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79
678화.
“공작!”
정글의 왕 리타나는 벌떡 일어나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창백하게 굳은 얼굴의 데르트 헤니투스 공작이 있었다.
“왕세자의 상태가, 그, 그 정도입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정하십시오.”
옆자리에 있던 발렌티노 왕세자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쾅.
툰카 대장군이 자신 앞의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쳤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데르트 공작을 바라봤다.
각국의 대표들과 로운 왕국 동북부 연합 대표들이 자리한 회의실. 원래 수십여 명이 쓰는 곳이니만큼 큰 공간이지만, 그 안은 툰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채워졌다.
“오, 오늘내일한다니! 내가 봤던 왕세자는 그렇게 헤까닥 할 인간이 아니었다고! 웃는 꼴을 볼 때마다 아주 오래 살 것 같았단 말이야! 웬만한 인간보다 길게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아이구, 진정하십시오.”
발렌티노는 맞은편에 앉은 툰카를 말리려 했다.
“헤니투스 공작께서 하신 말씀은 사경을 헤맨다는 것이지, 오늘내일한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그거지 않소! 드, 드래곤도 못 고친다며!”
리타나는 툰카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그 대단한 드래곤이 못 고치는 상태라니.’
그녀는 툰카 다음으로 이곳에 온 만큼, 전투의 모든 과정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괴물 사자용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보았다.
특히 베이지색 드래곤은 그 거대한 본체로 거침없이 사자용과 맞부딪쳤다. 물론 사자용의 방패를 뚫지는 못했으나, 그 위력만큼은 드래곤이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더욱이 드래곤은 지혜롭다 알려졌다. 기나긴 수명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그런 존재가 왕세자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안 될 것이 있습니까? 모두 보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공격을 받고 정상적인 상태이길 원하는 것은 욕심이지요.”
북부 3국의 대표로 온 수호 기사 클로페 세카. 그가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했다.
“물론 못 본 분들도 계시지만.”
그의 시선이 움직여 모고르 제국 측과 로운 왕국 동북부 영지 연합 대표들에게로 향했다.
“뭐, 그래도 영상저장구는 보셨으니까.”
클로페가 미소를 그렸다. 평소라면 일견 성스러워 보인다고 할 미소였으나, 지금은 그저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정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런 부상을 입는 건 합리적으로 앞뒤가 맞는 결말이지요.”
“…클로페! 네놈 그걸 지금 뚫린 입이라고 하는 소리냐! 더욱이 내 친우도 지금, 지금! 지금 위급한 상태라고!”
툰카의 분노 서린 말에 순간 클로페의 눈동자에 어떤 열기가 들끓어 올랐다.
“툰카 대장군.”
툰카는 백발 녹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들들 끓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케일 헤니투스 전 사령관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해서 하십시오.”
감히 저 무식한 놈이, 위대한 영웅을 친우라고 부르다니!
전설에서 스쳐 지나가는 역할이 고작일 힘만 쎈 놈이!
클로페는 내뱉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래. 이것 또한 전설로 가는 길.’
현재 감히 전설에 거짓을 흩뿌리려는 놈들이 있다. 그것들을 처단하지 않는 이상, 클로페는 침착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을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드래곤께서 하신 말씀이 있지만, 우리에겐 성자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순간 회의실의 시선이 모두 성자에게로 향했다.
그의 곁에 선 동생 하나가 움찔하며 몰리는 시선에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으나, 성자 잭이 먼저 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공작님,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현재 드래곤께서 왕세자 저하 곁에서 상태를 살피고 계신 바로는. 외부의 부상은 상당수 고쳤으나, 내부가 진탕이 되신 탓에…….”
데르트 공작은 굳은 얼굴로 딱딱하게 내뱉은 말을 차마 끝맺지 못했다.
대신 그의 시선이 회의실 문 앞에 서 있는 최한에게로 향했다.
자연히 성자 잭을 비롯한 이들의 시선이 최한에게로 향한 순간.
절레절레.
최한은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고개만 가로저어댔다.
‘최한아! 인간이 너 절대 말하지 말랬다!’
라온의 말을 되새기는 최한은 생각했다.
‘공작님은 실전에서 약하시군.’
딱딱하게 굳어서 제대로 대사를 내뱉지 못한 데르트 공작. 그는 리허설 때는 날아다니더니, 막상 실전이 되니 굳어버렸다.
