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
6화.
사람이 더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
스트레이트를 강하게 한 대 얻어 맞았을 때 일까. 깔짝깔짝 잽을 다섯 번 얻어 맞았을 때 일까.
당연히 후자다.
케일은 다섯 번 잽을 날리다 맞는다. 고로 한번의 잽은 괜찮다는 소리다.
“가십니까?”
“어.”
찻집은 사람이 이제 거의 없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지금은 찻집보다는 술집에 사람이 많았다. 특히 채석장에서 일했던 이들이 한잔 술 마시러 오는 시각이기에 사람들은 그 곳에 바글바글 할 것이다.
“다음에 또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케일은 빌로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도 훌륭하고.”
그는 자신을 보는 빌로스에게 자신의 감상을 전달했다.
“책도 반 밖에 못 봤지만 아주 재밌었어. 특히 능력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어.”
순간 빌로스의 눈썹 끝이 살짝 찡그려졌다가 펴졌다. 그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우며 케일은 탐색했다.
하지만 케일은 최한때문에 간을 졸이며 중간 중간 읽었던 책 내용을 지금에 와서야 음미하느라 그 반응을 보지 못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책을 읽는 맛이 꽤 뛰어났다.
빙의로 인한 자동 보정인지 문자를 모두 아는 케일이었고, 그 내용도 거부감 없이 즐거웠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고 그는 멍하니 서 있는 빌로스에게 다음을 기약했다.
“책 다른 사람 못 읽게 해. 내가 오면 바로 읽게.”
역시 남의 물건도 독점하려는 철없는 백작의 아들. 부유한 상단의 서자인 빌로스가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백작 아들 말인데.
“네! 이 책은 오로지 케일 공자님 만을 위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빌로스의 반응이 케일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거듭 케일에게 재방문을 청했다.
“꼭, 다음에 꼭 한번 더 와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뭐, 그래.”
케일은 떨떠름해졌지만 일단 최한을 보러가야 했기에 찻집을 나섰다. 딸랑. 다시 한번 종소리가 들렸고 왠지 찻집 안이 시끌시끌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찻집 안보다 그 밖이 더 시끄러웠다. 수도와 거리가 먼 구석 영지라도 예술가와 특산품이 있는 만큼 퇴보된 곳은 아니었다. 또한 채석장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온 이들이 퇴근 길에 한잔식 많이 했다.
그 거리를 케일은 홀로 걸었다.
‘생각해보면 참 특이한 놈이긴 해.’
보통 판타지나 무협을 보면 좋은 집안의 망나니는 그 동네의 양아치나 왈패들과 어울리지 않던가. 술 마시고 여자를 좋아하고. 그리고 거리나 가게에서 그들과 함께 행패 부리고.
그런데 웃긴 게 케일 이 놈은 양아치를 혐오했다. 건달도 혐오했다.
‘버러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버러지 중에서도 더 버러지 같은 것들. 차라리 가망이 없지만 열심히 사는 평민들을 더 유익한 버러지라고 여겼다.
그래서 술 취하면 사람을 패지는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양아치들에게 물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많이 던져 댔으나 명중률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일까.
“아이고, 공자님 오셨어요?”
술집 주인은 케일을 아주 무서워 했다. 당연했다. 그 날 케일이 술 마신 자리 근처의 물건들은 모조리 다 부숴졌으니까. 아마 웨스턴 시 내의 술집들 블랙리스트 1호가 케일일 것이다.
그는 주인의 인사에 답도 하지 않고 주인에게 금화 하나를 던졌다.
“내가 늘 먹던 거 한병 내놔. 아, 구운 닭가슴살이랑, 소금은 치지 말고.”
“네? 그, 자리부터 안 잡으시고요?”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자 주인은 바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당장! 술 가지고 오겠습니다!”
술집 주인은 재빨리 움직였지만 그의 모습은 사뭇 즐거워보였다. 케일이 자리에 앉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케일은 자신이 들어서자 조용해지는 술집 내부를 쓰윽 훑어보았다.
모두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하고 많은 술집 중 오늘은 왜 여기를 왔나 싶을 것이다. 특히 양아치와 건달들은 더 고개를 숙였다.
“쯧.”
조용한 공간에 케일의 혀 차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공자님. 여기 술병 나왔습니다.”
“그래.”
케일은 술병과 육포를 받았다. 그가 자주 마시는 술. 그나마 이 술집에서 가장 비싼 술일 것이다. 그는 미련 없이 술병을 받아들고서 술집을 나섰다.
거리로 나서자 마자 케일은 곧장 술병을 따서 반 정도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오.”
술맛이 꽤 좋았다. 그리고 케일은 주량이 상당했기에 한 번에 반병을 마셔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붉어져 남들이 보기에는 술이 약해보였다.
케일은 술병을 든 채 빠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머물던 찻집을 지나치고 조금 더 가니 성문의 경비병들이 자신을 보고 굳어버리는 것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 성문 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아, 속이 후끈거리네.”
술이 들어가자 점점 부글부글거리는 속을 느끼며 케일은 마침내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성문에서부터 이어진 높은 성벽이 지붕들 위에 솟아오른 채 타인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
케일은 책 속의 내용을 떠올렸다.
‘성문에서 성벽을 따라 백걸음 떨어진 곳.’
