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36
635화.
용 혼혈은 손을 들어 올려 제 가슴께를 두드렸다.
“하얀 별에게 이미 나는 실패작일 거다.”
하얀 별은 용의 심장을 구해다 주며 구백여 년의 시간을 들였지만, 결국 용 혼혈은 3차 성장은 하지 못한 반쪽짜리 용이 되었다.
“그 실패작이 어찌 되었든 용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자신을 공격하면 하얀 별도 조금은 당황하지 않겠어?”
흐. 용 혼혈은 웃음을 흘렸다.
그도 안다.
자신이 본 드래곤이 된다고 하여, 하얀 별의 목숨을 끊을 수 없다는 걸. 그러기에는 스스로가 약했으니까.
싸우다 보면 결국 소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하고 싶다.
그는 케일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 본 드래곤이라는 단어에 살짝 놀라던 얼굴은 금세 냉정을 찾았다.
“메리.”
“네, 공자님.”
“의지를 가진 본 드래곤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지?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간단합니다.”
내비게이션 같은 목소리로 메리는 답했다.
케일, 그리고 에르하벤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제가 뼈로 드래곤의 형태를 만들면, 그 형태에 마법진을 새겨 용 혼혈 씨가 머물게 하는 겁니다. 쉐리트 님과 다른 점이라면, 쉐리트 님은 지금처럼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용 혼혈 씨는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해골 드래곤과 일체가 되겠지요.”
메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케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는 쉐리트 님과 달리, 용 혼혈 씨에게 남은 생명력이 적어 마법을 사용하여도 효과가 덜한 탓으로. 형체 유지가 불가능하다 판단했습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생명력이 적은 것은 당연할 것이고. 마법을 실행할 때, 마나도 많이 들어갈 텐데?”
메리의 시선이 잠시 쉐리트에게로 향했다.
“용 혼혈 씨의 모든 마나. 그리고 쉐리트 님이 돕기로 하셨습니다.”
라온을 안고 등을 쓰다듬던 쉐리트.
그녀는 저를 올려다보는 라온의 시선에 쓰게 미소를 지었다.
라온은 저도 모르게 앞발을 슬쩍 들었다.
“그, 그럼 나도 한,”
하지만 라온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케일의 차가운 목소리가 한 가지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마법이 성공하면 쉐리트 님과 달리 용 혼혈은 자유로워지겠군.”
용 혼혈과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용 혼혈은 마치 심해를 마주한 것처럼, 깊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메리의 말대로라면, 형체는 없을지라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단 소리 같은데?”
용 혼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용 혼혈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다.
케일은 그것을 염려하는 것일 터.
혹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 봐.
용 혼혈은 그 생각이 섭섭하지 않았다.
도리어 케일의 냉정한 시선에 용 혼혈은 안심이 되었다.
감히 가족이라고 말도 못 할 라온과 쉐리트 님. 그들 곁에 케일이 있었고, 케일은 제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에는 철저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자신을 저리 차갑게 내려다보는 것일 터.
진심으로, 용 혼혈은 자신을 향한 저 냉정함에 마음이 놓였다.
그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믿지 마라.”
쿨럭!
용 혼혈은 몸이 들썩일 정도의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내 속성은, 크윽. 빛이다.”
“그리고 저는 상극인 죽은 마나를 다룹니다.”
메리가 이어 답했다.
“마법진이 새겨지지 않은 본 드래곤 몸체 곳곳에 죽은 마나를 심어둘 작정입니다. 주로, 뼈 강화용입니다만.”
케일은 메리의 설명에 용 혼혈의 미소가 짙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폭탄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그 몸체를 폭발시켜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동귀어진.
자신의 소멸을 걸고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용 혼혈 씨가 허튼짓을 할 시 저 죽은 마나를 통해 본 드래곤 몸체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라온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본 드래곤의 몸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파괴하는 즉시 용 혼혈을 소멸시킬 수 있으니 그의 허튼짓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야 했지만.
메리는 라온을 생각해 표현을 신경 썼다.
“…용 혼혈 씨가 우리의 뜻에 반하는 짓을 못 하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케일은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섰다.
“스스로의 죗값을 치르고.”
