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22
721화.
“저기요?”
고3 최정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린 순간, 케일은 최정건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힘을 풀었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은 책 안 빌립니다.”
케일의 대답에 최정건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컴퓨터 모니터에 가려져 고개를 숙인 최정건이 무엇을 하는지 케일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 숙인 뒤통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아는 최정건일까?’
눈앞의 이놈은 최씨 가문 사람이 맞을까?
아니면 단순히 이름이 ‘최정건’일 뿐인 걸까?
케일은 일단 먼저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기억은 조작된 기억인가? 봉인된 신이 수작을 부렸나?’
둘 다 아니다.
케일은 이 도서부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 이 사람 자체는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 얼굴 또한 최한을 만나고 난 후인 지금에서야 이상하게 느껴졌을 뿐, 흐릿하게나마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다만 이름을 몰라 매칭시키지 못했다.
‘하긴 지금은 능력 발현 전이니 다 기억하지 못하지.’
어릴 때부터 김록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격변 후 ‘기록’ 능력을 발현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평범의 범주 안에 드는 정도였다.
그러니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유독 고1. 그것도 1학기의 기억이 희미하다.’
지금 이 시기는 그의 학창 시절에 있어 가장 평온한 때라는 점만 빼면 다른 때에 비해 기억이 부족한 편이었다.
‘일단은, 눈앞의 최정건은 실제로 내 과거 속에 존재했던 인물은 맞아.’
이제 남은 것은 그 최정건이 그냥 도서부원인 선배냐 아니면 ‘그 최정건’이냐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또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었다.
최정건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나.
그는 분명 아주 오래전에 케일 헤니투스의 세상에서 죽은 자였다.
‘동시에 최정건은 안로만의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냈었지.’
그렇기에 부러지지 않는 창 ‘태랑’을 훔쳐 유유히 도망칠 수 있었을 터.
이런 사실로 봤을 때.
‘단생자인 것이 밝혀진 최정건은 죽은 후에도 다른 무언가가 되어서 여러 차원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할 확률이 높다.’
즉, 최정건이 안로만이 소유한 태랑을 훔쳤듯, 고1 김록수가 사는 세계로 넘어와 무슨 일을 벌이는 것도 꽤 현실성 있는 추측이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최정건이 왜 이 세계로 넘어왔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
케일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눈앞의 도서부원이 진짜 그 최정건이라면,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일지 답이 뻔했다.
‘목표는 나겠지.’
최정건은 죽음의 신, 태양신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 짐작하는 중이다. 죽음의 신이 하얀 별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최정건이 김록수를 탐색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법했다.
스윽.
도서부원 최정건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살짝 눈꼬리를 찌푸린 채 케일을 쳐다봤다. 뭘 그리 빤히 쳐다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씨익.
케일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최정건이 멈칫했을 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선배는 고3인데, 도서부원 활동해도 됩니까?”
최정건의 얼굴이 순간, ‘갑자기 이 자식이 왜 이래?’라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늘 별말 없이 책을 빌리던 후배가 갑자기 말을 거니, 그리 반응하는 게 평범했다.
“네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닌 것 같은데?”
오. 흘러나오는 말도 곱지 않았다. 순해 보이던 인상이 한순간 까다롭게 변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공부한다고 대부분 부활동 빠지잖아요?”
“공부 안 해.”
“그럼 뭐 하는데요?”
“아-”
최정건의 미간이 왈칵 찌푸려졌다.
하지만 김록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말을 붙여봐야 뭘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최정건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도서실에 김록수와 그뿐인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외면했다.
“책 빌릴 거 아니면 그냥 가라.”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알겠습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선선히 물러서는 케일이었다. 그는 더 미련 없다는 듯 도서실 문으로 향했다.
“하. 글 써.”
등 뒤로 최정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뒤돌아 그가 앉아있는 데스크 쪽을 바라봤다. 바로 앞이 아니라 좀 떨어진 대각선쯤에 위치해서 그런지 얼핏 최정건 앞에 펼쳐진 공책과 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스윽. 최정건은 공책 위를 팔로 덮어버리고는 김록수의 시선을 피했다.
“너 판타지 주로 읽더라?”
“그렇죠.”
그쯤 되자, 김록수는 최정건이 무슨 글을 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 씁니까?”
