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69
668화.
“누구 마음대로 치운다는 것이지?”
바스락.
메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갑옷을 입은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살아있었네.”
또 다른 은빛 갑옷의 사람도 뒤를 이어 숲의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케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리며 그 두 기사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한쪽은 알겠고, 한쪽은 누군지 모르겠군.”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너는 후베샤 백작의 수족인가 보군.”
“주군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마라.”
하얀 별이 왕으로 군림하는 엔더블 왕국.
그곳에 존재하는 귀족 위를 받은 이들 중 검은 갑옷의 기사, 후베샤 백작. 그녀는 특이한 검은 말을 타고선 검은 기사들을 이끌었다.
그녀의 기사들은 모두 투구를 써서 얼굴을 가렸는데, 눈앞의 기사는 투구를 쓰지 않고 있었다.
“후베샤 백작 홀로 어디 있나 했더니, 이곳에 있었군.”
케일이 뱀파이어 나르 공자 연기를 했을 당시, 그나마 나르 공자를 아이로서 안쓰러이 여기던 후베샤 백작.
그러나 이번 하얀 별 측과의 부딪침에서 그녀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백작은 어디 있지?”
“지금 그게 중요할까?”
케일의 시선이 검은 기사가 아닌 은빛 기사에게로 향했다. 유들유들한 입꼬리가 묘하게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고, 그에 은빛 기사의 입꼬리는 더욱더 올라갔다. 이 상황이 못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눈동자가 반짝였다.
“서대륙 유명 인사를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
“동대륙에서 왔나?”
“그래.”
현재 하얀 별과 협력을 맺은 동대륙 몇몇 왕국의 병력이 서대륙 곳곳을 침략하고 있었다.
은빛 기사의 녹색 머리칼이 삭막한 숲과 어울리지 않게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케일은 생각하는 바를 진심으로 내뱉었다.
“딱히?”
“…뭐? 진짜로?”
기사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케일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굳이 궁금해해야 하나?”
“…아니…….”
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 소드 마스턴데?”
한껏 올라간 입꼬리는 기괴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안 궁금해?”
올라간 입꼬리 밖으로 튀어나온 혀가 입술을 축였다.
“세즈 왕국 소식은 들었어. 흐흐, 그쪽이 넥스산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세즈 왕국 넥스산. 케일이 조각상 몇 개를 포용한 곳이자, 일행들이 그 왕을 납치해서 들고 날랐던 곳이었다.
용병왕 버드와 호족 가샨이 남아서 뒤처리 중이었다.
‘세즈 왕국을 중심으로 하얀 별과의 동맹을 끊게 만들 예정이었지.’
케일이 아는 그들이라면 충분히 대화든, 협박이든 나름의 방안으로 잘 해결할 터.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리보다 하얀 별이 조금 더 빨랐지.’
사자족 왕 도르프를 통해 이미 넥스산의 소환이 실패한 것을 안 하얀 별. 그가 한발 앞서 행동한 탓에 엔더블 왕국에서 곰족 왕 사예르가 조각상 소환식을 펼쳤다.
그 결과로 두 마리 등급 외 괴물을 퍼슬시로 보냈고 동시에 하얀 별의 병력과 동대륙 병력이 서대륙 곳곳을 공격하며 퍼슬시로 화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떨지 모르겠군.’
하얀 별이 새로이 퍼트린 소문으로 보아, 하얀 별은 이제 서대륙의 핵심 전력이 퍼슬시로 모여 자신을 대신해 신전의 가디언을 없앴으면 할 것이다.
그리고 동대륙 각 왕국은 이제 버드와 가샨이 중심이 돼 세즈 왕국을 시작으로 동맹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영향을 미칠 터.
‘조피스가 있는 몰든 왕국, 용병 길드가 하얀 별에 반한다고 그 뜻을 명확히 할 테니까.’
그 영향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동대륙 몇몇 왕국들은 약간 주춤하는 행태를 보일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서대륙 각 왕국에서 진압하지 못한 남은 동대륙 병력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터.
‘그 다른 곳이 세계수가 있는 곳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얀 별은 유독 세계수와 관련된 일들을 많이 일으켰다.
가짜 세계수를 만들려고 하거나, 혹은 세계수가 있는 곳을 공격하려고 하거나.
‘…설마 하얀 별 그놈, 환생자를 없앨 방법이 불멸자라는 걸 아는 건가?’
