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89
688화.
“아닌데?”
템스가냐는 물음에 힐스만 모습의 남자는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봐도 장난치는 것 같은데.”
은색 고양이 온이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홍은 케일의 다리에 치댔고, 케일은 그런 홍을 품에 안았다. 그러다 홍이 놀란 얼굴로 외쳤다.
“손 다쳤는데!”
“뭐?”
“뭐라는 거냐!”
온과 라온의 시선이 곧바로 케일에게로 향했다.
“쯧. 칠칠찮기는 제 엄마를 꼭 닮았구만.”
휙.
온, 홍, 라온. 평균 9세의 고개가 다시 가짜 힐스만에게로 움직였다.
씨익.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케일은 천천히 의자에 앉은 힐스만에게로 다가갔다.
“자, 하나만 먼저 답해주시면 됩니다.”
케일은 가짜 힐스만의 코앞에 서며 고개를 숙였다. 의자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는 가짜 힐스만의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가 보였다.
“사냥꾼입니까?”
친모 주르 템스는 단생자를 찾아다니는 ‘사냥꾼’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왜? 내가 사냥꾼이면 어떻게 하게?”
“당연한 물음이군요.”
케일은 담담하게 답했다.
“처리해야죠.”
가짜 힐스만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어졌다.
“…확실히 템스가의 피를 이었군.”
장난기가 싹 가신,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는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그래. 템스가의 피를 이었다면 사냥꾼에 대한 증오는 있어야지. 사냥꾼 몰살을 위한 원동력이 없으면 쓰나.”
음?
케일은 잠시 멈칫했다.
‘몰살?’
케일은 그런 몰살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처리’한다고 했을 뿐. 그 처리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겠다는 협상, 혹은 대화를 통한 합의. 나아가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손발을 묶어 사냥 시도조차 못 하게 제재하는 방법 등.
다양한 처리 방법이 존재했다.
‘그리고 템스가의 피를 이어서 사냥꾼을 처리하려는 건 아닌데.’
신체는 템스가의 피를 이었으나, 안에 담긴 영혼은 몸의 주인과 영 달랐다.
물론 이 몸의 친모인 주르 템스가 사냥꾼에 대해 분노를 표하거나 관련된 한이 있을 경우에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나설 생각도 일부 있었다. 템스 가문의 문제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최한이 걱정이지.’
하지만 케일이 사냥꾼을 경계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최한’이었다.
단생자인 최한.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미지의 존재인 사냥꾼의 전력을 알 수가 없었다. 따라서 케일은 사냥꾼이라는 존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최한이나 케일 자신이나.
지구를 떠나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어찌 보면 가장 비슷한 처지였으니까.
‘그리고 왠지 사냥꾼이 여기에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아버지 데르트 공작이 모은 대륙 곳곳의 강자 중 갑자기 사라진 이가 3명이었다.
그중 하나가 하얀 별이라고 한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2명이나 남아 있었다.
가짜 힐스만은 헤니투스 영지에서부터 바이올란 공작 부인과 함께 왔기에 그 2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 모두 처리해야지. 모조리.”
어찌 되었든 눈앞의 가짜 힐스만은 ‘처리’의 뜻을 케일의 본래 뜻과 달리 조금 더 살벌하게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이거 쎄한데.’
케일은 장난기 없이 히죽거리는 가짜 힐스만을 보며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서늘해져 왔다. 마치 빙의를 하고 눈을 뜬 날, 바로 론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꼭… 꼭…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는 느낌이야.’
그저 편안한 노후를 꿈꾸는 이에게는 끔찍한 느낌인지라, 케일은 자신이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당신은 사냥꾼은 아닌 것 같군요.”
이 가짜는 사냥꾼은 아닌 듯싶었다. 오히려 사냥꾼을 매우 증오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템스가 사람이거나 최소한 템스가와 연관된 사람이야.’
가짜 힐스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냥꾼은 아니지.”
그 모습을 보던 온이 살짝 귀를 쫑긋거렸다.
힐스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모습은 케일 혹은 하얀 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심하거나 혹은 권태롭거나.
‘…에르하벤 님 같기도 해.’
그래, 케일보다는 에르하벤 같았다.
