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44
643화.
도르프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그저 응시하기만 하는 라쉴의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용이 만능은 아니지.’
용은 마법과 수명, 특성까지. 모든 면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는 최상의 조건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들이 강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 ‘특성’ 혹은 ‘속성’이라고 표현하는 그 힘은 용에게 제약이 되기도 했다.
그 속성과 상극인 힘에 결국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용들은 대부분 죽은 마나 혹은 어둠과 반대되는 힘을 지녔지.’
죽은 마나가 아닌 살아있는 마나에 가장 익숙한 존재이니, 당연한 이치였다.
‘힘이 줄어들었어.’
더욱이 라쉴의 몸을 감싸고 있던 회색 마나가 이전보다 줄어들어 있었다. 이는 검은 장막에 담긴 힘인 어둠에 라쉴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뜻했다.
“더 볼 것도 없군.”
도르프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케일 헤니투스. 그놈을 막아야 돼.’
산 정상 구멍 아래에 깔아둔 어둠이 사라졌음을 이미 느낀 도르프였다.
케일 헤니투스에게 모든 광경이 들켰을 터. 그놈이라면 무슨 방해를 벌여도 벌일 것이니, 도르프는 서둘러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용은 곧 적응을 할 거다.’
다른 존재와 달리, 결국 용은 이 어둠 아래에서도 마나를 사용하는 법에 익숙해질 것이다.
라온이라는 검은 용처럼 말이다.
도르프는 묘족 족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산 정상을 향해 눈짓했다.
‘먼저 가보지.’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는 묘족 족장의 입이 다급하게 열리는 것을 보았다.
“…뒤를-!”
채 문장이 완성되기 전, 도르프는 등 뒤가 섬찟해져 왔다.
“흐.”
바로 등 뒤. 아니, 목 뒤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 순간, 도르프는 몸을 앞으로 굴러야 했다.
콰아아아아!
그리고 간신히 몸을 피한 그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굉음에 눈이 커졌다.
“…어째서?”
굉음과 함께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마나를 전신에 두른 라쉴이 있었다.
“흐, 흐흐흐-”
라쉴은 아주 즐겁다는 듯 웃으며 도르프에게 툭 내뱉었다.
“계속 피해 봐. 잡히면 그땐 죽을 거니까. 크흐흐흐.”
그러고는 곧바로 도르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르프는 그 모습에 기겁했다. 광폭화한 그의 신체 능력에 버금가는 용의 신체 능력에 그는 급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 용은 검은 장막의 영향을 덜 받는 거냐?
아니, 왜 더 강해지는 거냐?!
“왜?! 넌 그대로지?!”
도르프가 물었지만, 답 대신 날아온 것은 그의 머리를 노리는 주먹이었다.
그는 재빨리 두 팔을 들어 그 주먹을 막았다.
콰앙!
“크윽!”
하지만 굉음과 함께 그는 가공할 마나와 힘에 몸이 뒤로 밀렸다. 그리고 그 찰나를 라쉴은 놓치지 않았다.
폭발할 것만 같은 회색 마나를 넘칠 정도로 머금은 라쉴의 발이 도르프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퍼억!
“커헉!”
일순간 경직이 일어날 만큼의 강력한 충격에 도르프는 광폭화한 사자족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신체가 흔들렸다.
도르프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미친-”
용 새끼가 왜 마법보다 이런 싸움에 능하냐고!
하지만 적은 흔들리는 도르프에게 가차 없이 공격을 밀어붙였다.
“이 사자 새끼가 지금 나보고 미쳤다고 했냐? 응? 엉? 죽고 싶냐? 아니다, 죽기 직전까지 패줄게, 크흐흐흐흐!”
라쉴은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남들 몰래 힐끗 검은 장막을 바라봤다. 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라쉴 님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그는 언젠가 케일. 그리고 그의 등에 업혀 있던 라온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
라쉴은 제 특성을 묻는 말에 아주 당당하게 답했다.
누구보다도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자신의 속성은 그의 자랑거리였으니까.
‘불굴.’
‘…네?’
‘내 특성은 불굴이라고.’
