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95
694화.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 보통의 밤하늘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어야 할 존재였으나 환하게 빛나는 구 아래에서는 그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괴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땅을 적시지 않고 검은 연기로 피어올랐다.
“…후우.”
깊고 또 깊게 내쉬는 숨. 알베르 크로스만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주변 대기 상황 안정 상태 도달.
마나 궤도 교란 장치가 멈췄다.
알베르는 케일이 데르트 공작을 구해내고 납치범을 모두 잡았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모든 일을 마친 그놈이 이 마지막을 앞둔 전장을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것도.
‘이번에는 케일 헤니투스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만히 잘 지켜보고 있었으면 싶었다.
-마력 고갈 위험. 소유주 알베르 크로스만의 잔존 마력량 20% 미만.
태랑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며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20%.”
남은 마력을 떠올리며 알베르는 부러지지 않는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자용. 이에 대해 제3지구의 안로만은 짧게 말했다.
‘괴물의 최후가 머지않았음을 의미하지.’
‘알베르 크로스만. 사자용의 마지막 5단계는 어떨 것 같나? 괴물의 최후가 다가오는 것은 어떤 느낌일 것 같나?’
알베르는 안로만의 그 물음에 이제는 답할 수 있었다.
“…엉망이지.”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꼴을 살펴보았다.
잠옷 차림으로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그의 모습은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다 싶을 정도로 추레했다.
늘 왕세자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만을 보였던 알베르였기에, 이런 그의 모습을 왕국민들이 본다면 분명 놀라리라.
“이제 한 번만 더 하면 되는 거냐?”
알베르는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딛고 있는 등의 주인. 에르하벤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사자용과 부딪쳤기 때문이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드래곤 밀라는 에르하벤보다 더 자잘한 부상이 많았다.
‘그 덕분에 방패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었지.’
지금 사예르를 쫓아가고 없는 라쉴. 그래서 밀라는 괴물과 괴물의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는 방패를 전담하여 알베르와 에르하벤이 괴물의 몸 곳곳 빈틈을 노릴 수 있게 해주었다.
에르하벤은 빈틈이 보이면 바로 괴물에게 달려들었고, 알베르는 그 틈에 탄환을 쏘며 괴물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이 모든 과정은 라온과 로잘린이, 메리가 괴물을 넘어트리고 붙잡아두었던 그 순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과 전력이 필요했을 터.
“저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이들의 보조를 한 것이 최한이었다.
보조라고 하니 후방에서 싸운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최한이 한 보조는 함께 싸우는 쪽이었다.
그는 밀라와 에르하벤의 상태를 매 순간 확인하며 추가 공격이 필요할 경우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우리 스승님 꼴도 엉망이구나.”
“저하보다는 덜한 것 같습니다만.”
“웃기는 소리.”
최한의 꼴은 알베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알베르의 시선이 최한의 검으로 향했다. 검에서 피어오르는 오러의 기세가 전보다 약해졌다.
최한도, 용들도, 알베르도 모두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 결과로 괴물은 마지막 5단계로 접어들었고, 이 싸움의 끝이 머지않았다.
안로만은 말했다.
‘싸움의 끝은 아름답지 않지. 마지막은 추잡할 거다.’
5단계는 추잡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굉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베르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소리지.”
왜냐면 모든 싸움이 그러하니까.
아름다운 싸움?
그딴 것은 세상에 없다.
그러니 그저 싸움의 끝에서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에르하벤 님. 가죠.”
“그래.”
알베르의 입이 열린 순간, 밀라의 등에 올라타 있던 최한이 에르하벤의 등 위로 자리를 옮기며 알베르 곁에 섰다.
에르하벤, 최한, 알베르는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괴물에게로 향했다.
‘괴물의 심장을 죽이기 전까지 괴물은 멈추지 않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서 있는 사자용.
쓰러졌던 놈은 결국 일어섰으나 한쪽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허억. 허억.”
괴물의 입에서는 가쁜 숨이, 상처 입은 비늘 곳곳에서는 피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드 드래곤의 거대한 몸체가 그 앞에서 바로 멈췄다.
“…위험하지 않겠나?”
에르하벤의 물음에 알베르는 담담히 답했다.
“그래도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스승님도 함께할 것이고. 그렇지?”
“당연히.”
