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68
667화.
일기장에 새로이 새겨지는 글자가 당황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주르 템스는 흔들림을 없앤 채 당당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렇겠지요?
케일은 이 몸의 외가인 템스가에 대해 언젠가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강하게 다짐했다.
‘당분간은 그냥 알아보지 말자.’
케일은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미리 밑밥을 깔아두기로 하였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함께 북부로 온 일행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론, 비크로스. 그 둘의 품에 각각 안긴 온과 홍.
그리고 투명화한 라온과 또 다른 용인 라쉴.
“야. 착한 인간이 말하잖아. 왜 자꾸 뒤척여? 뒤지고 싶냐?”
마지막으로 라쉴의 손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커다란 포대 자루 속 사자족 왕 도르프까지.
이들이 이번 일정의 일행이었고, 도도리는 헤니투스 영지에 남아 혹시 퍼슬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면 급히 도와주러 가는 역할을 하기로 하였다.
‘아쉬워! 나도 가고 싶은데!’
분홍 용 도도리가 상당히 아쉬워했지만, 용 하나는 퍼슬시 가까이 있어야 했고 반삭발 드래곤 라쉴은 결단코 케일 없이 에르하벤, 밀라가 있는 퍼슬시에 가기 싫다고 하였다.
‘…싫다. 아무리 위대한 나라도, 그런 꼰대, 아니. 아무튼 너랑 같이 갈 거다. 그리고 알지? 내가 말한 꼰, 뭐시기는 실수라는 거? 잊어버려라. 크흠.’
도도리와 라온이 황당하다는 듯 라쉴을 쳐다봤지만, 이내 도도리는 그 뜻을 존중했다.
‘하긴 우리 엄마가 좀 무섭지.’
그 결과로 이번 일정은 라쉴이 함께하게 되었다.
도르프를 제외한, 라쉴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이상하군.’
특히 케일을 바라보는 론 몰란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의 케일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복잡해 보였다.
‘아니. 두려움인가?’
복잡함 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는 두려움이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했다. 마치 두려움이 일어나지만 이를 굳건한 심지로 다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론은 케일의 이어지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 쉬면서 농사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거다.”
참고로 케일이 말하는 한동안은 최소 5년이었다.
그리고 농사에 대해 고민해본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일단 농사도 뒤로 미루고 쉴 것이란 의미였다.
더불어 그가 말하는 농사는 텃밭 수준으로, 씨앗을 몇 개 뿌리고 만다는 뜻이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 거야.”
동시에 론은 주변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지금껏 케일 공자님이 다 막아주셔서 서대륙이 평화로웠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
“…봉인된 신의 가디언이라니……! 끔찍해!”
“걱정 말라니까. 늘 그렇듯, 케일 공자님과 그 동료 분들이 다 해결하실 거야.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기만 하면 돼.”
비크로스는 저도 모르게 옆에 선 아버지 론을 바라봤다. 론의 입꼬리는 인자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케일의 어깨 너머 저 뒤편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왜 이런 소문이 퍼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골치 아프게 되었군.’
비크로스는 사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내용의 소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저러는 것이야 이해한다만.’
신. 그리고 신을 지키는 가디언.
서대륙의 멸망.
이 모든 자극적인 단어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어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었다.
이를 비크로스도, 론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케일의 사람들이었다. 마냥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비크로스는 론과 마을 주변을 바라보다가 케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 거야.’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인, 세상은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비크로스에게는 삼시세끼 챙겨 먹이지 않으면 비실비실한 게 가장 큰 문제인 헤니투스가 첫째 공자, 케일 헤니투스.
비크로스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문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케일의 시선이 비크로스에게로 향했다.
“뭔 소문?”
모른 척 되묻는 모습에 비크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보 같긴.’
몇 년 전, 어쭙잖게 술을 들이마시며, 망나니짓이라고 하찮은 짓을 해댈 때부터 케일 헤니투스는 참 바보 같은 인간이었다.
그때는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건만, 관심을 두고 지켜볼수록 참 바보다.
“…음?”
그 순간, 케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비크로스가 그 모습에 왜 저러나 의문을 가지기 전, 케일은 일기장을 덮고는 품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네?”
케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재밌네?”
그 모습에 비크로스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정말 몰랐나 보군.’
비크로스의 눈동자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서늘하게 가라앉아갔지만, 케일은 이를 모른 채 라쉴에게로 다가갔다.
“일단 근처 여관에 들어가도록 하죠.”
불의 정령의 계약자. 정령사인 솔리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관.
정령사는 현재 엘프들과 함께하고 있어 가면 할머니만을 볼 수 있겠지만, 그곳이라면 케일 일행을 위한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이 존재할 터.
툭툭. 케일은 신발로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는 포대 자루를 살짝 찼다.
“알아볼 것들이 몇 있으니까.”
포대 속 도르프가 덜덜 떠는지 포대 자루가 잘게 떨렸다.
