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19
718화.
최한은 자신의 앞에 자리한 은빛 방패와 자신을 감싼 두 은빛 날개를 본 순간, 공격 대신 방어를 택했다.
상대를 물어뜯으려고 했던 흑룡은 최한을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틈새로 보았다.
은빛 방패를 향해 다가오는 봉인된 신의 손을.
최한은 그 손에 맴도는 붉은 기운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달라.’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붉은 것은 인간의 것을 넘어섰다.
아니, 이 세계의 무언가를 넘어섰다.
그리고 저 붉은 것에게서 절망이 느껴졌다.
그는 어찌하여 자신이 그 사실을 대번에 깨달았는지 알 수 없었다.
쿵.
그러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저것을 피해야 한다고. 심장은 경고했다.
마침내 붉은 손이 방패에 닿은 순간.
스스스-
굉음도, 폭발도, 무엇도 없었다.
그저 소리 없이, 방패가 서서히 붉은 기운에 잡아먹혀 갔다.
처음이었다.
최한은 케일의 방패가 이다지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하얀 별조차도 저 방패를 뚫기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역시, 신은 신이란 말인가?’
아무리 봉인된 상태라고 해도 상대는 결국 신이었다.
암흑 호랑이 알베르는 ‘신의 유희를 막지 마라.’라고 파문된 신관 케이지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신은 지금껏 케일과 하얀 별 흉내를 내며 그 힘만을 사용하였다.
그렇기에 몰랐다.
‘결국 신인가.’
저 붉은 기운이 저다지도 섬뜩하고 불길한 힘이라는 것을.
그러나 최한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 세상에 오고 난 후, 한 발자국 물러서면 결국 두 발자국을 내디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물러서기보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는 길을 택했다.
사아아아—
성스러운 방패가 사라졌다.
이제 최한은 자신의 웅크렸던 흑룡을 일으키려 했다.
“……!”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파아앗-
방패가 다시 나타났다.
사라진 방패는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최한은 눈앞에 적이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케일이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다시 방패를 펼쳐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최한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잠시 잊고 있었다.
‘아마도 봉인된 신이 케일 님의 힘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직후여서 잊어버렸던 것이겠지.’
효율적으로,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싸우는 봉인된 신의 전투 스타일.
그는 방패를 아주 효율적으로 간간히 사용했다.
그러나 최한이 아는 케일은 달랐다.
‘어찌 보면 무식할 정도로.’
케일이 알면 ‘무식?’ 하고 되물을지도 몰랐지만. 케일은 정말 무식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신이 가진 힘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왜냐면 케일이 생각하는 효율은 자신의 몸이 아닌 목적 혹은 목표에 있었으니까.
지금 케일의 목표는 최한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봉인된 신을 막아설 터.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은 결국 누군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막아야 한다!”
봉인된 신의 공격을 벗어난 어린 검은 용이 두 앞발을 움직였다. 다시금 붉은 기운에 잡아먹히려는 방패 앞에 검은 실드가 계속해서 생겨났다.
“참, 말년에 별별 일을 다 겪는군. 저건 이 세계의 힘이 아닌 것 같은데.”
최한과 봉인된 신 주위에 금빛 가루들이 반짝이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로브의 메리가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바닥을 향해 주머니 입구를 벌렸다.
쿵, 쿠궁, 쿵.
검은 천에 싸인 묵직한 무언가들이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모고르 제국으로 향할 때 다크엘프들의 등에 매여 있던 물건이었다.
메리의 손이 움직였다. 검은 실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왔고, 곧 천에 감싸인 것들이 천을 벗어던지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뼈였다. 그것도 연금술 종탑 지하에서 죽은 마나를 머금은 뼈.
덜그럭, 덜그럭.
뼈들은 뭉쳐들며 거대한 본 드래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곧장 봉인된 신을 향해 날아갔다.
최한은 이 모든 과정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케일을 시작으로 움직인 이들.
그들은 결국 최한의 동료이고 가족이자 친우가 된 이들이었다.
“변하는 것은 없다.”