세상일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선 옛날의 에르하벤. 그처럼 가짜 힐스만은 어딘가 초연해 보였다.
‘물론 아까 전 눈동자에 담긴 분노는 진짜였지만.’
이 순간 온은 두 사람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그녀를 무릎에 앉혀놓고 말했던 각기 다른 두 사람.
‘넌 앞으로 정보를 손에 거머쥐고 살 거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사람을 잘 관찰해야 돼.’
첫 번째는 론의 무릎 위에서 들은 말이었고.
‘어딘가 헤까닥 돌아버린 놈이라고 생각 들면 그냥 무시하고 니 갈 길 가.’
두 번째는 케일의 쓰다듬을 받으며 들은 말이었다.
둘 다 유익한 조언이었기에 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짜 힐스만을 외면하며 케일과 가짜 힐스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데르트 공작을 보러 왔어. 그에게 할 말이 있고, 그에게 받을 것이 있거든.”
“아버지에게?”
“그래.”
가짜 힐스만은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단 채 느긋하게 말했다.
“내 정체에 대해 듣고 싶다면, 그건 데르트를 통해서 들으면 될 거다.”
“…아버지는 당신을 알고 있는 건가?”
“아마도 알아챌걸?”
음.
가짜 힐스만은 케일의 모습을 위아래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아니면 왕한테 물어보든가.”
“…왕?”
케일은 순간 누구를 가리키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제드 크로스만.
현재 로운 왕국의 정사 대부분을 알베르에게 맡겨둔 채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는 현왕.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알베르 크로스만이 마음의 결단만 내리면 곧바로 제드 크로스만으로부터 왕위를 이양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케일은 템스라는 가문이 망하는 과정에서 의문을 가졌었다.
로운 왕국의 한 귀족 가문이 갑작스럽게 망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언급한 바가 남아있지 않았다.
주르 템스가 어렸을 때의 일이니, 그리 오래지도 않은 시기인데 이상하리만치 템스 가문에 대한 정보는 로운 왕국에 없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제드 크로스만이라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템스 가문과 제드 크로스만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 둘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면.
‘그렇다면 이 정보의 부재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더불어 주르를 만났을 때 학생에 불과했던 데르트 공작이 템스 가문 몰락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그저 템스 가문이 몰락했다는 사실만 안다는 것도 말이 되었다.
애초에 데르트 공작 정도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거…….’
케일은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이거 뭔가 장난 아닌 비사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일주일 내내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은, 엄청난 규모의 일이 지금 케일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케일에게 마치 행성 충돌과도 같은 영향력을 미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충돌을 피하면 살고, 충돌하면 죽고.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지.”
케일의 중얼거림에 다들 의아한 눈동자로 쳐다봤으나 그는 그런 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쳤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착한 생각, 좋은 생각만 하는 거다.’
케일은 잠시 홍을 내려두고 안주머니에 넣어둔 황금패를 만졌다.
이 안에 갇혀 있을 하얀 별의 분노에 찬 꼬라지를 생각하니, 자연히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역시 좋은 생각을 해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군.’
한층 여유를 찾은 케일은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당신의 정체를 아는 것이 전하까지 연관이 되어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렇지. 궁금하지?”
“아뇨.”
“…응?”
“내가 굳이 알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는 케일의 눈빛은 무심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다면 알지 못할 것 없는 문제니까.’
엄청난 비사를 굳이 알고 싶지 않을 뿐.
제드 크로스만?
곧 나의 의형님이 왕이 된다. 전대의 기록이야, 부탁해서 정리해달라고 하면 된다.
툴툴거리면서도 다 정리해서 친절히 알려줄 좋은 일꾼, 아니, 형님이다.
그리고 사냥꾼?
이 또한 쉽게 생각하면 된다.
건든다?
…황금패에 담긴 하얀 별처럼 만들면 된다.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아주 쉬운 문제죠.”
그 모습에 가짜 힐스만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너- 정말 주르 템스 어릴 적을 똑 닮았구나. 걔가 그렇게 살벌하게 웃을 때면 대재앙이 펼쳐-”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강렬한 붉은빛이 창을 넘어 방안에 드리웠다.
“인간아! 2단계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봤다.
