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37
636화.
케일의 얼굴은 찌푸려질 대로 찌푸려져 펴질 줄을 몰랐다.
“케일. 지금 네 피를 달라는 것이냐?”
그 곁의 에르하벤은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로 케일과 프레도 공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띄엄띄엄 내뱉었다.
“…네 피가… 만병통치약이냐?”
그때였다.
“안 된다, 인간아!”
등 뒤로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힘차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쉐리트도 함께였다.
용 혼혈과 긴 대화를 나눌 줄 알았건만, 짧게 대화를 나누고 나온 듯싶었다.
“인간아! 네 피는 안 된다! 넌 유리보다 약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페스츄리보다 약하다! 건들면 그냥 바사삭 부서진다! 그러니 피를 뽑으면 그냥 바사삭이다!”
케일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라온의 말이 상당히 띠껍게 들려왔다.
에르하벤이 라온을 보며 프레도 공작을 가리켰다.
“프레도 공작은 어쩌고?”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라온이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제 앞발을 내밀었다.
“내, 내 피 준다!”
케일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라온을 바라봤다.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린 녀석의 피를 쓴단 말인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케일은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다.
에르하벤조차 기가 막힌 표정이었고, 쉐리트는 옅게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렇게 형성된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싶었다.
“…안…안 돼…….”
케일은 끊어질 듯 가녀린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죽은 듯이 눈을 감은 채 프레도 공작이 입술을 달싹였다.
“…용 피…싫어…파충류 피 맛없어…….”
그 순간 케일은 깨달았다.
“야.”
그의 표정이 띠꺼워졌다.
“너 괜찮지?”
프레도 공작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일체의 표정 변화 없이 중얼거렸다.
“…안 괜찮다…….”
케일은 자신을 붙잡은 프레도 공작의 손을 쳐다봤다.
그래.
괜찮지 않다면, 이런 힘을 낼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케일은 깨달았다.
‘이놈, 괜찮나 보네.’
탁. 케일은 프레도 공작의 손을 뿌리쳤다. 이전과 달리 순순히 그 손은 케일의 손목을 놔주었다.
“눈 안 뜨냐?”
그리고 케일의 목소리에 슬그머니 눈꺼풀을 들었다.
“언제 깨어났냐?”
프레도는 케일의 물음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꽤 밝은 미소였지만 확실히 힘이 없어 보였다.
“아까 네크로맨서가 이 방을 떠날 때쯤 깨어났지. 급히 나가는 것 같길래 아무 말 안 하고 기다렸는데, 가만히 있으니 우리 아들이 오네?”
어휴.
케일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 틈에 라온이 프레도의 이마에 앞발을 척 올렸다.
“프레도야! 우리 인간의 피는 안 된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능글맞게 대답하는 프레도 공작의 눈동자에 짧지만,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이를 알아챈 케일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 피가 왜 필요하지?”
프레도 공작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에 케일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본인이 그 답을 찾아내었다.
“뱀파이어들을 구하러 갈 생각인가?”
현재 엔더블 왕국에 기거하던 뱀파이어와 다크엘프들은 하얀 별의 소환을 위한 제물로써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 덕에 소환 전까지 안전은 보장할 수 있으나, 소환이 시작되는 즉시 그 목숨이 위태로울 터.
“그래, 구하러 가야지.”
프레도 공작은 곧바로 납치된 이들을 구하러 가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겉으로는 꽤 회복이 된 것 같아도 그 내부는 엉망이었고 이런 상태로 하얀 별과 전투를 치를 수 없었다.
케일은 창백한 안색의 프레도 공작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쉬어.”
“그럴 순-”
“내가 다 구해올 테니까.”
프레도 공작의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말만 해.”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얀 별 그놈. 그리고 엔더블 왕국민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말해.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
프레도 공작의 입에서 웃음과도 같은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려면 케일 헤니투스에게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뱀파이어와 다크엘프를 구하러 간다, 이 말이지?’
지금껏 그런 동료가 우리에게 있었나?
문득 든 생각에 프레도 공작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케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의 위치는 모른다. 솔레나가 나를 업고 도망치던 당시에 하얀 별 역시도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으니까.”
“…네 목숨을 끊지 않고 떠날 일이라면 꽤 중요한 일인가 보군.”
“그래. 너도 알 텐데?”
프레도 공작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하얀 별은 불완전하다.”
