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98
697화.
잠시 방 안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그 정적 동안 라온부터 시작해 이 방 안에 자리한 이들을 하나둘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잠시 까먹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이 네 존재가 얼마나 살벌한 존재들인지. 그리고 이들이 지금 케일에게 신전에 혼자 들어가서 무슨 짓을 벌일 것이냐고 묻고 있었다.
‘아니다. 이 넷만이 아냐.’
케일은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이 넷에다가 온과 홍도 뭔가를 눈치챘어. 아니지, 온과 홍이 안다면 론과 비크로스도 알 확률이 높다. 그리고 론과 비크로스가 안다면-’
점점 생각의 범위를 확장할수록 케일은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것 같았다.
-크큭.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잠깐 한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한다면?’
세계수가 준 뿌리 단검으로 심장을 찌르고, 그 피 묻은 뿌리 단검으로 하얀 별의 나이테를 파괴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하얀 별의 무한한 환생의 고리를 막을 수 있다고.
참고로 세계수가 심장을 찌르는 행위는 케일에게 득이 된다고 했다고.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군.’
첫 번째는 아예 뿌리 단검을 사용하지 못 하게 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 진실을 아는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케일이 뿌리 단검을 찌르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상황에서는 동료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인간아! 내가 진짜로 괜찮은지 지켜볼 거다! 내가, 내가 세계수 태워버릴 거다!’
‘케일 님… 저는 세계수도 믿을 수가 없군요.’
‘오. 이것이야말로 전설! 저는 더 이상 신을 믿을 이유가 없어지는군요. 눈앞의 신이 이미 있으니.’
헉. 케일은 소름이 돋았다. 무심코 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는 클로페였다. 클로페 세카라면,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순간 저렇게 말하며 심장을 어서 찌르라고 미친놈처럼 나올지도 몰랐다.
마침내 케일은 결심했다.
‘잡아떼자.’
방법은 그것뿐이다.
“무슨 짓이라니요?”
좋았어. 이대로 시치미를 떼는 거다.
“봉인된 신을 실제로 마주해본 사람은 저뿐이잖습니까. 그러니 혹여 봉인된 신으로 인해 신전 안에서 변수가 발생해도 대처가 가능할 겁니다.”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왠지 용의 눈빛이 살벌해져 가는 것 같았으나, 케일은 필사적으로 그 눈빛을 모른 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전의 끝에 도달하는 것은 단순한 강함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케일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에르하벤을 제외한 이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만 에르하벤만이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전에서도 뭔가 있는 건가?”
“네.”
“그것이 무엇이지?”
에르하벤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지며 케일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흐.”
그때, 짧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룡은 그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흠칫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최한이 웃음소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시려는군요.”
움찔.
이번엔 케일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라온이 냅다 외쳤다.
“이제 안 속는다! 말 돌리려고 하지 마라!”
이런. 케일은 터져 나오려는 탄식을 애써 삼켰다.
짝짝짝-.
그때, 조금 지친 얼굴의 왕세자가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며 여유로이 박수를 쳤다.
“참 연기를 잘해. 사기꾼을 한다면 대성할 상이야.”
케일은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누가 연기를 하죠?”
“그래. 계속 그렇게 해보도록.”
왕세자는 아주 재밌다는 듯 케일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케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그래.”
알베르는 화사한 왕자님 얼굴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에르하벤 님.”
“응?”
“신전에 대한 의문 사항은 제가 대회의실에 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 자네, 쉬지 않고?”
알베르는 침대 옆에 놓인 하얀 창을 힐끗 보고는 이내 죽은 마나를 일으켰다. 그의 피부색부터 머리칼, 눈동자 색까지. 서서히 본래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어느 정도 마나가 회복되어서 거동에 문제는 없습니다.”
“허어!”
에르하벤은 기가 차다는 듯 알베르를 향해 언짢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네도 저 박복한 놈을 닮으려는 건가!”
고룡의 손가락이 케일을 향했다.
“제가 왜요?”
“어휴.”
지목당한 케일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에 고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바로 알베르를 바라봤다.
“쉬게. 큰 외상이나 내상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네.”
“그러니 지금 나서야지요.”
“음?”
알베르의 입가에 천천히 밝은 미소가 맺혔다.
“지금 제가 이런 몸 상태로 나서야, 극적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
고룡은 얼굴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알베르는 거울 앞으로 가 제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그는 상당히 꼬질꼬질하고 지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흡족하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괴물을 쓰러트린 왕세자가 쓰러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장 대회의실로 가서 대책을 논한다.”
거울 속 알베르의 눈동자가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어떻습니까, 에르하벤 님? 이만하면 왕세자로서의 알베르 크로스만도, 서대륙의 평화를 지키려는 로운 왕국도 모두 돋보이지 않겠습니까?”
