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15
714화.
숲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2층 집. 그 지하실에는 탁자 하나를 두고 몇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알베르는 손에 든 문서를 대충 던졌다.
“확실하군.”
탁.
테이블에 놓인 문서 제일 첫 장은 인장이 하나 찍혀 있었다.
“비주류 학파라고 해서 직위가 낮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장로급이군.”
“그래야 새로운 곳으로 가도 터를 잘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베르의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연금술사 비주류 학파의 우두머리로 현재 왕세자와의 협력을 위해 이곳을 은밀히 찾았다.
왕세자는 하얀 별 양쪽에 앉은 노인과 중년인을 차례로 보다가 몸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중년인은 위퍼 왕국 은둔 마법사들의 대표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알베르는 화사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새로운 곳에 터를 잘 잡으면 좋지. 하지만 그 터를 잘 잡는 것이 제일 힘들겠지?”
“그래서 그 터의 주인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지요.”
알베르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착각하지 말게.”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차가웠다.
노인과 중년인을 보좌하러 온 이들이 잠시 움찔할 정도의 서늘한 기세였다.
“터의 주인은 내가 아니니까.”
하얀 별이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곧 그 터의 주인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저희의 작은 도움만 있다면.”
하얀 별의 눈동자가 알베르와 그 뒤에 선 타샤를 비롯한 몇몇 위장한 다크엘프들에게로 향했다.
“주인은 터를 열어주기만 하면 무엇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인의 손발이 터를 아름답게, 풍요롭게 가꿀 테니까요.”
“그래. 그러면 좋지.”
알베르는 하얀 별의 말에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 그 손발이 진정한 내 손발이 맞는지 확인해야겠지.”
노인이, 연금술 종탑 비주류 학파 대표로 온 이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저하, 무엇을 더 보여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참, 난감합니다. 저하께서 원하셔서 이곳에도 대표인 제가 직접 왔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 얼굴은 내가 알아본 비주류 학파 수장의 얼굴이야. 이 문서 찍힌 인장. 이것도 장로급 인장이라는 거, 맞아. 내가 본 바로는 제대로야.”
알베르는 인장을 가리켰다.
“그러니 인장을 가져와.”
노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인장을 연금술 종탑에서 유출한 것이 들키면 제가 곤란합니다, 저하.”
“그러라고 그러는 거야.”
“…네?”
알베르의 입가에 유연한 미소가 걸렸다.
“자네들이 확실히 터를 이곳에 내리기 전에는 뭔가 약점을 하나씩 쥐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의 시선이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위퍼 측이야, 증명할 방법이 없다만. 이들이야 허튼짓을 하면 내가 위퍼 왕국에 연락만 돌려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지.”
톡. 알베르의 검지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니 가져와. 어서 당장. 이런 종이에 찍힌 인장이 아닌 진짜를.”
대화를 듣던 하얀 별의 눈빛이 묘해졌다. 노인은 알베르 쪽 인사들 중 어느 누구도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는 탄식처럼 내뱉었다.
“…만만치 않으십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건-”
노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힐끗 옆에 앉은 하얀 별에게로 저도 모르게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이었다.
“왜 그쪽을 보지?”
아차.
노인은 멈칫하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알베르 크로스만의 화사한 얼굴과 다른 차가운 눈동자가 노인을 직시하고 있었다.
“자네는 그저 소개시켜주는 역할 아닌가?”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시선과 달리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그렇습니다. 단지 소개하는 역할입니다.”
알베르는 노인에게 사뭇 다정히 말했다.
“그렇다는군. 자, 이제 자네가 결정하게.”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터를 바꾸기로 하였으니, 그 의지를 제대로 보여야겠지요.”
“현명한 말이군.”
“다녀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스륵. 하얀 별이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저택 앞까지 배웅이라도 다녀오겠습니다.”
현재 이 2층 저택은 지하실까지 포함하여 텔레포트 마법이 불가능한 방어 마법을 설치해두었다. 그래서 텔레포트를 하려면 저택 뒷마당으로 가야 했다.
알베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걸었고, 상대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대신 알베르는 수족 몇만을 데려온다고 했으니까. 그는 말대로 염색 마법을 한 다크엘프 몇만 데려왔을 뿐이었다.