사자용의 입이 벌어지며 검붉은 빛을 에르하벤과 알베르를 향해 쏟아내고 있었다.
“역시 왕세자가 말한 대로다!”
알베르 크로스만이 제3지구의 안로만에게 들은 ‘사자용 공략 정보’.
사자용의 공격은 총 5단계로 이어졌다.
첫 번째가 방패와 발톱만을 사용하는 공격이었고, 두 번째가 입을 통한 저 검붉은 빛을 적에게 토해내는 것이었다.
“잘 피하는데!”
홍이 눈을 반짝이며 창가로 향했다.
케일도 그 뒤를 따라 창가로 향하고는 그 위에 놓인 여의주를 집어 들었다.
-록수야.
이수혁의 목소리가 여의주를 통해서 들려왔다.
-이 상황이면, 큰일이 날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렸나? 내가 아는 너와 한이, 암흑 호랑이라면 이런 상황을 예측했을 텐데?
움찔. 그 말을 들은 라온이 멈칫거리며 케일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가짜 힐스만이 툭 내뱉었다.
“지금 저 고룡과 왕세자가 잘 유도해서 괴물의 공격이 허공이나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잘못하다간 사람들한테 저 공격이 가겠는데?”
괴물 사자용에게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검붉은 빛.
콰아앙- 콰앙, 쾅! 쾅!
허공으로, 혹은 인적이 없는 땅으로. 사방으로 쏟아지는 힘에 그 인근은 부서지고 파괴되어갔다.
“케일 헤니투스 네가 세운 방벽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의 방벽은 괴물의 힘에 바로 소멸할 것 같다?”
“…저 가짜 힐스만 말하는 거 얄밉다!”
“맞다, 얄미운데!”
라온과 홍은 그리 말하면서도 케일의 눈치를 살폈다.
이는 라쉴과 밀라가 알베르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눈빛이었다.
“제길!”
쾅, 쾅–!
끊임없는 폭음 사이로, 드래곤 라쉴은 정신이 없었다.
“좀 우리 엄마처럼 해봐요!”
“닥쳐!”
분홍 뽀글머리 도도리의 말을 무시하며 라쉴은 정신없이 거대한 몸을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사자용과 에르하벤, 알베르에게로 향해 있었다.
에르하벤은 사자용의 공격이 케일이 세운 방벽 뒤, 아군에게로 향하지 못 하게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였다.
타앙- 탕!
그 사이로 알베르는 쉴 새 없이 탄환을 쏘며 사자용의 틈새를 노렸다.
“끄아아아—!”
이미 사자용의 날개 8개 중 6개가 파괴된 상황. 사자용은 하늘이라는 공격권을 잃어갔다.
“야!”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라쉴은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대로 가다간, 저 하찮은 인간들 다 죽는다고! 곧 사자용은 3단계에 들어선다며!”
사자용 공략 5단계.
이는 사자용의 공격 상태에 따라 변화했다.
그중 2단계가 위협적인 적을 향한 집중 공격이라면.
3단계는 다인 공격이었다.
쉽게 말해.
“다 죽이려고 들 거라며! 그러면 저 미천한 인간들은 누가 지키냐고!”
라쉴은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도 없잖아!”
원래라면.
이렇게 마나 궤도 교란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면.
마나가 안정적인 상태일 테고.
라온, 에르하벤, 도도리, 라쉴, 밀라. 총 다섯에 달하는 용은 한 마법을 펼칠 예정이었다.
이는 사자용의 다인 공격.
즉, 3단계에 들어섰을 때 펼쳐질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과 퍼슬시를 보호할 마법이었다.
그러나 현재 퍼슬시청에서부터 시작된 마나 교란으로 인해,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저 괴물의 힘은 마법도 아니라며!”
그리고 괴물의 힘은 그 근원이 마법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재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용들과 달리 자유로이 다양한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아씨! 인간들 이렇게 많이 죽으면, 죽으면!”
라쉴은 케일의 방벽 뒤에서 이곳을 도우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인간들을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나 잠자리 뒤숭숭해진단 말이야!”
“괜찮습니다.”
“뭐? 다 죽어도 괜찮다고?”
