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02
701화.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로잘린은 최한을 일단 만나 해리스 마을 문제를 해결한 후,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케일과 온, 홍, 라온, 라크를 만날 생각이었다.
이 시험이 무엇을 노리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자신이 지난 시간 목표를 이뤄가는 동안 함께 해온 동료들을 돕고 싶었다.
‘그런데 케일 공자가 없다?’
분명 시험은 파란색. ‘슬픔’이었다.
“…모든 인연의 중심은 케일 공자였죠.”
그런데 그 케일이 없다면?
“그것이 슬픔이란 건가?”
그때, 클로페의 입이 열렸다.
“슬픔 따위가 아닙니다.”
최한과 로잘린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쏴아아. 한 줄기 바람에, 클로페의 백발이 흐트러졌다.
그 사이로 녹안이 번뜩였다.
“이것은 절망이지요.”
클로페 세카는 하나하나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정리해나갔다.
“케일 공자님이 봉인된 신의 시험에서 절망을 마주했다면서요?”
클로페의 머리가 아주 팽팽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현재 1차 파견 인원이 겪는 이 시험은 알베르 왕세자 저하가 알아 온 정보와 다릅니다. 그러니 시험 내용도 똑같은 슬픔이라 보면 안 되겠지요.”
알베르 왕세자가 가져온 정보에 대해 최한과 케일 등이 신뢰를 표했지만, 사실 클로페로서는 위대한 영웅이 밟아온 길이 더 믿음직했다.
클로페의 녹안에 기묘한 빛이 일렁거렸다.
“…케일 공자님이 없는 세상 따위. 영웅이 없는 세상은 결국 절망뿐.”
…미친놈.
지켜보던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참, 어떤 때는 영특한 것 같은데. 어쩌다 이리 되었나 싶어 이제는 조금 안쓰러움도 일었다.
그때, 최한이 이제야 납득이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같네.”
“최한, 너는 케일 공자 시험을 같이 겪었지?”
“그래. 배경은 달랐지만, 상황 자체는 비슷해.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와 그 속의 절망을 극복하는 것.”
최한은 머릿속을 정리하면서도 클로페 세카를 보며 깨달음을 얻은 상황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 이내 날카로움이 스며들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째서 바로 해리스 마을로 온 것이지?”
클로페는 그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넘겼다.
“영웅이 없는 세상은 용납할 수 없는 법. 빨리 이 시험을 때려 부숴야 하니 확인차 이곳에 공자님이 계신가 싶어서 왔다.”
사실은 케일이 없으니, 최한도 없나 싶어 찾아와 본 것뿐. 클로페는 이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최한은 로잘린과 클로페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이곳에 올 수도 있다.”
로잘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얀 별이? 원래도 그랬어?”
“후후. 역시 영웅이 없으니 악당 따위가 활개를 치는군.”
로잘린이 싸하게 식은 눈빛으로 클로페를 쳐다봤다.
“그런데 클로페 경은 지금 불굴 연합 준비할 때이지 않나요?”
북부 왕국들이 모여 만든 불굴 연합. 곰족과 드워프까지 끼어들었던 그 전쟁. 불굴 연합이 처음으로 공격한 곳이 로운 왕국의 헤니투스 영지였다.
클로페의 눈동자가 슬쩍 일행들에게서 하늘로 향했다.
“…글쎄요. 시기상으로는 맞습니다만.”
이 와이번을 끌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굴 연합의 완성을 의미했다. 로잘린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클로페를 가만히 응시했다.
“제대로 확인을 못 한 것인지, 일부러 외면한 것인지 모르겠군요.”
“…무엇보다도 영웅의 존안을 먼저 뵈어야 하는 법.”
클로페는 당당했다.
로잘린은 영웅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고 최한은 클로페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클로페는 차분히 중얼거렸다.
“다만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버릴 생각은 있지요.”
흠칫.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며 클로페를 바라봤다.
“불굴 연합을-, 그냥 다 무위로 돌리게요?”
클로페는 대답 대신 묘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미소였다.
‘이거 이러다가 또 다른 난장판이 펼쳐질 수도 있겠는데?’
새삼 로잘린은 이곳에 온 인원들을 떠올리며 다른 의미로 골치가 아팠다. 클로페에 비하면 덜하지만 툰카 대장군도 이 세상에 와 있지 않은가?
어떤 의미로 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자가 툰카였다.
‘케일 공자가 없다면, 그를 제어할 사람이 없어!’
로잘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클로페는 최한에게 물었다.
“하얀 별이 여기에 왜 오지?”