순간 라온과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지만, 이를 모른 채 라쉴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주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속성이지.’
‘…라쉴아. 불굴이 그런 뜻이냐?’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아! 불굴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그런 뜻 아니냐? 공격적이기보다는 좀, 좀 다른 의미로 쓰이지 않냐?’
‘이런, 이런. 꼬맹이가 뭘 잘 모르는군.’
라쉴은 케일과 라온에게 제 속성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었다.
‘난 불굴이라는 속성을 지닌 덕에, 나에게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판단이 들면 그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게 돼.’
‘…환경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요?’
‘그래. 이 위대한 몸은 거기다가 더해 더 굉장한 특성의 요소를 지녔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케일의 모습에 라쉴은 흥이 나 열심히 설명했다.
‘상대를 잘근잘근 패겠다는, 처죽이겠다는!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나는 나쁜 환경 속에서 발동한 불굴 속성이 강해져. 그래서 그때만큼은 한없이 강해지지. 크흐흐.’
‘…라쉴아! 그게 왜 공격적인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쯧쯧.’
그는 어린 용에게 용생을 겪으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하나 일깨워주었다.
‘자, 내가 불굴을 가졌다는 소리가 무슨 뜻이냐?’
케일마저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라쉴은 웃음을 머금고서 말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막싸움이 가능하거든.’
‘네?’
케일이 당황한 듯했으나, 라쉴은 이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나를 건드리는 놈이 있다! 그러면 그놈이 나한테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면 줄수록! 그리고 내 성질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이 몸은 강해져서 그놈을 마구잡이로 팰 수 있다! 이 말이야! 그게 얼마나 공격적이냐? 일단, 내가 속성이 발동하지?’
씨익.
라쉴은 미소를 그렸다.
‘그럼 일단 그 상황을 만든 놈은 내 손에 죽는단 소리야.’
짧은 과거의 대화를 떠올린 라쉴은 곧 도르프를 이글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흐흐, 역시 케일 헤니투스 말대로, 패는 맛이 있는 놈이군. 크하하하하! 덩치가 큰 게 그냥 막 휘둘러도 처맞아! 크하하하! 즐겁다, 즐거워!”
말 그대로 광기에 휩싸인 미친놈, 아니, 미친 용 같았다.
주변에 있던 아군과 적군도 회색 마나를 불꽃처럼 두른 채 거침없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미쳐 보이는 라쉴의 모습에 멈칫할 정도였다.
퍼억! 쾅! 콰앙!
1분에 수십의 공방이 오갈 만큼 빠르고 위력적인 공방이 도르프와 라쉴 사이에 이어졌다.
‘제기랄!’
도르프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최소 1.5배 강해졌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어!’
빌어먹을!
눈앞의 용이 신체 능력도 마나도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걸 실시간으로 체감하자, 도르프로서는 방도가 없었다.
‘더 이상은 안 돼!’
그는 결국 어둠의 정령 힘을 더 사용하기로 하였다.
끼이이이—끼이이-
기이한 소리와 함께 검은 장막이 더 두껍게 드리워지며 지상을 덮칠 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 이건!”
“저주다! 세즈 산에 저주가 내리는 거야!”
“오, 신이시여! 저희 국왕 전하를 구해주소서!”
안개가 평소보다 더 짙어지며 산을 뒤덮은 것은 물론, 검은 장막 같은 것마저 산을 덮치려고 하자 산 근처를 빙 둘러싼 채 이를 지켜보던 세즈 왕국민들은 혼란을 감추지를 못했다.
어떤 이는 공포에 떨었고, 어떤 이는 결국 멀리 도망치기까지 할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제길.”
“부단장님, 계속 진입을 합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은 산에 진입해 대열에 맞춰 산을 올라가던 기사단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들은 더 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체력이 떨어집니다, 부단장님!”
“마나가, 마나가 잘 안 움직여요!”
검은 장막 아래 곳곳에서 기사들과 마법사들, 병사들이 어둠 정령 힘에 영향을 받아 괴로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부단장은 멈출 수가 없었다.
콰아앙! 콰아아!