***
-그러니까. 세계수가 있는 호수 인근 숲의 마나 궤도가 엉망이다?
“으음. 그러니까, 현재 서대륙 전체에 하얀 별이 퍼트린 소문이 돈다, 이 말입니까?”
영상통신구 화면 속 알베르.
그리고 그와 마주한 케일.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말을 내뱉었다.
“맞다, 왕세자야!”
라온은 여관 주인 할머니가 마련해준 가장 큰 방에서 투명화를 푼 채, 화면 속 알베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가 바로 세계수에게 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텔레포트 좌표가 잡히지 않았다! 그 범위는 절망의 호수가 있는 숲 전역!”
텔레포트 좌표가 잡히지 않는 경우 중 가장 의심해볼 만한 것은 마나 궤도 혼란으로 인한 좌표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마나 혼란 장치입니까?
이전에도 몇 번 케일 쪽에서 혹은 하얀 별 쪽에서 사용하며 서로에게 타격을 주었던 마법 장치였다.
“그럴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일단 근처 마을로 이동해 와서 여기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숲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소문이 퍼지고 있고, 쓸 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새 주변을 탐방하고 온 론이 라온의 말을 보충했다.
“저하.”
케일은 생각을 끝마쳤다.
“일단 세계수를 최대한 빨리 만나고 난 후에, 바로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소문은 내 쪽에서 알아서 어느 정도 수습하도록 하지.
알베르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세계수를 만나고 오면 하얀 별의 환생을 끊어낼 단서를 확실히 얻는 건가?
“네.”
이미 케일은 주르 템스가 남긴 일기장에서 하얀 별의 환생을 끊어낼 방법을 알아내었지만, 아직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다.
라온만이 묘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케일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리고 도르프를 잡았다면서?
“흐.”
케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알아서 잘 처리하겠군.
알베르는 떨떠름한 얼굴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소식이 생기면 서로에게 바로 보고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영상통신구를 껐다.
갑자기 황급히 끄는 모양새에 케일이 의아해할 때쯤, 꺼지는 영상통신구 너머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딴 거짓된 전설은 절대! 용납할-
음? 클로페 세카?
많이 맛간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영상통신구는 끊겼다.
‘우리가 북부에 와 있으니, 그것 때문에 부른 건가?’
케일은 알베르가 클로페 세카를 부를 일이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내 그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미래, 케일은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작전이 클로페 세카를 만나면 얼마나 미친 짓이 되는지 몰랐을, 그때의 알베르 크로스만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막아야 했다고. 그는 후회를 하다못해 알베르 크로스만에게 술주정을 해댔다.
그리고 미래의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미친놈인 줄 몰랐다.’라고 말하며 사과했다.
‘이상하네.’
하지만 현재의 케일 헤니투스는 그저 조금 서늘한 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바로 옆방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이 열렸고, 그곳엔 라쉴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시크한 표정으로 케일을 반겼다.
케일은 상냥한 미소를 라쉴에게 지어 보이고는, 그 미소에 흡족해하는 라쉴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르프.”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도르프를 가만히 내려 봤다.
“참, 꼴이 말이 아니야.”
얼마나 라쉴에게 얻어 처맞았는지 사자족 왕 도르프의 몰골은 처참했다. 거기다가 광폭화까지 사라지자 사자족 치고는 마른 체격 때문에 더 꼴이 엉망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이 알 바는 아니었기에 그는 무심하게 도르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상하네.”
정말로 이상했다.
헤니투스 영지에서 만난 후로.
“너 왜 자꾸 내 시선을 피하지?”
케일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도르프는 움찔하며 케일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 새끼가 덜 처맞았나?”
라쉴이 툭 내뱉은 말에 도르프가 다시 움찔했지만, 그는 케일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야 한 편에 케일의 신발이 끼어들었다.
케일은 도르프 바로 앞에 섰다.
“지금부터 질문을 던지도록 하지.”
세계수가 먼저인 상황.
도르프에게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
“지금 답하지 않아도 좋다.”
“그래. 언젠가 내가 그 입을 열게 해줄 테니까.”
라쉴이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라쉴 님. 역시 위대하시군요.”
“이쯤이야.”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제어하는 라쉴에게서 시선을 돌린 케일은 고개 숙인 도르프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은 어디 있지?”
첫 번째.
“하얀 별은 봉인된 신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두 번째.
“하얀 별은 또 다른 땅의 힘을 얻은 건가?”
세 번째.
여기까지가 하얀 별에 대한 질문이었다.
“동료는 얼마나 더 있나?”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그리고 너는 어떻게 어둠의 정령을 잡아먹으며 어둠 정령 힘을 가지게 된 것이지?”
도르프에 대한 질문까지.
케일의 시선이 라쉴에게로 향했다.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믿으라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케일과 다른 일행들이 세계수를 만나러 간 사이에 라쉴이 도르프에게서 답을 알아낼 것이다.
