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70
669화.
바스락.
거침없는 발걸음의 주인공이 절망의 호숫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안내하던 검은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여깁니다.”
꽁꽁 언 호수 표면 위, 거친 소용돌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휘이이—휘이이—
저 소용돌이 바람을 헤쳐 나가 호수 표면 아래에 가면 세계수가 자리한 엘프 마을이 존재했다.
-인간아! 저 소용돌이 바람 안에 엘프 전사들이 있다!
전사들은 숲을 침범하고, 이 호수를 노릴지도 모를 적들에 대비해 은신 중이었을 터.
‘혹은 함부로 소용돌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런 상황은 대부분 감당하기 힘든 적이 눈앞에 존재할 때이리라.
케일은 엘프들이 위험한 적이라고 판단한 이를 바라봤다.
호숫가 근처 메마른 땅 위에 서 있는 존재.
“오랜만이군.”
후베샤 백작이었다.
그녀는 케일을 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호수 위의 소용돌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은 갑옷 차림의 그녀는 검을 땅에 꽂은 채 그 검 손잡이에 두 손을 가벼이 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선 모습에서 그녀가 마냥 긴장을 푼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 오랜만이야.”
케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베샤 백작.
엔더블 왕국 네 명의 귀족 중 하나.
검은 말을 탄 기사들을 이끄는 이로서, 최한처럼 ‘절망’을 속성으로 사용하는 기사였다.
‘물론 최한의 절망과는 그 본질이 다르겠지만.’
케일은 그녀의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을 배신한 건가?”
후베샤 백작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보자마자 바로 본론인가?”
“너와 내가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
“후후. 그것도 그렇지.”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후베샤는 웃음을 거두었다.
“아직은 배신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배신할 생각이다.”
“배신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전 네 수하들이 동맹국 병력을 제압하던데?”
“그것쯤이야, 배신이라기엔 너무 작은 일이지.”
케일은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어째서 배신을 하려고 하나?
그는 이유를 물었다.
배신하려는 적. 그 적과 손을 잡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적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는.”
후베샤 백작은 거기까지 말한 후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사는 주군을, 자신의 왕국을 수호한다.”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케일은 가만히 들었다.
“나는 동의한 적이 없다.”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와 달리 미묘하게 들끓고 있었다.
“엔더블 왕국민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케일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했어.’
케일은 자신이 나르 공자였을 당시, 기억 속 한 장면을 꺼내었다.
‘이번 안건은 축제에 대한 건으로, 게르세이 후작님께서 발의한 내용입니다.’
‘게르세이 후작님께서 발의한 내용은 축제 마지막 날, 2구역 전역에 위치한 모든 사제들이 대규모 의식을 행하고자 하니 이를 허가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의식 내용은 ‘올 한해를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한 감사 인사 및 앞으로 엔더블 왕국 미래에 평온과 행복이 깃들길 바란다.’ 입니다.’
마족을 섬기는 신관 게르세이 후작. 그는 하얀 별과 작당하여 축제 때 무언가를 벌이려고 하였다.
그 당시 케일과 프레도 공작은 이 축제에 의문을 가졌었지만, 이내 그 축제 전에 케일이 봉인된 신의 시험을 받으며 그 건은 흐지부지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규모 의식은 소환일 확률이 높았다.’
봉인된 신이나 등급 외 괴물과 관련된 의식이었을 터.
그리고 그 의식을 위해선 늘 ‘제물’이 필요했었다.
처음에는 늑대족 아이들이었고.
‘그다음은 뱀파이어와 다크엘프.’
즉, 엔더블 왕국민들이었다.
‘확실히, 하얀 별과 게르세이 신관 놈이 둘이서만 작당을 한 이유가 있어.’
엔더블 귀족 넷 중 뱀파이어 프레도 공작과 현재 어둠의 숲 검은 성에 잡혀있는 다크엘프 모크 백작. 이 둘은 하얀 별의 소환 ‘제물’에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천천히 케일의 시선이 후베샤 백작에게로 향했다.
‘거기다가 후베샤 백작도 그 제물에 반대하는 것 같고.’
케일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후베샤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케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왕이 왕국민을, 왕국을 배신했다.”
조금 전까지 들끓던 목소리는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한기마저 느껴졌다. 그 차가운 목소리가 하나의 법칙을 읊듯 내뱉었다.
“그런 왕은 없어야 하는 법.”
엔더블의 왕인 하얀 별. 그가 왕국민을 제물로 사용했으니, 이는 배신이었으며, 그러니 왕을 없애야 한다는 그녀의 말.
“내가 귀족 위를 받아들인 것은 오로지 엔더블 왕국의 뜻과 왕국민을 위해서다.”
후베샤의 뜻을 들은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면 왜 진즉에 행동하지 않았지? 엔더블 왕국에서 이미 다크엘프 일부가 제물로 목숨을 잃었어. 그때 기사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엔더블 왕국 모크 백작 아래에 있던 다크엘프. 그들 중 일부는 곰족 왕 사예르에 의해 소환식에 제물로서 명을 달리했다.
이미 케일이 도착했을 때는 핏자국만 남아있는 마차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때쯤이라면 제물이 무엇인지 이미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나와 뜻을 달리하는 수하들이 있었다. 그들을 따르는 무리는 곰족 왕 사예르의 밑으로 갔다.”