조금 전부터 산 위로 올라갈수록 굉음이 들려왔으니까.
“…분명, 분명 저기에는 적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주군을 납치한 묘족들만 있었다면 전투를 치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들 묘족이 죽은 것을 보지 않았나! 이곳엔 분명 우리와 아군이 될 여지를 지닌 이들이 묘족과 먼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 아군이 될 세력이 누구인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일단 저들이 묘족의 국왕 전하 납치를 막아서 주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속력을 내어야 하네!”
부단장의 말에 결국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음을 굳건히 했다.
그때였다.
부스럭.
나뭇잎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낯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부단장의 귀에 닿는 순간, 그는 인기척을 내며 등장한 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체는 쉽사리 파악했다.
“…호랑이족.”
백발의 호족 노인이 지팡이를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호족의 주술사 가샨이었다.
부단장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기사단장과 궁정 최고 마법사를 힐끗 보고는 새로운 자의 등장에 경계심을 극도로 높였다.
호족은 동대륙에서 아주 강한 수인족으로 평가받았으니까.
“…여기 호족이 왜 있는 것이오?”
호족 가샨은 부단장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산에 호족이 있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 되겠소?”
그 대답에 부단장은 입을 다물었다.
호랑이족.
동대륙의 험난하기로 유명한 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산에는 꼭 호랑이족 하나 혹은 그 가족이 머문다는 말이 속담처럼 내려왔다.
부단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묘족과 싸우는 이들은 당신들입니까?”
가샨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케일의 부탁으로 이곳에 오며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샨. 해리스 마을에 터를 잡기는 했지만. 다시 돌려받아야 할 것 아냐?’
‘돌려받다니요?’
‘너네 원래 터전.’
‘…….’
‘터전이었던 모든 산에 다시 터를 내리라는 소리가 아냐. 하지만 최소한, 적어도 자유로이 그곳을 넘나드는 것. 그것이 호족이 누리던 자유 아닌가?’
어느 험난한 산이든.
어디에 위치한 산이든.
호족은 그 산들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 자연 속에 스며들어 살기를 원하는 부족이었다.
그 의미를 담은 케일의 말을 가샨은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신성한 산인 세즈는 꽤 마음에 들었다.
‘몰란 가문, 용병 길드, 프레도 공작이 이끄는 엔더블 왕국과 함께 동대륙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떠올라 봐.’
각각의 산에 떨어져 사느라, 암의 물량 공세에 밀려나 도망쳐야 했던 호족이었다.
하지만 가샨을 중심으로 헤니투스 영지 해리스 마을에 모인 호족은 이제 독립적이면서도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었다.
‘가샨. 당신이 나를 도와준 만큼, 나도 호족이 원래의 세를 얻을 수 있게 돕고 싶다.’
가샨은 케일의 무뚝뚝한 표정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부단장에게로 향했다.
이곳에서 싸우는 이들이 누구냐고 물은 부단장.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저희는 동대륙을 구하려는 조직입니다.”
“…조직?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 이름은-”
그건 딱히 케일 공자와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
가샨은 고민했지만, 케일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숭고한 가치를 입에 담았다.
“평화회입니다.”
“…평화회요?”
부단장은 처음 듣는 단체였다.
“네. 그런 이름을 지녔지요. 그거 아십니까?”
가샨은 부단장에게로 다가갔다.
까악. 까악.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오는 이 순간. 가샨은 부단장에게,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세즈 왕국 병력들에게 말했다.
“세즈 국왕 전하를 납치한 자는 하얀 별이라는 자입니다.”
물론 케일이 한 짓이다.
하지만 이 거짓을 제외하고, 가샨은 눈앞의 이들에게 그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진실들을 말해주었다.
“또한 이 산에는 세즈 왕국과 동맹을 맺은 엔더블 왕국민 일부가 납치되어 있습니다. 하얀 별이라는 미친 우두머리에 의해서요. 아, 엔더블 왕국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네요. 음, 모든 이야기를 해보자면…….”
가샨의 이야기는 빠르게, 동시에 세세하게 세즈 기사단과 마법사, 병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이 서렸다.
