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99
698화.
“이 인원은 조금 적지 않을까요?”
정글 왕 리타나가 파견 목록에 적힌 이름들을 살펴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알베르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침착하게 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신전에는 많은 인원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툰카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감정이라니. 이런 썩을. 싸우는 게 편한데.”
그 옆에 있던 소드 마스터 하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복잡해.”
“나도다.”
툰카가 하나의 말에 동조했고, 하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툰카를 외면했다. 성자 잭은 그런 하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정리를 하자면, 신전의 끝에 도달하면 신전의 문을 닫을 수 있는 열쇠가 있는데 그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성자님.”
안로만의 말에 따르면, 신전의 끝에 도달하면 흰색 열쇠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 열쇠를 가지고 다시 입구로 나와 신전의 문을 닫으면, 그 순간 신전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시험은 신전 위에 떠오르는 구의 색에 따라 내용이 변하고요.”
“네.”
신전 위에 커다란 원형의 구가 떠오르면 그때부터 신전에 출입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신전 안에서 치러지는 시험은 구의 색에 따라 그 내용의 갈래가 정해졌다.
“또 시험 내용은 ‘감정’을 주제로 하는 환상을 보여준다는 말씀이시죠?”
안로만은 말했다.
수만 여명이 희생을 치러야 했다고.
그 희생은 꼭 몸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을 다녀온 후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어. 어찌 보면 사자용과의 전투보다 여파가 큰 것이 그 시험이야.’
신전 안에 들어선 자들에게 신전은 개별로 어떠한 환상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실제와 같은, 그래서 섬뜩한 환상을.
“감정에 따른 환상이라.”
카로 왕국 왕세자 발렌티노는 메모해둔 것을 보며 하나씩 읊었다.
“구가 파란색일 때는 슬픔. 노란색은 권태. 초록색은 실패. 보라색은 굴욕. 검은색은 분노.”
안로만은 1년여 동안 알아낸 결과, 원형의 구가 총 5가지의 색을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번 신전 안으로 들어서면 24시간 동안 다른 이들은 출입이 불가능하고, 구의 색은 24시간 동안 다섯 번 바뀐다. 결국 다섯 가지의 감정에 관련된 환상을 모두 보아야 한다는 소리군요.”
“쉽지 않습니다.”
대답을 한 이는 드래곤 밀라였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와 거의 같은 환상이라면, 심지가 굳은 이가 아니라면 굉장히 힘든 시험일 겁니다. 그것도 신의 시험이니, 더욱더 조심해야 할 사항이지요.”
알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기에 말씀드립니다.”
이 시험은.
“포기가 가능합니다. 또한 여러 번 도전이 가능합니다.”
안로만은 말했다.
‘신전에서의 시험에서 못 견딜 것 같으면 바로 포기해야 돼. 포기하겠다고 외치면, 신전 밖으로 쫓겨나더라고. 그걸 처음에 모르고-’
그의 목소리는 씁쓸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 죽었지. 스스로.’
신전 안에서 저 환상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많다고 하였다. 아니면 환상에 사로잡혀 포기를 외치고 신전 밖으로 나와서도 타인을 죽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만큼 실제와 같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시험이었다.
“새로이 도전하면 보이는 환상도 새로워집니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보았던 환상을 그대로 본다고 합니다.”
알베르의 대답에 성자 잭은 나직이 내뱉었다.
“정말로 신의 시험 같군요. 단순히 신전에 침입한 자들을 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치, 자신의 시험을 이겨낸 자들에게 보상으로 열쇠를 주는 것 같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알베르는 별다른 대답 없이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파견 인원으로 나서신 분들은 무리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다들 조금 놀란 얼굴로 그 사람을 바라봤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최한이 왕세자의 뒤에 선 채 입을 열었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뒤흔드는 시험을 마주하고 견뎌 나가다 보면 결국 끝에 도달할 것입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 말이 없던 이가 차분히 건네는 말은 왠지 모르게 더 진실 되게 다가왔다. 소드 마스터 하나는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고.”
“하나. 넌 파견 인원 아니잖아.”
“…아 맞네.”
하나의 시선이 파견 인원들에게로 향했고, 그중 유독 한 사람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저 자식은 왜?’
클로페 세카가 성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심지가 굳어 보이지도 않는데.’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클로페가 지원했고, 왕세자는 고민하다가 클로페가 뭐라 속삭이자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클로페는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로지 곁에 있던 왕세자와 최한만이 들리도록.
“절대적인 믿음으로. 신보다 위대한 이의 길을 따라가리라.”
저 중얼거림을 들은 왕세자는 클로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저 영웅에 대한, 케일에 대한 믿음이면 신의 시험 따위 그냥 걷어차 버릴 것이라고.