“안 되네. 자네는 여기 남아야지.”
살랑살랑. 알베르는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하얀 별에게 어서 앉으라 손짓했다.
서늘한 말과 함께.
“안 그러면 나는 그사이에 자네와 장로가 작당 모의한다고 의심할지도 몰라?”
씨익. 하얀 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심은 안 되죠.”
“그렇지. 잘 아네.”
알베르는 여유로이 덧붙였다.
“나는 내 뒤통수 노리는 것들이 제일 싫거든.”
그의 시선을 받은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지하실을 떠났다.
그녀는 곧바로 저택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었다. 대기 중이던 마법사 몇이 그녀를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장로님……?”
“잠시 탑에 다녀와야겠네.”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장로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의심이 많으시구나.”
마법사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한 트집 같습니다.”
“그래도 터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맞춰줘야지. 어서 텔레포트를 실행해주게.”
우우웅—
곧 텔레포트 진이 활성화되며 밝은 빛을 뿜어내었다.
이를 숲과 닿아있는 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이들이 있었다.
“가볼까?”
“네, 알겠습니다.”
에르하벤은 제 옆에 선 메리부터 시작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여 명의 다크엘프들이 염색 마법은 아니었지만, 검은 옷과 복면으로 제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깨에 검은 천으로 감싼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크큭. 이런 건 또 처음 해보네.”
에르하벤 역시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도둑 복장이었다.
그는 제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건 꼭 해야 하나?”
-어. 그게 핵심이다.
조잡한 하얀 별 한 개와 붉은 별 다섯 개. 에르하벤은 픽 웃으며 여의주 속 검은 호랑이에게 말했다.
“다녀오지.”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메리의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연금술 종탑 지하. 그곳으로 가기 위한 비밀 통로가 그려진 지도였다.
파아앗-!
곧 금빛 마나 회오리와 함께 에르하벤, 메리, 다크엘프들의 모습이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은 곧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연금술 종탑 지하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는 곳.
에르하벤은 그 비밀 통로로 들어가는 노인을 보며 툭 내뱉었다.
“역시 여기로 오는군.”
“은밀히 움직이기에 최적이니까요.”
감정 없이 답한 메리를 따라 에르하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놓고.
“……!”
노인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던 그녀는 에르하벤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구겨졌다.
“설마 뒤를-”
하지만 노인은 끝까지 말할 수 없었다.
“크윽!”
숨을 멎게 만들 것 같은 거대한 압박감.
드래곤 피어가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저벅저벅.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은 노인, 흑마법사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굳이 내 손을 쓰기도 아깝군.”
하지만.
“널 잡아두라고 했으니, 손을 써야겠지?”
“이, 이-!”
공포에 잠겨 뭐라 외치려던 노인은 저와 드래곤을 지나쳐 통로 안으로 쏘아져 가는 무리를 보았다.
“우리도 가볼까?”
에르하벤은 마법으로 흑마법사를 공중에 띄운 채, 여유로이 다크엘프와 메리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거대한 지하 공동을 마주했다.
“하!”
그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수많은 크고 작은 뼈 무덤. 그 사이로 지하 천장에 닿을 듯 솟구쳐 오른 원형 기둥. 그 기둥 안을 가득 채운 뼈 주인들의 죽음으로 만든 검은 액체.
죽은 마나.
그것을 본 에르하벤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이는 다크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리.”
“다 잡으세요.”
검은 로브의 네크로맨서는 지하 공동 통로를 지키고 있던 이를 가리켰고, 다크엘프 몇이 그들을 결박했다.
그들이 상부에 알리지 않는 이상, 이곳엔 지금 아딘 황태자도 연금술 종탑주도 없었다.
왜냐면 모두가 이곳보다는 로운을 잡아먹을 생각에 바빴으니까.
“죽은 마나를 훔칩니다.”
메리는 검은 호랑이를 통해 들은 케일의 명령을 내뱉었다.
“그리고 바깥. 수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 지하를 외부로 노출시킵니다.”
산처럼 쌓인 뼈 무더기는 단순한 뼈가 아닌,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우일 터. 환상이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으읍, 읍!”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흑마법사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금빛 마나에 휩싸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서 주군께 알려야-!’