동시에 그들은 가샨의 안내를 받아 전보다는 빠르게 평화회라는 아군을 향해 나아갔다.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얀 별이라는 거대한 악과 싸우는 자들을 도와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 거대한 악의 가장 충직한 수하 중 한 명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콰아, 콰아앙, 쾅! 쾅!
“크윽, 큭!”
도르프는 점점 더 강해지는 라쉴의 공격에 정신이 없었다.
어째서 검은 장막을 더 펼쳤음에도 강해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놈이 어둠 속성을 지닌 용인가 고민해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결국 도르프는 도망을 택했다.
최대한 속력을 내 산 정상으로 향했다.
“어쭈?”
헉!
그런데 등 뒤로 광기에 휩싸인 목소리가 들렸다. 가공할 만한 반응속도였다.
그 속도의 주인은 도르프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크억!”
상상 이상의 악력에 도르프는 절로 숨이 막혀오는 찰나, 용과 눈이 마주쳤다.
“용이 우습나 보네.”
그 말을 끝으로 도르프는 제 얼굴로 내리꽂히는 회색빛의 주먹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얼른 팔을 들어 올렸다. 광폭화한, 누구보다도 강력한 사자족 왕의 팔은 회색 마나와 그대로 부딪쳤다.
“끄아아아!”
그리고 그 팔은 그대로 부서졌다.
검은 장막이 강해질수록, 라쉴이 분노할수록, 그의 몸과 마나는 강해져 갔다. 도르프는 가볍게 이길 정도로.
어찌 보면 도르프에게 라쉴은 상극이었다. 차라리 다른 존재와 라쉴이 맞부딪쳤다면 다른 결과를 냈을지도 몰랐으나, 케일은 라쉴에게 도르프를 붙여주었고 그때부터 도르프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도르프처럼 산 정상으로 이동하려던 또 다른 우두머리.
“…빌어먹을 것들……!”
묘족 족장의 앞에 론. 그리고 붉은 안개를 뿜어내는 온과 홍이 그의 사방을 가로막은 채 그에게로 다가왔다.
결국 묘족 족장은 도망치는 것을 멈췄다.
산 정상에서 케일 헤니투스가 벌일 짓을 막아야 했지만, 제 앞길을 가로막은 두 존재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이놈들, 목숨을 붙여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온과 홍을 바라보는 족장의 눈에 기이한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의 광폭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묘족의 광폭화는 늑대족이나 사자족과 같은 파괴적이라고 취급되는 부족과 달랐다.
더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특히 안개 묘족은 소수가 가진 특별한 능력. 족장의 경우 안개 능력이 증폭되었다.
“은혜는 무슨 은혜! 헛소리하지 마!”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온이 이를 드러냈다.
홍이 그런 누나의 바로 옆에서 눈을 감으며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온과 홍. 족장의 대치가 이어지던 그 고요한 순간.
“이런.”
느긋하게 론이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족장.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뭐?”
론이 미소를 지으며 산 정상을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본 온과 홍의 표정이 밝아졌고 동시에 묘족 족장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론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려왔다.
“우리 도련님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신 것 같으니. 시간 끌 것 없겠어.”
족장은 고개를 돌려 론을 마주했다.
“광폭화 한번 해보게. 이 내가 몰란 가문의 정수를 보여줄 터이니.”
그 순간이었다.
산 정상보다 높은 곳. 검은 장막 너머의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우르르르-
마치 태풍이, 천둥 번개가 시작되기 전에 그 시작을 알리는 구름의 울음소리 같았다.
산 밖의 세즈 왕국민들은 새로운 상황에 움츠러들었지만, 케일 아군에게는 반가운 소리였다.
“…벼락이!”
용병 부대 레인저 부대원이 하늘을 가리켰다.
우르르르- 우르르-
하늘의 울음소리 사이로, 검은 장막조차 가리지 못하는, 그 장막을 꿰뚫으려고 하는 적금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적금빛 벼락들이 곧 땅을 향해 떨어져 내릴 준비를 끝마친 듯. 울음을 토해내며 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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