다시 눈을 뜬 최한은 검은 용의 검은 실드가 붉은 기운에 소리 없이 먹히고, 은빛 방패가 다시금 사라지는 것을 보며 결론 내렸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다고.
저 붉은 기운은, 절망이 담긴 저 불길한 것은 나에게 닿지 않겠다고.
아니, 닿더라도 상관없다.
저것에 잡아먹힐 리가 없다.
그 순간, 검은 본 드래곤과 금빛 가루가 봉인된 신을 덮쳤다.
콰아아아아아—-!
셀 수 없이 많은 금빛 가루가 봉인된 신 주변 공기를 덮치며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귓가를 때리는 폭음.
최한은 그 찰나를 이용해 몸을 뒤로 뺐다.
“저놈은 내가 상대하지.”
그때, 에르하벤이 어느새 최한의 곁을 지나쳐 앞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곧 폭발 사이로 보이는 것에 멈칫 걸음을 세웠다.
“으윽!”
네크로맨서 메리가 한쪽 무릎을 구부리며 주저앉았다.
쿠구구구–!
형체를 잃은 거대한 본 드래곤의 뼈가 바닥으로 허무하게 떨어졌다.
뼈의 모습은 기이했다.
잘라진 것도, 터진 것도 아닌. 일부가 사라진 형태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은 신인가 보군.”
금빛 폭발이 가라앉고, 그곳엔 멀쩡한 모습의 봉인된 신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더 이상 붉은 기운이 서려 있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붉은 낫이 들려 있었다.
마치 피를 떠올리게 하는 시뻘건 낫.
저 낫에 본 드래곤도, 금빛 마나도 닿는 순간 잡아먹혔다.
지켜보던 이들은 봉인된 신. 아니, 절망 신의 힘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낫을 든 그의 모습은 조금 전의 가벼운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씨익.
봉인된 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이었다.
“메리!”
최한이 외쳤고, 봉인된 신은 순식간에 메리 앞에 도달해 낫을 치켜들었다. 낫에서 붉은 기운이 터져 나왔다.
곧 낫이 허공을 갈랐고,
스스스스—
다시 한번 은빛 방패가 붉은 낫에 의해 사라져갔다.
방패를 따라 이어진 은색 실선. 봉인된 신은 눈동자만 움직여 그 실선의 끝에 자리한 케일을 바라봤다.
달라진 신의 분위기와 힘에 놀람과 경악, 그리고 미세한 두려움이 피어오르던 이들 사이로, 유독 무덤덤한 한 사람.
분명 몸에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쉴 새 없이 방패를 펼쳐들며 일행의 앞을 막아서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케일은 봉인된 신을 보며 무심히 툭 내뱉었다.
“기껏 여러 곳에서 모은 힘인데, 이렇게 다 써도 되겠어?”
케일은 죽음의 신을 통해 봉인된 신이 사용하는 지금 저 힘은 신전을 방문한 여러 존재들에게서 얻은 절망임을 알고 있었다.
그 덕에 봉인된 신은 봉인된 상태임에도 그 힘이 있었고, 이런 변수를 만들 수 있었다.
“힘을 모아서 봉인을 풀 생각 아니었나? 지금처럼 막 쓰다간 평생 봉인 못 풀 건데?”
평이하기 그지없는 케일의 태도와 말투.
그러나 케일은 표정, 어조와 달리 그 속내는 복잡했다.
‘저건 무슨 힘이지?’
아니.
‘저걸 어떻게 막지?’
케일의 목표는 봉인된 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 봉인된 신에게 무슨 공격을 하거나 다가가는 것조차 현재 케일 상태로는 여의치 않았다.
‘일단 저 붉은 기운만 어떻게 피할 수 있다면 다 같이 힘을 모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포용을 쓸까?
케일은 생각했다.
‘붉은 기운을 잠시 포용했다가 그사이에 공격을 하면-’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번에 하얀 별의 힘을 포용했다가 다시 배출하는 데 버틴 것도 몇 분이 한계였다.
하얀 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 세계의 틀을 벗어난 힘이 저 붉은 기운이었다. 그것을 포용하더라도, 순식간에 터져나갈 것이다.
