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67
666화.
죽어보겠냐는 물음에 최한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알베르를 바라봤다. 제안을 건넸던 알베르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자네 눈빛이 케일 헤니투스랑 비슷한데?”
상당히 불경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최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케일 헤니투스가 불경하다는 건 인정하나 보군.”
최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베르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시청 집무실 테라스로 향했다.
사락. 드리워진 커튼이 알베르의 손가락에 의해 살짝 걷어졌다.
“하얀 별이 보이지 않아.”
고룡 에르하벤이 여전히 퍼슬시 광장 옆에 엎드린 채 미동이 없었다.
여전히 죽은 척 중이었고, 그 곁을 로잘린과 고래족 위티라와 파세톤이 지키며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명목은 뛰어난 마법사인 로잘린이 드래곤의 상세를 살피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퍼슬시는 소강상태였다.
등급 외 괴물이자 가디언인 사자용은 중앙광장에 자리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알베르는 시청으로 돌아와 현 상황을 정리 중이었다.
“이상하군요.”
최한의 시선이 알베르가 방금까지 있었던 책상 위로 향했다.
“주변을 탐문했지만,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최한은 퍼슬시 안을 은밀히 탐색했다.
그리고 하얀 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 홀로 한 것은 아니었다.
“저도. 아치도. 라크도.”
현재 퍼슬시에 있는 인원 중 가장 감각이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 그리고 움직임에 탁월한 이들이 탐색에 나섰다.
“그리고 클로페도.”
수호 기사 클로페 세카도 와이번을 이용해 공중에서 하얀 별이나 그 수하들의 흔적을 찾았다.
물론 그들의 움직임도 하얀 별 측에게 들키면 안 되었기에 최대한 은밀했고 그 탓에 세밀한 탐문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한도 알베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있어.”
알베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에르하벤 님과 케일 헤니투스가 전력 외로 빠진 상황에서도 하얀 별이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얀 별이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고?”
그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얀 별은 봉인된 신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그러면 일단 봉인된 신을 만나야 했는데, 이는 봉인된 신이 있는 신전으로 가야 가능했다.
그리고 봉인된 신이 있는 신전으로 가기 위해선 등급 외 괴물이자 가디언인 사자용을 죽여야만 했다.
‘하얀 별은 그 모든 일을 우리가 하게 만들어서, 우리와 사자용 모두에게 큰 타격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사실을 유추해낸 케일에 의해 퍼슬시에서는 사자용과의 전투가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얀 별은 초조함을 느껴야 정상이야.’
알베르의 머릿속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얀 별이 왜 초조함을 느껴야 하는가?
‘하얀 별에게 남은 것이 몇 없어.’
묘족과 사자족을 동반한 넥스산에서 펼쳐졌던 등급 외 괴물 소환식.
이는 실패했음은 물론 사자족 왕 도르프는 드래곤 라쉴에게 그 목숨줄이 쥐어져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엔더블 왕국에서 하얀 별을 따르던 수하들도 태반이 무너졌어.’
물론 곰족 왕 사예르와 검은 흑기사 등 일부가 남아있었지만, 이전의 하얀 별이 가졌던 전력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렇기에 하얀 별은 하루라도 더 빨리 막강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싶을 터.’
그리고 그 답은 아마도 봉인된 신이리라.
그런데 하얀 별의 흔적을 이쪽에서 전혀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우리가 하얀 별 쪽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 한 거야.”
파악하지 못 하는 것과 파악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하얀 별이 땅 속성의 힘을 얻은 게 아닐까? 우리의 눈을 속일만한 힘을 말이야.”
“그럴 확률이 높죠.”
이쪽도 준비를 하고 싸우는 동안, 하얀 별도 마지막 남은 고대의 힘 5속성 중 하나를 채웠으리라.
“최한. 다른 드래곤 분들은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이지?”
“네. 혹시 저 사자용이 움직이면 안 되니, 일단 케일 님이 계신 헤니투스 영지로 간다고 합니다.”
사자용은 도도리 엄마 밀라에게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에르하벤에게는 반응했다. 공격형에 가까운 라쉴이나 도도리는 이곳으로 오지 않는 편이 사자용을 자극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밀라 님은 현재 항아리를 붙이는 중이라고 하셨던가?”