그가 내뱉는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별은 땅의 힘을 얻지 못했지. 그렇기에 그의 그릇은 현재 불균형해. 아무리 하얀 별의 그릇이 단단하다고 해도 계속된 불균형은 완전한 힘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되지.”
케일은 하얀 별이 땅을 제외한 불, 바람, 물, 나무 속성 고대의 힘과 하늘 속성 고대의 힘을 지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얀 별이 급히 할 일이라면 하나였다.
“소환 전에,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러 떠났겠군.”
“그래. 그는 땅의 힘을, 혹은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추론이야. 하얀 별이 다른 것을 하러 떠났을 수도 있지.”
하지만 프레도의 추론은 꽤 믿을 만했다.
케일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두 번의 소환.
둘 중 하나라도 벌어지면 이 동서대륙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터. 하얀 별은 그 혼란을 지배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구멍을 채우려 했다.
“…이런 급박한 때에 망설임 없이 떠났다는 건, 이미 어떤 단서를 가졌다는 소린데.”
어쩌면 하얀 별이 땅의 힘을 가진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케일 쪽이 준비할 시간을 가지는 만큼, 저쪽도 힘을 비축해나갈 테니까.
“인간아! 그래도 이제 우리 용이 여섯이다! 용 혼혈까지 하면 일곱이다!”
“뭐, 꼬맹이 말이 맞다.”
“금 용 할배야! 나 이제 꼬맹이 아니다! 도도리가 그랬다! 나 정도면 꼬맹이가 아니라 청소년이라고 했다!”
“…어휴. 꼭 지 같은 거랑 친해져서는. 으휴.”
때마침 시작된 라온과 에르하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케일은 프레도 공작에게 눈짓했다.
“어디야?”
엔더블 왕국민인 다크엘프와 뱀파이어들이 갇힌 곳.
프레도 공작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입을 열었다.
“…묘족의 땅.”
순간 라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대륙에 안개 묘족이 주도권을 잡고서 몇몇 묘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안개 묘족.
온과 홍을 돌연변이로 몰며 남매가 도망치게 만든 곳.
“그 중심에 큰 석산이 있다. 하나의 성채와 같지. 그곳을 안개와 암살에 뛰어난 묘족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석산에 인질들이 있고?”
“그래.”
프레도 공작의 얼굴에 침중함이 어렸다. 하지만 곧 그는 멈칫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그랬단 말이지?”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당히 사악해 보이는 미소에 프레도 공작이 절로 표정이 떨떠름해졌을 때.
“흐.”
“인간아! 아주 불량하게 웃는다! 그러지 마라!”
라온의 목소리를 흘러들으며 케일은 꽤 산뜻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거기는 한번 뒤집을 작정이었는데, 잘됐어. 아주, 잘됐어.”
연신 잘됐다고 중얼거리는 케일의 눈빛이 번뜩였다.
케일은 온과 홍을 볼 때마다 아주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묘족들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프레도 공작은 갈수록 사기꾼처럼 웃는 케일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묘족을 뒤집는다고?”
살며시 물어보는 것과 달리 프레도 공작의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케일은 그 기대감에 응하듯, 경쾌하게 답했다.
“어. 뒤집어야지.”
그리고 덧붙인 말에 방 안의 모든 이들이 그를 바라봤다.
케일은 말했다.
“하얀 별을 무너뜨리는 일은 묘족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하얀 별을 무너뜨리는 일.
케일의 눈동자에 프레도와 라온, 에르하벤, 쉐리트가 담겼다. 그는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동료들에게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굳이 쳐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잖아요? 먼저 쳐들어가면 되지.”
짙은 미소를 그리는 케일의 표정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
동대륙에 위치한 자유 도시인 리브엔 시.
그곳에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 여관이 하나 있었다.
그 여관의 이름은 ‘희망과 모험을 사랑하는 여관’.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직원들만 있을 뿐, 한적했다.
한때 리브엔 시와 가까운 리브산에서 산적 활동을 했던 남자는 오늘도 앞치마를 맨 채 먼지떨이를 흔들었다.
“이것들아! 여기도 먼지! 저기도 먼지! 먼지천지 아냐! 청소 똑바로 안 해?”
그는 산적들의 우두머리, 채주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검지로 테이블을 쓸고는 눈보다 작은 먼지에 격노를 토했다.
