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33
732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정확히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런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하지만 케일은 그 모습이 그저 어려 보일 뿐이었다.
‘꼴이 영 내가 알던 알베르 크로스만과는 다르군.’
왕세자의 옷은 훌륭한 옷감을 사용하였으며 그 디자인 또한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사용감이 꽤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제대로 다림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1왕자 궁에는 현재 최소한의 궁 유지를 위해 잡일을 담당하는 하인과 하녀들만 있을 뿐. 시종과 시녀는 없었다.
케일의 시선이 제 손에 들린 쟁반으로 향했다. 1왕자 궁에서 주방은 몇 주 전부터 그 기능을 잃었다고 하였다.
케일은 서재로 사용되는 이 방으로 들어서기 전, 하인에게 들었다.
‘1왕자님께서 대부분의 시종과 시녀를 내치셨습니다.’
‘주방장님도 쫓겨나셨죠. 사실, 그건-’
하인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케일에게 슬그머니 말했다.
‘독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열다섯의 알베르는 화사한 미소를 짓던 성인의 모습과 달리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다.
이는 나이 때에 비해 작은 키와 마른 몸 때문이리라.
물론 삐쩍 마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체격이라고 하기에는 확연히 부족했다. 또한 다른 왕자들에 비해 부족한 차림새 때문에 더 비교된 면도 있을 것이다.
“뭘 그렇게 미적거리지?”
다시 한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쟁반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가더라도 이것은 두고 나가겠습니다.”
그는 알베르의 책상 한쪽에 쟁반을 올려두었다.
펜, 책 등. 모든 게 최고급이었으나 상당히 오래 사용한 티가 났다. 잉크통까지 슬쩍 훑어본 케일은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저를 응시하는 알베르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왕자님, 앞으로 1왕자 궁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피식.
알베르는 실소를 대놓고 터트렸다. 그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는 비웃음을 매단 채 케일을 바라봤다.
“저는-”
“됐다. 네 이름은 알고 싶지 않아.”
그는 케일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언제 떠날지 궁금하군.”
곧바로 상대의 대답이 들려왔다.
“곧 떠날 겁니다.”
“…뭐?”
씨익. 케일이 미소를 그렸다.
열다섯 알베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벙하게 생긴 시종. 새로 온 것이 틀림없으며 상의에 어떠한 색깔도 달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참 중에 신참이며 이 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 미소를 지은 순간, 갑자기 어벙한 기색이 사라지며 인상이 달라져 버렸다.
“…하!”
알베르는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터트리고는 케일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최대한 빨리 떠났으면 좋겠군.”
케일은 그 말에 대한 답 대신 허리를 숙이며 다시 인사했다.
“잠시 시종장에게 갔다가 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알베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런 건 묻지 말고 알아서 해.”
“금방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케일은 나름 시종처럼 조용히 서재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는 그때까지 식은 수프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있었다.
달칵.
서재 문이 닫혔고, 케일은 궁을 빠져나왔다.
‘확실히 허술하군.’
1왕자 궁을 감싼 정원은 다른 궁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했다. 물론 일반 귀족가보다야 훨씬 멋진 모습의 정원이었지만, 매일매일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다른 정원들에 비하면 딱 기본만 되어 있는 상태였다.
“시종님.”
1왕자 궁을 벗어나 시종장에게로 가려던 케일의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케일에게 시종과 시녀, 주방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그 하인이었다.
하인은 슬쩍 1왕자 궁 쪽을 눈짓하며 은밀하게 말했다.
“조금 날카로우시죠?”
주어는 없었지만, 명백히 알베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케일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참고로 그 미소는 참으로 어벙해 보였다.
“아닙니다. 식사 전달이 늦었으니, 조금 민감하실 수 있으시죠.”
“시종님은 참 마음이 넓으십니다.”
하인은 감탄하듯이 그리 말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케일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 시종님.”
“네.”
“…조심하십시오.”
하인은 흙이 묻은 장갑을 꼭 맞잡은 채 말을 이었다.
“저야, 어디 오갈 데가 없지만, 시종님은 다르시지 않습니까? 이 1왕자 궁은 위험합니다.”
케일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는 굳은 얼굴로 하인의 얼굴을 살피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귀담아듣지요.”
