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82
681화.
알베르는 문틈 사이로 케일의 눈동자를 본 순간, 직감했다.
‘눈이 돌았어!’
이 자식, 지금 눈이 헤까닥 돌아버렸구나!
뭔 사고를 치겠구나!
데르트 공작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저 돌아버린 눈을 충분히 이해했다.
‘…큰일이 벌어지겠구나.’
알베르 크로스만은 조금의 여지도 없이 확신했다.
심장이 뛰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그는 하얀 별의 불 검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밧줄을 꽉 움켜쥐었다.
밧줄은 그 내구성만큼이나, 약간 그을릴 뿐 타지 않았다.
“오랜만이라기엔, 오늘 아침에도 봤다만?”
하얀 별은 태연했다.
나무줄기에 몸이 옭아매지고, 불 검은 하얀 밧줄에 붙잡힌 와중이건만. 그는 상황과 달리 여유로웠다.
“그렇긴 하지.”
그리고 케일도 태연했다.
“우리 아버지 어딨냐?”
“죽었단 생각은 안 하나?”
저 자식이 미쳤나?
알베르는 순간 하얀 별이 내뱉은 말에 거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기묘한 대치 상황은 평화로웠다.
“하얀 별, 네가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아버지가 죽어버리면, 넌 나에게 협박할 거리가 없어지잖냐. 차라리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아버지를 숨겨두면 몰라.”
“역시, 너는 나를 꽤 잘 아는군.”
“어려울 게 뭐 있겠어.”
끼이익. 조금 더 열리는 문틈 사이로 케일은 몸을 반쯤 들이밀며 이어 말했다.
“나쁜 놈들 대가리 굴리는 건 거기서 거기겠지.”
헉.
누군가 숨 들이마시는 소리에 알베르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성자 잭이 약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의 언사에 저 순박한 성자라면 놀랄 만했다.
데르트 헤니투스의 얼굴을 한 하얀 별. 그리고 케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들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 제안을 하나 하지.”
“케일 헤니투스, 내 제안을 한번 들어보겠어?”
동시에 두 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삐뚜름하게 올라간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공조를 해볼 생각 있나?”
순간 방 안의 분위기는 기묘하게 바뀌어갔다.
“야! 공조라니! 누가 하얀 별 너 따위 놈과 공조를 한다는 거냐!”
잭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소드 마스터 하나가 격분에 가득 차 외쳤다.
스스스-
하지만 나무줄기는 하얀 별을 옭아매던 가지 끝의 힘을 줄였다.
하얀 별은 옭아매던 나무줄기에서 벗어나 두 손을 놓았다. 불 검이 공중에 뜬 채로 하얀 밧줄에 붙잡혀 있었다.
스윽. 하얀 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나는 사자용을 죽이고 봉인된 신의 신전으로 가야 돼. 물론 그 신전의 끝에 도달하는 것도 꽤 힘들 것 같지만 말이야.”
힐끗. 그의 시선이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쯧. 알베르는 혀를 찼다. 그는 하얀 밧줄을 풀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얀 별은 데르트 행세를 하는 동안 ‘신전의 끝’에 도달하는 과정이 사자용을 없애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정보를 들었다.
“기존의 나의 계획은 간단해. 너희들이 나를 대신해 신전의 가디언을 죽이고, 나는 여유롭게 신전으로 진입해 내가 원하는 것을 손아귀에 넣는 것이었지.”
하얀 별은 그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케일 헤니투스 너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고 네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 그런데 신전이 사자용보다 더 힘들다는 정보에 계획을 바꿔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현재 하얀 별의 전력도 그간의 여러 전투로 상당한 출혈을 겪은 상태였다.
더욱이 하얀 별은 마지막을 위해 자신의 전력을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케일 헤니투스 너는 이런 상황까지 노리고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이 정보를 밝힌 것이겠지?”
어느 때보다도 하얀 별은 케일 쪽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저 가디언, 아니, 사자용. 너희도 어차피 없애야 돼.”
퍼슬시 사람들에게 땅을 되찾아줘야 하니까.
로운 왕국민들이 무서워할 테니까.
“그리고 괴물 뒤에 나올 신전도 처리해야 돼.”
로운 왕국민들이, 서대륙 사람들이 불안에 떨 테니까.
하얀 별은 데르트 헤니투스의 얼굴로 웃어 보였다.
“물론 마지막 목표는 나를 죽이는 것이겠지.”
“그리고 너의 목표는 신이 되는 것이겠지.”