잘못하다간 오히려 동료들이 다칠지도 모를 터.
‘이상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이 있었다.
케일은 저를 향한 봉인된 신의 미소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시험의 규칙을 그렇게 부숴도 되나?”
분명 봉인된 신이 본인의 힘이 아닌 케일의 고대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이 시험이 정한 ‘규칙’일 터.
그 규칙들 중 일부를 죽음의 신은 바꾸거나 없앴고, 그에 대해 봉인된 신은 죽음의 신이 그러다가 은퇴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봉인된 상태의 절망 신이 나름의 복잡한 침략 방식으로 제 나름대로 모은 힘을 사용하며 굳이 규칙을 어기는가?
케일은 그 의문에 함부로 시험에 뛰어들 수 없었다.
“분명 시험에 좋지 않을 텐데?”
씨익.
봉인된 신이 미소를 더 짙게 그렸다.
“글쎄?”
그가 내뱉는 그 순간.
-삐이이이이——–
“음!”
케일은 순간 한 손으로 제 귀를 움켜쥐었다.
찢어질 듯한 소리가 한 차례 길게 울려 퍼졌다. 케일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
그곳이 일렁이고 있었다.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류 발생.
생명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딱딱한 음성이 들려왔다.
케일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최한, 메리, 툰카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알베르, 라온, 에르하벤 등도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그들도 케일과 같은 소리를 들은 듯했다.
그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인 분석 중.
오류 발생.
원인 분석 중.
케일은 문득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이미 몇 가지 규칙이 파괴된 시험.
그 시험은 본래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상태에서 더 많은 규칙이 파괴된다면?
오류가 발생한 시험은 어떻게 될까?
“…재시작.”
혹은.
“중단.”
재시작?
이 시험 자체가 봉인된 신이 모은 힘으로 만든 변수다. 그 힘이 없으면 다시 재시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험 중단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시험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케일은 그것을 깨닫자마자 곧장 방패를 펼쳐들었다.
“케일 님!”
동시에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미 흑룡을 최대치까지 피워 올리며 봉인된 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여기서 끝장내야 합니다!”
최한은 그리 외치며 달려들었고, 메리, 툰카도 함께했다.
더불어 다른 이들도 상황의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를 도왔다. 알베르조차 창을 움켜쥔 채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러나 이에 답할 틈이 없었다.
“크, 크하하하하!”
봉인된 신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 낫을 들어올렸다.
낫에는 붉은 기운이 흘러넘치다 못해 넘실거리며 점점 더 사이한 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그리고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피해!”
“본인도 손해면서, 왜!”
대상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공격이 이어졌다.
봉인된 신이 낫을 그렇게 휘두를수록.
-삐이이이—–
-삐삐, 삐이——-이–
귓가에 울리던 소리가 점점 커져 사방을 뒤덮어갔다.
봉인된 신은 마치 폭주하듯이 사방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것은 적들에게 공격이 닿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 마구잡이 공격을 하는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으며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렇기에 선두에 있던 최한은 곧바로 깨달았다.
저 공격이 노리는 대상은 이 환상의 세계 자체구나.
그렇다면 그렇게 못 하게 해야 한다.
최한은 곧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힘을 깨웠다.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그 진동은 최한의 발밑을 시작으로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숲을 지나 언덕까지 간 진동.
“일어나라.”
그는 누군가의 행동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콰아앙—!
이내 굉음과 함께 언덕, 숲. 그 땅에서 거대한 석창들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케일 대신 가진 힘인 무서운 짱돌.
최한은 그 땅의 힘을 사용하였고, 허공에 솟구쳐 오른 수많은 석창은 일제히 그 몸을 움직였다.
동시에 최한은 제 검 끝을 한 곳에 겨눴다.
목표는 봉인된 신.
“후우.”
짧은 한숨과 함께 흑룡이 검 끝을 벗어나 적에게로 향했다.
그 흑룡의 주위를 감싸는 석창들.
곧 흑룡은 그 몸체가 거대해졌다.