원래라면 이 타이밍에 데르트 공작이 알베르의 치료를 성자 잭에게 부탁해야 했다.
“으음.”
하지만 긴장한 듯, 공작은 딱딱하게 굳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상황상 어울리는 반응이라 다들 자연스레 받아들였으나, 최한은 자신이 대신 입이라도 열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명의 조력자.
“성자께서 한번 살펴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클로페 세카.
참고로 이놈은 이번 일에 대해 대충 안다.
역시나 눈치껏 착착 알맞은 소리를 내뱉었다.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성자 잭을 바라봤다.
최한은 그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실 저하께는 성자 잭의 치유력이 독이다.’
다크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알베르에게 태양신의 정화 힘은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성자 잭과 하나를 끌어들여야 했고, 이 자리의 대부분은 알베르의 정체를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좋습니다.”
성자 잭의 입이 열린 순간, 최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하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거미줄처럼 드러난 검은 핏줄을 숨기지 않은 채 최한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행동이었다.
툭.
그러나 그때 성자 잭의 손이 다시 한번 하나의 어깨 위에 올려졌고, 하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위험하군.’
최한은 태양신 쌍둥이를 보며 현 상황이 좋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 와중에 데르트는 딱딱한 음성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성자님. 그렇다면 일단 먼저 왕세자 저하를 살펴주십시오. 그 뒤에 제가 케일 전 사령관에게 모시겠습니다.”
“케일 공자는 다른 곳에 있나요?”
리타나의 물음에 데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하얀 별 측에서 제 아들, 아니, 케일 전 사령관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으니.”
거기까지 말한 데르트 공작은 굳은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모든 이들이 안쓰럽게 바라보는 순간, 최한은 생각했다.
‘연기에 소질이 없으시네.’
다른 동료들이 들었으면, 최한에게 본인의 상태를 보고서나 그런 말을 하라고 하겠지만. 그럴 동료가 없었다.
차분하게 미친놈인 클로페만 있을 뿐.
데르트 공작은 이내 침묵을 깨트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사안에 있어 어쩌면 괴물 사자용을 처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게 있습니까?”
발렌티노 왕세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습니다. 저희 로운 측에서 알아낸 정보로, 사자용은 봉인된 신의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으로. 그가 죽으면 신전이 나온다는 정보는-”
“아까 말씀하셨지요.”
리타나의 호응에 데르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 신전은, 사자용보다 더한 난관이라고 합니다.”
하!
누군가의 탄식과 함께 절망감이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그게 사실입니까?”
“고대에 남겨진 기록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고대 해석 전문가인 테일러 스텐 후작이 번역한 내용으로.”
그는 나직이 내뱉었다.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은 수천여 명의 목숨으로 막을지 모르겠으나, 그 신전의 끝에 도달하려면 수만여 명이 365일 동안 희생하여야 한다.”
아.
리타나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으음.’
그리고 최한은 태양신 쌍둥이를 관찰했다.
‘최한, 성자와 하나를 잘 봐둬. 하얀 별과 관련이 있다면, 분명히 새로운 정보에 반응을 보일 테니까.’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만약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그만큼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겠지.’
케일은 이런 말도 했었다.
데르트 공작이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미 있는 희생이라면, 후대를 위해 해볼 수 있는 일이지만.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일단.”
발렌티노 왕세자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가를 찡그린 채 말했다.
“현재 이곳에서 회의를 오래 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니, 회의는 여기서 그만하고. 각자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고 내일 오전에 뵙는 게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성자께서 해주실 일도 있고. 우리도 가지고 온 병력들을 챙기고 전선 배치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로잘린이 왕녀로 있었던 브렉 왕국. 그곳에서 온 왕자가 내뱉은 말에 다들 동의를 표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이 났고, 각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 회의실을 하나둘 빠져나갔다.
데르트 공작은 성자 잭에게로 다가갔다.
“성자님. 오시자마자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성자 잭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박함이 담긴 그 미소는 그다워 보였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그간 로운 왕국이 얼마나 많이 저희를 도와주었는데요.”
그리 말하며 그는 옆의 동생과 눈을 맞추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성자님.”