알베르 크로스만이 나직이 건넨 말에 하얀 별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알베르는 짜증에 가득 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하얀 별 네가 벌인 소환식 때문이지. 일을 만든 놈이 그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만.”
알베르 크로스만은 어깨를 으쓱였다.
“현실적으로 힘들긴 하지.”
하얀 별은 자신의 전력을 쏟아 괴물과 신전을 처리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한시라도 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안로만이 그랬다. 사자용은 처음 등장한 후, 일주일간은 강자에게만 반응했지만 그 이후에는 파멸 모드로 들어섰다고.’
이는 데르트 헤니투스로 변장한 하얀 별은 모르는 정보였다.
오로지 마구간에 있던 네 존재.
케일, 최한, 라온. 그리고 알베르 크로스만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알베르가 태랑의 AS 연결을 통해 들은 안로만의 정보였다.
‘재밌군. 그러니까, 현 주인인 알베르 크로스만. 당신은 왕세자이고 사자용으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하면, 당신은 로운 왕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권력자가 되겠군. 좋아, 내가 알려주는 정보 잘 들어. 후회 안 할 테니까.’
‘…그런데 참 재밌군. 자네와 나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단 말이지. 혹시 너도 불순한 혈통이냐?’
알베르는 안로만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공조가 좋겠어.”
“저도 저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끼이익-.
완전히 문이 열렸고, 케일은 홀로 방 안으로 들어서며 하얀 별의 앞에 섰다.
“신전은 나중 문제니 그것은 뒤로 미루고. 사자용. 그 괴물을 공조해서 없앤 뒤에는 우리 아버지를 다시 돌려주었으면 하는데. 나는 그 조건 없이는 너와 공조하지 않아.”
“으음.”
마치 콧노래를 부르듯 하얀 별은 뜸을 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그때, 알베르는 생각했다.
살아있구나.
케일 헤니투스의 아버지인 데르트 헤니투스 공작은 살아있구나.
그것도 안전하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동시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그러면 공조를 하는 건가?”
하얀 별은 조금 더 케일 헤니투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긴 하겠지만, 서로 간의 신뢰가 썩 없군. 하얀 별 네놈을 믿을 만한 게 없잖아?”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나야 우리 아버지, 그리고 저 밖에 있는 아군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으니, 너와의 공조에서 배신할 수가 없지.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래서?”
“죽음의 맹세라도 하는 게 어때?”
그 말을 들은 하얀 별의 눈동자가 찰나지만 격렬하게 일렁였다.
“…그건 안 되겠어.”
“그래? 나는 그만큼 진심인데 말이야.”
케일은 전혀 아쉽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얀 별이라면 당연히 그리 반응할 줄 알았다는 듯.
죽음의 신이 내린 저주.
하얀 별은 드래곤 로드 쉐리트의 두 알을 건들며 그 저주에 걸렸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삶.
결코 소중한 것은 가질 수 없는 삶.
하얀 별은 죽음의 신을 좋아할 수 없을 터.
케일은 덤덤히 답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알려줬으면 한다.”
“뭐지?”
“우리 아버지는 퍼슬시 안에 계신가?”
하얀 별은 그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혹은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보낼 수 있다.”
그 말의 뜻은 간단했다.
데르트 헤니투스는 아직 퍼슬시 안에 있다.
하지만 언제든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고, 또한 언제든지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조력자가 있군.’
알베르는 하얀 별의 곁에, 아니, 데르트 헤니투스가 감금되어있는 곳에 하얀 별의 수하가 하나 이상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얀 별이 명령만 내리면 바로 죽일 수 있어야 하니까.
알베르는 하얀 별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고요했다.
“진심이야. 네 드래곤이 나서도 못 찾을 테니.”
하얀 별은 굳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고룡이건 검은 용이건. 누가 나서도 데르트 헤니투스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군.”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하루만. 너도, 나도. 칼을 서로에게 겨누지는 말자.”
하얀 별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가족이 정말 소중하긴 한가 보군.”
드래곤 밀라는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성자 잭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고, 하나는 하얀 별이 가족을 언급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검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가족과 아군.
이 두 가지로, 케일 헤니투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얀 별 역시도 손을 내밀었다.
“최초군.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 날로 말이야.”
내밀어진 손은 케일의 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순간까지도 하얀 별은 케일을 예의주시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의, 분노가 담겼지만 태연한 얼굴의 케일을 관찰했다.
하지만, 드디어 악수를 한 순간.