“네.”
“쯧.”
알베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언제까지고 사자용과 대치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최한의 말대로였다.
로운 왕국 수뇌부와 협력국 수뇌부 쪽에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일부를 알려놓은 상태였다.
물론 케일과 에르하벤의 상태에 대한 것은 아군에게도 숨겼다.
어디서 하얀 별의 시선이 닿아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퍼슬시 인근 영지의 영지민들에게는 이곳의 전황과 사자용의 존재는 알려졌을 거다.”
“맞습니다. 사자용과 에르하벤 님의 전투가 멀리서라도 보였을 테니까요.”
인근 영지민들에게 전해진 소식은 곧 왕국 전역으로 퍼질 터.
사자용의 존재가 왕국민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겨줄 것이다.
사자용과의 대치 상태가 계속될수록 하얀 별에게 손해이겠지만, 이쪽도 마냥 이득인 것은 아니었다.
“하얀 별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겠어.”
“그래서 죽은 척하자는 겁니까?”
알베르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래. 나, 그리고 우리 스승님까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면 하얀 별은 사자용을 없애기 위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거야.”
케일과 알베르가 바라는 그림.
“결국 제 손으로 가디언을 없애고 신전의 문을 열어야겠지.”
그것은 하얀 별과 사자용 모두 치명타를 입는 것이었다.
최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 한 번,”
똑똑똑.
“무슨 일이지?”
다급한 노크 소리에 최한은 하던 말을 끊고 문을 열었다.
“저하……!”
“정보부 책임자께서 여길 왜……?”
“이상한, 이상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문을 빠르게 열고 들어선 이는 왕국 내외 정보를 파악하는 부서의 장이었다.
그는 영상저장구와 문서 몇 장을 양손에 들고서 테라스에 서 있는 알베르의 곁으로 황급히 다가왔다.
“소문……?”
대번에 알베르의 얼굴이 구겨졌다. 안 좋은 예감이 일어났다.
“네!”
책임자는 문서를 알베르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현재 로운 왕국 퍼슬시에 절망의 신 봉인을 풀려고 하는 절망 신의 가디언이 나타났다는 소문입니다!”
어?
최한은 눈을 크게 떴다.
사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소문이었다.
가디언은 봉인된 신의 신전을 지키는 존재로, 가디언을 죽이면 신전의 문이 열린다. 오히려 절망의 신 봉인을 풀려고, 혹은 이 봉인된 신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하려는 자가 하얀 별이었다.
“절망 신의 봉인이 풀리면, 세상은 절망으로 뒤덮이고 서대륙은 파멸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또 사실이었다.
“따라서 신의 봉인을 풀지 않고, 이 서대륙을 지키는 방법은 저 가디언을 없애는 것이라고……!”
정보부 책임자는 말을 쏟아내다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로운 왕국을 중심으로 서대륙 전역에서 이 퍼슬시로 병력을 집결시키는 중이며, 봉인된 신을 믿는 이들이 서대륙 곳곳을 공격하며 로운 왕국을 중심으로 한 서대륙 연합군을 막아서려 한다고… 그런 내용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내 차분해졌다. 아니, 이는 차분해졌다기보다는 긴장감 어린 떨림이 섞인 목소리였다.
“더불어… 영웅인 케일 헤니투스가 드래곤까지 이 전투에 끌어들였으며, 케일 헤니투스는 현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이는 저 봉인된 신의 가디언과 싸우기 위함이라고.”
책임자는 자신이 건넨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왕세자의 서슬 퍼런 눈빛을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 가디언을 없앨 확률이 가장 높은, 어쩌면 유일한 이는 케일 헤니투스뿐이라고. 그러니 가디언과 싸울 우리의 영웅을 위해 기도하자고.”
“무슨 그런-”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케일 헤니투스 경께서 기꺼이 서대륙의 평화를 위해 가디언과 싸울 것이라고. 지금 믿을 사람은 그뿐이라고. 소문에 그런 내용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
최한은 탄식을 터트렸다.
