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13
712화.
집무실로 들어서는 알베르 크로스만의 손에는 여러 문서가 들려 있었다.
한적한 봄날의 오후를 만끽하기에, 야외 티타임을 가지기에 너무나도 알맞은 바깥 상황과 달리,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알베르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져 갔다.
“저하. 다과를 내어올까요?”
그는 등 뒤로 들리는 시종의 목소리에 다시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는 몸을 돌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네. 나중에 필요하면 말하지.”
“알겠습니다, 저하.”
달칵. 문이 작은 소리와 함께 닫혔고, 그제야 알베르는 오롯이 혼자 남을 수 있었다.
“후우.”
그는 한숨과 함께 정돈된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아.’
알베르가 국왕 제드에게 보고했던 ‘케일’이라는 존재에 대한 것은 현재 은밀하게 조사 작업에 착수한 상태였다.
툰카 대장군 문제와 곁들여 이에 대한 처리는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판단되는 알베르에게 주어졌다.
그는 본인이 맡고 싶은 일을 맡게 되었지만 막상 각국의 떠오르는 핵심 인사와 연관된 일이니 준비부터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리고 하얀 별과의 거래도 남아 있었다.
알베르는 그가 제안한 바에 대해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어떤 것이든 최대한 답을 내놓아야 했다.
왜냐면 국왕 탄신일 기념행사가 곧 열리니까.
그때까지 알베르는 무언가를 선보여야만, 든든한 뒷배를 가진 2왕자와 국왕의 애정을 받는 3왕자를 경계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프-”
갑갑함에 목 단추를 풀던 알베르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건 순식간이었다.
“누구냐?”
집무실 책상 위. 처음 보는 구슬이 놓여 있었다.
알베르의 시선이 빠르게 집무실 안을 훑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먹었군.
뭐?
알베르의 눈동자가 다시 구슬로 향했다.
“음.”
그곳엔 검은 갈기를 지닌 호랑이가 번뜩이는 눈동자로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알베르는 살면서 책으로도 저런 생명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상대의 말에 미간을 순간 저도 모르게 찌푸렸다.
-쳐다본다고 답이 나오나?
누가 봐도 명백하게 시비를 거는 말투였다. 그런데 문제는 검은 호랑이의 진중한 분위기와 낮은 목소리 탓에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든다는 것이었다.
알베르는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상대를 관찰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렇긴 하지.
케일은 두 알베르 간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니 과거의 왕세자 저하는 서툰 면이 있군.’
암흑 호랑이, 현재의 알베르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눈앞의 알베르를 안타까이 여기고 있을 것이 뻔했다.
-내 하나 묻지.
검은 호랑이는 알베르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가 있던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이 있던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인가.
알베르는 상대의 정체를 물었건만 들려오는 답은 뜬금없는 소리라 속이 답답해져 왔다.
그때, 호랑이는 말했다.
-그딴 건 없다.
순간 알베르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이유 없는 호의에는 숨겨진 칼날이 있기 마련이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는 드러나지 않은 배신이 존재하지.
이전과 다른 눈빛으로, 왕세자는 구슬 속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호랑이의 입꼬리가 처음으로 위로 올라갔다.
-라고 너는 생각하잖아?
알베르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저 검은 호랑이는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지. 너는 누구지?”
호랑이는 가볍게 답했다.
-마나를 사용해보게.
뭐?
순간 알베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죽은 마나 말이야.
그걸 어떻게-?
순식간에 놀람을 감춘 알베르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한층 커졌다.
‘내가 죽은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을 안다.’
그 말은 곧 알베르가 다크엘프 피를 일부 이어 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뭣 하러 번거롭게 그래.”
또 다른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무실 소파가 놓인 곳. 그 소파 위에 백금발의 엘프 한 명이 여유롭게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프. 그 존재에 알베르는 흠칫하며 잠깐 날을 세웠다. 다크엘프와 엘프는 본디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였고 알베르도 이런 역사를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 이어진 말에 알베르의 눈동자에는 의심이 서렸다.
“나는 용이다.”
“…그쪽이?”
“그래. 못 믿겠나?”
