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8
67화.
그 미묘함은 그날 저녁 식탁까지 이어졌다. 케일은 그냥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위퍼 왕국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챙그랑. 막냇동생 7살 릴리의 손에 있던 스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케일은 그 소리에 릴리를 바라봤다. 릴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 끝이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랬는데.”
릴리는 스푼을 주울 생각도 안 하고 중얼거렸다.
“지금 위퍼 왕국은 무섭고 매일매일 사람 죽고, 귀족들은 숨어 다녀야 하고, 맛있는 것 먹기도 힘들고! 잠도 편히 못 자고! 선생님이 그랬는데!”
어째 점점 갈수록 감정이 격해지는 듯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리고 케일을 빤히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 된다.”
그때 릴리의 말을 끊으며 데르트 백작이 단호히 말했다. 케일은 의아함을 담아 그를 봤다. 위퍼 왕국행. 왕세자는 케일이 무사히, 그리고 비밀리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했다.
‘자네 가문에는 내 밀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해두지. 마탑이니, 마법사니 이런 것들은 말할 필요가 없잖아?’
‘그렇죠. 비밀이 좋죠. 그리고 행선지도 가족들과 우바르 영주에게만 밝혀두고 싶습니다.’
‘당연하지. 준비해 두겠네.’
왕세자 알베르는 바로 데르트 백작에게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밀명이라는 말과 함께, 케일에게 임무를 내렸다고 전했다.
“아버지, 왕세자 저하의 명이십니다만.”
“상관없다.”
사람 좋게, 평범하게 생긴 데르트 백작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져 있었다. 케일은 시간이 정지한 듯 굳어 있는 차남 바센을 지나 유일하게 담담한 얼굴의 한 사람, 바이올란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평온히 물었다.
“네 뜻이니?”
“네. 제가 가고 싶습니다.”
“케일.”
“네.”
바이올란은 스푼을 내려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이 위험한 곳임을 알고 있겠지?”
“네.”
케일은 가벼이 긍정했다. 하지만 최한에, 검은 용에, 로잘린, 라크만으로도 충분했고 나아가 휠스만과 10명의 늑대 아이들이 보이는 따라가겠다는 그 집념에, 전혀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케일, 한 가지는 기억하렴. 나는 내 아들인 너를 늘 걱정한단다. 우리는 모두 너를 걱정해. 하지만.”
순간 바이올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왕국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
“크흠. 부인, 왕국이 안전해야 우리 가족들도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얼굴을 구기던 데르트 백작이 표정을 풀며 헛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바이올란은 이를 가벼이 모른 체하며 케일에게 이어 말했다.
“네 뜻이니?”
바이올란은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케일에게 건넸다. 케일은 그 질문에 곧바로 답했다.
“저는 황금 거북이입니다.”
데르트 백작은 순간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가장 단단한 껍질로 무엇이든 지키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그는 아들을 응시했다. 아들은 차분했고 편안해 보였다.
“단단한 껍질로 제가 안전한 게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케일은 헤니투스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는 헤니투스가 사람이죠.”
아무렴. 케일은 자신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 피치 못하게 전투를 하는 상황이 생겨도 무조건 이길 것 같을 때, 옆에 강한 이가 같은 편일 때만 나섰다.
“걱정 마세요.”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단호함이 느껴지는 눈빛이기도 했다. 바이올란 백작 부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래, 알겠다. 하지만 걱정은 늘 할 것 같구나. 그게 부모란다.”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케일은 바이올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르트 백작은 입을 꾹 닫은 채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가지 말란 소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럭저럭 납득한 듯싶었다.
“가만히 있었더니. 사람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줄 알아.”
다만 이따금씩 혼자 중얼거리며 거칠게 고기를 씹어댔다. 케일은 더 이상 다른 반박이 튀어나오지 않자, 다시 편안하게 식사에 집중했다.
접시를 보고 있던 그는 보지 못했다.
데르트 백작과 바이올란 백작 부인이 주고받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데르트 백작이 집사에게 돈이 얼마가 들든 비밀리에 왕세자와 위퍼 왕국 관련 자료를 모아 오라고 시킨 것도. 케일은 알지 못했다.
그는 오늘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왔다. 그런 그의 뒤를 다급하게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귀족의 예를 어기는, 보기 드문 황급한 발걸음이었다.
“바센?”
케일의 뒤를 쫓아온 이는 바센과 릴리였다.
“…형님. 꼭 가셔야 합니까?”
“대충 그렇지.”
꼭, 반드시 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1년 편한 것보다는 10년 편할 미래가 더 좋아 가는 것뿐. 케일은 아무런 말이 없는 두 남매에게 말했다.