“그놈은 3일 뒤에 해리스 마을을 습격할 거야. 그 이유는 고대의 힘을 하나 얻기 위함이지.”
“고대의 힘?”
“그래.”
최한은 간략하게 필요한 내용만 설명해주었다.
하얀 별이 해리스 마을에 올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고대의 힘을 하나 얻기 위해서라고.
물론 그 고대의 힘이 무엇인지, 케일의 친모를 비롯한 단생자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케일이 없는 상황이라 함부로 정보를 발설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클로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호오. 목적이 있었네.”
로잘린이 이제야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클로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지금도 하얀 별 쪽에서 여기를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겠는데?”
“없다.”
최한은 이미 마을로 오는 길에 주변 숲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없어.”
“앞으로는 있을 수도 있겠군.”
클로페는 와이번에게 눈짓했다. 삐이이. 그가 피리를 불자, 와이번은 하늘로 솟구쳤다.
“와이번에게 지시를 내려놓지. 정찰조가 있나 없나.”
로잘린은 그 행동력을 보며 생각했다.
‘은근 도움이 되는데?’
생각보다 클로페는 정상적으로,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빠릿빠릿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진행했다.
“후후. 영웅이 갈 전설의 길을…….”
물론 이어지는 말은 외면했다. 로잘린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며 말했다.
“3일이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바삐 움직여야 할 시간이야.”
해리스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고, 암 일당을 처리하고, 나아가 하얀 별까지 상대해야 했다.
쉴 틈이 없었다.
‘이곳의 나는 지금보다 약하니까.’
2년 전의 로잘린은 아직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때, 최한이 말을 꺼냈다.
“음. 일단 텔레포트로 다녀올 데가 있어.”
“응? 다녀올 곳?”
“어.”
3일의 시간. 혼자 싸워야 한다는 점. 거기다가 마법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최한이 잠시 미뤄뒀던 일.
하지만 로잘린이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온과 홍, 라온을 데려와야지.”
아.
로잘린은 더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빈민가에서 끼니를 걱정하고 있을 온, 홍.
그리고 현재 고통 받으며, 인간을 증오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 라온.
다른 동료들은 몰라도 그 어린애들은 데려와야 했다.
로잘린은 곧바로 계획을 새로이 정리했다.
“당장 오늘 밤에 애들 데려오고. 그 뒤에는 하얀 별과의 전투에 대비하자.”
밤에 데리러 가야 시선을 피하기 용이할 터.
“일단 라온 님에게 먼저 가고 그다음에 온과 홍을 데리러 가는 게 어때?”
라온을 데리고 오는 길에 온과 홍을 찾아 데려오면 될 것이다. 물론 헤니투스 영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온과 홍이기에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었으나, 오늘 밤에 못 찾는다면 틈틈이 헤니투스 영지로 가서 찾으면 되는 일이다.
최한은 활짝 미소를 그렸다.
“좋아.”
그리고 클로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밤에 갈 필요 있습니까?”
“네?”
클로페는 로잘린과 최한을 바라보다가 제 허리에 걸린 검을 매만지며 툭 내뱉었다.
“그냥 가서 때려 부숴도 될 실력 아닙니까? 굳이 머리 아프게 싸울 필요 있습니까?”
“…정체를 숨겨야-”
“차기 마탑주께서 염색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십니까?”
“…….”
로잘린은 할 말을 잃은 채 납득했다.
“지금 가도 되겠네요.”
“그렇죠.”
즉답하는 클로페를 로잘린은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상당히 적극적이네.’
라온과 온, 홍을 구하는 일에 클로페는 적극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모두 환상이고, 딱히 그와 라온, 온, 홍이 친한 것도 아닌데.
‘나와 최한이야 환상이라도 라온과 온, 홍의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렇게 아이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절망 혹은 슬픔이었기에 시험을 극복하려면 구해야 했다.
로잘린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클로페를 바라보았고, 클로페는 우수에 젖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케일 공자님이라면 지금 가려고 했을 겁니다.”
아.
그냥 로잘린은 이 사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물론 최한은 이미 클로페의 말을 80% 이상 흘려듣고 있었다.
“그럼 일단 머리칼과 눈동자 색만 바꾸고 가죠.”
로잘린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던 최한은 잠시 마을 쪽을 가리켰다.
“이야기 좀 해놓고 올게.”
최한은 마을 입구로 걸어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최한, 네가 아는 사람들이야?”
이방인이었던 최한을 처음에 경계하였지만, 이내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며 따뜻한 정을 다시 느끼게 해준 사람들. 해리스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따뜻한 이들이었다.
어둠의 숲이라는 험한 곳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만큼.