휙! 라쉴의 머리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밀라 등 위에 자리한 최한이 있었다.
타앙!
동시에 한 번의 총성이 다시 울렸고, 알베르의 외침이 들려왔다.
“3단계 진입!”
그 순간, 사자용의 눈빛이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위험 지역 선포… 무차별 폭격 준비…….”
빌어먹을!
라쉴이 다시 한번 거친 말을 내뱉으려는 때, 그보다 더 빨리 말을 내뱉은 이가 있었다.
“도도리 님!”
“응?”
알베르는 도도리를 불렀고, 갑작스러운 부름에 도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베르를 바라봤다.
그런 그에게 최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도도리 님 그곳이 아니라, 저쪽 창가를 보세요.”
그때, 케일은 손을 뻗었다.
끼이익-. 살짝 열렸던 창문이 완전히 열리며 그의 시야에 이쪽을 바라보는 도도리가 담겼다.
“라온.”
유일하게 마법이 가능한 공간. 케일은 라온에게 마법을 하나 부탁했다.
“도도리에게 내 말을 전해줘.”
“알았다, 인간!”
곧 도도리는 라온의 목소리로 케일의 말을 전해 들었다.
-지금부터 수업을 시작합니다. 곧 도도리 님도 쓸 힘입니다.
수업?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나도 쓸 힘?
도도리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돌, 돌이-!”
도도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사방으로 돌렸다. 그는 몸까지 움직이며 시청을 중심으로 한 퍼슬시의 동서남북을, 모든 방위를 바라보았다.
“인간아, 괜찮겠나?”
“어. 이러려고 내가 하얀 별 잡을 때 별 힘을 안 썼지.”
케일은 평균 9세에게 씨익 웃어 보이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그는 이 퍼슬시를 처음으로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부집사 한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무엇 때문에 이 도시가 신에게 버림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때 이 도시 사람들이 몇몇씩 무리를 지어 여러 개의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게 어떤 바람을 담은 기도의 행위였다고 합니다.’
퍼슬시는 돌탑이 많이 모여 있는 유적지로도 유명했지만 또 다른 도시 명물이 있었다.
그것은 집집마다 쌓여있는 작은 돌탑들이었다.
이 도시 어디를 가도, 집 창문 밖에는 그 집 사람들이 쌓은 돌탑이 존재했다.
돌 10개 이하의 작은 돌탑들이었지만, 퍼슬시의 모든 집에 쌓인 돌들.
케일은 한스에게 그렇게 어떤 바람을 담아, 기도하듯 쌓아 올린 돌탑으로 소원이 이루어졌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바람은 이루어졌대?’
‘아뇨.’
신에게 버림받은 도시. 신은 그곳의 바람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기도는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퍼슬시에는 신전이 하나도 없지요.’
‘신이 버렸는데 굳이 내가 신을 모실 이유는 없다. 이건가?’
‘정답입니다.’
그럼에도 돌탑들은 계속 퍼슬시에 세워졌다.
‘이 돌탑은 그 뒤로 하나의 약속이 됩니다. 인간들 사이의 약속이기도 했고, 그 인간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했지요.’
‘무슨 약속?’
부집사 한스는 퍼슬시에 내려오는 한 가지 규칙을 말해주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룬 인간은 자신의 돌탑을 무너뜨린다.’
‘이들은 신에게 버림받았으니 결국 소원을 이루려면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하니까요. 돌탑을 부수는 행위는 일종의 ‘극복’을 뜻합니다.’
퍼슬시에 자리한 셀 수 없이 많은 돌탑은 인간들이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쌓은 것들이었다.
케일은 사자용을 가만히 응시하다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여기는 우리에게 최적의 전장이다.
작고 크고.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수많은 돌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케일, 그가 세운 방벽이 모두를 지키기에 부족하다면.
수많은 이들이 모아놓은 돌들을 사용하면 될 일이었다.
“신을 지키는 가디언이라.”
그리고 그 가디언을 현재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케일은 담담한 미소를 그렸다.
“적어도 할 말은 생기겠어.”
내가 돌을 써야 할 일이 있었다고.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케일은 각자의 다짐과 소망을 닮아 이 수많은 돌들로 탑을 세웠을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먼저 뜻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