 것이 들러붙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거기다가 입꼬리를 씰룩여?’
어떻게든 웃지 않으려고 꾹 다문 입술 끝이 조금씩 떨리며 어떻게든 씰룩이고 있었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귀찮지만 좋은 일이 생겨서 웃고 싶은 표정이었다.
특히 저 웃음.
저건 꼭 황금패를 얻었을 때나 돈 많이 벌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이상한데?’
알베르가 이상함을 느낀 순간, 케일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세 마리입니다.”
응?
세 마리?
알베르는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다.
“우리가 찾던 이들 있잖습니까?”
우리가 찾던 이들?
알베르는 자신이 찾던 존재가 무엇이 있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리’라는 단위가 떠오르자, 절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 헤니투스.”
알베르는 케일을 알고 난 후로 놀랄 일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세 마리라고?
우리가 찾던 세 마리?
그건 용이잖아?
용이 세 마리나 알아서 제 발로 여길 찾아왔다고?
알베르의 눈동자가 케일에게 수많은 말 대신 눈빛으로 물었다.
“네. 지금 생각하시는 그것 맞습니다.”
케일은 화사한 미소와 함께 알베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씰룩.
알베르의 입꼬리가 조금 전의 케일처럼 씰룩였다. 웃고 싶지만 꾹 참는 표정.
“저하. 제가 알아서 처리하지요. 저하께서는 손님들을 맞이하셔야지요.”
케일의 말에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장. 내 의동생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와 함께 움직이도록.”
“아, 네!”
시종장은 볼 때마다 더 위대한 영웅이 되어가는 케일 헤니투스가 나서자, 다급한 경고음과 다르게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모시겠습니다, 공자님!”
“네. 가시죠, 시종장님.”
케일은 시종장을 따라나서며, 저를 찾아온 두 수장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조금 있다가 뵙죠. 회의는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리타나에게 건넨 인사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케일 공자, 부디 무사히. 꼭 무사히. 알죠? 몸 먼저 챙기세요.”
“당연히 전 제 몸을 악착같이 챙깁니다. 늘 무사하지 않습니까?”
케일은 리타나의 당부가 이상했지만, 너무나도 아련한 눈빛에 일단 대충 솔직하게 답했다.
그리고 급했기에 툰카에게로 바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기에 리타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랜만이다.”
“…친우여. 나도 가겠다!”
“뭘 가. 넌 중요한 일로 왔잖아? 그것부터 해.”
“네가 하는 일도 중요하다!”
“됐어. 내가 나서야 돼.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해.”
암, 그렇고말고.
용 세 마리를 한 번에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일인데.
내가 나서야지, 누가 나서겠나?
물론 혼자는 아니다.
라온을 포함하여 그를 도울 이들이 참 많았다.
케일은 불도저와 같은 툰카마저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봤으나, 이를 모른 채 입을 열었다.
“나중에 보자. 나 급해.”
“…그래. 알았다! 네 은빛이 이 세상을 점령하길 바라마!”
뭔 소리야?
케일은 툰카의 비장해 보이는 헛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리고는 바로 시종장과 함께 방을 벗어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리타나와 툰카가 어딘가 서글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오로지 알베르만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을 뿐이었다.
“자.”
그리고 이 상황을 이용했다.
“케일 공자의 말대로,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해야겠지요?”
알베르의 말에 리타나와 툰카는 그를 응시했다.
직위만 왕세자일 뿐, 그는 왕을 넘어서 서대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자세한 이야기 전에 여쭙겠습니다.”
알베르는 손을 내밀었다.
“함께하시겠습니까?”
리타나는 바로 그 손을 잡았다.
“당연히.”
툰카도 손을 포개며 대장군다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든 역량을 다 쏟겠습니다.”
두 대표는 실시간으로 위기가 다가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당연히 모든 역량을 다해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이 서대륙을 위해, 그리고 과거 우리의 나라를 위해 나서준 소중한 친우를 위한 일이었으니까.
알베르는 화사한 미소로 손짓했다.
“회의실로 가시죠.”
그리고 멀어지는 케일을 힐끗 쳐다보며 생각했다.
‘회의 빠졌다고 좋아할 것 같은데.’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좋은데?’
케일의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회의 안 해도 되겠는데?
보나 마나 회의에서 저를 보면 또 뭔 영웅이니 뭐니 말해댈 것이 뻔했다.
오늘 아침 헤니투스 공작가 앞을 뒤덮은 인파를 보고 꽤 많은 깨달음을 얻은 케일이었다.
그는 제 뒤에 선 이에게 말했다.
“최한. 기억하지?”
“알겠습니다.”
“서둘러.”
최한은 곧바로 케일과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인간아! 나도 갔다 온다!
라온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시종장은 멀어지는 최한을 힐끗거렸다. 침입자가 들어왔는데, 가장 강한 검사가 다른 곳으로 가니 절로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최한에게는 그만의 일이 있어 보낸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아, 공자님-”
“저는 어디 안 갑니다.”