“이건, 이 소문은 케일 님께 싸우라고 강요하는, 압박하는 내용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최한의 말에 정보부 책임자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가디언 사자용과 봉인된 신.
이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엄연히 달랐다. 그것도 문제였지만 최한이 보기에 더 큰 문제는 케일만이 유일하다고, 그에게 싸우라고 압박하는, 강요하는 내용이었다.
책임자는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소문은 현재 서대륙 전역에 아주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서대륙 곳곳을 침략한 이들을 처리하느라, 퍼슬시로 보낼 병력을 정리하느라 각 왕국들이 정신이 없는 틈새에 급속도로 퍼진 소문이었다.
“…이 영상저장구는 무엇이지?”
알베르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책임자는 제 손에 들린 영상저장구를 재생했다. 그는 통신 전문 마법사이기도 했다.
“소문과 함께 퍼지고 있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서대륙 곳곳에 이 영상저장구가 나돈다고 합니다.”
영상저장구에는 골드 드래곤이 사자용과 싸우는 모습이, 그리고 결국 드래곤이 패배하며 추락하는 내용이 짧게 짧게 불연속적으로 담겨져 있었다.
최한의 입이 열렸다.
“…누군가 퍼슬시 어딘가에서 숨어서 찍은 듯한 모습이군요.”
그 누군가는 하얀 별일 터.
최한의 눈에서 서서히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책임자는 이를 모른 채 알베르의 눈치만을 보았다.
“…드래곤도 지는 싸움이라고. 결국 불가능했던 재앙과도 같던 일들을 이겨내 온 용사만이… 케일 경과 그의 동료들만이 제대로 싸울 수 있다고.”
소문을 들은 이들 중 몇몇은 영상을 보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 확신했을 것이며 소문은 들불처럼 더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대륙의 왕국들이 최고의 강자들을 모아 힘을 합쳐 저 가디언을 없애는 데 모든 것을 다 쏟을 것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그저 뒤로 숨는 왕국이나 강자들은 없을 것이라고. 그리 말합니다.”
최한은 저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소문이 거짓이라고, 잘못되었다고 해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소문대로 되면 사자용과 우리가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서대륙의 최고라 할 수 있는 병력들을 모두 쏟아부어서요! 그리되면, 잘못하다간- 잘못하면-”
“죽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최한은 자신 대신에 말을 이어준 이를 바라봤다.
“싸울 필요도 없는 이들이 싸우고, 그리고 이득은 하얀 별이 모두 보고.”
알베르의 눈동자는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정보부 책임자에게로 향했고 그 시선을 받은 책임자는 입을 열었다.
“소문을 바로잡고 해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역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영상 내용이 사실이며 소문의 일부는 사실이니까요.”
알베르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고, 결국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
하지만 정보부 관리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웃음 속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알베르는 서서히 웃음을 그치고는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얀 별 이 새끼가… 머리를 쓰는군.”
우리가 하얀 별을 끌어들여 사자용을 대신 없애게 하려 생각할 동안, 이놈도 우리를, 아니, 서대륙 곳곳의 힘을 끌어들여 대신 싸우게 하려 하고 있었다.
“꽤 똑똑해졌어.”
엔더블 왕국에서 케일은 조각상 두 개를 부수며 온몸에 상처가 나고 다량의 피를 쏟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것을 곰족 왕 사예르가 보았다. 그는 분명 이를 하얀 별에게 보고했을 터.
“…믿지 않아.”
그러나 하얀 별은 현재 케일 헤니투스가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문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서 나오라고.
네 차례라고.
서대륙인들의 간절한 바람이 보이지 않냐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리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서류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가장 아래에 쓰인 내용은 무엇이지?”
가장 아래에 적힌 내용?
최한은 그 내용이 궁금해 다가가 알베르가 가리킨 곳을 읽어 내려갔다.
“…혹 가디언을 없애도 절망 신을 막아서지 못한다면. 그때는 그 절망 신을 막아서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 사람은 신이 될 자이며, 동서대륙을 구원할 유일한 영웅이자 동시에 이 땅의 신이 될……!”
최한은 그 뒤는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황급히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알베르의 입꼬리가 다시금 올라갔다.