아니다.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왜 말이 없지? 케일 헤니투스는 말빨이 좋다고 들었는데. 내가 소드 마스터라고 하니까 놀란 거야, 응? 그런데 최한이라는 녀석은 없어? 나랑 같은 최연소 소드 마스터 놈을 만나보고 싶었,”
“좀.”
“응?”
“입 좀 다물어라.”
“…뭐?”
저 풀 머리 놈이 시끄러워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케일은 다시금 생각을 이어갔다.
‘하얀 별은 아직 모르는 게 맞아.’
불멸자. 환생자.
그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게 틀림없었다.
‘만약 알았다면 천년의 시간 동안 가장 먼저 한 일이 세계수를 없애는 일이었을 테니까.’
약점을 남겨두고서 절대적인 존재가 되려고 한다?
하얀 별은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어수룩한 놈이 아니었다.
‘가짜 세계수를 만들었을 때처럼, 세계수가 보는 모든 흐름을 보려고 했다는 게 차라리 맞겠어.’
세계수는 보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다만 말할 수 없는 제약이 있을 뿐.
하얀 별의 의도는 차라리 그쪽으로 보는 편이 맞았다.
“오만하네.”
음?
갑작스러운 말에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기사의 눈동자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위에서 영웅으로 떠받들어 주니, 본인이 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아주 마음대로 굴어.”
녹빛 머리칼 기사는 자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케일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심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뭐라는 거야?’
물론 케일은 동료도 아니고, 별 관심도 없는 놈의 감정 따위는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케일의 표정이 자연히 뚱하게 변해갔지만, 기사의 눈동자에는 그저 저를 같잖게 여기는 눈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케일 헤니투스. 세상은 네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세상은 네 뜻대로 굴러가지 않아. 네가 지금 아무리 영웅으로 추대 받더-”
“뭔 당연한 소리를 계속 하고 있어?”
기사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멈칫했다.
반면에 뭔 소리를 하나 듣고 있던 케일은 슬슬 짜증이 피어올랐다.
‘내가 다 알고 있으면 이러고 살겠냐? 그냥 조용한 데 숨어들어가지고 조용히 살지?’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가면 지금 이런 꼬라지겠어? 응? 내가 피 토하고, 기절하면서 살겠냐?’
케일은 굳이 입 밖으로 내봤자, 갑갑한 현실밖에 느껴지지 않을 말들을 애써 삼켰다.
“하!”
그러나 상대방은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터트렸다.
“오만한 놈.”
녹색 머리칼의 기사는 은빛 갑옷과 어울리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얼음처럼 차가운 은빛을 지닌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서 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후베샤 백작의 수족인 검은 기사도 그를 응시했고, 은빛 갑옷 기사는 살짝 눈짓하고는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나는 아보도 페이스더 2세. 신비의 땅, 아만의 검.”
스스스-
숲의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바람이 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백여 명이 움직이자 숲이 흔들린 것일 뿐.
아보도 페이스더. 그는 조금은 가볍게 보이던 기색이 모두 사라지고, 손에 쥔 시린 눈을 닮은 은빛 검처럼 결코 부러지지 않을 서늘함을 풍겼다.
“오늘 케일 헤니투스. 너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끝날 것이다.”
더 이상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요만이 남아, 숨 막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론 몰란. 가만히 케일의 뒤에 서 있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고요한 숲으로 향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숲의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적의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예군.’
론은 동대륙 아만 왕국에 대해 떠올렸다. 기사의 왕국인 세즈 왕국에 비하면 검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신비의 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신비로움을 지닌 왕국이었다.
‘하얀 별의 ‘암’이나 다른 어정쩡한 놈들에 비할 수 없이 강해.’
특히 가볍게만 보이던 녹빛 머리칼의 기사. 아보도 페이스더 2세. 그는 검을 뽑은 후부터는 케일을 향해 모든 집중을 쏟고 있었다.
그간 조금은 케일을 가볍게 여기던 다른 적들에 비하면 작은 방심조차 보이지 않는,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또한 전투 경험도 몇 번 있었던 듯, 어려 보이는 모습에 비해 전투에 대한 익숙함도 보였다.
‘동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라고 했던가?’
확실히 그럴 재목이었다.
‘다만 아직은 아니야.’
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도련님보다 못하군.’
케일 헤니투스는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 자다. 요 몇 년, 짧은 시간 동안 그보다 많은 전투를 하고, 다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이는 없을 것이다.
론은 그런 확신을 내리며 케일의 등을 본 순간.
“하아.”