‘…가장 유력해.’
어쩌면 이 시험에서 누구보다도 잘 해낼 이는 클로페 세카였다. 맛간 놈은 신도 어쩔 수 없는 법이었으니까.
“어쨌든 아예 사람을 파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발렌티노가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일정 시간마다 사람을 안 보내면 무작위로 사람들을 데려간다니, 그것만큼은 피해야지요.”
알베르는 안로만과의 대화 당시 의문을 표했었다.
‘따로 신전에서 괴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전에서 밖을 향해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면. 일단 두고 보면서 차근차근 진행해도 되었을 텐데? 그랬으면 수만 여명을 신전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 아닌가.’
‘그게 안 돼. 최대 3일. 그 안으로 최소 1명 이상의 사람을 보내지 않으면 무작위로 백여 명의 사람을 소환해 가버려. 그리고 그 범위는 네가 존재하는 세상 어느 곳의 누구든 상관없어.’
알베르는 그 순간, 그 무작위 소환만큼은 막아야겠다 생각했다.
‘쉽지 않은 길이다.’
사람의 감정을, 정신을 괴롭히는 시험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그렇기에 알베르는 성자 잭을 비롯해 마법사와 치료사들을 대기시켜 놓을 예정이었다.
알베르는 회의 초부터 강조했던 말을 또 한 번 더 강조했다.
“첫 번째 파견 때는 5분. 그 안으로 포기를 외치고 나오는 겁니다. 그 이상은 절대 불가입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지루할지 몰라도, 최대한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알베르는 기나긴 싸움을 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제 목걸이를 습관적으로 매만졌다.
1차 파견 인원.
그 속에는 모두가 반대했지만 홀로 강행을 택한 알베르 크로스만. 자신도 있었다.
“어?”
“저건!”
그때, 의자 밀리는 소리가 군데군데나며 몇몇 사람들이 창밖을 가리켰다.
‘왔구나!’
알베르도 창밖으로, 신전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자 신전 위에 동그란 원형의 무언가가 하늘을 찢으며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의아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
한편 케일은 1차 파견 인원 확정 소식은 모른 채, 눈앞의 남자를 뚫어질 듯 바라봤다.
“역시 당신은 템스가 사람이군요.”
또 하나의 사물을 관찰하듯, 케일의 눈동자는 찬찬히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머리칼 색만 바꾼 겁니까?”
가짜 힐스만 얼굴 그대로, 눈앞의 남자는 머리칼 색만 붉게 물들였다.
“모습을 다 드러낼 수는 없어서 말이야.”
가짜 힐스만은 붉게 변한 제 머리칼을 대충 머리를 흔들어 뒤로 넘겨버렸다.
“말했잖아. 나는 모습을 드러내면 좀 곤란한 자라고. 그러니 나중에 내 정체는 데르트 헤니투스에게 물어봐.”
라온이 연신 케일과 가짜 힐스만의 붉은 머리칼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두 앞발을 짝 쳤다.
“머리칼 색이 똑같다!”
정말, 실로 너무나도 같은 빛깔이었다. 가짜 힐스만은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템스가 머리칼 색은 붉기로 유명했지.”
“그리고 그 유명한 템스가는 멸문했죠. 아니, 세상에 흔적도 없이 깡그리 사라졌죠.”
케일은 더 짙어지는 가짜 힐스만의 미소를 보며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템스가는 멸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르 템스가 죽으며 더 이상 이 세상에 템스가는 존재치 않게 되었다.
그것이 모두가 지금껏 사실로 알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하지만 템스가의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나 봅니다.”
케일의 손이 가짜 힐스만에게로 향했다.
“그것도 당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수가 말입니다.”
분명 이자 외에도 템스가의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어렵게 생각할 것 있습니까? 당신이 가진 정보는 홀로 알아낼 수 없는 범위 아닙니까? 분명 당신에게도 조력자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템스가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조력자일 수도 있지만요.”
음. 역시 영리해서 좋군.
가짜 힐스만은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나직한 읊조림이 하나 더 들려왔다.
“그리고 그쪽은 혼자 살아온 사람 같아 보이지 않거든요.”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가짜 힐스만은 케일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가짜 힐스만을 올곧이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놈의 눈빛은 그 나이 때의 것이 아냐. 뭔가 달라.’
역시 주르의 자식이라는 건가?
가짜 힐스만은 잠시 주르 템스에 대해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케일이 정말로 홀로 살아본 적이 있기에 건넬 수 있는 말이었단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며 케일은 확신했다.
‘빙의에 대한 건은 모르나 보군.’
케일의 몸에 있는 것은 다른 세상의 김록수라는 것.