스스스–
붉은 기운은 석창에도 닿았다.
하지만 석창 하나가 부서져도 수많은 석창이 남아있었다.
결국, 흑룡은 저 석창에 닿으리라.
최한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였다.
“흥.”
가볍게 콧방귀를 뀐 봉인된 신은 낫을 치켜들고 좌에서 우로 그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붉은 기운이 하늘에 선을 그렸다.
그 순간. 왕세자 알베르는 창을 든 채 방패를 펼치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넌 왜 가만히 있지?”
케일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가만히 있다가 알베르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시험이 중단되면.”
케일, 그의 주위만이 고요했다. 알베르는 마치 호숫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고, 케일은 나직이 읊조렸다.
시험이 중단되면.
“새로운 시험이 펼쳐지겠군.”
“뭐?”
알베르가 되묻자, 케일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그건 기존의 것이겠지.”
사뭇 다정한 미소였고, 그는 알베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반가웠습니다, 형님.”
“…뭐?”
내가 왜 너의 형이지?
알베르는 물으려고 했지만, 케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볼 일은 있으려나? 늘 끝이라 생각해도 다 다시 보게 되던데.”
알 수 없는 그의 말이 끝난 그때.
알베르는 자신의 의문을 풀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의 입에서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못했다.
갑자기 세상에는 한 소리만이 들려왔다.
감정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아까 전 들린 그 목소리였다.
-오류 원인 파악 완료.
쿠구구구—
케일은 제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케일, 툰카, 최한, 메리, 봉인된 신.
이렇게 다섯의 몸만 잘게 떨리며 그 잔상이 뒤틀리고 있었다.
아마 동대륙에 간 로잘린과 클로페도 마찬가지일 터.
‘이제 돌아오려는 중일 건데.’
원래라면 로잘린과 클로페는 각각의 전력을 이끌고 이곳에 와 봉인된 신의 끝을 볼 예정이었다.
그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제 몸을 내려 보는 이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류 원인은 무분별한 규칙 파괴.
케일은 봉인된 신을 바라봤다.
놈은 웃고 있었다.
-현재 시험 진행 불가 판단.
예상대로 시험이 중단되었다.
봉인된 신은 케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시 모으면 돼.”
그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더 맛있는 먹잇감으로.”
그 먹잇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케일을 포함한 1차 파견 인원들의 절망을 말할 터.
-기존의 시험으로 돌아갑니다.
지지직-
케일은 제 몸이 점점 더 이곳과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최한에게 먼저 날아가는 검은 용을 눈에 담았다. 최한은 흐릿해져 가는 손을 뻗어 검은 용에게 뭐라 속삭였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알베르에게 툭 내뱉었다.
“저하는 순리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끝으로, 케일은 알베르의 설명하기 힘든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어둡게 변하는 세상에 제 몸을 맡겼다.
‘기존의 시험이라.’
안로만이 말해준 그 시험일 터.
‘잘됐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봉인된 신은 이제 이 시험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신전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터.
절망 신이 봉인된 곳을 찾으면, 그 봉인 자체를.
‘포용하면 돼.’
그렇게 된다면 봉인된 신은 이제 더 이상 신전을 통해 힘을 얻지 못할 터.
물론 그사이에 이 기존 시험을 통해 봉인된 신이 여러 감정의 환상에 휩싸인 1차 파견 인원들의 절망을 잡아먹어 강해질 수도 있었다.
동료들의 능력을 믿지만, 상황은 알 수 없는 법.
‘그러니 답은, 내가 최대한 빨리 시험을 통과해 이 환상을 벗어나는 것이겠지.’
케일은 안로만이 말해준 기존 시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둠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순간 그를 덮치는 파란빛을 보았다.
파란색.
그것은 슬픔을 뜻한다고 하였다.
파아아앗—!
시린 파란빛이 사라지고 난 후, 케일은 고개를 숙여 제 모습을 보았다.
그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케일은 고개를 들어 한 곳을 응시했다.
최정수와 이수혁의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가족을 잃은 후, 두 번째 가족을 잃었던 그 날이 환상이 되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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