론이 응시하고 있던 등의 주인,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군. 일일이 상대할 시간 없다.”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냥 뚫어.”
짧게 말했지만, 그의 동료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뚫어라.
그 뜻이 동료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순간.
휘이이이-
한 줄기 바람이 케일을 스쳐 지나갔다.
케일은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저를 지나친 이의 등을 바라보았고,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갑갑했나 보군.”
케일은 손을 뻗었다.
휘이잉.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 케일의 소용돌이 바람이 그를 스쳐 앞서간 이의 발에 맴돌며 그 사람의 전진에 한 손 거든 순간. 아보도 페이스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그의 입에서 뭐라 말이 더 나오기도 전, 거대한 대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콰아앙—!
거대한 대검과 아보도의 은빛 검이 부딪치며 일대에 굉음을 퍼트렸다.
대검은 산이라도 쪼개버릴 듯한 기세를 지녔지만, 그 힘은 그저 그런 강함 정도일 뿐. 소드 마스터 아보도는 대검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가장 약한 놈이……!”
북부의 겨울처럼, 한 톨의 따스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의 남자. 비크로스는 저를 노려보는 아보도를 향해 말했다.
“나 혼자면 약하겠지.”
그 순간, 비크로스와 아보도를 스쳐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괜찮구나.”
론은 덤덤한 한마디를 아들에게 남기며 그를 지나쳤다. 그의 양손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단도가 각각 들려 있었다. 그의 몸은 점점 숲의 그림자 속에 동화되듯 사라져갔다.
“막아라!”
아보도의 외침과 함께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퍼지며 숲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은빛과 검은 갑옷을 각기 입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홍.”
“알았다, 누나!”
케일의 앞으로 뛰쳐나온 온과 홍. 두 고양이들에게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챙!
“안개를 피해라. 닿지 않으면 독에 당하지 않아.”
아보도는 가볍게 비크로스의 대검을 밀어뜨리고는 한 번 더 명령을 내렸다. 예상했던 바라는 듯 차분했다.
그러나 아직 그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동생 차롄데!”
“라온.”
홍과 온이 차례대로 한 존재를 불렀다.
투명화를 푼 채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통통한 볼살의 주인공.
“인간 말에 동의한다! 시간 없다! 그냥 뚫자!”
라온의 주위로 검은 안개처럼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였다.
“마법에 대비해!”
아보도가 한 번의 명령을 더 내리며 땅을 박차고 라온과 케일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 때.
콰아아앙!
“크윽.”
짧은 신음과 함께 비크로스가 그 앞을 막아서고 다시 한번 대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검은 안개와 붉은 안개가 서로 닿았다.
온과 홍, 라온의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갔다. 케일을 빼다박은 듯한 미소였다.
라온은 흥에 겨운 듯 외쳤다.
“오랜만이다!”
콰아아아아—
그 말과 함께 굉음이 터지며 적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아보도는 저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뱉었다.
“저런……!”
토네이도처럼, 거대한 소용돌이 바람이 피어올랐다. 붉은색을 품은 소용돌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을 일으켰다.
하늘을 꿰뚫어버릴 듯 맹렬한 바람에, 모든 이들의 머리칼이 거칠게 나부꼈다.
‘검은 용의 마법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묘족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보도는 셋의 힘이 합쳐진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작은 자연재해와 같은 모습에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다인 전투에 최적화된 힘이다.’
아보도는 비로소 왜 케일 헤니투스가 소수의 인원으로 이곳을 거리낌 없이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일대일로는 약한 축인 묘족과 몰란 부자. 하지만 저들과 라온의 힘이 합쳐지면 시너지가 상당했다.
휘이이이이—
숲을 휩쓸어버릴 것 같은 소용돌이 바람.
아보도는 결국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저게 무슨-!”
붉은 고양이 홍은 그 의문에 친절히 답했다.
“수면독, 마비독인데!”
최소 한 시간은 잠들 수면독. 그리고 두세 시간은 거동이 힘들 마비독.
치명적인 독이 아닌지라, 자연히 해독되기 마련이었으며 딱히 부작용도 없는. 어떻게 보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잠깐 상대를 멈추게 할 정도의 힘을 지닌 독이라 볼 수 있었다.
홍이 체내에 가진 독 중 가장 약한 독이었지만, 대신 약하기에 가장 많이 뿜어낼 수 있는 독이었다.
“다 자고 쉬면 되는데!”