“둘 다 공부, 훈련 열심히 해. 너희들이 있어서 편히 다니는 거니까.”
아무렴. 바센이 영주가 되고 릴리가 군사를 담당할 것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편안했다. 적어도 후계자 경쟁이니, 장자와 능력 좋은 차남을 사이에 둔 아침 드라마 재벌 속 이야기 같은 건 안 펼쳐질 것 아닌가?
케일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무심히 등을 돌렸다. 지금부터 준비할 일이 꽤 많았다. 케일은 뒤돌아 걸어가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위퍼 왕국 기념품 사 오마.”
케일은 뒤돌아 서 있었기에 바센과 릴리가 케일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동생들이 스스로 미래 직업을 이미 정했음을 꿈에도 알아챌 수 없었다.
다만 며칠 뒤, 케일은 계획대로 백작가를 떠나 딱 예상했던 시간에 배에 올라탈 수 있어 꽤 기분이 좋았다.
“케일 공자.”
케일은 배에 올라타려 걸음을 내딛다가 아미르 영애의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봤다.
“영애.”
아미르는 오랜만에 만나도 여유로운 그 목소리에 가만히 케일을 응시했다. 우바르 영주는 이미 왕세자와 한 배를 탄 사이였기에, 왕세자의 밀명을 받자마자 곧바로 아미르는 가장 튼튼하고 큰 배를 준비하라 지시했다.
“공자, 무사히. 이번에는 다치지 않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당연한 말씀을.”
다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케일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아미르를 볼 수 있었다.
“저하께서 어찌하며 막 요양이 끝난 케일 공자를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케일 공자이기에, 저하께서 믿으시는 것이겠지요.”
믿기는. 왕세자는 누구를 믿을 인간이 아니었다. 이를 케일은 솔직히 말했다. 절로 떨떠름한 미소가 지어졌다.
“글쎄요. 믿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미르는 케일의 씁쓸해 보이는 미소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리가요! 공자, 적어도 저는 공자를 믿습니다.”
“아, 네. 뭐, 고맙습니다. 영애.”
차분한 모습과 달리 강하게 의사를 내비치는 아미르의 모습에 케일은 흘러가듯 답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얼른 제 시간에 떠나야 했다.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공자-”
“가보겠습니다. 영애.”
아미르는 할 말이 더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배에 올라타는 케일의 모습은 설렘과 상쾌함이 함께 느껴졌다.
케일은 아미르가 더 이상 붙잡지 않자, 홀가분한 기분으로 배 위에 올라탔다. 거대한 배의 갑판 위에서 바라본 마을은 한창 공사로 마을 여기저기가 시끄러웠다.
또한 몇몇 소용돌이가 사라져 거대한 배가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만큼의 해상로가 확보되었다.
‘물론 나머지 소용돌이들은 그대로지.’
케일은 주변 경관을 보던 시선을 돌려 갑판 위를 바라봤다.
“…하.”
어쩌다가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을까.
최한, 라크, 로잘린.
오들오들 떨면서도 기필코 가겠다는 표정의 고양이 온, 홍과 그 곁의 한스.
그리고 배를 타 하얗게 질린 부단장 휠스만과 그를 감시하는 비크로스, 그들 곁의 늑대 아이들 10명.
‘이러고 내가 다치면 그거야말로 개연성 파괴지.’
어디 누가 보면 나라 하나 부수러 가는 줄 알 것이다.
-바다 냄새 좋다.
특히 검은 용도 따라오는데, 무엇이 겁나겠는가.
케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에게 명했다.
“출항해.”
뿌우우우-
출항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우바르 영지 앞바다에 울려 퍼졌다. 그 배는 무역을 위한 상선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사실 위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뭐, 무역은 무역이지.’
물론 불공정 무역이 될 것이다. 케일 자신에게는 한없이 공정하지만 타인에게는 불공정한.
-인간, 그렇게 웃지 마라. 사기 칠 것 같다.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무시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했다. 그렇게 배는 위퍼 왕국의 가장 작은 항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케일은 잠들지 않고 갑판 위에 나와 있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갑판 위는 은은한 조명으로 시야가 꽤 밝았고, 보름달이 있어 어둡지 않았다.
오늘 여기서 그는 손님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케일은 배 난간에 한쪽 팔을 기댄 채 여유로이 밤바다를 감상했다. 그때였다.
“인간.”
검은 용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이 장소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나타난 것이다.
“왜?”
“혹시 말이다.”
검은 용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아니, 굉장히 미심쩍어하는, 케일의 기분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표정을 지은 채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름 외자 아닌가, 인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용은 고심이 많아 보였다.
“왠지 검이나 용이나. 그런 거 할 것 같다.”
“아, 네 이름?”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용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케일은 4살의 근심 가득한 표정에 마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별론가? 그런 이름은?”