최한이 성벽을 넘는 위치였다. 케일은 술병을 손에 꼭 쥔 채 빠르게 성벽으로 다가갔다. 주택가여서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케일은 마침내 계산했던 위치에 도달하자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성문에서 딱 백걸음 떨어진 성벽. 주택가의 외곽이라 불빛도 오로지 경비병들이 성벽 위에 달아둔 횃불과 집들의 창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빛이면 충분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케일은 천천히 목적지로 다가갔다.
‘예상대로네.”
성벽 밑에 웅크린 존재들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바들바들 떠는 가련한 모양새. 케일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귓가에 웅크린 존재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냐아옹.
고양이 두마리가 칭얼거리듯 울며 성벽 바로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다.’
제대로 찾았다. 최한이 성벽을 넘는 순간, 그가 내려앉을 위치에 한 새끼 고양이가 그 영역의 우두머리 고양이의 몸통박치기에 당해 성벽 밑 그 위치로 날라가듯 굴러간다. 그래서 최한은 급하게 몸을 튼다. 우연이 판을 치는 세계였다.
‘역시 착한 놈이야.’
새끼 고양이를 다치게 할 수 없어 몸을 급하게 튼 최한은 실수로 발목을 접지른다. 처음으로 수십명을 살인하고 수많은 시체를 묻고 미친듯이 달려온 최한이다. 한계에 달했고 그래서 저지른 실수였다.
냐아옹 냐아옹
케일은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떠는 새끼 고양이와 그 새끼 고양이의 형제인 듯 옆에서 그 고양이를 핥아대는 또 다른 새끼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방향은 그가 왔던 방향과 반대 방향의 골목이었다. 그러자 보였다.
‘찾았다.’
성 내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노숙자처럼, 거지처럼 엉망인 모습으로 웅크린 채 있는 남자. 엉망이 된 검은 머리와 낡아빠지고 탄 옷이 보였다.
원래라면 케일과 최한은 내일 만난다. 오늘 밤 케일은 술 처먹다가 옆구리에 상처를 입는다. 벌써부터 책 속과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론 소소하지만.
케일은 고양이를 보느라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최한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동자가 케일은 향했다.
‘아, 떨려.’
케일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도 않건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서늘하다 못해 섬찟했다.
술을 마시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일은 자신의 판단을 칭찬하며 최대한 몸의 긴장을 풀었다. 잽. 잽을 날려야 한다. 그리고 첫인상도 좋게 남겨야 한다.
그는 침을 삼키며 자신을 빤히 보는 최한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픈 얼굴인데.”
쯧쯧. 케일은 혀를 차며 닭가슴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손길로 최한이 아닌 두 고양이에게 구운 닭가슴살을 줬다.
“불쌍한 것들. 먹어라.”
이 정도로 작은 새끼 고양이인 줄은 몰랐던 터라 닭가슴살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케일은 모른다. 쯧. 혀를 차며 그는 새끼 고양이들이 잘 씹을 수 있도록 닭가슴살을 잘게 쪼갰다. 쪼그리고 앉아 무슨 짓인가 싶었다.
사실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한은 작은 동물들을 아꼈다.
으르릉. 크르릉.
다쳤던 새끼 고양이가 그런 케일의 마음을 아는지 이를 드러내며 크르릉거렸지만, 케일은 대충 은색 털에 금안을 가진 그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 어지간히도 케일의 손이 싫은지 은색 고양이는 피하려고만 했다.
“이거 먹고 얼른 나아라. 불쌍한 녀석들.”
그는 최한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 갈 데는 있어?”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케일은 말을 이었다. 곧 경비병들이 이곳으로 순찰을 올 것이고 최한이 그 경비병들을 피해 절뚝이며 도망가기 전까지 움직여야 했다.
“잘 데는 있고?”
크르릉거리는 은색털의 금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케일은 반대로 자신에게 치대는 붉은 고양이를 툭툭 밀어내며 물었다. 붉은 고양이는 이상하게 자꾸 케일에게 치댔다. 제 형제를 닮은 금안이 어둠 속에서 유독 반짝였다.
그러나 케일은 최한에게 집중해야 했다.
“또 배는 안 고프고?”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최한은 지금 자신을 탐색 중일 것이다. 하지만 쉬고 싶을 것이다.
한계에 다다른 몸과 정신력. 그리고 하루만에 겪은 큰 충격. 더불어 그 작은 마을 빼고는 수십년간 사람과 섞이지 못한 채 홀로 살아온 최한에게 웨스턴 시는 진정한 밖이라 할 수 있었다. 수십년을 살았지만 그는 아직 어렸다.
“말 안 할 건가?”
“…왜 말을 걸지?”
마침내 최한은 케일을 약하다고 판단한 듯 했다.
한계에 다다른 자신의 힘으로도 손 쉽게 죽일 수 있을만큼 약한 사람. 그래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호의가 담긴 듯한 그 선의를 받아도 될 것 같은 사람.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최한에게 다가갔다. 곧 경비병이 이 곳을 순찰하리라.
“야.”
그는 가까이 다가가자 최한의 꼴이 더 잘 보였다. 엉망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라 그런지 눈동자가 선명했다. 한국인임을 뜻하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조금 반가웠다. 그래서 케일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따라와. 밥 줄게.”
가장 좋은 첫인상은 맛있는 걸 주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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