알베르는 당연히 못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용이다. 살면서 한 번을 만나기도 힘든 존재가 그의 집무실까지 찾아왔다? 애초에 거짓이라고 믿는 편이 나은 말이었다.
“흐음. 못 믿는 표정이군.”
엘프는 알베르의 기색을 알아채고는 그 입꼬리를 올렸다. 눈동자에 한기가 서렸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나는 내 존재를 의심하는 것들을 딱 질색하는데 말이야.”
그 순간, 에르하벤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번뜩였다.
“크윽.”
알베르는 신음을 삼키며 옷깃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기운이 그를 옥죄었다. 그 기운이 전해져 온 곳은 저 엘프, 아니. 용이었다. 알베르는 부들부들 떨리려는 몸을 겨우 꼿꼿이 유지한 채 허리를 숙였다.
“…드래…곤을 뵙습…니다.”
감쪽같이 그를 옥죄던 기세가 사라졌다. 알베르의 이마에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의 그 힘, 분명 드래곤 피어다.’
아무리 쿼터라고 해도 다크엘프의 피를 지닌 알베르였다. 그는 잠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빠르게 생각했다.
‘한 명은 드래곤이고, 그렇다면 저쪽은 누구지?’
알베르의 속내를 알아챈 듯, 에르하벤은 피식 웃으며 검은 호랑이를 향해 턱짓했다.
“참고로 나도 저놈의 정체를 잘 모른다.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 잠시 손을 잡았을 뿐. 너와 비슷한 상황이지?”
맞다. 용의 말이 사실이라면 알베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다. 저놈들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며, 나조차 파악할 수 없는 놈들이지.”
“…저놈들, 말입니까?”
“아, 그래. 두 명이다. 한 명은 보이지 않지. 그리고-”
고룡은 서투른 면이 꽤 있지만 제법 당당한 기세를 품었으며 재능이 꽤 있어 보이는 왕세자에게 툭 내뱉었다.
“그리고, 저 안 보이는 녀석이 네가 찾던 진짜 케일이지.”
알베르의 눈이 커졌다.
이번에는 순수한 놀람이었다.
‘조금 전 용은 저자들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며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드래곤보다 상위 혹은 대등한 강함을 지녔다는 의미였고, 그럴 수 있는 존재는 몇 없었다.
신. 마족, 천족. 몇몇 존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군. 분명 툰카는 케일이 친우라고 했는데?’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검은 호랑이에게로 향했다.
“…신?”
-신?
호랑이는 꼭 어린애를 보듯 알베르를 바라봤다. 왕세자는 그 시선에 이상한 불쾌감이 들었다.
-넌 그런 것 안 믿잖아.
그래. 이 호랑이는 알베르의 속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쾌감이 들었다. 다만 거부감과는 달랐다. 무언가 찝찝하지만, 그렇다고 ‘적’이라고 판단되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 속내를 안다. 정말로…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인가?’
이건 단순히 적이라고 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으니까.
알베르의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지. 그걸 듣고 판단해.
하지만 검은 호랑이는 알베르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한 놈만 잡아서 족치면 돼.
듣고 있던 케일은 거친 언사에 움찔하며 여의주 속 알베르를 빤히 바라봤다.
‘화가 많이 났었나 보네.’
하긴, 자신도 봉인된 신으로 추정되는 하얀 별이 이 세상의 알베르에게 하는 짓에 화가 났다. 그러니 당사자인 알베르는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한 놈?”
-그래. 하얀 별. 그 녀석의 제안을 받았겠지?
알베르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하얀 별. 그자는 안 그래도 알베르에게 큰 고민을 안겨준 대상이었다.
하얀 별은 알베르에게 제안했다.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이 로운 왕국에 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면, 그들이 알베르의 힘이 되어주겠다고.
‘그런데 정작 그 제안에 하얀 별이 얻는 이득은 없지.’
왕세자는 그래서 고민했다. 그런데 지금 그 녀석을 죽여야 한다고 하는, 신비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당신과 하얀 별은 적입니까?”
-아, 말 편하게 해. 너에게 존댓말을 들을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로 싫다는 듯 검은 호랑이는 몸서리를 치더니, 이내 뭐가 웃긴지 실소를 터트렸다.