하인은 그 반응에 그래도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시 미소를 그렸다.
“발길을 제가 오래 잡아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그럼, 이만.”
케일은 하인에게 마주 웃어 보이고는 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하지만 1왕자 궁을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그 걸음은 느려졌다.
케일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갔다.
열다섯 알베르의 모습, 변변찮은 식사, 사람 몇 없는 너무나도 적막한 궁, 오래된 물건들,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하는 하인, 그를 피하는 다른 하인과 하녀들.
케일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푸흐.”
그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 올라갔다.
“장난 아니네. 우리 형님은.”
케일의 눈빛에 날카로움이 스며들었다.
조금 전 케일의 발길을 붙잡았던 저 하인.
케일은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저 하인은 지금 피부색과 머리칼 색을 바꾼 상태다.
저자는 다크엘프 타샤와 함께 알베르 곁에 있는 다크엘프 마법사였다.
“…잉크병이라, 나도 깜박 속을 뻔했어.”
잉크병에 채워져 있는 검은 액체.
그것은 잉크가 아니었다.
죽은 마나였다.
케일이야 죽은 마나를 많이 접해보았으니 잉크병에 꽁꽁 잠겨있는 그 액체의 정체를 알았지, 일반 시종이나 관료, 나아가 기사들도 알아보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케일은 뒤돌아섰다.
살짝 1왕자 궁의 지붕이 보였다.
‘일부러 다 쫓아내었군.’
1왕자 알베르 크로스만.
열다섯의 그는 일부러 궁에서 사람을 쫓아내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다크엘프들로 위장하여 채웠다.
왜 그랬냐고?
뻔했다.
‘성장하기 위해.’
물론, 시종장의 행태로 보아 알베르에 대한 궁 안의 인식은 상당히 좋지 못한 듯했다.
이는 다른 왕자의 뒷배들이 견제를 하고 최대한 알베르의 성장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옷, 외양. 모두 비운의 왕자처럼 보였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케일은 국왕 제드 크로스만의 총애가 언제부터 3왕자에게로 향했는지 모른다. 다만 적어도 지금 알베르는 국왕의 총애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지금 알베르는.
‘칼을 갈고 있군.’
정말로,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때의 왕세자는 굴욕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준비하고 있겠지. 반격의 때를.’
물론 시험이 알베르를 대상자로 택한 것은 객관적으로 굴욕을 겪은 횟수와 강도가 심해서일 터.
하지만 알베르는 라온과는 조금 다른 ‘굴욕’을 겪는 중이었다.
‘이런 경우를 보통 ‘주인공이 힘을 숨김.’이라고 하던가?’
알베르는 굴욕을 느끼면서도 성장하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미래를 제 뜻대로 만들어 손에 쥐기 위해.
케일은 하나둘 알베르가 벌인 일들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주방? 음식?
그런 것은 당연히 다크엘프들이 양질의 것들로 구해올 것이다. 다만 겉으로 말라보여야 하기에 검술을 위한 최소한의 몸집을 유지 중인 것일 터.
오래된 물건들?
일부러 오래 쓰는 것이 분명했다.
사막 아래 엄청난 지하 도시를 만들어낸 다크엘프들이 재력이 없겠는가? 그들이 알베르를 도울 돈이 없겠나?
있는데, 안 쓰는 게 틀림없었다.
기본만 된 궁?
꾸며서 뭐 하나, 다들 관심 안 두어야 지하 연무장에서 마법과 창술을 익히며 성장하지 않겠나?
“영리해.”
케일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알베르는 현재의 굴욕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외로울 것이며 괴로울 것이다.
내 사람이 적고 사방이 적이니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흐음. 나도 슬슬 움직여볼까.”
케일은 시종장 집무실로 향했다.
***
“그러니까.”
시종장은 눈앞의 어벙한 시종을, 아침부터 제 속을 뒤집어놓았던 놈을 보며 물었다.
“왕자 궁에 가니 시종이 아무도 없더라. 이 말 하려고 나를 찾아온 건가?”
“아니, 그게.”
“혼자 일하기 힘들다, 뭐 그런 건가?”