“공작님, 솔직히 모고르에서 온 지원군이 가장 수도 적고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건 사실이지요. 그러니 대신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데르트는 성자의 말에 고마움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나야, 가자.”
“…어.”
쌍둥이는 별다른 말은 더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자들은 최한과 데르트 공작, 동북부 연합군 대표 우바르 백작.
“부인.”
“괜찮아요?”
그리고 바이올란 공작 부인과 그녀의 호위로 함께하는 힐스만 부단장이었다.
“괜찮아요. 우바르 백작, 이리 빨리 준비해오기 힘들었을 텐데, 고생하셨소.”
우바르 영주는 데르트와 바이올란의 태도에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아들의 상태도 위중하다고 들었는데, 저리도 로운을 먼저 생각한다니.’
부부는 절대로 타인의 앞에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냐고 물어도 흐린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
그녀는 케일의 그 수많은 활약이, 그의 정신이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공작 부부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아닙니다, 공작님. 조금 더 일찍 오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곧 다른 영지의 영주들도 연합군을 지역별로 결성해 병력을 보낸다고 합니다.”
공작은 우바르 백작의 말에 든든하다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긴장감이 사라진 그는 힐스만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부단장. 오느라 고생했네. 자꾸 자네를 영지 밖으로 불러들이는구만.”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힐스만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현재 기사단장은 영지에 남아 영지와 영지민, 릴리, 바센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힘내십시오! 분명 곧 다 해결될 겁니다!”
힐스만의 씩씩한 말에 데르트, 바이올란은 희미하게 미소를 그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하는 말이 아닌, 누구보다도 케일과 헤니투스 가문, 영지를 아끼는 이가 하는 말이었으니까.
“우리 곁에 드래곤도 있지 않습니까? 놀랍습니다! 공자님 곁에 드래곤이 있을 줄이야!”
힐스만의 말에 우바르 백작이 시원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케일 공자와 친분이 있는 드래곤들이라고 했지요? 두 고룡을 안다니, 놀랍네요. 공자님께서 용들과 친분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데르트 공작은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우리 힘냅시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바로 이어진 바이올란의 대답에 데르트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최한 경. 그럼 우리도 나가세.”
“네, 공작님.”
바이올란은 여전히 문 근처에 서 있는 최한에게로 다가왔다.
“고생했어요.”
“아닙-”
“그리고 고마워요.”
바이올란의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부드러운 미소는 아니었으나,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껏 담긴 미소였고, 최한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왔을 뿐.”
“그게 고마운 겁니다.”
그리 말하곤 바이올란은 미소를 지웠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시다.”
자연스럽게 공작 부부가 나가자 뒤따라 우바르 백작과 힐스만이 회의실을 떠났다.
“최한 경은 가지 않는 건가?”
“조금만 있다가 가겠습니다.”
힐스만이 떠나기 전 최한을 바라보았으나, 최한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최한 홀로 회의실에 남았다.
달칵.
최한은 문고리를 잠갔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이상합니다.”
동시에 그는 품에서 작은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러게. 이상한데.
케일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맞다! 이상하다!
라온도 표정이 굳어져 갔다.
검은 용은 날개를 파닥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힐스만 경이 이상합니다.”
-왜 굳이 거짓을 말하지?
-힐스만 이상하다!
동시에 내뱉은 말에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힐스만.
케일이 이 세상에 왔던 초기. 그는 힐스만 부단장과 꽤 많은 일들을 함께해왔다.
그렇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힐스만 나 아는데!
라온과 온과 홍의 정체를.
케일은 기억 속 과거의 한 자락을 떠올렸다.
고래족 남매 위티라와 파세톤을 만난 후. 케일은 그들과 함께 인어족의 독에 대한 문제로 어둠의 숲으로 향했었다.
그때, 케일은 어둠의 숲으로 들어가기 전, 해리스 마을에 들렀고 그곳에서 힐스만 부단장에게 라온의 존재를 알렸다.
‘알지?’
‘네. 압니다. 공자님.’
‘그래. 믿는다.’
‘…공자님. 저는 강해질 겁니다.’
‘그러든가.’
헤니투스 영지의 다른 가신들과 달리, 케일은 부단장 힐스만과는 꽤 유대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들이 꽤 있었으니까.
케일은 방패 공자를 읊어대며, 케일의 업적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속에 든 진심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힐스만이 조금 전에 말했다.
