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35
634화.
“…로드?”
쉐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도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케일은 이에 신경 써줄 틈이 없었다.
“최한.”
케일이 그를 부르자, 최한은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남아서 왕세자 저하께 상황을 전하겠습니다.”
그 말은 지금 펼쳐지고 있을 대회의도 케일 대리로 나서겠다는 말이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한 놈이니까, 둥글둥글하게 잘 처리하겠지.’
더불어 알베르 왕세자도 있으니,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두 명이 돌발 상황이 나와도 잘 해결할 터.
케일은 등 뒤가 든든했다.
“준비는 다 됐다.”
에르하벤이 건넨 말에 케일은 다른 용들을 바라봤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도도리를 데리고 다가오는 밀라,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라쉴, 어쨌든 같이 간다는 말에 흔쾌히 나서는 도도리.
-…인간.
그리고 라온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가시죠.”
이내 환한 백금빛과 함께 최한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시종의 연락에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선 시종장이 막 사라지는 케일을 보며 영문을 몰라 했다.
그는 자연스레 이 상황에 대한 답을 내려줄 이에게로 다가갔다.
“최한 님. 무슨 일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시종장의 얼굴엔 두려움이 스며있었다.
서대륙 각 왕국의 수뇌부들이 모인 회의가 은밀히 진행 중이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 중에 한 명이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는 최한의 입이 열렸다.
“오늘, 한 존재가 육신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순간 시종장과 함께 최한을 따르던 이들의 눈동자가 커지거나 멈칫 어깨를 떨었다.
육신을 떠난다.
누군가의 죽음을 뜻했다.
‘누구지?’
묻고 싶었지만, 그렇기에 물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더 무거운 침묵이 그들의 걸음에 머물렀다. 시종장은 그 침묵을 털어내지 못하면서도 옆에 선 최한을 보며 감탄했다.
‘흔들리지 않는구나.’
최한은 정확한 나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연소 소드 마스터로 알려질 만큼 어린 외양을 지녔다. 그리고 그 외양대로의 나이일 것이라 추정했다.
그런 이가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담담했다.
‘…영웅 곁엔 영웅이 머무는 법.’
새삼 시종장은 영웅과 동료인 영웅들.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며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서 갑갑함을 느꼈다.
이 갑갑함은 아마도 영웅들이 항상 느끼는 압박감일 터.
그렇기에 시종장은 또 다른 의미의 무거운 압박감이 드리워진 곳으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최한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회의장으로 들어선 최한은 각국 대표들을 말로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갑자기 들어선 방문자로 인해 회의는 중단됐고, 알베르는 벌떡 일어서서 의아한 얼굴로 최한을 바라봤다.
“최한, 아니, 스승님? 여긴 무슨 일로?”
그 눈동자가 물었다.
‘용 끌어들인다며?’
최한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하. 케일 님께서는 급한 일로 떠나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제가 회의에 참석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케일이 급한 일로 떠났다.
그 말에 툰카, 리타나, 발렌티노, 클로페 세카 등 각국의 대표들이 최한을 뚫어질 듯이 바라봤다.
안 그래도 케일의 안위를 볼 겸 들렀건만, 영웅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급한 일이 있다며 떠났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케일 공자의 건강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 정적을 깨고 리타나가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최한은 그 물음에 별생각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건강은 늘 좋지 않으시죠.”
그는 알베르에게만 몰래 용들과의 협상과 용 혼혈의 상태에 대해 전달해야 했다.
그렇기에 알베르에게 다가가는 와중에 던진 리타나의 질문에 솔직히 답했다.
“건강이, 건강이 얼마나 안 좋은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리타나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최한은 파악하지 못했다.
케일이 무슨 사고를 친 줄 알고 복잡해 보이는 알베르의 짐을 덜어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내 벗이 얼마나 아픈가?!”
그래서 리타나에 이어 툰카까지 질문을 던지자, 최한은 자신이 보았던 것을 그냥 말했다.
“며칠 전만 해도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사지의 경련을 주체하지 못하셨죠.”
최한이 보았던 건강하지 못한 케일은 당연히 김록수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두를 살리겠다는, 미래를 바꾸겠다는 정신력으로 버티셨죠. 심장이 찢겨질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케일 님을 멈추게 할 순 없었습니다.”
“…최, 최한-”
알베르가 경악한 얼굴로 스승이라는 호칭도 잊고 최한을 불렀다.
“아.”
그제야 최한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실수다.’
김록수와 케일.