“…뭐.”
김록수를 외면하는 최정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종의 가이드북을 쓰는 중이지.”
그러고는 케일을 보지도 않고 공책을 가리지 않은 팔을 휘휘 저어댔다.
“여튼 가라. 나도 문 잠그고 수업 들으러 가야 돼.”
“네. 내일 뵙죠.”
“그러든가.”
드르륵.
케일은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일종의 가이드북을 쓰는 중이지.’
최정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확신했다.
“네란 베로우.”
영웅의 탄생.
그 책의 저자인 네란 베로우. 그는 최정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
케일은 기가 찼다. 최정건이 언제 영웅의 탄생을 썼을까? 그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왜 하필 판타지 소설 형태일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고1, 17살.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다시 마주한 케일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네.’
최정건은 김록수가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을 알고 영웅의 탄생이라는 ‘가이드북’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딩동딩동-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5분 뒤에 오후 수업이 다시 시작된다.
케일은 다시 교실로 향했다.
스스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지며 그 안에서 노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때, 케일은 입을 열었다.
“아, 진짜.”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 듯 혹은 웃는 듯 묘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빨리 못 끝내겠는데.”
지금 봉인된 신의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희미한 기억 속의 고1 1학기. 인생에 있어 평온한 나날 중 하나라고 기억하는 이때를 좀 파헤쳐봐야 할 것 같다.
분명 그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혹은 기억하지 못한 무언가가 지금 이 시기에 존재했다.
“일단.”
그는 손목시계를 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늠했다.
“최정건에 대해 조사해봐야겠군.”
도서부원 고3 최정건.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야 할 듯싶었다.
드르륵.
그는 교실로 들어섰다.
“야! 김록수, 1분 남았다!”
케일은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의 학생에게 물었다.
“야. 우리 반에 도서부가 있어?”
“내가 도서분데? 와, 야! 너는 친구 동아리도 모르냐?”
“아, 그래?”
그는 달력을 보았다.
3월 말.
“아직 동아리 모집 안 끝났지?”
“저번 주 금요일에 끝났는데. 왜?”
케일은 친구 의자에 대충 팔을 걸치며 이어 말했다.
“나도 가입하고 싶어서.”
고1 김록수. 인간관계에 권태와 싫증을 느끼는 녀석의 삶에 인간관계도 넓힐 겸, 그를 탐색하는 최정건의 뒷덜미도 잡을 겸.
“갑자기?”
“어. 겸사겸사. 도서부 들어가고 싶네.”
“으음, 그러면 부장 형한테 물어볼게!”
“2학년?”
“어, 그렇지.”
“도서실에 3학년이 앉아있던데?”
“아, 그 선배?”
친구는 단박에 누군지 짐작했다.
“작년에 전학 온 선밴데, 꿈이 글 적는 거라고, 3학년인데도 활동하는 거래.”
“그래? 무슨 글 쓴대?”
케일이 질문을 던진 순간, 종이 울렸다.
5교시 시작이었다.
따라라라-따라라–
분명 케일은 최정건에게 무슨 글을 쓰는지 물었고 가이드북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그럼에도 한 번 더 물었다.
혹시나 싶어서.
“음. 대답 안 해준다던데? 비밀이라고. 아.”
친구는 무심히 답하고는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교과서를 꺼내며 슬쩍 케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슬그머니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내가 저번에 그 선배가 부 담당 선생님하고 대화하는 거 얼핏 들었거든?”
그는 언제 선생님이 올지 몰라 교실 문을 힐끗거리며 속삭였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던데? 아, 이건 나도 우연히 들은 거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비밀이야. 니가 특별히 나한테 뭐 물어보는 건 처음이라 답해주는 거야.”
옆자리라 김록수를 알게 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무얼 묻지를 않았다. 그런 그가 처음 도서부에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던져 친구는 눈 딱 감고 답해주었다.
“그래, 고맙다.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케일의 대답에 친구는 안심한 듯 씨익 웃어 보였고, 드르륵, 그 순간 영어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케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정면으로 시선을 돌려 칠판을 바라봤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고3이 부활동을 하려면 담임과 부 담당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겠지. 그러니 최정건은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무슨 글인지 어느 정도 공개해야 했을 거야.’
원활한 학교생활과 도서부 활동을 위해.