모두가 같은 뜻일 순 없었다. 하얀 별에 동조하는 자들은 그들이 알아채지 못하게끔 은밀히 이번 일에 따로 움직이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엔더블 왕국민을 공격할 수 없다.”
하얀 별, 곰족 왕, 신관들. 모두가 엔더블 왕국민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새겨진 제약이자 계약 조건이다.”
케일은 그 말을 듣자 이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너는, 너희는 ‘인간’인가?”
피식. 후베샤 백작의 입에서 얕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인간’이었지.”
하지만 웃음과 달리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일었다. 분명 대상이 정해진 분노 같았다.
“병기라고 보는 편이 맞을 터.”
케일은 그 말을 찬찬히 속으로 읊조렸다.
‘인간이었으며 병기인 존재라.’
케일이 보기에는 그냥 사람이었다. 하지만 후베샤 백작이나 그녀의 수하들의 언행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후베샤 백작은 여전히 무심한 케일의 눈빛에 이내 눈동자 속 분노를 사그라트렸다.
“우리의 과거는 네가 알 필요 없다.”
후베샤 백작에게 있어, 그들의 과거는 그들이 해결해야 할 평생의 과제 중 하나였다.
그녀는 껄끄러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프레도 공작은 어디 있지?”
“왜?”
후베샤 백작은 천천히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프레도 공작. 그리고 네가 잡아두고 있을 모크 백작. 모두와 만나고 싶네. 네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가 권력욕은 있을지언정 엔더블 왕국민들은 아꼈다.”
그녀는 케일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나는 악하다. 제물로서 엔더블 왕국민은 안 된다고 하면서 늑대족 아이들은 괜찮다고 여겼으니까.”
다시 그녀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내 정보는 쓸 만할 터.”
“…그래서 거래를 하자?”
“그래. 나는 하얀 별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그 소재지와 그놈이 현재 꾸미는 작전에 대해 아는 바를 모두 말해주마.”
“그러면 내가 무얼 해주길 원하지?”
후베샤 백작은 거래로 내걸 만큼 케일에게 원하는 바를 말했다.
“하얀 별을 죽이고, 엔더블 왕국을 보존하는 것. 그건 너에게도 이득인 것이기도 하지. 안 그런가?”
프레도 공작과 손을 잡은 케일 헤니투스. 그것만으로도 후베샤 백작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엔더블 왕국은 보존될 확률이 높다. 프레도 공작이 그런 약속도 없이 케일 헤니투스 편을 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마냥 단정 짓기에는 불안하였고, 후베샤 백작은 케일의 입이 다시 열리며 나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케일의 입이 열렸다.
“글쎄.”
“…뭐?”
“생각 좀 해보고.”
“케일 헤니투스! 하루빨리 하얀 별을 없애야-”
“그래서?”
케일은 무심히 되물었다. 그 무심함에 순간 후베샤 백작은 말문이 막혔다.
“후베샤 백작.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하지만 케일대로 할 말이 많았다.
“나는 아쉬울 게 없어.”
하얀 별의 소재지?
알면 좋다.
그러나 지금 서대륙에 퍼진 소문으로 보아, 하얀 별은 언젠가 본인이 원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더욱이 등급 외 괴물인 가디언 사자용이 버티는 한, 하얀 별도 대신 괴물을 없애줘야 하는 케일 쪽에 섣불리 공격하는 허튼짓을 하지 않을 터.
“백작. 당신과 나는 거래를 할 사이가 아냐. 아쉬운 건 그쪽이거든.”
물론 하얀 별을 처리하는 것과 엔더블 왕국 보존은 이미 이뤄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를 굳이 후베샤 백작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혼자서 생각하고 있어.”
후베샤 백작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디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생각하는 동안 고민해 봐. 나에게 무엇을 주고, 부탁을 해야 할지. 그리고 부탁을 들어주면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도.”
거래와 부탁은 전혀 달랐다.
그러나 케일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레도 공작은 최소한 용병 길드 레인저 부대원 절반을 미리 빼돌리고, 자신이 맡은 늑대족들을 숨겨두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들의 희생도 감수했다.
거래는 그런 경우 할 수 있는 법.
“나는 그러면 잠시 볼일 좀 보고 오지. 오래 안 걸릴 거야. 그 사이에 얼른 답을 내려둬. 답을 내리지 못하면-”
케일은 그 뒷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그 뜻은 충분히 후베샤 백작에게 전해졌다.
“…하, 하하.”
살짝 갈라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으니까.
“그래. 생각해보지.”
그녀는 걸음을 옮기는 케일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케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향했다.
“세계수 님을 뵈러 왔다.”
“…알겠습니다.”
휘이이이—휘이이—
절망의 호수 위 소용돌이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엘프 전사는 케일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그를 안내했다.
“도련님.”
-인간아, 나도 갈까?
“잠시만 기다려줘.”
케일은 론을 비롯한 일행들도 남겨두고 움직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오늘 그는 세계수에게 여러 가지를 말해야 했으니까. 그 자리에 동료들을 대동할 순 없었다.
세계수를 만나러 가는 케일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져 갔다.
그런 그가 엘프 마을에 발을 디디자마자, 엘프 사제 아디테가 나타나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공자님. 세계수 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케일의 무섭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본 것인지, 그녀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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