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20
719화.
파란색은 슬픔.
노란색은 권태.
초록색은 실패.
보라색은 굴욕.
검은색은 분노.
케일은 제 검은 정장과 흰 셔츠의 소매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등급 외 괴물을 상대하다가 죽은 동료들.
케일이, 아니, 김록수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그가 속한 전방 팀원 대부분은 회사 초기에 모인 이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는 이들이었다.
대격변 이후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유독 주변에 사람이 많이 없는 이들이 모여 팀을 이뤘다.
‘이수혁 팀장이 그런 사람들을 제 곁에 두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팀원 대부분이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살아남은 이도 있었고, 머나먼 친척이라도 살아있는 이도 있었다. 더불어 대격변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지인이 있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정말 우스울 정도로 이상한 일이지만.
팀 내에서 누구보다도 동료들과 허물없이 잘 지내던 최정수. 그리고 팀원들을 아끼며 이끌던 이수혁.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장례식을 나서서 치러줄, 혹은 상주로 나설 사람이 없었다.
‘나밖에.’
김록수밖에 없었다.
틱틱거리고 사람들과 그리 썩 살갑게 섞이지 못하는 김록수. 그뿐이었다.
이들의 마지막을 책임질 사람은.
‘장례식이군.’
케일은 자신이 지금 이수혁과 최정수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던 시간에 왔음을 깨달았다.
대격변 이후, 초기의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사람들이 다시 사회와 문명을 일구며 살아가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변한 문화 중 하나가 장례 문화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많이 죽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죽어가는 중이었다.또한 앞으로도 많이 죽을 것이다.
장례는 최대한 간소화 되었으며, 그 시간도 짧아졌다. 너무나도 많은 슬픔을 사람들은 제대로 가늠해볼 시간조차 없이 보내야 했다. 언제 괴물들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못다 한 슬픔은 그저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갔다.
물론 장례를 아예 치르지 못하고 떠나간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마지막 떠나는 길 인사라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 팀장.”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이수혁과 최정수 영정 사진 앞에 서 있는, 대격변 이전이라면 상주의 위치에 서 있는 케일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는 이가 있었다.
케일은 의도치 않게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수혁과 최정수의 장례를 치른 후, 케일은 곧바로 이수혁의 뒤를 이어 팀장으로서의 공식 업무를 이어나갔다.
그런 그를 두고 타부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나눈 말들.
‘야. 김록수. 독종 그 새끼는 제 생명의 은인이 죽었는데도 울지를 않더라? 무슨 그놈은 표정이 없냐?’
‘…모르지. 그래도 이수혁 팀장이 후임은 제대로 정하고 갔어. 김록수가 일은 엄청 잘하잖아?’
‘괜히 독종 김록수겠냐?’
그 말을 하는 이들 중.
‘야. 김록수. 독종 그 새끼는 제 생명의 은인이 죽었는데도 울지를 않더라? 무슨 그놈은 표정이 없냐?’
표정이 없다고, 울지도 않는다고 케일을 비꼬던 사람. 타 부서 팀장이었다.
‘이 사람도 왔었군.’
케일은 이 사람이 이 장례에 왔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 팀장이라면 당연히 왔었겠지.’
이곳에.
다만 케일은 이 순간에 대한 기억이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은 선명했지만 주변의 상황과 환경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정신 상태로 인해 기억하고 싶은 것만 아주 뚜렷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이 당시 장례는 회사에서 나서서 대부분의 절차를 밟아주었지만, 김록수는 이수혁과 최정수를 비롯한 떠나간 동료들의 마지막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꽤 벅찼다.
‘아직 어렸지.’
그리고 서툴렀던 때의 김록수였다.
‘그런데 말이야.’
케일의 눈동자에 상대의 모습이 담겼다.
분명 눈앞의 남자는 그를 ‘김 팀장’이라고 불렀다. 아직 이수혁의 장례도 끝나지 않았건만, 김록수가 회사에 복귀하지도 않았건만.
‘김 팀장이라고?’
회사에서 이수혁의 뜻을 존중해 김록수를 후임 팀장으로 정했지만,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안 그래?
“…김 팀장……?”
남자는 제 손을 잡지도 않고 빤히 바라보는 김록수를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불렀다. 케일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 팀에 팀장은 이 팀장님만 계시죠.”
순간 남자의 눈동자에 당혹이 어렸다.
‘참, 환상인 것을 뻔히 알지만 너무 사실 같군.’
케일은 당황하던 남자가 이내 더 짙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는 것을 보았다.
“크흠! 뭐, 어차피 이제 자네가 팀장이 될 거 아닙니까?”
나름 살갑게 건넨 말에도 케일은 말없이 상대를 빤히 바라봤다. 그 눈동자는 어리고 서툰 사람의 눈빛이 아닌, 눈앞의 남자보다 더 짙은 연륜이 담겨 있었다. 남자는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크흠, 큼. 많이 힘들죠?”
예의상 건네는, 대화의 흐름을 바꾸려 꺼내는 말이 틀림없었다.
케일은 그 말에는 맞잡은 손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네. 힘듭니다.”
순간 남자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다른 팀원들 장례도 같이 치르는 중이라, 근처에 꽤 많이 있던 회사 직원들도 케일을 곁눈질하거나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케일은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안다.
이때 케일은 정말 어떠한 표정도 없이, 무너지지도 않고 이 시간을 견뎌냈으니까.
그때의 케일은 그것만이 버티는 방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을 안다.
슬픔을, 상실을, 빌어먹을 이 기억을 견뎌내는 방법.
그것은 그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그것들에게 흔들려도 괜찮다.