“너도 점점 불경해지는구나. 어쨌든, 제 생각에는 에르하벤 님께서 힘드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고룡은 얕은 웃음을 흘리더니 밀라를 힐끗 쳐다봤다.
“…나야 뭐 오래 살 것 같아서.”
고룡은 점점 더 아래로 하강했다.
괴물과 골드 드래곤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에르하벤은 마지막을 장식할 둘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가라.”
그 순간 알베르와 최한이 에르하벤의 등을 박차고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에르하벤의 입에서 거대한 포효성이 터져 나왔다.
마나 궤도 교란 장치는 멈춘 상황.
다시 마나가 안정을 찾은 이때.
검은 연기 사이로 하나둘 금빛 가루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펼쳐지는 은하수처럼, 삽시간에 몸집을 키운 금빛 가루들을 휘감은 에르하벤이 사자용과 부딪쳤다.
콰아앙-
오늘 밤 끊임없이 울렸던 굉음이 다시 한번 하늘을 가로질렀고, 괴물의 방패를 금빛 용의 앞발이 움켜쥐었다.
괴물은 방패로 용을 뭉개기 위해.
용은 방패를 빼앗기 위해.
힘과 힘이 부딪친 상황에서 또 다른 드래곤이 괴물의 팔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색 마나와 베이지색 마나를 휘감은 용들이 괴물을 압박했다.
용들이 그렇게 괴물의 몸뚱이를 움켜잡은 순간.
알베르와 최한은 각기 창과 검을 뻗었다.
알베르는 안로만의 말을 떠올렸다.
‘알베르 크로스만. 5단계에서 괴물은 능력을 모두 소진하여 유일하게 남은, 타고난 신체적인 힘을 있는 힘껏 쥐어 짜낸다. 그래서 괴물의 마지막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오지.’
‘네가 태랑으로 괴물의 심장을 멈춰 세워.’
콰직!
창이 괴물의 등 비늘을 뚫고 그 피부에 박혔다.
알베르는 그 창을 잡고서 낙하하던 몸을 멈춰 세웠다.
마찬가지로 괴물의 등에 난 상처 사이로 최한의 검이 박히며, 최한 역시도 괴물의 등 위에 안착했다.
“크르르—!”
그 통증을 느낀 사자용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의 고통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고통이었을 텐데, 그 반응이 이전보다 더 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한.”
“네.”
등을 밟고 선 최한은 검을 다시 뽑아 들어 오러를 피워냈다.
‘으음.’
최한은 손이 떨려왔다.
너무 많이 오러를 사용하여, 검을 들고 있는 몸도, 그가 피워낼 수 있는 오러도 이제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한계를 최한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최한.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내 창이 심장까지 닿을 수 있게 길을 뚫어주는 것이다.”
“쉽군요.”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망 속에 희망을 담아 피워낸 최한만의 힘.
반짝이는 검은 오러가 난폭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조금씩 흑룡을 만들어갔다.
최한은 검을 치켜들었다.
“후우.”
한 번의 숨쉬기.
그 후, 그의 몸은 망설임 없이 목표를 향했다.
“부탁하마!”
알베르가 박고 있던 창을 뽑아내었다.
최한의 오러는 괴물의 비늘을 뚫지 못할 뿐, 그 안의 내부를 파괴하기에는 상당히 강력한 힘이었다.
흑룡은 얼마든지 난폭해질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반짝이는 검은 오러가 흑룡이 된 순간, 최한의 몸과 검은 알베르의 창이 낸 그 구멍을 향해 쏘아졌다.
우우우—
흑룡이 대기를 가르며 울음과도 같은 소리를 토해내었고, 마침내 그 흑룡이 알베르가 낸 상처에 닿은 순간.
“크아아아—!”
괴물은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피하려고 하였다.
“잡아라!”
그러나 그 괴물의 방패와 오른쪽을 에르하벤이, 괴물의 왼쪽을 밀라가 꽉 붙들어 잡고 있었다.
용의 몸에 생채기가 생겼지만, 두 용은 그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힘 대 힘. 용들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 짜냈다.
그렇기에 최한의 흑룡은 상처 틈새를 헤집고 그 안으로 제 송곳니를 박을 수 있었다.
콰아아아—-
알베르가 만든 상처가 벌어져갔다.
흑룡은 일직선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며 괴물의 내부를 집어삼켜 갔다. 절망이라는 속성에 걸맞게, 동시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에 맞게. 흑룡은 최한이 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최한도 그 뒤를 따랐다.