제국이 아닌 로운 왕국 외진 숲에 있을 주군 하얀 별.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용의 금빛 가루가 지하 공동을 뒤덮고 있었다.
한편, 흑마법사가 애타게 찾는 주군이 현재 머물고 있는 평범한 2층 저택 지하. 알베르는 탐탁지 않은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군. 이게 오래 걸릴 일인가? 텔레포트 마법을 썼으면 금방일 텐데?”
“아무래도 몰래 오려니, 힘든 것이겠지요.”
“…그래?”
웃는 얼굴과 달리 알베르는 초조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초조함을 본 하얀 별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저하, 걱정 마십시오.”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하얀 별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중년인도 맞장구치듯 입을 열었다.
“저하, 분명 장로님은 인장을 가지고 올 겁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들켰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얀 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연금술 종탑도 제국도, 절대 장로의 행동을 못 알아챌 겁니다.”
못 알아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른 척하는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장로를 막을 존재는 없었다.
하얀 별과 중년인은 못 믿어서 인장을 가져오라고 해놓곤, 상대가 늦으니 초조해하는 알베르를 묘한 웃음기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때, 알베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아무도 못 알아챌 것이지. 허나 시간이 없군.”
하얀 별은 같은 말을 하는 알베르에게 걱정 말라는 듯 입을 열었다.
“시간이야 언제든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였다.
달칵.
지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인, 위퍼 왕국 은둔 마법사 대표라고 스스로를 밝힌 자가 일어났다.
“아이구, 이제 장로님이 오셨나 보군요.”
“그래?”
순간, 알베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하얀 별도 중년인도 덩달아 미소를 그린 그때.
“지금 오면 곤란한데?”
“…네?”
중년인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고, 알베르는 하얀 별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자넬 잡을 시간은 언제나 오는 게 아니지.”
“…뭐?”
하얀 별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 순간, 지하실은 바깥과 연결되었다.
콰아아앙—!
문이 아닌 천장을 통해서.
귀가 찢겨질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크윽!”
중년인은 제 머리 위로 뚫린 천장을 피해 황급히 실드 마법을 펼쳤다.
“크하하하하!”
“…당신은!”
중년인의 경악성과 함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한 사람이 천장에서 낙하했다.
쿵!
가볍게 내려선 그는 거대한 몸체를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잡아 족칠 것들이 눈앞에 있구나!”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툰카는 이를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적을, 정확히는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중년인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얀 별은 곧바로 알베르를 바라봤다.
“무슨 짓입니까, 저하.”
“짓? 지금 짓이라고 한 건가?”
알베르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이걸 어쩌나? 안타깝게도 이건 내 계획이 아니라서 말이야.”
끼이익.
문이 열렸다.
불이 켜진 지하보다 더 어두운 통로. 어둠 속에서 검푸른 눈동자가 정확하게 하얀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장난감이 아니다.”
어린 검은 용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하, 이런.”
하얀 별이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한 사람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가 차군.”
하얀 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천장이 부서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집이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충돌이 조금 가시며 먼지구름 사이로 하얀 별은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
“재밌나?”
최한. 그의 검 끝에서 흑룡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래 과거의 그라면 지금은 쓰지 못할 흑룡. 그러나 최한은 한 번 왔던 길을 빨리 당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최한은 흑룡을 쏘아 보내며 다시 한번 하얀 별에게 물었다.
“남 흉내를 내면 즐겁나? 행복하나?”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그는 케일을 대신해 선봉에 서는 존재였다. 그러니 케일이 했을 법한 말을 내뱉었다.
그는 하얀 별에게 물었다.
“좋냐?”
그 순간 흑룡이 하얀 별을 덮쳤다.
***
그 시각. 케일은 여의주를 든 채 느긋하게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저택이 부서질 것 같은데?
“그래도 저택 전체를 뒤덮은 마법진은 그대로 남을 테니, 하얀 별은 텔레포트도 못할 것 아닙니까?”
알베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텔레포트 불가 마법진으로 저택을 뒤덮겠다고 했지만, 수면 아래 진실은 달랐다.
-독 안에 든 쥐군.
케일은 암흑 호랑이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여유롭게 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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