인간은 태풍에 부러지는 나무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도 아니다. 그리고 인간도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각자의 방식이 있고 각자에게 맞는 방식대로 살면 된다.
케일은 그 다양한 방식을 이 나이까지 살아오며 터득했고, 이제는 그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수혁을 꿈속에서 다시 만나고 최정수가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케일의 기억은 슬픔도 잊지 못하게 했지만, 기쁨과 행복도 잊지 않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지금에서야 케일은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영정 사진으로 향했다.
당시엔, 힘들었다.
그리고 슬펐다.
아니. 아직도.
“슬픕니다.”
그러니 환상으로 이 순간이 나온 것이겠지.
이때 그는 아직 어렸다.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성인이 되려는 찰나 겪은 대격변으로 인해 그는 자신을 어른스러우면서도 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수혁이 만든 것들을, 동료들이 이룬 것들을 이어나가고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빌어처먹을 괴물 새끼들도 다 쳐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죠.”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몫까지.
케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그 미소에 미간을 찌푸리는 이는 없었다. 누가 보아도 깊은 감정이 담긴, 수많은 고뇌 끝에 나온 씁쓸한 미소였으니까.
“그러다 보면 견뎌낼 겁니다.”
케일은 이 기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저 평생 견뎌낼 뿐.
‘그리고 이제는 그걸 꽤 힘겹지 않게 견뎌낼 수 있지.’
그는 미소를 띤 채로 사진 속 이수혁과 최정수를 바라봤다. 이내 시선을 돌려 악수를 나눴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상당히 의외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네?”
제대로 못 들은 남자가 반문했지만, 케일은 모른 체하며 말을 이었다.
“이 시험도 나쁘진 않아.”
그 순간이었다.
콰직.
케일은 눈앞 남자의 얼굴에 금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케일이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파란빛, 슬픔을 뜻하는 빛이 한차례 케일의 시야를 덮쳤다.
그는 곧 그 끝에 노란빛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노란색.
그것은 권태를 뜻했다.
***
“저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괜찮네.”
“하지만!”
알베르는 기사단장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그의 말을 막았다. 기사단장은 차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 채 표정으로 끙끙 앓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이 깨어났다.
안 그래도 퍼슬시는 신전 위에 자리한 구에서 보여진 영상으로 여러 말들이 나돌았다.
물론 수뇌부를 통해 가짜 케일과 진짜 케일을 포함한 1차 파견 인원이 싸우는 중이라는 것을 알렸지만 그럼에도 혼란과 두려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럴 때에 알베르 크로스만이 눈을 떴다.
그리고 퍼슬시에 있던 로운 왕국 병사들의 혼란은 대부분 가라앉았다.
알베르가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님에도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다.
기사단장은 이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이미, 태양이시다.’
현 국왕 전하께는 불충한 생각이었지만, 이번 퍼슬시 일을 통해 알베르 왕세자는 명실상부 로운 안팎으로 로운의 왕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귀한 분이 눈을 뜨자마자 머물던 시청을 벗어나 신전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알베르는 주위에 사람이 있음에도 거친 말을 내뱉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정확히 그런 것을 따질 만큼 생각의 여유가 있진 않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암흑 호랑이 모습으로 여의주를 통해 케일 쪽과 통신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연기가 여의주를 덮더니, 이내 여의주는 통신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여의주에 금이 가거나 다른 무언가 흠이 없는 걸로 보아선 저쪽 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이쪽 여의주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말은 케일 쪽에 뭔 일이 터졌다는 소리였다.
‘알베르, 무슨 일이지?’
‘나도 몰라.’
‘야, 네가 모르면 어떡하냐?’
‘시끄러.’
알베르는 이수혁과 박진태가 차례로 건네는 물음을 무시한 채 여의주를 살폈다.
‘음.’
그때, 알베르는 암흑 호랑이 몸에 힘이 쑤욱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 왜 그래? 야, 호랑이! 너, 왜 그래?’
‘괜찮아? 록수야! 밖에 의원님 좀 불러와!’
박진태와 이수혁, 그리고 막 안으로 들어서던 김록수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그대로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밖으로 나와 신전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네.”
신전 위.
구슬은 마치 사과파이처럼 동등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총 6등분으로 나뉜 조각들은 서로 붙은 채 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조각은 케일, 메리, 로잘린, 최한, 클로페, 툰카. 1차 파견 인원을 뜻하리라.
“음!”
에르하벤과 라온을 비롯한 용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알베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조각은 모두 푸른빛이었다.
그런데 두 개의 조각이 거의 동시에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저하!”
기사단장이 놀라서 외쳤고 알베르는 조각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파아앗!
두 조각은 동시에 노란색으로 변했다.
파랑, 슬픔.
노랑, 권태.
“…본래의 시험이군.”
알베르는 여섯 명이 현재 시험 중이며 그중 두 명이 슬픔에서 벗어나 권태의 환상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두 명이 누구일까?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군!”
알베르는 곧장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는 갑갑함과 걱정으로 뒤섞여 있었다.
***
“…이게 내 권태라고?”
하!
케일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노란빛이 자신을 덮쳤을 때, 권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게으름, 싫증.
연달아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었다.
어떤 순간 혹은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을 뜻하는 말. 혹은 심신이 나른해진 상태. 그가 아는 권태의 뜻들이 떠올랐다.
“그게 이때라고……?”
케일은 고개를 숙여 제 모습을 확인했다.
브라운 계열의 재킷. 그리고 베이지색 바지.
그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17살.
아직은 보육원에서 지낼 때의 고1 김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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