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96
695화.
검은 연기 사이를 집어삼킬 듯 빛났던 두 가지 빛깔.
금색, 베이지색. 두 드래곤이 만든 아름다운 마나 빛깔로 검은 연기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저, 저-!”
괴물 사자용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조금의 다른 빛깔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검은색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검은빛에 저도 모르게 멈칫하거나 움츠러들었다.
“설마 괴물이 또 다른 공격을?”
저 검은빛을 만든 존재가 괴물일 것이라고, 당연히 그리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전장 상황을 한 발짝 더 앞서 파악하고 있던 이들은 하나둘 저 검은빛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정글의 왕 리타나는 깊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괴물에게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드래곤이 담겼다. 검은빛에 가려 자세히 그 모습이 모두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드래곤은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드래곤이 물러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겼군요.”
그때, 케일 헤니투스의 목소리가 그의 곁에 있던 각 왕국 수뇌부들의 귓가에 닿았다.
동시에 괴물에게서 터져 나오던 검은빛이 점차 사그라들며 괴물의 무릎이 꺾였다.
쿵.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소리였지만, 지난 전투 동안 울려 퍼졌던 소리에 비하면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귓가에 무엇보다도 크게 들려왔다.
괴물의 무릎이 꺾였다.
서서히 괴물의 몸이 무너져 내렸고, 마침내 괴물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쿠웅.
그 소리가 들린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그제야 엉망이 된 괴물의 뒷모습과 더 이상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는 않는 괴물의 빛을 잃은 눈동자를 보았다.
“이겼, 이겼다-!”
로운 왕국 병사 한 명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탕! 그의 손에 들려있던 무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무기를 놓친 병사를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두려움을 참고서 그 자리를 지키던 병사는 마침내 쓰러진 괴물을 보고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토해내었다.
“으아아아-!”
환호성이 아니었다.
드디어, 마침내 괴물은 끝났다는 안도에서 오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은 곳곳에서 퍼져나갔다. 저마다 주저앉거나 두 손을 들어 올리거나 참고 있던 감정을 입 밖으로 외쳐대거나.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으음. 이거 참.”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각 지원국의 수뇌부들과 로운 왕국의 수뇌부들 상당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한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도우려고 왔음에도 무엇도 돕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특히 엉망이 된 케일의 꼴을 보면 더 그런 감정이 들었다.
“거의 한 것도 없는데.”
카로 왕국의 발렌티노 왕세자가 슬쩍 땅을 바라보며 미안함과 민망함을 담아 중얼거렸다.
“왜 한 게 없습니까?”
그는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위로 올렸다. 케일이 엉망이 된 셔츠 자락을 정돈하며 무심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케일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봉인된 신의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 드래곤보다 강한 괴물. 그런 괴물을 없애는 것을 돕기 위해서 온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험을 감수하고 온 이들이었다.
특히 발렌티노 왕세자나 툰카, 리타나 등 각 왕국을 대표하거나 대표할 이들은 충분히 이곳에 오지 않고 지원군만 보낼 수 있었음에도 전투에 직접 참여할 각오를 하고서 왔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케일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나저나 걱정이군요. 퍼슬시와 그 주변을 복구하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아직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것을 끝내고 나서 도시 복구 작업까지 해야 하니. 이거, 원.”
그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각 지원국의 대표들을 보좌하는 수뇌부들은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위퍼 왕국의 대표인 툰카 대장군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네가 내 친우이듯 로운도 친구다! 우리가 끝까지 돕는다! 으하하하하! 우리가 돈은 없지만 힘은 남아돌지! 하하하하!”
툰카를 보좌하러 온 수뇌부들은 슬쩍 환하게 웃는 툰카를 보다가 이내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다른 왕국의 수뇌부들도 각 대표들의 표정을 보고선 로운 왕국 퍼슬시 복구 작업에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좋군.’
케일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이 정도면 왕세자 저하도 좋아하겠지.’
꽤 오랜 시간 고생하며 싸운 알베르에게 퍼슬시 복구를 돕기 위한 각국의 지원에 대한 소식은 기분 좋은 선물이 될 터.
‘사실 로운이 이 중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타국의 도움이 없어도 로운의 자력으로 퍼슬시 복구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도 지원을 받으면 무조건 좋아할 이가 왕세자였다. 타국에서 지원하는 만큼, 퍼슬 시민들과 전장에 참여한 이들에게 로운이 해줄 보상이 커질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로운 왕국만 구한 것도 아니고, 서대륙 전체를 다 구한 건데. 고생한 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지.’