허. 고룡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알베르는 최한에게 걸칠 만한 것을 가져와 달라 부탁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고, 케일은 지체없이 입을 열었다.
“각국 대표들에게 복구 작업 지원에 대한 부분을 언급해두었습니다.”
“지원이라. 굳이 받을 필요는 없어.”
로운 왕국의 재정으로도 충분히 퍼슬시를 복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알베르는 퍼슬시를 새로이 복구하는 김에, 도시 정비에 대한 대대적인 계획을 잡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퍼슬시부터 수도 휘스시까지. 도로가 상당히 잘 되어있다. 퍼슬시는 동북부 교통의 중심지라 할 수 있지. 이참에 이곳을 손보는 것도 좋을 터.’
그 과정에 타국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눈동자를 빛내며 케일을 바라봤다.
“지원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빚을 확실히 지워둘 수는 있겠군.”
“당연하죠.”
“좋아. 그렇게 정리해두도록 하지.”
로운을 위해. 서대륙을 위해.
알베르는 사심 없이 나섰지만, 그래도 로운을 위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마땅히 챙겨야 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선 케일에게 말했다.
“그럼 자네는 나가봐.”
“예?”
이번엔 케일의 얼굴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저도 같이 가는 거 아닙니까?”
“아니. 나와 최한, 에르하벤 님만 가도 충분하네.”
알베르는 매우, 정말 아주 많이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는 공작에게 가봐야지. 가족이 먼저 아닌가? 다른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
싸하다.
케일의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신전에 홀로 가서 무슨 짓을 벌일 것이냐고 묻던 인간이 회의에 케일만 쏙 빼려고 한다.
‘이상한데.’
분명 뭔가 있다. 하지만 케일이라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는 안주머니에 있을 황금 팽이채를 떠올렸다. 나중에 바람 정령들에게 물어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들으면 될 터.
결코 케일은 뿌리 단검을 제 심장에 찌르고 하얀 별의 나이테를 파괴하는 광경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마음이 없었다.
“그럼 저는 아버지를 뵈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잘 가게.”
라온이 쪼르르 날아와 케일의 옆에 자리했다. 검은 용은 케일을 따라 방을 나서며 나머지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왕세자야, 옆에 사과파이 뒀다! 먹고 일해라! 몸 관리 잘해라! 나는 인간이랑 간다!”
***
“아버지는 잠드셨다.”
케일은 잠든 데르트 공작의 초췌한 얼굴을 보다가 바이올란 공작 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눈가에는 피로가 쌓여있었다.
“좀 쉬시죠.”
“괜찮다.”
공작가에 비하면 단출한 방 안. 복잡하고 시끄러운 바깥에 비하면 이곳은 매우 조용했다. 아마 왕세자가 머물렀던 방 다음으로 이곳이 고요하리라.
“케일.”
“네.”
바이올란 공작 부인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맴돌았다.
“네 아버지의 납치 정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아직 듣지 못했단다.”
구출된 데르트 헤니투스는 론을 통해 바이올란 공작 부인의 곁으로 돌아왔다. 납치된 동안 굳건하던 데르트는 공작 부인을 보자 그제야 힘이 풀렸는지 지쳐 잠이 들어버렸다.
“너에게 정황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버티셨지만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해 잠이 드셨지.”
케일은 팔걸이를 움켜쥔 바이올란의 손에 돋아난 핏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이어졌다.
“나는 이제 와 어떻게 납치되었나 그 정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가족을 건든 놈을 용서할 자신이 없어.”
케일과 바이올란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납치범들에게서 네가 얻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얻고 난 후, 그 녀석들은 나에게 넘기렴.”
“어머니-”
“물론 왕실에서 그 녀석들을 넘겨받으려고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가족의 일은 우리 가족 선에서 끝내야 하지 않겠니?”
끝을 언급하는 바이올란의 기세는 웬만한 기사 저리 가라였다.
케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케일에게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렴.”
“네. 그럼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그때, 무거운 분위기에 슬쩍 눈치를 보며 동그란 눈을 굴리던 검은 용은 슬그머니 통통한 두 앞발을 들어 올렸다.
“우리 인간 아빠 줄 거 챙겨왔는데!”
사과파이 하나가 두 앞발에 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라온 님.”
바이올란이 싱긋 미소를 그리며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히.”
라온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파이를 데르트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던 바이올란은 케일에게 말했다.
“옆방에 가니?”
“네.”
케일은 바이올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라온을 데리고 바로 옆방으로 향했다.
달칵. 문고리를 열고 들어서자 그곳엔 팔다리가 결박된 채 의자에 앉아있는 가짜 힐스만이 있었다.
“데르트 공작은 깨어났, 음. 얼굴을 보니 안 깨어났나 보군.”
가짜 힐스만은 능글맞은 미소를 띤 채 케일을 맞이했다. 케일은 가짜 힐스만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하네.’