‘우리 곁에 드래곤도 있지 않습니까? 놀랍습니다! 공자님 곁에 드래곤이 있을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케일 공자와 친분이 있는 드래곤들이라고 했지요? 두 고룡을 안다니, 놀랍네요. 공자님께서 용들과 친분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라고.
우바르 영주가 앞에 있어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힐스만은 가벼워 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사람이었다.
“의심스럽군요.”
-그래.
최한의 말대로 의심스럽다.
툭툭. 케일은 자신의 무릎을 두드리는 촉감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라온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아! 혹시 힐스만이 하, 하-”
“하얀 별인 것 아니냐고? 쌍둥이 쪽이 아니라?”
“그,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쌍둥이들의 행태가 의심스럽지만 쉬이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힐스만 부단장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라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힐스만이 하얀 별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 적이거나.”
-케일 님. 만약 힐스만 경 쪽이 하얀 별이라면…….
최한은 말끝을 흐렸지만, 케일은 막힘없이 답했다.
“죽고 싶은가 보지.”
케일에게 내 사람을 건든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죽고 싶어서 달려드는.
“최한. 아버지께 시작하시라고 연락해. 그리고 어머니께 내 말 좀 전달해줘. 그리고 라온, 내 팽이채 들고 있지? 줘.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그리고 이는 케일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니투스 가문은 우리들의 행복과 평온을 중시하며 이를 망가뜨리는 것을 용서치 못하는 편이었다.
데르트와 바이올란. 두 사람은 최한을 통해 케일에게 각자의 뜻을 전해왔다.
‘아들아, 걱정 말거라. 이 아버지만 믿어라!’
‘알아보고 내 식대로 처리하마.’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똑똑똑.
“접니다.”
데르트 공작은 문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달칵.
문이 천천히 열렸고, 정면에 자리한 창에서 주홍빛 노을이 실내로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이지색 머리칼을 지닌 이가 서 있었다.
“드래곤이시여.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오신만큼 소란스러워 기사단장과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단장에게 데르트 공작은 많은 것을 설명해야 했다.
데르트 공작은 슬쩍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며 뒤에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드래곤이시여. 이분이 말씀드렸던 성자십니다. 그리고 옆은 성자님의 동생이신 소드 마스터입니다.”
“흐음.”
드래곤 밀라의 눈동자가 평소처럼 사뭇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데르트 공작 뒤에 선 이들에게 손짓했다.
“어서 들어와요.”
“처음 뵙겠습니다. 드래곤이시여.”
성자 잭이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소드 마스터 하나는 고개만 까딱이고는 아무 말 없이 잭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툭.
그리고 하나는 성자 잭과 살짝 부딪쳐야 했다.
성자 잭은 걸음을 멈춘 채 넋을 놓은 얼굴로 방 중심에 자리한 침대를 바라봤다.
“…아.”
처참한 몰골의 알베르 크로스만.
“커헉.”
그가 누운 채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거한 기침과 함께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달칵.
그 순간, 쌍둥이 뒤로 문이 닫혔다.
소드 마스터 하나는 고개를 돌렸고, 데르트 공작이 닫힌 문 앞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
한편 우아한 손짓과 함께 손에 들린 찻잔이 차탁 위에 올려졌다.
달칵.
“힐스만 경.”
“네. 영주 대리님.”
바이올란 공작 부인은 자신의 테이블 맞은편을 가리켰다.
“여기 앉아요.”
또르르르-
그녀는 빈 찻잔에 차를 따라 힐스만 부단장에게 건넸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차를 마셨다. 잔머리 한 올 없이 틀어 올려진 머리칼. 그 모습만큼 틈이 없는 우아한 몸짓이었다.
“차 맛이 좋아요. 예전에 상단 일을 할 때부터 마셨던 차지요. 그리 비싸지 않지만, 그때의 추억이 들었는지 가끔씩 이 차를 마시곤 하죠.”
그 말에 힐스만도 제 앞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힐스만 경.”
바이올란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황급히 입 안에 머금은 차를 삼키는 힐스만.
그런 그를 지켜보던 바이올란 공작 부인.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내가 만만하니?”
“네?”
그때였다.
우우우웅—
공간 안에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란이 지금 마시는 차는 젊은 시절 상단을 이끌던 때부터,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마시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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