“네. 한 명은 친구고, 한 명은 그냥,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
마을 사람은 혼자인 줄 알았던 최한에게 갑자기 아는 사람이 둘 생기고, 그들이 마을을 찾아오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 숲을 갔다 온 최한의 손에 들린 약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위험한 숲에 들어가 마을 사람을 위해 약초를 구해온 소년. 그 사람이 최한이었다.
“그럼 일단 들어오라고 하려무나. 촌장님께 보고 겸 인사를 하러 가야 하니.”
“음. 한 시간 뒤에 오면 안 될까요?”
“왜?”
“한 시간 동안 잠시 어디 다녀오려구요.”
순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최한을 가만히 지켜보던 또 다른 마을 사람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너 별일 없지?”
로잘린과 클로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연신 최한의 표정을 살피는 이였다.
“네. 걱정 마세요.”
최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였다.
“동생들 데리러 갑니다.”
“동생? 친동생?”
“친동생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동생들입니다.”
하.
지켜보던 케일이 잠시 숨을 깊게 내쉬었다. 최한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심을 듬뿍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한은 마저 마을 사람들과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는 클로페와 로잘린 곁으로 돌아왔다.
“바로 가면 돼.”
“알았어.”
로잘린은 조금 더 마을에서 떨어진, 아예 그들이 보이지 않을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우웅–
공기 중의 마나가 진동하며 곧 세 사람의 밑에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최한, 그 산의 위치를 기억해?”
“잠시.”
클로페가 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펼쳐 들었다.
“지도입니다.”
“…로운 왕국 지도네요?”
“불굴 연합 때 침략을 하려면, 이 정도 준비는 있어야지요.”
“이야.”
로잘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한이 클로페의 지도 위에 가리킨 산 위치를 확인했다.
“그럼 바로 이곳으로 가죠.”
우우웅—
진동이 커질수록 텔레포트 진은 더욱더 환한 빛을 뿜어내었다.
“음?”
순간 로잘린이 멈칫했다.
“왜 그래?”
“…아냐.”
그러나 이내 그녀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세 명만을 위한 텔레포트 마법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점점 시야가 변해가는 것을 보며 조금 전 자신을 멈칫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떠올렸다.
‘이상한데?’
텔레포트 진을 작동시킨 순간, 진 위의 한 곳에 마나가 뒤틀렸다.
그러나 곧 그 뒤틀림이 사라졌고, 로잘린은 일단 그 의문을 접었다.
파아앗-.
마침내 한 줄기의 빛과 함께 최한, 로잘린, 클로페의 모습이 사라졌다.
“으음.”
그리고 홀로 남은 케일은 묘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거 이상하네?”
조금 전 케일은 로잘린이 만든 텔레포트 진 위에 서 있었다. 이는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마법이 통할까?’
케일은 현재 유령과도 같은 상태였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물건은 물론 사람의 몸도 만질 수 없었다.
‘그런데 마법은 조금 다르네?’
텔레포트 진 위에서 케일은 저를 스쳐 지나가는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로잘린이 세 명만을 위한 텔레포트 진을 만든 것인지 케일에게 그 마법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어떤 뒤틀림이 있었다.
그렇기에 케일은 마법이 실패할까 싶어 황급히 텔레포트 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떠나가는 세 명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의 실마리를 조금 전에 얻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쉽기는 하네.”
라온과 온, 홍을 구하러 가는 과정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최한과 로잘린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테니까.
“으음.”
케일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는 방향은 어둠의 숲이었다.
“나도 뭘 해봐야겠는데.”
실마리를 얻은 지금. 케일은 어둠의 숲. 정확히 말하자면 짱돌 저택으로 향했다.
***
파아앗–!
환한 대낮. 3월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산.
그 조건들이 모두 충만한 가운데 한 줄기의 빛과 함께 세 사람이 그 장소에 나타났다.
로잘린, 최한, 클로페.
그들은 톨스 자작가의 별장이 있는 산에 모습을 드러냈다.
케일이 라온을 구한 동굴이 있는 그곳.
한밤중의 탈출이 이뤄졌던 그 장소에 도착한 최한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구해보았던 장소. 그곳을 바라보는 최한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어?”
“…응?”
“…오.”
최한, 로잘린, 클로페 순으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 하지만 그들의 얼굴 위에는 당황스러움이 똑같이 드러나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는 하얀 것을 보고 있던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뼈?”
이곳은 난장판이었다.
사람과 해골 몬스터들로 엉망이었다.
그 난장판의 중심. 검은 로브를 둘러싼 채 전신을 가린 이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평소의 메리답지 않은, 당황이 섞인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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