붙잡은 손에 어떠한 힘도, 어떠한 마법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하얀 별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찰나였다.
“뜻깊은 날이야.”
케일의 입이 열렸고, 하얀 별은 저처럼 웃고 있는 케일을 보았다.
그, 찰나였다.
하얀 별은 보았다. 케일 헤니투스의 왼손이 움직이는 것을, 그리고 제 손을 붙잡은 케일 헤니투스의 오른손이 힘껏 잡아당기는 것을.
잠깐의 방심.
짜아악-!
하얀 별의 고개가 왼쪽으로 휙 돌려졌다.
‘뭐지?’
잠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그런 생각이 하얀 별의 머릿속에 들어찼을 때, 그의 시야에 앞으로 당겨지는 제 몸, 제 배를 향해 날아드는 케일 헤니투스의 발이 보였다.
탁!
하얀 별은 재빨리 몸의 균형을 잡아 날아드는 케일의 발을 제 발로 저지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단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로, 그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하!”
하얀 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피다.
입안에서 피 맛이 난다.
뺨을 맞을 때 저도 모르게 이로 볼을 깨문 듯했다.
“…때려? …날?”
그의 시선이 케일 헤니투스에게로 향했다.
“아. 엄청 빨개졌네. 참 나도 약하긴 약해.”
케일은 빨개진 제 손바닥을 탈탈 털어대면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든 그는 하얀 별과 눈이 마주치자 툭 내뱉었다.
“확실히 그냥 맞는 것보단 뺨 맞는 게 더 기분 나쁘지? 응? 기분 나쁘라고 그렇게 친히 때린 건데.”
“…이 새끼가……?”
황당했다.
하얀 별은 이 상황에서 뺨을 맞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생각을 하며 동공이 흔들리던 왕세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이 자식 눈이 헤까닥 돈 게 맞아!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케일은 입가에 흐르는 피와 케일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하얀 별을 보며 떫냐는 듯 말했다.
“왜? 나쁜 놈 뺨 좀 후려지면 덧나냐?”
“…너 지금 이게 무슨 의민지 알고 행동한 건가?”
하얀 별은 모멸감이 치밀어 올랐다.
다른 것도 아닌 찰나의 방심에 얻어맞은 뺨이, 무엇보다도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최한이 튕겨져 나가며 부서진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목숨 내놓고 싸우겠다는 네 아군 놈들! 데르트 공작! 모두 끝장내고 싶은 건가?”
하얀 별이 힘을 펼치는 순간, 이를 막기 위해 알베르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 사자용은 이 퍼슬시청을 향해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데르트 공작의 소재지는 꽁꽁 숨겨져 있다. 하얀 별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짓을 벌여?
“뭐래.”
피식. 케일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기도 안 찬다는 듯 하얀 별을 향해 툭 내뱉었다.
“누가 모두 끝장낸대?”
그 순간이었다.
케일은 품에서 영상통신구를 하나 꺼내어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쨍그랑.
구슬이 깨진 그때.
우우웅—-우웅—-
퍼슬시청이 흔들렸다.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듯한 진동이 빠른 속도로 퍼슬시청을 지나 밖으로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
하얀 별의 눈이 커졌다.
이 진동.
그가 한 번 사용했던 힘이었다.
“마나 교란 장치!”
서대륙 불가사의 지대 중 하나인 사막, 죽음의 땅.
그 인근에 위치한 카로 왕국의 두보리 영지.
하얀 별은 그곳에 마나 교란 장치를 설치하여 라온이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동시에 케일과 라온이 떨어지게 했었다.
지금, 그 마나 교란 장치가 퍼슬시청에서 시작하여 삽시간에 퍼슬시 성벽을 따라 시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중심지인 퍼슬시청.
바이올란 공작부인은 하나둘 흘러내린 잔머리를 다시 조금의 틈도 없이 틀어 올리며 무심히 말했다.
“적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만들어야지. 플린 상단을 통해 재료를 대량 구매한 보람이 있어.”
그리고.
“이 마나 교란 상태에서는 텔레포트 마법은 불가능하지.”
데르트 헤니투스를 퍼슬시 밖으로 텔레포트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서로 간에 연락이 안 될 터.”
하얀 별이 데르트 헤니투스를 직접 찾아가 죽이지 않는 이상, 하얀 별은 제 수하를 시켜 데르트를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 영상통신 마법이 불가능하니까.
통신 마법이 아닌 직접 명령을 내린다면, 수하가 움직이는 모습을 케일이 놓치지 않을 터.