“하얀 별의 노림수군.”
최한의 얼굴이 서서히 차분해져 갔다.
“하얀 별은 우리가 가디언을 죽이며 전력을 소비하게 만들고. 그 뒤에 봉인된 신을 이용하여 힘을 얻거나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군요.”
최한은 그 뒤에 벌어질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리되면, 소문의 내용대로 하얀 별은 유일한 영웅이자 이 땅의 신이 될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 소문은 진실 혹은 예언이 되겠군요.”
하얀 별이 그간 해온 짓들이 있지만, 결국 그는 서대륙을 구한 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 소문을. 이 판을 만든 이유가 이거였어.”
알베르는 하얀 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긴 신이 될 자라면 열렬한 추앙을 받아야겠지.”
알베르는 손가락으로 서류 위의 글자를 쓰다듬었다.
“이 땅의 신이 될 자라.”
그의 시선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그럼 우리는 그 신이 될 자를 없애는 존재가 되는 건가?”
“당연히, 그런 존재가 될 겁니다.”
망설임 없는 최한의 대답에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 했다.
삐이이–
그때, 강하고 짧은 신호음이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무실 책상 위 새로운 영상통신구로 향했다. 알베르의 손이 영상통신구를 향했다.
그곳엔 짧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보부 책임자는 이를 보고 동공이 흔들렸다. 어느 누가 왕세자께 저리 말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속내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피식.
알베르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한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정보부 책임자는 이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가만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부드러운 미소를 넘어 점점 화사한 미소를, 케일 헤니투스와 라온이 보았다면 뭔 짓을 하려고 그런 미소를 짓냐고 말할 만한 미소를 지으며 왕세자가 입을 열었다.
“하얀 별과 다른 의미로 정신이 나간 인간이 우리에게 한 명 있지.”
“…네?”
의아해하는 정보부 책임자와 달리 최한은 탄성을 흘렸다.
“아!”
동시에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케일이 보았다면 순한 미소라고 할 만한 미소였고, 라온이 보았다면 왜 점점 왕세자랑 비슷한 미소를 짓냐고 할 만한 미소였다.
“클로페 세카……?”
최한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 순간.
“그래. 클로페 세카 경을 불러오도록.”
알베르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뒤틀렸다.
“아까 전투할 때 보니, 혼자 뭔가를 찍고 있던 것 같더군. 그를 데려와.”
하얀 별이 무슨 노림수가 있든, 무슨 판을 벌이든.
“판을 망가뜨리는 데는 미친놈만 한 게 없지.”
알베르는 결코 순순히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판을 엎어버리는 것이라면 몰라도.
***
세계수가 있는 호수. 절망의 호수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마을.
북부의 끝자락에 찾아온 겨울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꽁꽁 싸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가득했다.
아니, 불안감이었다.
“…세상에 파멸이 내려올 것이야!”
“용이, 용이 쓰러졌다고 해!”
“…신이라니. 절망의 신이라니!”
“로운 왕국에 절망의 신과 그 신의 수호자가 있다고 해!”
투명화한 라온이 날개를 파닥였다.
-인간아, 이게 무슨 소린가?
사람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용사님도 지금 감감무소식이라더군.”
“빌어먹을…! 용사님의 방패라면-”
투명화한 라온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인간아, 용사라니? 이상하다! 거기다가 방패라니!
라온은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또 다른 이상함을 발견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조용하다.
자신의 뒤에 자리한 케일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을 인근 숲으로 텔레포트 해온 바로 직후, 들어선 마을. 케일과 일행들은 로브를 쓰거나 혹은 염색 마법으로 머리색을 바꾼 상태였다.
-인간아, 뭐 하나?
조용한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린 라온은 케일이 일기장을 펼쳐 든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일기장에 새겨진 글귀를, 주르 템스가 남긴 말을 보고 있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있는데.”
왠지 뒤통수가 서늘했다.
재앙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크게 보였다.
그는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내 주위에… 최한 있는데…….”
약하고 어리지는 않지만, 순한 놈이 하나 있었다.
문득 케일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하얀 별 잡고 나면 쉴 수 있겠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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