시종 케일은 살짝 시종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제가 오늘부터 1왕자 궁에서 일하는 것인지-”
“그러니, 식사를 가져다주라고 한 것 아닌가!”
탕!
시종장은 답답했는지, 책상을 두드렸다.
움찔. 케일은 일부러 어깨를 움찔했고, 시종장은 그 겁먹은 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기분이 풀어진 시종장이었다.
“그러니까 시종장님.”
“어서 말해! 답답하게 말 끌지 말고! 나 바쁜 사람이야.”
어서 3왕자 궁으로 가야 하는 시종장이었다.
데구르르. 시종 케일은 어벙한 얼굴로 눈을 굴리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시종은 저뿐이니, 제가 책임자입니까?”
그리고 살짝 욕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는 케일이었다.
순간 늙은 시종장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이놈 보게요?’
시종장은 어떠한 직위도 없는 신참 주제에 지금 ‘책임자’, 즉, 궁을 도맡은 시종이라는 직위에 욕심을 드러내는 눈앞의 시종을 보며 실소를 간신히 삼켰다.
분명 1왕자 궁의 상태를 보았을 것이 뻔한데도, 궁 책임자라는 직위에 눈이 뒤집히다니.
‘이놈을 잘만 쓰면… 꽤 도움이 되겠어.’
1왕자에게 이런 어벙한 놈을 옆에 두는 게 그의 성장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그래, 자네가 책임자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정말입니까?”
놀라면서도 감격해하는 신참 시종.
“그래. 대신 자네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 1왕자에 대한 특이 사항이 있다면 꼭 나에게 알려주고 결정을 논의하게.”
“아, 네,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시종 케일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정말 책임자로, 시종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걸로 알아들어도 되는 겁니까?”
“쯧.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자네가 1왕자 궁을 책임지게.”
시종장은 겨우 비웃음을 참았다.
‘아주 잘 돌아가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1왕자 나이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맡을 1왕자 궁. 난장판을 넘어 엉망진창이 될 것이 뻔했다.
“어려운 일은 할 필요 없어. 기본적인, 자네가 지금 하는 일과 같은 것들만 챙기게.”
“네! 감사합니다!”
시종장은 일단 허튼짓을 못하게 ‘기본적인’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신참 시종이 배웠을 기본적인 일이라고 하면 그저 식사를 받아 가져다주는 정도와 의복 관리 정도이리라.
“뭘, 자네는 싹수가 보여. 훌륭한 시종이 될 싹수가. 그래서 내가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니, 알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케일은 음흉하게 웃는 시종장에게 예의껏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홀로 남은 케일은 중얼거렸다.
“알기는 뭘 알아.”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야지~.”
첫 번째로 케일은 국왕의 식사를 담당하는, 왕실 최고 주방으로 향했다.
“왕자님께 드릴 점심 만찬?”
부주방장이 케일을 향해 살짝 눈가를 찌푸렸고, 케일은 어벙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답했다.
“네. 준비해 주십시오. 시종장님께서 저를 책임자로 정하셨거든요.”
“흐음. 시간이 빡빡하겠는데. 왕자님의 만찬이라…….”
왕자는 왕자다.
1왕자.
케일은 어떤 왕자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시종장을 앞세울 뿐.
그러니 부주방장은 알아서 생각했다.
“완성 시간 알려주시면 제가 맞춰서 오겠습니다.”
“흐음. 일단 알겠네.”
주방을 빠져나온 케일은 가볍게 왕궁 자재부로 향했다. 그는 적어둔 목록을 건넸다.
“…이걸 다 내일 오전까지?”
담당 하급 관리가 눈을 크게 떴다.
목록에는 책상부터 시작해 갖가지 최고급품이 적혀있었다.
케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왕자 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으로, 시종장님께서 저에게 맡기셨던 일입니다.”
그럼, 그럼. 시종장이 1왕자 궁을 책임지라고 했으니, 열심히 책임자로서 기본적인 해야 할 일을 해야지.
1왕자 궁을 싹 바꿔야지.
모시는 분의 의식주를 챙기는 것. 이것은 책임자가 아니어도 시종의 기본 아닌가?
“흐음.”
하급 관리는 목록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당장 구하지 못할 물건은 없었지만, 내일 오전까지 구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시종장이 구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3왕자나 2왕자 궁에서 필요한 물건 같은데.’