이어진 말에 용 혼혈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복수도 하고 싶은가 보네.”
복수하고 싶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건만, 속내를 다 들켜버렸다.
용 혼혈은 단지 복수심에 미쳐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난-”
“조건이 있다.”
하지만 이어진 케일의 목소리에 용 혼혈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한 조건은.
“복수심은 버려라.”
어려운 문제였으니까.
용 혼혈의 흔들리는 동공에 무심한 얼굴이 담겼다.
“앞으로 펼쳐질 전쟁은 네 복수를 위한 일이 아니다. 네 죗값을 치르기 위한 일도 아니지.”
“그건… 나도 아는-”
“이 전쟁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생각으로, 오로지 지킬 생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순간 용 혼혈은 입을 다물었다.
오로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생각으로 해야 할 싸움.
“서대륙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중이야. 목적은 하얀 별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들의 목표는 결국 평화이고, 그들의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지.”
평화라는 거창한 말을 내세웠지만, 결국 지키고 편안해지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케일은 그 어려운 일을 쉽게 가고 싶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지키려고 싸우려는 거다.”
땅, 사람, 나 자신.
무엇이든 지키기 위한 싸움.
케일은 무언가를 잃는 싸움은 지겨웠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 네 감정은 내 계획에 쓸모없다.”
용 혼혈은 숨을 들이마셨다.
케일은 그런 용 혼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복수심을 버리든지 억누르든지. 나에게 그 감정을 더 이상 들키지 않고, 지키기 위한 이 싸움에 끼어들겠다면 내가 마음껏 부려 먹어 주마.”
누군가를 지킬 생각.
용 혼혈의 눈동자가 절로 방의 한구석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은 채 저를 바라보는 쉐리트 님과 라온이 보였다.
순간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죗값도 치러야 하고, 복수도 하고 싶다.
그것은 변함이 없다.
편하게 살 생각은 결코 없다.
그것을 눈앞의 케일은 잘 알고 있을 터.
자신의 복수심을 알아봤으니까.
그런 케일이 말한 이 싸움의 근원은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 같은 놈이 무언가를 지킬 자격이 있을까?’
용 혼혈은 여러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라온과 쉐리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지나간 과거가 후회되고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때, 어찌 알았는지 케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할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생각도 하지 마라.”
그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네 몸이 부서지든 말든, 그것을 떠나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중요한 전투다. 네가 가진 전력이 약하다면 너는 하얀 별의 얼굴조차 못 보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다른 곳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전쟁이 끝나겠지.”
약하면 하얀 별의 얼굴도 못 보고 전쟁이 끝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다 죽을 수 있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면, 한번 해봐.”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은 용 혼혈에게서 등을 돌렸다.
“흐, 흐흐.”
그의 등 뒤로 용 혼혈의 웃음이 들려왔다.
“…내가 본 것이 있지.”
용 혼혈은 무엇이든 지키는 싸움을 하겠다고 말하는 장본인, 케일의 등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나와 내 사람을 지키겠다는 케일은 누구보다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내 사람과 다른 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것을 적으로서 혹은 곁에서 보았다.
“이제야 알겠어.”
용 혼혈은 케일처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할 복수심도 죄책감도 잠시 억누르고, 저 케일 헤니투스처럼 싸우자고.
그러다 설사 죽더라도, 그것은 내가 안고 가야 할 일.
“한번 해보고 싶다.”
용 혼혈은 제 말에도 돌아보지 않는 등의 주인을 바라봤다.
케일은 다시 용 혼혈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메리를 불렀다.
“메리.”
“네, 공자님.”
“언제 할 계획이지?”
“일주일 안으로 준비가 끝나면 바로 할 생각입니다.”
“어렵진 않나?”
“가능합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열린 방문 앞에 선 라크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고는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고마워.”
하지만 저 목소리에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에게 고맙다고 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알아. 아는데 그래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쉐리트.
그리고 꼼지락거리는 라온.
케일은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 잘 나누세요. 라온, 너는 얘기 끝나는 대로 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온에게 케일은 툭 던지듯 내뱉었다.
“밥 먹어야 돼.”
히.
라온의 입가에 그제야 미소가 어렸다.
