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57
656화.
케일 헤니투스의 몸에 자리한 김록수.
김록수의 몸속에 존재하는 케일 헤니투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케일 헤니투스.”
먼저 입을 연 것은 현재 케일 헤니투스의 몸을 사용 중인 김록수였다.
“내가 어떻게 너와 만날 수 있는 것이지?”
“글쎄. 나도 야근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네가 이 침대에 자고 있더군. 그런데 말이야.”
본래의 김록수라면 짓지 않았을 묘한 미소를 지은 진짜 케일 헤니투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 그 몸으로 살 생각 아냐?”
훅 치고 들어온 질문은 가벼운 어조와 달리 무거웠다. 진짜 케일 헤니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난 이 몸으로 내 목숨을 마무리할 생각이야. 그러니 이제 케일 헤니투스란 이름은 버리고 김록수란 이름으로 살 생각이지.”
진짜 케일 헤니투스의 눈동자는 차분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진짜 김록수는 제 외양을 한 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김록수로 불러달라?”
“그래. 왜, 싫나? 너도 케일 헤니투스로서 생을 마감할 생각이잖아? 그러면 이제 김록수란 이름은 버려야지.”
피식.
케일 헤니투스 몸속의 김록수. 아니, 케일 헤니투스가 되기로 한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김록수, 네 말대로 하지.”
“좋아, 케일 헤니투스. 이래야 겉모습과 이름도 맞잖아?”
케일은 본래의 자신이라면 전혀 하지 않을 제스처를 하며 웃는 김록수를 보며 툭 내뱉었다.
“정말 잘 지냈나 보군.”
그는 이수혁을 만나 ‘포용’ 능력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이수혁은 그 능력을 건넨 후 케일의 꿈속에서 사라지며 진짜 케일 헤니투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참고로 원래 네 몸 주인도 잘 산다. 행복하다더라. 그리고 나도 정수도, 우리 모두 행복하다.’
김록수는 30대 중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무 살에 어울리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났거든.”
케일은 자신이 본래 김록수였을 적 지은 적이 없는 미소를 짓는 김록수를 마주하는 기분이 오묘했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누군데?”
“어머니.”
순간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아 케일에게는 그저 남으로만 느껴지는 이였다. 그에게는 바이올란 공작 부인이 더 어머니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케일은 헤니투스가에서 지내는 동안 케일 헤니투스의 친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렴풋이 듣기로는 그곳에서 케일 헤니투스의 친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케일의 얼굴에 서린 난감함을 마주한 김록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케일 헤니투스 네가 살았고,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환생했거든.”
“…지구로 환생했다고?”
“어. 제1지구. 30대의 김록수 팀장이 사는 세상이지.”
케일은 본래 자신이 살았던 세상이 제1지구. 알베르의 부러지지 않는 창 태랑이 온 곳이 제3지구임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봉인된 신의 시험을 치렀던 곳은 제2지구인가?’
케일은 확신 섞인 의문을 잠시 한편으로 치워두고 김록수의 말에 집중했다.
“환생한 어머니는 등급 외 괴물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고 아주 어릴 때 홀로 남겨지셨지. 내가 가족이 되려고 노력 중이야.”
씁쓸하면서도 뿌듯한 미소가 김록수의 입가에 맺혔다.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환생이면 너보다 어릴 텐데?”
“하. 삼촌 소리 듣는 중이야.”
김록수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어댔다.
하지만 쓸쓸해 보이지 않는 모습에 케일은 왜 진짜 케일 헤니투스가 김록수로서 살고자 마음먹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록수는 자세를 바로 고치며 침대 머리맡에 기댄 케일을 바라봤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해주고 싶은데,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을지 알 수 없으니 이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끝내고.”
“그래.”
케일은 솔직하게 제 심정을 내뱉었다.
“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지만, 나는 지금 좀 급해.”
자신이 쓰러진 후, 어떤 일이 퍼슬시에 벌어졌을지, 동료들은 어떻게 싸우고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가 여길 몇 번 겪어보니, 여긴 내가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더군.”
케일은 몇 번 이런 공간을 겪었고, 그때마다 이 공간을 빠져나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었다.
“그래? 몰랐네. 할 일이 많은데.”
김록수는 좋은 정보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가족은 다 잘 있지?”
“당연한 소릴.”
케일의 무심하면서도 단호한 대답에 김록수는 조금 전과는 다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달픔을 담은 미소는 조금 마음이 쓰라려 보였다.