홍의 말을 듣고 있던 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온은 홍의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평균 9세가 빠르고 간편하게 길을 뚫는 방법은 일일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이 아닌, 독안개 폭풍으로 적을 잠깐 멈추게 하는 것. 그리고 세계수가 있는 호수까지 가는 것이었다.
물론 그 폭풍은 절망의 호수가 있는 숲 일대를 뒤덮을 만큼, 숲 밖에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역시, 똑똑하군.”
“쓸모없는 피를 흘리지 않는 편이 좋지.”
“…흠.”
케일과 론, 비크로스. 세 사람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다 생각이 있었군.”
아보도 페이스더 2세. 녹색 머리칼 기사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비크로스의 대검과 맞닿은 자신의 검에 힘을 주었다.
“크윽!”
비크로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는 사라졌다.
170cm를 갓 넘긴 호리호리한 체격의 아보도 페이스더 2세. 그의 검은 오러를 피워 올리지 않았음에도 괴력이라고 칭할 만한 힘이 담겨있었다.
아보도는 붉은 소용돌이를 응시하며 차분히 내뱉었다.
“세상에 베어내지 못할 것은 없다. 바람이라도 베어내면 그만.”
그것이 신비의 땅에 뿌리내린 페이스더가의 힘.
그는 자신의 말에 놀란 듯 케일 헤니투스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았다.
“…응?!”
그리고 적인 라온과 온, 홍이 멍청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당황한 듯한 비크로스의 목소리에 아보도는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은빛 검에 힘이 달리는 대검이 뒤로 밀리는 만큼 비크로스는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하지만 아보도를 상대해야 하는 비크로스는 은빛 검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적들. 아보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한-”
그때였다.
바스락.
아보도는 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황급히 대검을 밀치며 몸을 움직였다.
‘적이다!’
누군가 내 뒤로 왔다.
‘론 몰란인가?’
아군인 검은 갑옷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아보도의 등 뒤 근처에 있던 이는 없었다.
그의 몸이 가공할 빠른 속도로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반응하려는 찰나.
“아. 그대군.”
검은 갑옷이 보였고, 아보도는 저도 모르게 빠르게 반응하던 몸에 힘이 풀렸다.
퍼억–!
“커억!”
그리고 그는 검은 검집에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풀썩.
급격하게 긴장했다가, 아군임을 알고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순간. 정확한 지점을 노려 뒤통수와 뒷목을 가격한 힘에 아보도 페이스더 2세의 몸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라온이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게 뭐냐?”
비크로스는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대검을 힘없이 늘어트렸다. 그리고 케일은 제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뭐야?”
라온과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에 케일과 시선이 마주친 검은 갑옷의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검집을 쓱쓱 닦았다.
조금 전 아보도에게 접근하여 뒤돌아선 아보도가 안심한 순간, 망설임 없이 내려친 그 검집이었다.
“크윽!”
“커억!”
“어, 어째서–!”
“…배신……!”
숲 곳곳에서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은 갑옷 기사들의 습격을 받아 정신을 잃거나 결박되고 있었다.
“허어.”
론 몰란마저 황당하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검은 갑옷 기사들 중 유일하게 투구를 벗은 채 얼굴을 드러낸, 조금 전 아보도를 기절시킨 장본인이 아보도를 결박시키고는 케일을 응시했다.
“주군께서 부르십니다.”
“주군? 하얀 별?”
순간 무표정하기만 하던 검은 기사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하얀 별은 제 주군이 아니십니다.”
“…후베샤 백작.”
“백작님만이 오로지 저희의 주군이십니다.”
케일을 부르는 이는 후베샤 백작이었다.
엔더블 왕국. 왕으로 자리한 하얀 별 아래에 위치한 네 명의 귀족.
그중 한 명이 뱀파이어 수장 프레도 공작이었다. 후베샤 백작은 검은 갑옷의 기사들을 이끄는 이로, 엔더블 왕국 권력의 중심 중 한 명이었다.
검은 갑옷의 기사는 무심한 얼굴로 케일에게 제 주군의 뜻을 전했다.
“‘하얀 별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최한과 알베르가 찾지 못한 하얀 별의 소재지.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한쪽으로 비켜서며 숲에는 길이 하나 나타났다.
세계수가 있는 절망의 호수로 향하는 길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주군인 후베샤 백작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였다.
케일은 검은 기사와 그 길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조심히 날아온 라온이 작게 웅얼거리듯 물었다.
“이, 인간아. 우리 바람 끌까?”
라온의 앞발이 소심하게 붉은 소용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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