시종장은 무심한 목소리와 달리 불안해하는 저를 배려한 케일의 말에 절로 울컥했다.
그는 왕궁에서 일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가장 빠르게 케일의 행보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시종장은 빠르게 내딛는 케일을 보며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불안감을 걸음걸음마다 내버렸다.
‘그래! 케일 공자님이 계신데, 어느 누가 이 로운을 함부로 넘볼 수 있겠나! 침입자 따위,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시종장은 몰랐다.
저 빠른 걸음은 단지 회의를 안 하고 용이 굴러들어와 신이 나 가벼워진 마음 탓이라는 것을.
“시종장님!”
문제의 침입 장소에 도착한 시종장.
그는 아주 기세가 마치 호랑이와 같았다.
“시종장! 어? 뒤에!”
“…사령관님!”
“공자님!”
빠른 속도로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기사와 병사들은 한 사람을 보고 굳었던 어깨가 조금 풀어졌다.
‘공자님이 오셨어! 왕실에 계셨구나!’
‘이제 안심이다!’
케일이 아주 태연한 얼굴로 걸어왔다.
로운의 기사들은 안다.
저 태연한 얼굴로 얼마나 많이 로운과 서대륙을 구해냈는지. 특히 로운 왕국 전투에서 몇 번 케일과 함께했던 적이 있는 이들은 그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케일의 얼굴은 굳어졌다.
“사령관님!”
“…이제 사령관 아닙니다.”
“한 번 사령관은 영원한 사령관이시지요. 침입자는 저자입니다!”
현재 현장의 책임자인 왕실 제1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케일도 진작에 그곳을 보고 있었다.
‘…미친놈인가?’
케일은 용이 어떻게 저를 찾아오나 궁금했었다.
왜냐면 ‘딱 기다려라. 이 위대한 몸의 잠을 깨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여. 내 직접 두 발로 찾아갈 테니.’라고 용이 말했으니까.
“…정말로 두 발로 걸어오는군.”
공중에서부터 케일이 있는 곳을 향해 마치 카펫이 깔려 있는 것처럼. 웬 남자가 당당하게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마법 보호막을 가뿐히 깨부쉈습니다!”
그래. 깨부수고 당당히 걸어오고 있네.
케일은 부기사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실력자로 파악이 됩니다. 최소한 최상급 마법사의 실력자로 파악되어 이곳으로 마법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 실력자이긴 합니다만, 그렇습니다만-!”
차마 부기사단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뒷말을 케일이 이었다.
“미친놈 같군요.”
“…아…그것이-”
부기사단장은 부정을 못 했다.
케일은 생각했다.
‘왜 요즘 만나는 이들마다 다 저렇지?’
그때, 저를 노려보며 다가오는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제 발로 나왔구나! 감히 나를 깨워?
그러게. 정말 자는 걸 깨웠나 봐.
용은 걸어왔다.
맨발로.
그리고 잠옷 차림으로.
옆구리에는 수면용 베개인지, 길쭉하고 푹신해 보이는 베개를 끼고 있었다.
케일은 땅에 발을 내디디는 잠옷 차림의 용을 바라봤다.
반삭발이다.
그것도 머리 양옆에 무슨 스크래치를 넣었는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눈썹에도 스크래치를 넣었다.
그에 반해 잠옷은 귀여운 디자인이었다.
‘…이 틀린 것일까.’
케일은 용에 관해서는 영웅의 탄생 서술이 틀렸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꾸 들었다.
“감히 내 잠을 깨운 놈의 얼굴을 드디어 보는구나!”
건들건들한 목소리의 반삭발 드래곤은 맨발로 땅에 내려선 채 성큼성큼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사, 사령관님을 보호해라!”
“막아!”
케일은 손을 들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아는 분입니다.”
그의 말에 소란스러워지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는 분이십니까?”
시종장의 말에 케일은 반삭발 드래곤을 가만히 응시했다.
저를 노려보는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짜증이 가득해 보였다.
케일은 실로 오랜만에 저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존재가 등장하자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왜냐면 절로 굴러들어온 금덩어리였으니까.
“글쎄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사이지요.”
“뭣이라?”
반삭발 드래곤은 케일의 대답에 기가 차다는 듯 그의 코앞에 멈춰 서서 케일을 노려보았다.
세로로 긴 동공이 케일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주, 특이한 인간이구나.”
눈앞의 인간은 몸 안에 아주 많은 것들을 품고 있어 단박에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단잠을 깨운 죄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잠옷 차림으로 외치는 그를 부기사단장은 당장이라도 욕을 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부기사단장은 저런 미친놈이 용일 것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넌 좀 재밌는 존재 같구나.”
용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저 밖에서 다른 두 놈들이 너를 관찰했는지 알겠어.”