그 고생을 다 하며 평화를 지켜냈는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작은 보상이라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나?
케일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중을 가야겠군요.”
그 말에 각국의 대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의 뒤를 따랐다.
“공자!”
그때, 로잘린이 케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간아, 나도 왔다! 가짜 힐스만은 인간의 엄마가 잘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라온도 투명화를 한 채, 함께 왔다.
냐아아옹.
온과 홍도 슬그머니 케일의 옆에 섰다. 이들 모두 고된 전투를 끝낸 동료들을 마중하러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케일은 별다른 말 없이 방벽 너머로 향했다.
쿠구구궁-.
괴물과 사람들을 나누던 방벽이 케일이 다가갈수록 조금씩 입구를 만들었다. 케일은 방벽에 만들어진 입구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바스락. 부서진 잔해가 케일의 신발에 밟히며 흩어졌다. 케일은 그런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쓰러진 괴물.
그리고 지쳤는지 한쪽에 기대어있는 베이지색 용 밀라와 그 곁의 분홍 뽀글머리 도도리.
마지막으로 에르하벤은-
‘음?’
케일은 에르하벤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에르하벤은 황급히 폴리모프를 해 인간의 모습이 되더니 쓰러진 사자용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에 밀라와 도도리도 그쪽을 보고는 이내 놀란 듯 반응했다.
‘…저곳은-’
쓰러진 사자용이 있는 곳엔 최한과 알베르가 있었다. 가장 가까이, 괴물의 내부까지 들어가서 싸웠던 두 사람.
그 두 사람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두 드래곤과 황급히 다가가는 에르하벤.
“설마……!”
로잘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고, 케일의 걸음이 빨라졌다. 뒤따르던 이들도 표정이 굳어졌으며 툰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기며 외쳤다.
“그 두 사람이 다친 건가?!”
“조용.”
그때, 케일의 나직하고 서늘한 목소리에 툰카는 멈칫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툰카는 케일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을 다물며 섣불리 말을 내뱉지 않았다.
“…아!”
그때, 로잘린은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최한이, 그리고 최한의 품에 안긴 망토로 감긴 채 축 늘어진 무언가도 함께 담겼다.
찢기고 더러워진 옷차림의 최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이었다.
그 곁으로 다가간 에르하벤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왕세자는-”
망토로 감싸인 채 축 늘어진 무언가.
그것은 분명 왕세자이리라.
에르하벤은 더 말을 잇기보다는 망토의 끝자락을 잡았다. 그는 얼른 알베르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안 됩니다.”
“뭐?”
“지금은 안 됩니다.”
최한의 시선이 에르하벤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고룡은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고, 케일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보았다.
케일은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손을 뻗었다.
“잠시.”
그는 더 이상 수뇌부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제지했다.
뒤따르던 이들은 천천히 돌아서는 케일의 눈빛을 보고 걸음을 멈춰 세워야 했다.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정중하지만 선이 느껴지는 어조에 다들 더 이상 최한에게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를 확인한 케일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다시 최한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로잘린과 온, 홍, 라온이 따랐다.
“케일 님.”
담담하던 최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괜찮나?”
케일의 무덤덤한 물음에 최한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큰 외상은 없는 것을 확인하였고 아무래도 기절을 하신 것 같습니다.”
“너는.”
“네?”
“너는 괜찮냐고.”
잠시 말문이 막힌 최한은 케일의 이어지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네 꼴도 엉망이네.”
“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었다. 최한은 참 케일이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생각을 모른 채 케일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망토를 살짝 잡아 들췄다.
‘역시.’
마법이 풀린 다크엘프 쿼터 모습의 알베르가 눈을 감고 있었다.
-인간아! 왕세자, 마법 풀렸나?
케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짝 들춘 망토를 다시 꽁꽁 덮었다.
-왕세자는 괜찮나?
냐아아옹.
냐아옹.
라온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와 염려와 걱정이 담긴 온, 홍의 눈동자가 케일을 향했다.
로잘린과 에르하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절 같습니다만, 일단 안으로 모셔서 상태를 확인하죠.”
케일은 망토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당히 싸우실 것이지. 뭣 하러 기절을-”
조금 전의 서늘한 기색은 한결 가라앉은 케일의 그 말에 온과 홍이 빤히 케일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할 말이 없는데.”