‘걱정 마라. 내가 다 알아낼 테니.’
라쉴이 함께 오는 동안 호언장담을 한 부분이었다.
자존심이 특히 강한 용은 그런 쪽에 있어 허튼말을 안 하니, 믿어도 될 터.
‘바로 세계수에게 가야겠군.’
케일은 미련 없이 도르프와의 짧은 만남을, 일방적인 대화를 끝내려 하였다.
“붉은-”
그때였다.
도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도르프는 경악에 가득 찬 눈동자로 케일을 바라보았다.
“‘붉은’이 무슨 뜻이지?”
여전히 케일의 무심한 눈동자는 그런 도르프를 아무 감정 없이 비추었다.
“어둠 정령을 잡아먹는 방법.”
도르프는 경악과 불신에 사로잡힌 표정이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붉은빛을 지닌 자가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붉은빛을 지닌 자?
케일은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그자가 누구지? 누구길래 너에게 어둠 정령을 잡아먹는 방법을 알려준 거지?”
“…내가 아주 어릴 때.”
도르프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저절로 생각나 괴롭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나는 사자족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당했다.”
“그딴 사연에는 관심 없다만.”
케일은 도르프의 과거, 그의 사연 같은 것에는 조금의 관심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들어야 할걸?”
도르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것은 비웃음과도 같았다.
“주군을 만나기 전이니까.”
“…들어야겠군.”
케일은 의자로 가서 앉으며 도르프에게 시선을 두었다.
“사자족 내에서 겉돌던 나에게 어떤 인간이 부족이 머물던 곳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로브로 꽁꽁 싸맨 그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다만 석양처럼 빛났다가 점점 핏빛처럼 짙게 변해가는 붉은빛을 뿜어내는 자였다.”
도르프는 지그시 눈을 감고서 그 아름답고 황홀하게 빛나던 붉은색을 떠올렸다. 수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잊을 수가 없었던 그 선명함.
“그자가 나에게 어둠을 다루는 힘을, 어둠 정령을 사냥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냥.
그 단어가 케일의 귓가에 가시처럼 틀어박혔다.
단생자를 사냥한다는 자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 붉은빛은.”
도르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 케일을 바라봤다.
“…오늘 너를 덮쳤던 그 빛과 비슷하더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새로이 말했다.
“아니, 같다. 같았어. 그 선명한 붉은빛은.”
찝찝하다.
케일은 떨떠름한 것을 넘어서서 찝찝했다. 오늘 밤에 죽음의 신이 꿈에 나와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할 것 같은, 그런 아주 기분 나쁜 찝찝함이었다.
“더 할 말 없나?”
“…….”
도르프는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라쉴 님. 시간이 없어서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다 알아놓도록 하지. 위대한 이 몸이 못 할 일은 없다.”
“부탁드립니다.”
케일은 찜찜한 기분을 애써 밀어내며 문으로 향했다.
“어쩌면.”
케일이 문고리를 돌리기 전, 도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이 모든 건-”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에 내뱉은 말도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심코 튀어나온 말 같았다.
달칵.
케일은 미련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방 밖으로 나간 후,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재밌어.”
침묵을 깬 것은 라쉴이었다.
그는 도르프에게로 다가갔다. 끼익 끼익. 조금 낡은 나무 바닥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다시 고개를 숙인 도르프는 제 위로 드리우는 그늘을 느꼈다.
그 순간, 용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밀이 많은 건 아주 재밌지. 하지만 용은 이 세상의 수호자이자 세상의 비밀을 탐구할 자격을 가진 자 중 하나.”
그때였다.
“…허억……!”
도르프의 온몸이 떨려왔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드래곤 피어……!’
평소와 달리 상당히 다치고 지친 상태의 도르프. 그에게만 쏟아진 드래곤 피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겠다는 듯 전신을 압박하는 아우라에 도르프는 고개를 들고 싶어도 들 수가 없었다.
“참고로 나는 다른 녀석들과 결이 전혀 달라.”
고개 숙인 도르프의 귓가로 라쉴은 허리를 숙이고선 속삭였다.
“착하지 않다는 소리야.”
사나운 용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그가 만든 그늘과 함께 도르프를 뒤덮었다.
***
세계수가 자리한 절망의 호수.
그곳으로 향하는 숲의 입구.
“인간아! 여기서부터 마나가 엉망으로 뒤섞여 있다!”
겨울의 숲은 바람이 불지 않는 한, 고요했다.
북부 끝에 자리한, 앙상하게 메마른 가지와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가진 나무들이 뒤섞인 광활한 숲.
“도련님.”
케일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기이한 숲을 바라보았다.
“숲에 최소 수백 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숲으로 들어가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그들은 적으로 추정됩니다.”
마나가 엉망으로 뒤섞인 숲에서 숨죽인 채 케일을 주시하는 수백여 명.
“적이라.”
그 정체가 모두 적이라면.
“그렇다면 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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