그래서 케일은 덧붙였다.
“다들 잘 있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잘 계시고. 릴리는 검을 배우고 있어. 바센은 영주를 하게 하고 싶은데. 아무튼 바센은 영지 행정을 돕고 있다.”
“흐음.”
김록수는 검지로 이마를 긁적였다.
“케일. 바센 그 아이가 다음 대 영주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난 영주 안 할 거다. 릴리나 바센 중에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될 거야. 저번에 만났을 때를 봐선 바센이 거의 할 것 같기는 해.”
영주라는 말에 딱 질색이라는 듯 케일이 질린 표정을 지었고, 김록수는 본래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짓지 않았을 케일 헤니투스 표정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걔는 적성도 딱 영주 적성인데. 아직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케일은 김록수를 빤히 바라봤다.
김록수는 그 시선에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바센… 그래, 바센에 대해서 궁금하지? 걔 나이가 좀 걸릴 것 아냐? 나이 차가 겨우 세 살이니까. 이상하게 다가올 것 같은데. 영웅의 탄생에는 없는 내용이니까.”
“영웅의 탄생. 그 책에 대해서 알아?”
“당연하지. 눈 뜨니까 네 자취방이었고, 거기에 그 책이 있던데?”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한 김록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케일을 바라봤다.
“내가 바센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순간이 있어.”
그때는 바센이 바이올란 백작 부인과 함께 헤니투스 백작가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그때 그 아이한테 이런 말들을 했어.”
기억 속 그때를 떠올리며 김록수는 바센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케일에게 전해주었다.
“바센. 너는 헤니투스가 사람이야. 명심해. 어딜가서든 네 성은 헤니투스라고 하라고. 알겠어? 아버지 말씀 기억 못 해? 멍청이가 아니면 내 말대로 해. 네 피 안에 헤니투스가 흐른다고. 무조건 그렇게 말하고 다녀.”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다닐 수가 있겠냐고 하던 바센에게 어린 케일은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입 닥치고. 내 말대로 해. 안 그러면 넌 이 집에서 못 살아. 친척들이, 방계에서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멍청하게 굴 거야?”
흐음.
가만히 듣고 있던 케일의 입에서 깊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케일.”
김록수는 케일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나는 바센 헤니투스의 몸속에 흐르는 피가 어떤 이들에게서 온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동생이고 릴리의 오빠이며 데르트 백작의 아들이며, 바이올란 백작 부인의 아들이야. 걔는 분명 헤니투스 백작가의 정신이 흐르는 아이다.”
언뜻 간절함이 서린 김록수의 눈동자를 마주하던 케일은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답했다.
눈을 감았을 때, 케일은 기억 속 바센의 얼굴을 떠올렸다. 머리칼 색은 다를지라도. 데르트, 바이올란보다 창백한 케일과 더 닮은 구석이 차라리 많은 유약하고 고집 어린 얼굴이 그려졌다.
“바센은 내 동생이기도 하지.”
“…그래. 그거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해?”
김록수는 자신의 말에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쳐다보는 케일의 어깨에 얹은 손을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바이올란 백작 부인께 여쭤보면 될 거다. 아마 바센에게 영주 자리를 넘겨주려면 백작 부인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거야.”
김록수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내가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도, 친척들은 나를 쫓아내려고 성화인데, 백작 부인하고 바센이 꿈쩍도 안 했거든. 네가 영주 안 하려면 바이올란 백작 부인을 설득해야 할 거야.”
“아.”
케일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김록수에게 케일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헤니투스 공작가다. 백작가 아냐.”
“이야. 대단한데?”
“어. 좀. 대단한 집안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을 보던 김록수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야.”
“왜?”
“…너, 내 얼굴로 그런 미소 지으면 다른 애들이 뭐라 안 하냐?”
김록수는 케일의 말에 뭐가 문제냐는 듯 손으로 제 입꼬리를 매만졌다.
“내 미소가 어때서? 다들 팀장님이 일찍 퇴근시켜준다고 좋아하던데?”
“…너 일 똑바로 하는 거 맞지?”
“당연하지.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반드시 지킬 거야. 내 주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김록수의 말에 케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도 진짜 케일 헤니투스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케일로서 살아가는 이 세계. 이곳을 지키고 싶었다. 반드시.
“아, 그런데 내 미소가 이상해?”