알베르를 만나고 바이올란과 데르트 공작을 보고. 그 과정에서 여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조금은 피곤해진 케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짜 힐스만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깨어나면 만나실 겁니까?”
“음.”
가짜 힐스만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케일 쪽을 향해 몸을 숙였다.
“있잖아.”
그 은밀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케일은 아차 싶었다.
‘안 돼!’
왠지 이 상황!
들으면 안 될 것을, 백수 라이프에 방해가 될 것을 들어버릴 것 같았다.
황급히 케일은 입을 열었다. 언제 피곤했냐는 듯 눈동자에 다급함이 일었다.
“안-”
“사냥꾼이 나타난 것 같아.”
“제기랄!”
결국 비속어를 토해내고 마는 케일이었다.
“역시. 템스가의 피를 이었군. 사냥꾼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못 참는 걸 보니.”
아냐! 그게 아니라고!
케일은 지금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정보를 들었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고개를 숙인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가짜 힐스만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라온을 볼 수 있었다.
더 앞날이 깜깜해졌다.
가짜 힐스만은 분노를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이는 케일을 애달프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 그는 케일에게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일부는 말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케일 헤니투스는 꽤 로운 왕국 및 서대륙 각국들과 긴밀한 관계로 보였으니까.
가짜 힐스만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타난 사냥꾼 새끼들 후원자가 있다.”
단생자를 사냥하는 존재인 사냥꾼.
그들이 다시 나타났으며 그들을 후원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그 자금 흐름을 쫓아와 보니 로운 왕국이더구나.”
사냥꾼들의 후원자가 로운 왕국에 있다.
“너 플린 상단이라고 아니?”
“나 안다!”
라온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
“돼지 저금통같이 생긴 빌로스가 플린 상단 소속이다!”
빌로스 플린. 케일이 헤니투스 영지에서 만났던 상인으로, 플린 상단 서자로 숨죽여 살다가 케일을 만난 후 여러 일을 벌이며 유력한 플린 상단 후계자로 떠올랐다.
케일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했다.
“…그 후원자가 플린 상단입니까?”
그럴 리가.
빌로스는 사냥꾼 같은 단체를 후원할 자가 아니었다.
그는 돈 버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 신이니, 불멸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플린 상단에서 자금이 흘러나왔어. 그 정보는 확실해.”
가짜 힐스만의 확언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빌로스 플린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음? 곧 죽을 놈 말이더냐?”
뭐라고?
순간 케일은 제 귀를 의심했다.
‘죽어? 누가? 빌로스 플린이?’
분명 빌로스 플린은 케일이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유력한 상단 후계자였다.
“무슨 소리냐! 빌로스가 죽다니!”
라온이 놀라서 외쳤다.
“그 서자 놈, 고꾸라졌잖아.”
“밀렸다고요? 빌로스가?”
케일에게 이 소식은 정말 의외였다. 어쩌면 ‘영웅의 탄생’ 책 속에서 최한을 만난 후로 승승장구하던 빌로스를 보았기에 그의 미래도 그러하리라 짐작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 오르세나 공녀의 후원을 받는 플린가 둘째가 곧 상단주가 돼. 지금 이 퍼슬시의 일이 처리되면 바로 상단주 자리에 오를 거야. 그리되면 빌로스 플린은 처단당하겠지”
“…오르세나 공작가가-”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어느새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채 검지로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오르세나 공작가.
로운 왕국은 동북, 서북, 동남, 서남. 그리고 중앙으로 귀족들의 권력이 나뉘어져 있었다. 물론 전쟁을 치르며 그런 지역별 권력 분포가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그 지역을 대표하는 대귀족이 존재했다.
그중 오르세나 공작가는 중앙을 대표하는 가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후계자는 카린 오르세나 공녀였다.
“잠깐, 그러면-”
생각을 이어가던 케일의 눈이 커졌다.
“플린 상단의 차기 상단주가 오르세나 공작가의 지원을 받았고, 사냥꾼을 후원하는 자금이 플린 상단에서 나왔다는 겁니까?”
“그래. 그림이 그려지나?”
가짜 힐스만은 툭 내뱉었다.
“내가 데르트 공작을, 아니. 솔직히 말하지. 헤니투스 공작가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야.”
오래 묵힌 분노를 담은 눈빛이 있다면 이럴까. 가짜 힐스만의 눈동자가 형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케일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플린 상단에게 버틸 재력. 더불어 오르세나 공작가를 견제할 가문.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진 곳은 현재 헤니투스 공작가뿐이기 때문이지.”
가짜 힐스만의 머릿결 색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 핏줄이 있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곳이니까.”
마치 노을이 지듯이, 서서히 머리칼의 끝에서부터 그 색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 시각.
“그러면 신전에 1차로 파견할 인원은 이 구성으로 하겠습니다.”
알베르가 1차 파견 인원이 적힌 종이를 들고서 대회의실 중심에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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