‘아마 지금 최정건이 쓰는 글은 타인에게는 판타지 소설일 거야.’
그렇게 보일 것이다.
케일도 처음에는 판타지 소설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최정건은 케일에게 답했다.
가이드북이라고.
‘맞네. 영웅의 탄생 쓰는 거.’
케일의 입꼬리가 다시금 올라갔다.
‘최정건. 나아가 죽음의 신까지.’
죽음의 신은 이수혁과 최정수가 케일 대신 죽는 바람에 케일을 그 세상으로 데려왔다고 하였다. 물론 케일이 하얀 별과 연관이 된 상태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를 관찰했다고?’
참, 죽음의 신도 보면 볼수록 웃긴 놈이다.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아니면 이상한 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케일은 그 순간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여의주.’
두 동강이 나버린 구슬.
죽음의 신 안배가 담긴 그 물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봉인된 신의 첫 번째 시험에서는 분명 그 존재감을 보였던 물건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음!’
그 순간이었다.
‘이런.’
케일은 교복 상의 자켓 앞주머니 하나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케일은 선생님 눈을 피해 슬그머니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벌어진 주머니 안으로 두 동강이 난 여의주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스스스-
하지만 케일이 여의주를 바라본 순간, 그 노란빛에 조금씩 검은 점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
알베르는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모두 다 올라선 순간, 굳게 닫힌 신전 문 앞에 피어나는 붉은빛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텔레포트 마법처럼 짧게 빛났던 빛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기!”
그 외침과 함께 기이한 붉은빛은 사라졌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베르는 그곳으로 걸음을 황급히 옮겼다.
“툰카 대장군!”
“오! 왕세자 저하!”
툰카는 휙휙 주위를 둘러보며 알베르에게 물었다.
“다 나왔소? 5분 안에 나오기로 했는데, 순간 까먹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대는 그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주위를 살피며 상황을 파악했다.
“나만 나온 건가! 이러면 나도 안 나오는 건데!”
툰카는 본래의 시험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자마자 본래의 계획대로 일단 포기를 외치고 신전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자신이 제일 늦게 나오고 나머지는 다 나와 있을 줄 알았다.
왜냐면 여기서 자신을 제외하면 다들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
“대장군! 안은 어땠소?”
알베르는 툰카 앞에 서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우우우—-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여섯 개로 나뉜 조각 중 하나가 푸른빛을 잃고 하얗게 변했다.
‘저건 툰카 대장군이 치르던 시험을 표현한 건가?’
동시에 나머지 푸른 조각 3개가 점점 노란색으로 물들어갔다. 그 속도는 각기 달랐다.
노란색의 의미를 알베르도 알고 있었다.
‘권태.’
툰카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도 앞선 두 사람을 따라 권태로 진입했다. 툰카는 알베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는 곧바로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하루 정도 주변을 살폈-”
알베르는 중간에 툰카 말을 자르고야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요?”
지금 바깥은 알베르가 깨어난 지 한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툰카는 하루가 흘러갔다고 했다.
‘이곳과 안의 시간이 다르다.’
환상 쪽은 시간 흐름이 이곳과 전혀 다른 듯싶었다.
그때였다.
“알베르.”
고룡 에르하벤이 다가왔다. 동시에 그가 허공을 가리켰다.
“…누군가 또 앞서나가는 것 같군.”
노란 조각 하나가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초록색은 실패.
한 사람이 환상 시험 중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
클로페는 초록으로 물드는 주변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패가 부서지지 않듯, 나의 정신도 무너지지 않는 법.”
그는 초록빛으로 감싸인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했다.
***
케일은 고1 김록수로서 라온고에 등교한 이튿날. 도서실 안으로 들어서며 옆에서 건네오는 말에 상당히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서부에 들고 싶다고?”
“네, 선배님.”
현 도서부 부장과 함께 들어선 케일은 오늘도 데스크에 앉아있는 최정건과 눈이 마주쳤다. 최정건이 살짝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쟤가 우리 부에 들어온다고?”
왜? 그러면 안 되냐?
케일은 속으로 답하며 씨익 더 미소를 짙게 지었다. 라온이 사기 친다고 말하는 그 환하고 착해 보이는 미소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리고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최정건의 얼굴이 대번에 떨떠름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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