김록수는 연신 제 입꼬리를 매만졌다.
“원숙미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미소 같은데?”
케일은 기가 차다는 듯 김록수가 하는 말을 들었다.
“허. 내 얼굴로- 원숙미라니.”
그는 다른 의미로 두통이 올 것 같았다. 진짜 케일 헤니투스를 만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막상 만나서 저런 소리를 지껄일 것이라고는 더 생각도 못 했다.
그때, 김록수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그럼. 내 실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뭐라고?
케일의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을 띠며 김록수에게로 향했다.
“…왜 네 나이가 마흔이지?”
분명 케일은 18살 케일 헤니투스의 몸에서 눈을 떴었다.
의문이 가득한 케일의 눈동자를 마주한 김록수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입술을 떼었다.
“최정수는 죽음의 순간, 죽음의 신에게 거래를 할 것을 제안받았지.”
살아남아 다른 세계로 갈 것인지, 아니면 김록수를 살릴 것인지.
죽음의 신은 최정수에게 선택하라고 하였고, 최정수는 자신의 죽음을 택했다.
“죽음의 신은 죽음의 순간 혹은 그에 버금가는 위기가 찾아올 때 거래를 제안하지. 나는 마흔. 그러니까 내 죽음의 순간에 죽음의 신에게 거래 제안을 받았고, 그 손을 잡았어.”
김록수. 진짜 케일 헤니투스는 죽음의 신과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죽음의 신이 내건 거래 조건은 간단해.”
케일은 이제야 밝게만 보였던 김록수의 미소와 달리 그의 눈동자 속에 어린 회한을 보았다.
그 감정은 케일과 비슷했다.
김록수는 자신의 거래 조건을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읊었다.
“최한과 처음 만났던, 이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 시작 지점으로 가는 것과 동시에 나는 김록수라는 다른 세계의 인간 몸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거래 조건이야.”
덤으로 어머니가 김록수라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 환생해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왜 그 거래를 받아들였는 줄 알아?”
김록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회한이 가득한 눈동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으음.”
그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침묵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해리스 마을을 싫어해.”
해리스 마을?
케일은 생각지도 못한 마을 이름에 해리스 마을과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렸다.
불가사의 지역 중 하나인 어둠의 숲.
그 숲과 성벽을 하나 두고 맞닿아있는 마을. 최한이 어둠의 숲을 빠져나와 처음 이 세계의 사람과 만났던 장소이자 지금은 호족과 늑대족, 그리고 케일의 동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최한은 해리스 마을 사람들이 침입자에 의해 죽고 난 후,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해리스 마을을 벗어나 헤니투스 영주성까지 찾아왔었다.
김록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해리스 마을에 다녀오신다고 했어. 그곳에 묻어둘 것이 있다고.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그저 영지에 속한 마을에 불과한 그곳에 간다고 하시는 어머니가 의아했었지.”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날이었음에도 어머니는 해리스 마을로 떠나셨어. 원래도 몸이 약하신 분이라 걱정이 많았지. 그런데.”
거기까지 말한 김록수는 잠시 힘겹다는 듯 말을 멈췄다가 이내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해리스 마을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거센 폭풍우에 마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크게 다치셨어. 그 후 백작가에서 치료를 하였지만 결국 돌아가시고야 말았고.”
케일은 마치 귓가에 들어본 적도 없는, 폭풍우가 치는 그날의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김록수는 고요했다.
“하지만 마차 전복 사고가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이유가 아니었어. 큰 사고가 아니었거든. 어머니 빼면 다친 사람도 없었고. 물론 다들 마차 사고를 연유로 어머니가 내상을 입어 돌아가신 줄 알았지.”
그는 눈을 감은 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나는 그 진짜 이유를 죽음의 신을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어. 어머니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선 눈을 뜨며 케일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이렇게 될 걸 어렴풋이 아신 것 같아.”
호수 밑바닥에 깊이 가라앉은 상자를 열 듯. 김록수는 오래된 이야기를 이제는 자신 대신에 케일 헤니투스로 살아가는 이에게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케일.”
김록수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는 고대의 힘 소유자셨어.”
…뭐?
케일은 이번만큼은 놀라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케일 헤니투스의 친모가 고대의 힘 소유자였다니. 그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영웅의 탄생.
그 이야기 안에서 주연도 조연도 아니었던, 엑스트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야기 밖에서는 그저 현실을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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