두 사람을 동일인이라 생각하던 최한은 등급 외 괴물을 상대하던 당시의 케일을 말하고야 말았다.
지금 케일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마르고, 창백하긴 하지만. 요즘은 잘 먹고 잘 쉬어서 전보다 상당히 좋아진 편이었다.
최한은 왠지 모를 서늘함에 알베르를 보던 시선을 돌려 왕궁 가장 깊숙한 곳에 마련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에 자리한 각국 대표들.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는 수뇌부 몇 명, 마지막으로 로운에서 벌어진 회의를 보조하고 지키기 위한 인력들.
그들의 동공이 흔들리고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때, 지금껏 가만히 있던 클로페 세카가 나직한 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참으로 부끄럽군요.”
안 그래도 우수에 찬 것 같은 얼굴은 평소보다 더 아련해 보였다.
“아무리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의 행보라지만. 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것도 한 왕국의 대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알베르와 최한은 클로페 눈동자 속의 광기를 보았다.
마치 전설을 만들어가는 케일의 뒤를 반드시 쫓아가 자신도 전설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처럼 보였다.
“영웅 케일 헤니투스의 그 처절하고 숭고한 싸움에 반드시 함께하겠습니다.”
그 의지는 진짜였다.
그리고 그 의지에 한 명의 열정적인 자가 반응했다.
콰앙!
“나도 내 친우와 함께하겠소! 방패는 부서지지 않아!”
당연히 툰카였다.
그를 제외하고도 점점 뜨거운 의지가 회의실을 덮어갔다. 소극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대세를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최한도, 알베르도, 당연히 케일도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었다.
***
어둠의 숲에 잘 어울리는 웅장한 검은 성이 케일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오!”
그 웅장함에 도도리가 아주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 숨겨진 기지가 있었군! 크으! 하얀 별과 반대되는 검은 성이라니! 거기다가 어둠의 숲에 위치했고! 이런 멋진 대비가 있다니!”
“도도리.”
하지만 도도리 엄마 밀라가 도도리의 어깨를 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조용.”
“엄마, 이런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검은 성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
도도리는 엄마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밀라의 눈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저런 눈빛일 때는 무조건 말 들어야 돼.’
용생 14년. 고된 세월을 견디며 얻은 진리 중 하나였다.
밀라는 진정한 도도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설명이 듣고 싶지만.”
그녀는 케일과 어느새 투명화를 푼 라온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들어야겠군요.”
“나도 궁금해!”
도도리도 연유가 궁금해서 슬쩍 말을 얹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엄마의 시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도리 역시도 라온의 얼굴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절로 입이 닫혔다.
어제 한 번 본 후배 용이었지만, 처음 본 후배 용이라 그런지 안 좋은 표정에 마음이 쓰였다.
‘무슨 일이길래, 바로 달려 나간 거지?’
도도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는 라쉴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잠옷 차림의 그는 말없이 주변을 살폈다.
도도리와 달리 라온의 표정 때문이 아니었다.
‘…저 검은 성은 일반적인 성이 아니다.’
눈앞의 검은 성.
일반적인 성이 아니었다.
도도리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라쉴과 밀라 정도의 용들은 저 성에 새겨진 마법진과 성을 감싼 마나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더불어 저 안에 도사린 강력한 마나도 느껴졌다.
끼이익-
성의 정문이 스스로 열렸다.
라쉴과 밀라는 확신했다.
‘…용이다.’
분명 용이 하나 더 있다.
‘그 로드인가?’
‘로드군.’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가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1층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때마침 성에 머물던 호랑이족 주술사 가샨과 늑대족 라크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공자님!”
“…공자님.”
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가샨, 이분들을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가보십시오.”
가샨의 시선이 잠시 라온에게로 향했다가 떨어졌다.
케일은 앞서는 라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옆에는 라온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함께했다. 조금 전과 달리 떨림도 없었다.
에르하벤은 한발 물러서서 그들을 따랐다.
“이 방입니다.”
라크가 검은 성의 가장 외딴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습니다.”
누가 있냐고 말하지 않았다.
용 혼혈과 쉐리트. 그 둘이 이곳에 있을 터.
케일은 잠시 그 문 앞에 섰다.
‘복잡하군.’
케일에게 용 혼혈은 참 복잡한 존재였다.
그는 문고리를 잡지 않았다.
성의 정문도 자연스럽게 연 방 안의 존재가 이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왔습니다.”
케일이 말하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그곳엔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쉐리트가 케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 케일의 어깨 너머 라온을 향해 두 손을 펼쳤다.
“이리 올래?”