-적?
암흑 호랑이는 하얀 별의 정체를 생각했다.
봉인된 신. 신이 적이라-.
-그 녀석은 내 자리를 위협하는 놈이지.
암흑 호랑이, 알베르가 말하는 자리는 권력이 아니었다.
그의 자리. 로운 왕국을 비롯한 그가 살아오며 만든 관계, 터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금 봉인된 신은 그의 터전과 그의 소중한 동료들을 건들고 있었다.
암흑 호랑이는 제 말에 눈에 이채가 감도는 알베르를 보며 씁쓸함을 삼켰다.
‘내가 말한 ‘자리’를 권력으로 알아들은 것 같군.’
암흑 호랑이는 환상 속 알베르의 착각을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살아남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을 치우지 못하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는 편이라.
거기까지 호랑이의 말을 들은 알베르는 생각했다.
‘마음에 드네.’
그래, 이래야지.
하얀 별과 달리 눈앞의 호랑이는 명백한 거래의 목적이 존재했으며 그가 얻을 이득이 있었다.
그렇다면 알베르도 할 말이 생겼다.
“내가 얻을 이득은?”
-뒤통수를 맞을 뻔했는데, 이득을 생각할 여유가 있나?
“…뭐?”
-그 녀석이 내 자리만 위협한 줄 아나 보군. 네 자리가 더 위험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지?”
알베르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암흑 호랑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녀석이 데려올 연금술사는 흑마법사다. 제국은 연금술 종탑으로 위장한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있지.
순간 알베르는 저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함께 올 마법사들도 위퍼 왕국 은둔 마법사가 아니라, 그자의 수하들이고.
“…그 말이 사실인가?”
-네 옆의 드래곤이 제국으로 잠입하여 연금술 종탑 내부 영상을 저장해올 예정이다. 그리고 은둔 마법사의 위치는 내가 알려주지. 위퍼 왕국 곳곳에 퍼져 있지만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못 미더워도 3일 안에는 파악이 가능할 정보지. 그 정도 시간은 너에게 있을 텐데?
하!
알베르는 탄식을 흘리더니, 이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여의주를 집어 들어, 에르하벤이 있는 소파로 걸어갔다.
탁.
-거칠게 다루지는 말지?
여의주를 테이블에 대충 올려둔 알베르는 소파 상석 자리에 앉았다. 다리까지 꼰 그를 고룡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으나, 알베르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열 받았네.’
케일이 그리 판단했을 때, 알베르는 이곳에 들어와 처음으로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암흑 호랑이를 바라봤다.
“제대로. 하나하나씩 다 말해줬으면 좋겠군.”
암흑 호랑이, 현재 알베르의 입꼬리도 서서히 올라갔다.
-거래를 할 건가?
“그건 모르겠고.”
산뜻한 미소를 띠운 채 알베르는 말했다.
“일단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하얀 별 그놈. 나도 족쳐버리고 싶군.”
-좋은 자세야.
알베르, 암흑 호랑이, 케일. 세 명 모두 같은 미소를 띠웠다.
***
“저하, 거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네. 다만 자네를 완전히 믿을 순 없어.”
하얀 별은 알베르 크로스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조만간 대표 몇 명을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면 다 확인 가능하실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탁. 알베르는 찻잔을 차탁 위에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린 한 배를 탄 건가?”
알베르는 손을 내밀었고, 하얀 별은 그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으며 답했다.
“영광입니다, 저하.”
왕세자 집무실에서 이루어진 하얀 별과 알베르의 만남. 그리고 거래.
그 자리에는 검은 천에 뒤덮여 아주 작게 틈을 내보인 구슬이 하나 자리해 있었다. 그 구슬, 여의주 속에는 암흑 호랑이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하얀 별을 관찰하고 있었다.
‘역시 못 알아보는군. 죽음의 신이 안배한 물건은 파악하지 못하는 게 맞았어.’
암흑 호랑이, 알베르 크로스만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뒤통수치기 쉽지.’
그는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그는 네크로맨서 메리를 만나러 간 케일을 떠올리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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