케일의 표정은 심각해져 있었다. 검은 용은 근래 들어 이렇게 심각한 케일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검은 용의 동공이 흔들렸다. 용은 다급히 답했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아무거나 다 좋다! 인간, 네가 지어주면 다 좋다! 걱정하지 마라!”
날개가 세차게 파닥였고, 꼬리가 이리저리 휘둘리며 강하게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어필했다. 케일의 표정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순식간에 태평해졌다.
“그럼 다행이고.”
그는 무심히 툭 내뱉었다.
“라온, 네 이야기를 들었으면 온과 홍이 섭섭해했을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인간, 방금 뭐라고 했나?”
케일은 검은 용의 생각과 달리 꽤 고민했었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것이다. 김록수. 홀로 살아야 했던 그에게, 유일하게 온전히 주어진 것이 부모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이었다.
“이름은 라온.”
라온. 순 한글로 ‘즐거운’을 뜻했다.
“그리고 성은 미르.”
미르. 순 한글로 용.
즐거운 용. 참으로 웃긴 이름이지만, 케일은 꽤 진심을 담아 지었다. 순 한글 이름이라 최한이 걸렸지만 그에게야 대충 둘러대면 될 터.
무심한 목소리가 용의 귓가에 닿았다. 하지만 용은 이런 케일의 표정을 처음 보았다. 잔잔한 미소가 케일의 입가에 지어져 있었다.
“나는 네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무슨 뜻인가?”
검은 용은 케일에게 이름의 뜻을 물었다. 케일은 손가락으로 검은 용을 가리켰다.
“너.”
라온. 그리고 미르. 이 세상에는 없는 단어였다. 이 세상에서 이 단어들의 의미는 오로지 하나를 가리켰다.
“너다. 너만을 위한 글자이고 단어들이야.”
“…나만?”
“그래.”
케일은 씩 미소를 그리며 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아주 위대한 용이니까.”
“…나만…….”
한참을 중얼거리던 검은 용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케일의 손을 툭 쳐내며 날개와 어깨를 쫙 펼쳤다. 날개가 심하게 파닥였다. 용은 콧방귀를 뀌었다.
“쓸 만하다. 특별히 써주겠다.”
“그래, 라온.”
용은 코를 찡긋거렸다. 입꼬리가 씰룩이며 위로 올라갔다.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그래, 라온.”
“맞다. 나는 라온이다.”
용은 4년 만에 이름을 가졌다. 성도 가졌다. 이 몸 말고도 유일한 자신의 것이 생겼다. 용은 고개를 들었다.
동굴의 어둠과 다른 밤하늘의 어둠이 보였다. 처음 동굴 밖을 나왔을 때도 이렇게 밤이었다. 용은, 라온은 그 순간도,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케일도 용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은 어디를 가든 늘 같았다. 이를 무심히 쳐다보던 케일의 귓가로 용의,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 케일.”
“…뭐라고?”
케일이 놀란 얼굴로 라온을 바라봤다. 용은 어느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인간, 너는 어떻게 단박에 못 알아듣나?”
“한 번 더 말해보지?”
케일이 피식피식 웃으며 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용은 그 손바닥에 박치기를 해버리며 강하게 거부했다.
“싫다. 매우, 아주, 상당히 싫다! 약한 인간, 감기 걸린다. 들어가서 자라!”
그러나 그 행동과 달리 용의 날개는 파닥이고 있었고 꼬리는 마치 온과 홍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작게 웃었다.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미소 짓는 케일의 모습은 밤임에도, 바다 위임에도 잘 보였다.
“들어가는 건 곤란하겠는데.”
“왜 곤란-”
퉁명스럽게 묻던 용 라온의 목소리가 툭 멈췄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배와 떨어진 곳.
촤아아아악-
바다 물살이 갈라지며 거대한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고래였다.
그때였다.
“케일 님!”
누군가 다급하게 배 안에서 튀어나와 케일을 향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최한이었다. 최한은 다급한 표정으로 저 멀리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를 탐색했다. 그리고 얼른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에게 다가갔다.
“음?”
그제서야 최한은 볼 수 있었다.
케일은 그에게 들어가라는 듯 훠이훠이 손을 젓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그리고 용 라온이 최한을 보며 비웃듯 말했다.
“적 아니다.”
“뭐?”
최한은 그 말에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케일은 난간에 기대던 몸을 일으켜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래는 하나가 아니었다. 총 셋이었다.
손님이 도착했다.
하나는 혹등고래, 위티라. 또 다른 하나는 범고래. 그리고 마지막.
“고래 왕을 뵙습니다.”
케일은 가장 거대한 혹등고래, 고래 왕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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