검을 쥔 손이, 팔이, 상체가, 온몸이 점점 더 떨려왔다.
사자용의 내부는 비늘보다는 약했지만, 역시 강했다.
‘뼈.’
특히 심장까지 가는 길을 막아서는 사자용의 뼈들. 그것은 흑룡이 부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았다.
-남은 모든 마력을 소진하시겠습니까?
“1%를 제외하고 모두 소진한다.”
-이행하겠습니다.
탕-! 탕, 타앙!
총소리와 함께 탄환이 사자용의 뼈에 박히며 금을 내었다.
그 작은 틈새면 흑룡이 충분히 제 길을 갈 수 있었다.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입꼬리조차도 떨렸으나 그는 마침내 검을 쥔 손에 살짝 힘을 놓으며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두 용이 달라붙어야 할 만큼의 신체적인 힘을 지닌 거대한 괴물의 몸.
그 등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움직인 검은 오러는 마침내 목표물에 당도했다.
“이제 저하 차례십니다.”
괴물의 상체 가장 중심에 고이 숨겨져 있던 하얀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장은 인간처럼 뛰고 있지 않았다. 그저 심장 모양을 한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었다.
그 심장을 부술 수 있는 무기가 이곳에 있었다.
어느새 알베르의 손에 들린 무기는 그가 애용하는 창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크아아아—!”
괴물은 등에서부터 벌어진 상처가 심장에 도달한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두 드래곤이 마나로 제 몸을 묶어 마나를 땅에 박아두면서까지 그 몸을 붙잡고 있었다.
“크윽.”
“어서, 서둘러요!”
하지만 드래곤도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베르는 심장을 향해 몸을, 창을,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잔존 마력량 18%.
“저 심장을 부수려면 얼마나 써야 하지?”
-모두.
모든 마력량을 다 쏟아부어라.
알베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러서는 최한에게 한마디를 남기고서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한. 나 좀 가려주게.”
잔존 마력이 0이 되면, 목걸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력이 다시 차오르기 전까지 제 모습을 가린 마법이 풀릴지도 몰랐다. 물론 염색 마법이 안 풀릴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마나를 모두 쓴 적이 없었기에 모든 일에 대한 작은 대비라도 해두어야 했다.
알베르는 다크엘프 쿼터인 자신도 좋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었다.
“걱정 마십시오.”
침착한 대답과 달리 최한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베르는 저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있었다. 그는 최한에게 뒤를 맡기고 심장으로 향했다.
뛰지 않는 하얀 심장.
그 심장을 향해 뻗어져 가는 하얀 창.
-모든 마력 출력.
-잔존 마력량 15%…12%…….
그 창을 감싸는 것은 알베르의 본질 중 하나인 검은 마나. 죽은 마나였다.
-5%…3%…1%…0%.
하얀 창끝에 마침내 알베르의 모든 마력이 담긴 순간.
검은 마나를 품은 백창은 괴물의 심장에 박혔다.
푸욱.
“끄아아아—-!”
괴물이 이전과는 다른 울음소리를 토해내었다.
동시에 알베르는 괴물의 하얀 심장을 점점 검게 물들여가는 자신의 죽은 마나를 볼 수 있었다.
콰직. 콰지직.
심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알베르는 하얀 창을 쥐고 있던 자신의 하얀 피부가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파아앗-
그 순간, 부서지는 심장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칠흑과도 같은,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빛이었지만.
-목표물 파괴 완료.
-괴물 ‘사자용’을 공략하셨습니다.
태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베르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해냈구나.
드디어 이 괴물을 잡았구나.
미소를 그린 입가와 달리 알베르의 눈가는 일그러지며 살짝 떨려왔다.
그때.
-잔존 마력량 0에 도달. 소유주의 안전을 위해 잠시 보호 모드에 들어갑니다.
-보호 모드란 기절을 의미합니다.
“…어?”
알베르는 순간 다른 의미로 눈앞이 점점 깜깜해져 왔다.
‘기절한다고? 내가? 지금?’
“저하!”
그는 최한이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검은빛을 뚫고 황급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저하! 정신을 차리십시오!”
놀란 최한이 자신의 낡고 헤진 로브로 알베르의 전신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칭칭 감싸며 연신 외쳐댔지만 알베르는 답할 수 없었다.
‘…이런. 케일 헤니투스의 심정을 알겠-’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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