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71
670화.
사아아아—싸아아–
이내 그들은 큰 나무들로 빙 둘러싸인 곳의 중심에 위치한 세계수가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
“알겠습니다. 주변에 소리를 들을만한 존재는 없게 할게요.”
그 말은 자신과 엘프뿐만이 아니라, 정령들도 곁에 없게 하겠다는 소리였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케일은 홀로 세계수에게로 향했다.
아디테는 잠시 세계수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섰다.
케일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음을 옮겨 세계수의 앞에 도달했다.
매번 세계수를 만날 때마다 가지가 부러져 그곳에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늘 한결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랜만입니다. 와야지, 와야지 하다가 이제야 오네요.”
케일은 가벼운 인사와 함께 손을 나무껍질에 대며 눈을 감았다.
-그래. 오랜만일세.
세계수 역시 가볍지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세상이 참으로 혼란스러워. 그럼에도 나를 찾아온 것은 이유가 있을 터. 이리 바쁜 때에 나를 찾아오고, 조용히 우리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고픈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그가 이어 건네오는 말들은 가볍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케일이 이어 내뱉을 말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불멸자에 대해서 아십니까?”
-음?
케일이 동료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이유.
“불멸자. 환생자, 단생자, 빙의자. 이 존재들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사라락.
케일은 품 안의 일기장이, 그 속에 있는 주르 템스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질 세계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르겠네. 단어들을 말한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 자네는 그 단어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맞다.
케일은 그런 것을 묻는 바가 아니었다.
템스 가문이 연구하던 그 법칙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간단히 설명 드리죠.”
케일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간단하게 불멸자와 단생자를 비롯한, 일기장에서 읽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세계수에게서 알아가야 할 것이 있으니까.
-허. 그것을 그리 개념을 나누어서 따로 정해두는 건가?
세계수는 연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으음. 몇 가지는 나도 처음 듣는 바이군. 예외와 변수라.
-놀랍군. 놀라워. 어디서 안 것이지?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템스 가문에 대한 이야기나, 단생자을 사냥하는 자들, 그리고 회귀자에 대한 것. 마지막으로 각 ‘변수’와 ‘예외’를 죽일 수 있는 방법 등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긴 정보의 출처를 묻기에는 위험한 정보들이군. 으음…….
세계수는 잠시 동안 생각을 가다듬는 듯 말이 없었다.
케일은 차분하게 그 시간을 기다렸다.
-단생자라.
그리고 세계수의 입이 다시 열렸을 때. 그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환생자도, 불멸자도 아니었다.
-시련자를 말하는 건가?
“…시련자요?”
-그래. 내가 만든 말이기는 한데, 수많은 영혼 중 하나의 생만을 살아가는 존재를 시련자라고 하지.
시련자.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아무래도 시련자와 단생자가 비슷한 개념 같군. 흐음. 그걸 알아챈 존재가 세계에 있다니 놀랍군.
“…시련자는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시련을 겪는 자들이지. 물론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시련자로 태어날지는 알 수 없어.
아.
세계수는 짧게 탄성을 흘렸다.
-물론 시련자가 나오지 않는 종족들이 있지. 다크엘프, 뱀파이어, 늑대족 등등이 그러하네.
시련자. 즉, 단생자가 나오지 않는 종족이 있다고?
그건 또 그것대로 묘한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케일의 표정에 의문이 어린 것을 알아챈 것인지 세계수가 말을 이었다.
-음. 이건 말할 수 있겠군.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본인이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한 끝에 입을 열었다.
-과거 시련자와 악연으로 엮인 다크엘프가 한 명 있었다. 다크엘프라고 마냥 착한 이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 속에도 악인은 있는 법이지.
-그 다크엘프는 보통의 다크엘프들이 무덤이나 죽은 시체 근처에서 죽은 마나를 섭취하던 것과 달리, 살아있는 존재들을 스스로 죽이고 거기서 죽은 마나를 얻었다.
-그 정신 나간 다크엘프에 의해 가족을 잃고, 죽을 뻔한 시련자가 있었네.
-그 시련자는 후에 모든 단계의 시련을 이겨내고 위대한 존재가 되어 한 가지 일을 감행하였어.
케일은 한 부분이 귀에 꼭 박혔다.
‘시련자가 모든 단계의 시련을 이겨내고 위대한 존재가 된다.’
템스 가문은 단생자가 생을 마감한 후, 천계 혹은 그 이상의 존재. 즉 신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예측했었다.
‘그렇다면 이 시련자의 이야기도 한 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까?’
케일은 의문을 품은 채 세계수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을 가만히 들었다.
-그 시련자는 죽은 마나를 사용하는 존재는 ‘악’이라고 판명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케일은 한 존재가 떠올랐다.
“…태양신?”
태양신 교단은 과거 다크엘프는 물론 네크로맨서를 포함한 죽은 마나를 이용하는 종족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 당시 최후의 네크로맨서가 죽음의 사막에서 죽었고, 그 사막 지하에 현재 다크엘프 도시와 다시금 네크로맨서 메리가 탄생했다.
-나는 그 시련자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세계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지. 현재 그 시련자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 중이다. 또한 이제는 자신이 ‘악’이라 판단했던 존재들이 ‘순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래서 그 ‘순리’ 중 한 명을 돕고자 하고.
거기까지 말한 세계수는 이내 힘을 조금 푼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순리’. 케일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알베르 크로스만이 떠올랐다. 태양신이 돕고 있는 ‘순리’의 존재. 물론 그 존재는 태양신 쌍둥이라 불리는 ‘잭’이나 ‘하나’일 수도 있었다.