“알았다, 인간아! 나 엄마랑 용 혼혈이랑 이야기 나누고 간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런 케일의 곁에 에르하벤이 있었다.
“같이 안 계시고요?”
“나야 뭐, 같이 있을 이유가 없지.”
에르하벤은 케일을 슬쩍 보고는 툭 내뱉었다.
“나도 마나를 보탤까 하네.”
“이왕 하는 거 나머지 세 용한테도 부탁해보죠.”
“…응?”
에르하벤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케일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셋보다는 여섯 용의 마나면 각자 부담도 줄고 더 효과가 좋을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리고.”
에르하벤은 케일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멈칫했다.
“용 혼혈보다, 본인 걱정을 더 먼저 하셔야죠.”
“어?”
“아직 저한테 항아리 있습니다.”
금이 갔지만, 생명력을 담은 항아리가 아직 케일에게 있었다.
에르하벤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물건이었다.
에르하벤은 이를 거절했지만, 케일은 기필코 에르하벤에게 이 항아리 속 생명력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흐.”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왠지 모르게 에르하벤은 등 뒤가 서늘해져 왔다.
“방심하세요. 방심하시면, 그 순간 수명이 늘어날 테니까요.”
에르하벤은 용생을 살며 이렇게 자신을 소름 돋게 하는 존재는 케일이 처음이었다.
“…그것참 무서운 협박이군.”
“협박이 아닙니다. 그러니 꼭 방심하시길.”
히죽 웃어 보이는 케일의 꼴이 라온과 아주 흡사했다.
에르하벤은 분명 감동적이고 좋은 일인데, 왠지 모를 박복함이 자신에게 넝쿨째 굴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케일이 빨랐다.
“프레도 공작과 솔레나는 여기에 있습니까?”
“어? 어. 그렇지. 아무래도 계속 헤니투스 영지에 둘 수 없어서 이리로 옮겼네.”
“음. 한번 보러 가야겠군요.”
“내가 안내하지. 바로 근처야.”
에르하벤은 용 혼혈이 있던 방과 반대편의 끝방을 가리켰다.
“저 방이 프레도 공작, 그 옆방이 솔레나 경이라네. 지금껏 메리가 돌봤지.”
“메리가 고생이 많았군요.”
“아무래도 죽은 마나나 그쪽 속성은 우리 중 메리가 가장 정통하니까.”
케일은 에르하벤을 따라 반대쪽 끝방에 도달했다.
“조금 전, 수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프레도 공작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네.”
“이상하군요. 회복력이 빠르다고 들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끼이익.
에르하벤이 문고리를 돌렸고, 다른 방보다 조금 더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오며 문이 열렸다.
“으음.”
케일은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있는 프레도 공작을 볼 수 있었다.
“솔레나 경도 정신을 못 차리고. 외상도 그렇고 위급한 상황은 넘겼는데, 왜 둘 다 깨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에르하벤의 말을 들으며, 케일은 프레도 공작에게 다가갔다.
침대에 누운 프레도 공작은 규칙적으로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꼭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케일은 그 모습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음. 얼른 프레도 공작이 깨어나야 지금 하얀 별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텐- 억!”
“케일!”
그 순간이었다.
“뭐야!”
케일은 강력한 힘에 끌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케일, 괜찮나?”
그런 그를 에르하벤이 재빨리 부축하였고, 케일은 저를 끌어당기는 강한 힘의 시작 지점을 바라봤다.
그곳은 케일의 손목이었다.
“…프레도 공작?”
그리고 그 손목을 움켜쥔 것은 지금껏 죽은 듯이 쓰러져있던 프레도 공작의 손이었다.
케일의 눈동자가 프레도 공작에게로 향했다.
“으…으…….”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힘겹게 입을 뗀 그는 간신히 한 글자를 내뱉었다.
“…피…….”
피?
케일의 얼굴이 구겨지려는 찰나.
“…만…병…통치…약…….”
만병통치약 피.
언젠가 프레도 공작은 케일에게 말했다.
‘네 피가 뱀파이어에게 아주 좋아. 맛, 영양, 치유 효과. 아주 만병통치약이지.’
그때를 떠올리며 케일의 입이 열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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