이 사실을 가짜 힐스만은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 자꾸 핏줄을 언급하는 것일 터.
‘일단 대강 이 남자가 템스가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알겠군.’
케일의 친모인 주르 템스의 이름을 주저 없이 편히 언급하고,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위치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
그리고 데르트 공작을 직접 보러 올 수 있는 존재.
‘주르 템스의 형제 혹은 그 윗대겠지.’
아마도 주르 템스의 오빠이거나 동생일 터.
“나! 나 궁금한 것 있다!”
그때, 검은 용이 두 사람 사이로 튀어나왔다.
“가짜 힐스만아! 통실통실한 빌로스는 어찌 되는 것이냐?”
“경쟁 상단에게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는데.”
가짜 힐스만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도망쳤대.”
“…도망이요?”
“그래.”
케일이 건넨 물음에 가짜 힐스만은 담담하게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틀 전 플린 상단 본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해. 주방에서 불이 났다고 하는데, 지하 감옥 위치에서 시작된 폭발로 보아서-”
“빌로스가 도망간 것이겠군요.”
“그렇지.”
빌로스라면 그냥 당할 리 없었다.
“그리고 현재 행방이 묘연해. 플린 상단에서는 퍼슬시 일로 왕국의 정신이 집중된 이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색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하더군.”
“…음.”
빌로스 플린은 어디로 도망친 것일까?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왠지-’
케일과 라온의 시선이 마주쳤다. 라온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꾹 닫았다. 케일과 같은 생각을 한 듯싶었다.
‘왠지 날 만나러 올 것 같은데.’
가짜 힐스만의 말대로 오르세나 공작가와 플린 상단이 모종의 관계라면 그들로부터 이들을 지켜줄 든든한 방패막이는 헤니투스 공작가였고, 케일과 빌로스는 연이 깊었다.
‘아. 온다.’
케일은 직감했다.
‘거대한 사건이 온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짜 힐스만은 그 모습을 묘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빌로스 플린과 꽤 아는 사이인가 봐?”
“…제가 여러 일을 막 시작할 때 꽤 도와준 사람이죠.”
빙의된 케일이 헤니투스 영지를 나와 수도 휘스시로 향할 때, 빌로스에게 여러 마법 장치를 빌리며 꽤 도움을 얻었다.
가짜 힐스만은 괴롭다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케일을 보며 씁쓸한 눈빛을 띄웠다가 얼른 지워냈다. 그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를 도울 건가?”
“도와야죠.”
뭔 당연한 소리를.
케일은 당연한 걸 묻고 있는 가짜 힐스만을 뚱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 하하-”
갑자기 가짜 힐스만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댔다. 케일은 왜 저러나 싶어 알베르가 보았다면 불경하다고 말할 표정을 서서히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힐스만은 웃으며 말했다.
“템스가의 혈족 중 일부는 대대로 세 종류의 힘 중 한 가지를 이어받는다. 그리고 그 세 부류의 사람을 이리 일컫는다.”
첫 번째.
“시간을 탐구하는 자.”
두 번째.
“가문을 수호하는 자.”
마지막 세 번째.
“사냥꾼을 사냥하는 자.”
거기까지 말한 가짜 힐스만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내가 무엇일까? 응?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케일은 담담하게 답했다.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됩니다만.”
“응?”
“아버지는 당신을 알 거라면서요?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되지. 뭘 복잡하게 생각을 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긴 하지?”
“예. 그러니 그냥 가만히 여기서 대기하시면서 나중에 아버지 보러 가세요.”
“아니, 진짜 궁금한 게 없-”
똑똑똑.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가짜 힐스만이 그 모습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왜 문으로 안 가고, 창으로?”
노크 소리에 케일은 문으로 가지 않고 창으로 향했다.
“공자님.”
냐아아옹.
냐아옹.
문밖에서 라크와 온, 홍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를 따라 창으로 시선을 돌렸던 가짜 힐스만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허-, 저게 무슨?”
봉인된 신의 신전 위. 그곳에 붉은 구가 자리해 있었다.
“…붉은색은 없었는데?”
안로만의 말에 따르면 붉은색은 없었다.
그 순간, 케일은 움찔했다.
‘나를 봐?’
그럴 리가 없겠지만, 케일은 신전 위의 붉은 구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동공과 같았다. 케일이 그 붉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든 순간.
깜박.
붉은 구가 깜박이더니. 그 자리에 파란색 구가 자리했다.
아까 케일이 붉은 구 안에서 무언가를 보았던 것과 달리, 파란색 구는 너무나도 푸르른, 그러면서도 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파란 빛깔을 티 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시험의 첫 번째는 파란색.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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