-…그 외에 다른 개념들은 나도 낯설군.
-그렇다면 불멸자가 나인가?
“그럴 것이라 추정됩니다.”
-하긴 나는 불멸자로 보는 것이 맞군.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척되자, 케일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언급했다.
“그리고 하얀 별이 환생자이고, 그를 없애기 위해선 불멸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싸아아아아—싸아아–
세계수와 그를 빙 둘러싼 일대의 나무가 바람도 없건만 흔들리며, 잎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생명체의 나이테를 볼 수 있는 고대의 힘이 존재합니다.”
케일은 다시금 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환생자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그가 가진 커다란 나이테를 없애야 한다.
두 번째로,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나이테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가 있어야 하며.
세 번째로, 그 나이테를 없애려면 불멸자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이테를 볼 수 있는 자네가 불멸자의 힘이 담긴 무기로 환생자인 하얀 별의 환생을 완전히 막으며 그를 없앨 수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허!
세계수는 기가 차다는 듯 연신 탄식을 흘렸다.
-내가 환생자를 없앨 수 있다? 놀랍군! 그런 방식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아직 세계에는 내가 모르는 바가 너무나도 많구나!
이내 그는 잠잠해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결국 내 힘이 담긴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군.
“네. 그래서 저번에 주신 검 있잖습니까?”
몰든 왕궁 지하 미로에서 가짜 세계수 사건을 처리할 때, 엘프 힐러 펜드릭을 통해 세계수는 케일에게 젓가락 같은 나뭇가지를 검이라며 전해주었다.
-으음. 그것도 내 힘이 담겨져 있지.
하지만 세계수는 어딘가 탐탁지 않은 어조였다.
-…그건 약해.
“네?”
-그 안에 담긴 힘은 진짜배기가 아니란 소릴세.
그때였다.
쿠웅–!
케일은 순간 주변에 거대한 진동이 이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만약 그 방법이 통한다면.
세계수가 말하고 있었다.
-진짜배기를 줘야겠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케일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주변을 통해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싸아아아—
나뭇잎들이 점점 더 거세게 일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발아래의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땅을, 세계수가 있는 이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진 나뭇가지를 검이라고 칭했지.
-하지만 그 나뭇가지는 얼마의 세월을 견디지 못한 가장 어린 존재.
쿠웅-.
땅이 크게 진동했다.
케일은 그 순간 느꼈다.
땅에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고 있음을.
-나의 생에 있어 가장 오래된 것을 주어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불멸의 근본이자 내 존재의 일부.
솟구쳐 오르는 것은 뿌리였다.
-가장 오래 존재한 뿌리의 끝이다.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은 땅 표면을 뚫고서 올라오는 무언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눈을 뜨고 확인하거라.
케일은 잠시 세계수에게서 손을 떼며 눈을 떴다.
그의 발치 바로 앞.
그곳에 작은 단검 정도 크기의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뿌리가 올라와 있었다.
케일은 보이는 것은 일부였지만, 아직 흙 아래에 파묻힌 뿌리의 본체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땅이 흔들린 것일 터.
케일은 다시 세계수에 손을 뻗으며 눈을 감았다.
-이 뿌리의 끝을 떼어내 줄 터이니, 사용해라. 이 또한 검이니.
-…세상이 다시 어둠에 물드는 꼴을 볼 수는 없는 법.
큰 결심을 한 듯 그 목소리는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네 심장의 피를 묻히면, 저 뿌리 검의 힘이 발동할 것이다.
그 순간, 케일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꼭 피를 묻혀야 합니까?”
-그래. 심장의 피다.
세계수는 단호했다.
케일은 단호한 그에게 의문을 표했다.
“원리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슨 원리기에, 심장의 피를 묻혀야 되는 무기입니까?
케일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경한 표정이 그도 모르게 얼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계수는 비장했다.
그리고 단호했다.
-간단하다. 내 몸. 이 나무의 일부는 떨어져 나간 후부터, 가사 상태에 빠진다. 이 가사 상태를 깨우려면 ‘치유’ 혹은 ‘재생’의 힘이 담긴 존재의 피가 필요하지.
-그 힘은 신의 힘이 아니어야 하며, 생명체 스스로가 가진 힘이어야 한다. 또한 그 힘의 가장 중심이 되는 시작점에서 얻은 피여야 하지.
-그렇게 이 뿌리를 일깨운 피의 주인만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세계수로서는 자신이 고대 때와 달리 세상을 도울 방법이 있자, 어느 때보다도 돕고자 하는 의지가 솟구쳤다.
-케일 헤니투스. 넌 재생, 치유와 관련된 고대의 힘을 지녔지.
-그리고 그 힘은 심장에서 시작되고.
-그러니 네가 시전자가 되어서 사용해야 해. 거기다가 나이테라는 고대의 힘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자네가 딱이야. 딱!
듣고 있는 케일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변해갔다.
세계수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괜찮네. 죽지는 않아. 피는 조금 많이 나서 보기 흉하겠지만, 오히려 자네에게 보약이 될 걸세. 그건 내가 장담하지.
-눈 딱 감고 하면 금방 끝나. 괜히 어물쩡거렸다가는 심장 쪽을 여러 번 찔러야 할지도 모르니, 한 번에 세게 찔러. 그러면 되네.
-쉽지?
결국 케일의 입이 열렸다.
“…아뇨. 안 쉬운데요.”
케일은 이 뿌리 단검을 제 심장에 박았다가 빼내고는 그 피 묻은 검으로 하얀 별을 처치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전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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