그리고 라온이 아무 말 없이 그 품에 안겼다.
라온의 시선이 방 안쪽으로 향했다.
케일의 눈동자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커헉. 컥.”
마치 케일이 등급 외 괴물과 싸우던 마지막 전투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죽은 마나와 빛 속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심장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용 혼혈이 침대에 누운 채로 사지를 떨고 있었다.
“크헉, 컥, 결국, 커헉.”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용 혼혈.
케일은 그런 그에게로 다가갔다.
침대 옆의 의자에 털썩 앉은 케일은 입을 열었다.
“결국 한계가 왔나 보군.”
무심한 목소리임에도 용 혼혈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검은 핏줄기가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크윽, 그래. 많이 살았지.”
“그래서 죽을 건가?”
다시 한번 던져진 차가운 음성에 용 혼혈은 픽 실소를 흘렸다.
언젠가 케일은 용 혼혈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
그날은, 용 혼혈이 로드 쉐리트와 라온에게 모든 것을 말했던 날이었다.
그 기회는 검은 성에 로드 쉐리트처럼 용 혼혈이 머물게 하는 것.
용 혼혈은 간신히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커헉. 죽어 마땅한 놈이다.”
“맞아. 네 죗값을 생각하면 죽는 것도 아깝지. 갚아야 할 죗값이 많으니까.”
유독 냉정하고 차가운 케일의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용 혼혈은 웃었다.
“…흐흐…….”
저를 바라보는 복잡한 눈동자를 보았으니까.
그의 입이 열렸다.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떨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
1분에 수십 번씩 계속되는 심장의 통증.
몸이 찢겨져 나갈 것 같았던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용 혼혈의 구백여 년이 넘은 시간 중 가장 평화로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기에.
그래서.
“죗값을 치르고 싶다.”
그리고 복수를 하고 싶다.
케일은 용 혼혈의 눈동자에 치솟아 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검은 성에 나는 머물지 않을 거다.”
언젠가 케일이 했던 또 다른 말.
‘일단 쉬다가 나중에 내가 다시 너를 불렀을 때. 그때 나와 암을 치러 간다.’
‘네 녀석이 죽기 전에, 네 녀석과 함께 암 비밀 기지를 파괴한다고. 약속했지.’
케일은 그 약속대로 용 혼혈과 함께 암의 기지를 치러 가 몰란 가문을 되찾고, 마계의 문 근처, 현재 엔더블 왕국 근처의 기지를 파괴했다.
그러나 하얀 별도, 암도 없어지지 않았다.
케일과 용 혼혈의 약속은 아직 제대로 완수되지 못했다.
용 혼혈은 이곳에 머물며 자신이 가진 마법 지식들을 정리했다.
더불어 연구했다.
하얀 별을 죽일 방법을.
자신이 살 방도 같은 건 알아보지 않았다.
행복을 느낄수록 죄책감이 자신의 영혼을 깊게 짓눌렀으니까.
“직접. 내가 직접 그놈 목을 뜯고 죽을 것이다.”
“뭐?”
케일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는 듯 용 혼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분명 용 혼혈의 몸을 유지할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때,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자님.”
케일은 제 옆으로 걸어와 서는 이를 보았다.
검은 로브가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메리였다.
“이 성이나 뼈나. 똑같이 마법진이 새겨집니다. 마법진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 뼈는 제가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간 케일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메리는 손때가 가득 탄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온갖 마법진 수식과 공식들로 가득 찬 종이들. 그 안에 담긴 집념이 절로 느껴졌다.
메리의 담담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본 드래곤. 용 혼혈 씨의 제안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 드래곤?
설마?
케일의 시선이 용 혼혈에게로 향했다.
“…네가 본 드래곤이 되려고?”
케일의 물음에 용 혼혈은 미소를 그렸다.
그 순간, 메리는 책을 읽듯이 덧붙여 말했다.
“다만 뼈가 부서지면, 본 드래곤도 용 혼혈 씨도 그대로 끝입니다. 참고로 하얀 별은 제 해골 병단을 무수히 많이 파괴했죠. 뼈는 강하면서도 약하니까요.”
검은 성에서, 이동의 제약은 있을지라도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한 번 더 싸울 수 있지만, 마법진이 새겨진 뼈가 부서지는 순간 끝나는 방법.
용 혼혈은 케일에게, 그리고 라온을 포함한 이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최소한 이 안의 이들에게는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그놈이 그토록 바라던 용이 되어, 그놈과 싸우고 싶다.”
그의 마지막, 유일하게 남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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