그녀는 영지에서 데려온 마법사들이 장치를 작동시키는 모습을 둘러보다 뒤돌아섰다.
“론 가주.”
“평소처럼 부르십시오.”
“그럴 순 없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도, 그녀는 평소처럼 말을 낮췄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론의 손을 바라봤다.
케일이 론에게 건네주라던 황금 팽이채가 그 손안에 들려 있었다. 바람이, 바람의 정령이 알려줄 것이라고. 아들은 그리 말했다.
케일은 회의가 끝나고 최한과 라온이 힐스만을 의심하고 있을 때, 말했다.
‘최한. 아버지께 시작하시라고 연락해. 그리고 어머니께 내 말 좀 전달해줘. 그리고 라온, 내 팽이채 들고 있지? 줘.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최한도, 라온도 각자 장소로 이동하고 있을 때. 혼자 남은 케일이 영상통신구들을 보며 동시에 한 일. 그것은 혹시 모르니 힐스만과 데르트를, 모고르 쌍둥이들을 한 명 더 찾으란 지시였다.
이 상황을 모르는 바이올란이었지만,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론에게 물었다.
“샅샅이 뒤져서 내 남편을 데려와. 얼마나 걸리지?”
데려올 수 있나? 찾을 수 있나?
그런 가능성 따윈 묻지 않았다.
다만 확답만을 원했다.
그리고 론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공자님께 약속드렸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까지 찾는다고요.”
“그렇다면 새벽까지 장치를 유지하면 되겠군.”
마나 교란 장치로 인해 이제 이 안에서 영상통신은 모두 끊겼다.
아니, 유일하게 한 장소만은 영상통신이 가능했다. 어린 용이 있는 곳. 조금 전까지 바이올란이 있던 방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져 대량의 마나가 요동치는 공간이었다.
그곳을 제외하면 모든 곳은 이제 마법이 먹통이다.
그렇다면 서로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가보게.”
서로가 잘 해낼 것이란 믿음뿐.
“네.”
그 믿음의 중심에 선 자. 케일 헤니투스는 웃고 있었다.
“하!”
반대로 하얀 별은 기가 차다는 듯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
일을 이렇게 만들어?
하얀 별은 불길에라도 사로잡힌 듯 타오르는 눈동자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짓고 있던 미소를 더 짙게 그렸다.
“세상에 만고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지.”
그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뭔 줄 아냐?”
케일이 생각하는 만고불변의 진리.
“신? 세상의 비밀?”
그는 스스로 내뱉은 말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딴 게 아냐.”
그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진리는 신 따위도, 세상의 비밀 따위도 아니었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하얀 별보다 더 타오르는 눈동자가 번뜩였다.
“가족은 건들면 안 돼.”
가족을, 내 사람을 건드려선 안 된다.
그것이 케일 헤니투스에게는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둥–!
땅이 울렸다.
광장. 아군과 함께 있던 로잘린은 마나 교란으로 잘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저도 모르게 땅을 내려다봤다.
“이건……!”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아는 힘이었다.
땅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이 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반가움과 깨달음이 담긴 외침이었다.
“…케일 공자!”
그녀는 힘이 집중되는 땅의 위치를 보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뒤로! 뒤로 물러나세요!”
아군과 괴물 사자용 사이.
돌격하기 바로 직전에 놓인 빈 공간.
쩌저적-
그곳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이내 천둥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다.
“허억!”
“숙여!”
당황한 이들이 저마다 자세를 낮추거나 말을 붙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보았다.
“저것은……!”
갈라진 땅 사이로 돌들이 솟구쳐 올랐다.
수십, 수백여 개의 돌들.
그 순간, 사람들은 이 돌들을 솟구쳐 오르게 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왔다.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이 전장에 나선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돌들이 움직였다.
“…벽, 벽이-”
아군과 사자용 사이 빈 공간. 그곳에 솟구쳐 오른 바위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거대한 벽을 만들어 갔다.
타닥.
그 벽 위에 한 사람이 발을 디디며 내려섰다.
“최한!”
로잘린은 제 외침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그 시각, 케일은 웃으며 말했다.
“하얀 별, 네가 모두를 한곳에 모아주니, 방벽을 만들기가 참 쉬워졌네?”
방벽.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막기 위해 쌓는 벽.
케일은 아군도, 아버지도 애초에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느새 석양이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각.
마법이 없는 밤이 열렸고,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에 케일의 붉은 머리칼이 흔들리며 마치 밤을 밝히는 불처럼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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