“맞는데.”
-인간아!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는 것이냐! 인간아, 너도 복습 좀 해라!
뭐라는 거야.
케일은 평균 9세의 눈빛을 해석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언뜻 보면 괜찮은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얼른 알베르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여기 치료사가 있습니다!”
그때, 조금 떨어져 있던 발렌티노 왕세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의 곁엔 보좌하러 온 이들 중 한 명인 치료사가 있었다.
“왕실 전담 치료사로 실력이 상당하오! 바로 왕세자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소!”
발렌티노는 선의를 듬뿍 담아 의욕적으로 말했고, 최한이 어쩌나 싶어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단정하게 답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드래곤께서 봐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는 에르하벤을 쳐다봤고, 시선을 받은 에르하벤은 슬그머니 제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하면 된다.”
“그렇다는군요.”
발렌티노는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하하,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그때.
“저하—!”
왕실 기사단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패닉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찌하여, 이, 이런 모습으로-!”
그는 당장이라도 알베르를 덮고 있는 망토를 들춰 그의 상태를 확인할 태세였다.
“왜, 왜 저렇게 가리신 겁니까? 혹 많이, 많이-”
많이 다쳤냐고, 위중하냐고. 기사단장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절박한 눈동자로 최한과 케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최한에게로, 알베르에게로 다가갔다.
그에 최한의 동공이 흔들렸고, 그는 이내 굳은 의지를 담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하.께.서.는. 본. 본, 인의 흐.트.-”
로잘린과 평균 9세의 표정이 대번에 요상하게 변해갔다.
그때, 바로 케일이 최한과 기사단장 사이에 섰다.
“최한. 저하께서는 본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셨던 건가?”
“네.”
한 글자만 답하는 최한이었다.
“단장님. 아무래도 저하께서는, 내 형님께서는 로운 왕국민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싶으셨을 겁니다.”
“아.”
기사단장의 눈가가 일그러지며 그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군요. 그런, 그런 큰 뜻을.”
“형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큰 뜻을 품으실 분이시지요. 늘 로운의 태양으로 남길 원하시는 분이시잖습니까.”
“맞습니다. 저하는 그런 분이시지요.”
그는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후방의 기사들에게 외쳤다.
“저하를 안으로 모셔야 한다!”
기사들은 빠른 속도로 이 열로 줄을 섰다. 하지만 케일은 그 동작을 멈춰 세웠다.
“빨리 모셔야 할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케일은 에르하벤을 바라봤고, 이내 에르하벤이 최한과 최한 품의 알베르까지 데리고 비행 마법을 펼쳤다.
“먼저 가보지.”
“모두의 몸 상태를 확인했으면 합니다.”
“…그래.”
잠시 에르하벤은 ‘모두’라는 단어에 멈칫했으나 자신과 최한까지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빠른 비행 마법으로 다 함께 퍼슬 시청으로 향했다.
케일은 거기까지 확인하고는 남은 이들을 바라봤다.
기쁨도 잠시, 격렬한 전투가 남긴 흔적들을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케일은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 열리는군요.”
아.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누군가가 깊은 탄식을 흘렸다.
모두의 시선이 하나둘 하늘로 향했다.
“저, 저기-”
소리도 없이.
“…검은 연기가 사라졌어!”
마치 원래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저 건물은!”
검은 연기가 사라지며 서서히 하늘 위로 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잘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것이 봉인된 신의 신전.”
새하얀 대리석으로 가득 찬, 이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화려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신전.
알베르가 쏘아 올린 신성력이 담긴 구의 빛 아래 그 신전은 더 아름답게 빛났다.
어느 누가 저곳에 절망의 신이 봉인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허공에 뜬 신전. 달빛 대신 신성한 빛을 받은 채 고고히 빛나는 그곳에서 하나둘 계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계단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마침내 마지막 계단이 땅에 닿았다.
“하!”
케일은 기가 차다는 듯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계단은 케일 바로 앞의 땅에 자리해 있었다.
그 순간, 케일은 품에서 꺼낸 황금패를 만지작거리며 안로만의 말을 떠올렸다.
‘사자용을 없애는 데 7박 8일 동안 수천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면. 신전의 끝에 도달하는 데에 1년 동안 수만 여명의 희생이 있었다.’
1년?
수만 여명의 희생?
케일의 머릿속에 펼쳐질 계획 속에는 그런 말들은 조금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