반삭발 드래곤은 가족으로 보이던 두 용을 떠올렸다. 그중 나이 많은 용은 가만히 눈앞의 이 인간을 관찰했다.
씨익. 반삭발 드래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너를 특별히 팔다리만 부수는 것으로 용서해주마!”
재밌는 놈이니, 살려두고 이런저런 공격을 하며 저 몸 안에 품은 힘을 사용하게 해보는 것도 재밌을 터.
“무슨 저런 망언을……!”
“오, 신이시여!”
그의 말에 곳곳의 병사들과 지켜보던 왕실 사람들이 경악을 내뱉었다. 기사들은 케일이 아무 지시도 없어, 그저 입을 다문 채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 손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
“흐음.”
하지만 케일은 담담했다.
그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잠옷 차림의 드래곤을 바라봤다.
“제가 왜 찾았는지 듣지 못했습니까?”
그 말에 되려 드래곤은 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걸 왜 들어야 하지? 정령 놈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나를 찾던지, 그 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고 나를 찾던 게 네놈이란 소리를 들었지. 그것만 있으면 됐지, 네놈 따위가 나를 찾는 이유를 왜 알아야 하지?”
흥!
그는 코웃음을 치며 주변에 마나를 일으켰다.
우우우웅–
회색빛 마나가 모여들었다.
채앵, 챙!
동시에 케일 주변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심후한 마나에 저도 모르게 케일의 지시를 잊고 반사적으로 뽑아 든 검이었다. 그만큼, 저 마나는 파괴적인 힘을 담고 있었다.
“저한테 벌을 주신다고요?”
케일의 고개가 살짝 더 기울어졌다.
“그래. 인간이여.”
“음. 후회하실 텐데요?”
“하! 후회? 지금 네놈 따위가 나에게 후회를 언급한 것이냐?”
정말로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의 용을 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오반테 시장이 드래곤을 보면 그렇게 무서워하고 놀라던 이유가 있었군.’
하필이면 처음 본 용이 눈앞의 이런 용이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케일은 그 심정을 이해하며 마나를 일으키는 용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네. 후회하실 겁니다.”
“…감히 이 몸에게 후회-”
반삭발 드래곤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하며 고개를 황급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눈앞의 인간.
케일 헤니투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 인간이 왔던 그 방향에서 다가온다.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다가온다.
용이다.
분명 용.
그때, 반삭발 용의 머릿속에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회하기에도 이미 늦은 듯싶구나.
보호막 밖에서 보았던 나이가 많은 용.
그 용은 강했지만, 그 품고 있는 힘이 유한 편이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저 용은 다르다.
저처럼 상당히 포악한 힘을 지녔다.
백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특이한 기운을 지닌 검사. 인간치고는 상당히 강한 힘을 지닌 검은 머리칼의 청년 뒤를 따라오는 백금발의 기사.
어젯밤.
도도리를 만난 후, 케일은 라온에게 에르하벤을 불러 달라 부탁했다.
왠지 도도리의 엄마와 에르하벤이 아는 사이일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달라진 상황에 라온은 다급한 연락을 보냈고, 최한이 조금 더 이르게 에르하벤을 맞이하러 갔다.
기사 차림의 에르하벤은 백금발의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반삭발의 용을 바라봤다.
-네놈이야말로 처맞고 싶나 보구나.
차가운 경고에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반삭발 용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였다.
‘음!’
또 다른 방향에서 용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는 분명 아까 케일 헤니투스 옆에서 느꼈던 그 힘이다.
-우리 인간 건드리면 다 때려 부순다!
아직 어린 목소리이건만, 서서히 일으키는 그 기세가 사뭇 매서웠다.
그리고 하나 더.
“음!”
용은 고개를 들었다.
투둑.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선 존재가 화살촉을 그에게 겨눴다.
“우리 방패 공자님을 건드리면 내가 가만 안 있어!”
아까 다른 용과 함께 있던 분홍색 뽀글머리가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저것도 용이다.
조금씩 분노가 가라앉아가는 반삭발 드래곤은 문득 이곳에 용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살면서 이렇게 많은 용을 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보기도 힘든 세 용이 한 인간의 편을 든다.
그건 살면서는 물론,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다시금 용은 백금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고 싶나? 먼지가 되도록 처맞고 싶나? 응? 먼지로 만들어 줘? 오랜만에, 신명 나게 팰 수 있겠구나. 날도 흐린 것이, 먼지 날 정도로 처맞으려면 아주 많이 맞아야겠어.
그때, 반삭발 드래곤의 앞에 선 인간이 다가와 속삭였다.
“로드께서 찾으십니다.”
…로드?
…드래곤 로드?
로드가 있었나?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반삭발 용은 잠이 완전히 깸과 동시에 분노가 완전히 가라앉자 왠지 모르게 등에 오한이 들었다.
그는 눈앞의 인간을 바라봤다.
“후회되지?”
케일은 그리 물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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