“이것들이! 총주방장님 오시면 얻어터지고 싶나!”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총주방장.
그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전직 산적이자 현 종업원들의 손길이 신속 정확하게 바뀌어져 갔다.
총주방장은 비크로스 몰란이었으니까.
전 채주는 그 광경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는커녕, 자신의 뒤통수를 매만졌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네!’
희망과 모험을 사랑하는 여관의 진짜 주인. 케일 헤니투스.
그리고 그의 수하인 론 몰란과 비크로스 몰란.
두 사람은 부자 사이이자, 각각 이 여관의 운영과 요리를 맡고 있었다.
‘이상해. 동대륙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
동대륙 왕국 곳곳에서 병력의 이동이 일어나 동대륙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감이 피어오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럴 때마다 몰란 가문 사람들이 바빠지는 것을 보았기에 절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는 이 리브엔 시에 케일이 만든 비밀 무력 단체를 맡고 있었으니까.
“야, 먼지!”
물론 그는 청소 담당도 겸했다. 그의 시선이 간판으로 향했다.
그렇다.
여긴 1호점이다.
몰란 가문의 살벌한 부자는 그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더니 동대륙 곳곳에 여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몰란 가문에서 펼치는 사업인 줄 몰랐다. 그저, 친절하고 초보 모험가에게조차 다정한 공간이라고 알고 있을 뿐.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다정과 친절은 얼어 죽을!”
“무엇이 얼어 죽었다고?”
“헉!”
순간 들려온 인자한 목소리에 그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툭. 툭.
“어깨에 먼지가 있구만.”
그런 그의 어깨를 론이 장갑을 낀 채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지나쳤다.
전 채주는 론의 등장에 깨달았다.
‘온다!’
어젯밤. 이 여관을 통째로 빌린 장본인.
론은 분명 그 장본인이 곧 여관으로 올 것을 알고 귀신같이 때를 맞춰 나타난 것이리라.
냐아아옹!
냐아옹!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 순간.
모든 전직 산적들이 친절한 종업원의 미소를 장착한 채 자세를 똑바로 했다.
끼이이익-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공자님!”
문이 열렸고, 종업원들은 우렁찬 인사를 건넸다.
채주도 인사를 했다.
“오셨습- 으아악!”
하지만 그는 곧 비명과 함께 머리칼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쏴아아아아-
화살 하나가 여관 안으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액자가 부딪치며 부서졌다.
“이 건방진 뽀글머리가!”
“잠이나 처 자! 후배야!”
“내가 왜 후배냐?”
“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부하니까, 후배지!”
“부하? 하! 너도 그럼 부하냐?”
“아니! 이 몸은 위대한 동료다!”
“허! 이 달랑달랑 뽀글머리가!”
우당탕탕 자잘한 집기들이 부서지는 광경이, 분홍 머리와 반삭발이 서로 싸우는 광경이 종업원들의 시야에 담겼다.
오랜만에 방문한 주인을 위해 열심히 청소한 여관 홀이 엉망이 되어갔다.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분홍 뽀글머리와 반삭발.
-인간아! 우리 이렇게 묘족한테 쳐들어가나?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 용 라온.
“도련님.”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케일에게 다가가는 론까지.
종업원들은 주인 케일의 동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케일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케일은 론이 건네는 레모네이드를 집어 들며 도도리와 라쉴에게 말했다.
“나가.”
그의 다른 손은 여관 밖을 가리켰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라쉴과 도도리는 잠시 다투던 것을 멈추고 케일의 손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서로를 바라봤다.
동시에 입이 열렸다.
“좋다! 나가자, 이 뽀글머리야!”
“흥. 내 화살이 두렵지 않은가 보군. 후회하게 해주마!”
라쉴과 도도리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인간아! 나 구경 가도 되나?
냐아아옹.
냐아옹!
평균 9세가 그 뒤를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뒤따라갔다.
남은 케일은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신맛에 정신이 확 들었다.
“도련님. 데려가는 인원이 저렇게 인가요?”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건넨 말에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저렇게 데려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데려온 것 같아.
케일은 뒷말을 삼켰지만, 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뭐든 잘 부수고, 뭐든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데 최적의 조합 같군요.”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그렇지.”
용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
더불어 케일과 몰란 가문.
끼이익.
“오! 여기 있었네! 나 잘 맞춰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서는 용병왕 버드까지.
묘족이 사는 곳을 뒤집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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