하급 관리는 이참에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슬쩍 눈앞의 신참 시종을 쳐다보았다.
‘어벙하게 생기고, 경험도 없어 보이고.’
그런 놈이 이런 최고급품을 알아서 목록을 작성할 리도 없다.
물론 그의 생각은 틀렸다.
부자 중의 부자 헤니투스 공작가의 케일 헤니투스는 비싼 물건을 잘 알고 있었다. 딱히 가리는 물건이 없어서 아무것이나 사용해서 그렇지.
“알겠네. 물건이 준비되면 어느 궁으로 보내면 되지?”
“아, 제가 내일 일찍 와서 안내하겠습니다!”
하급 관리는 어떻게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얼빵한 신참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가. 뭐 한 명이라도 짐 옮기는 데 손을 보태면 좋지.”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어벙한 시종 케일은 가볍게 자재부를 벗어났다.
‘일단 식, 주는 해결했고, 의도 해결하려 가볼까.’
케일은 세 번째로, 왕족의 의상을 담당하는 곳으로 가서 왕창 옷을 주문했다.
당연히 어느 ‘왕자’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시종장을 앞세웠다.
의상 디자이너는 케일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세련된 디자인과 최고급 옷감. 그것도 왕족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옷감을 신참 시종이 알 리가 없었으니까.
물론 케일 헤니투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멀어지는 케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2왕자님의 의상이네.”
체격을 딱 봐도 2왕자였다.
“시종장이 2왕자 쪽에도 줄을 뻗는 건가?”
이참에 나도 줄에 닿아볼까?
디자이너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곧바로 의상 제작에 착수했다.
케일은 세 곳을 모두 들른 후, 왕궁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도서관의 서적 관리뿐만 아니라 왕궁 곳곳에 있는 서적에 대한 관리도 함께 이루어졌다.
“내일 가지러 온다고?”
“네. 왕자님께서 구해오라고 해서요.”
“…시종장이 자네에게 믿고 맡겼다고?”
“네! 저를 믿어주셔서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좋네. 최대한 빨리 구해보도록 하지.”
사서는 케일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3왕자가 본격적으로 제왕학을 배울 것인가 보군.’
그러니 시종장이 나서서 챙기는 것이겠지.
사서는 1왕자일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1왕자 궁에서는 10살 이후로 책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해온 적이 없었으니까.
“으음. 또 어디를 가보지?”
그렇게 케일은 사방팔방 왕궁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두 곳은 시종장에게 내용 확인을 받을 수도 있어.’
꼼꼼하게 일하는 이나 케일을 믿지 못한 이들이 그러할 터. 하지만 다른 곳은 내용 확인 없이 케일의 말만 믿고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원래 그라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아니니까.’
현실이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환상 속에서까지 케일은 제 사람들의 굴욕을 보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뒤엎으려면 한바탕 크게 뒤엎어야 돼.’
그래야 이 시종이 해맑은 미친놈인 줄 알고 안 건드리지.
케일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는 잘못된 업무를 하지 않았으며 주어진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시종장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일과 케일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일이 달랐을 뿐이었다.
“자, 그러면 한 가지를 더 해볼까.”
케일은 시종과 시녀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곳으로 움직였다.
왕궁 곳곳의 소문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으로 케일은 걸음을 옮기며 그가 퍼트릴 소문을 생각해보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시종장이 1왕자를 민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을 내용이었으나, 내일 혹은 그 이후는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케일은 시종장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치적인 관계를 떠나.
“최소한 청소년에게 밥은 제대로 챙겨줘야지.”
그리고 돌아다니며 은근슬쩍 알아본 바.
알베르 음식에 독이 들어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흐지부지되었다.
‘국왕도 알고 있을까? 아니면 국왕에게까지 닿지 못했을까?’
어쨌든 책임자는 시종장일 것이다. 궁의 관리는 시종장이 맡으니까.
“음식에 독이라니. 애가 먹을 음식 가지고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지.”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
“이게… 뭐지?”
알베르 크로스만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들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가볍게 점심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활짝 웃는 케일. 그리고 그의 뒤에 트레이를 손에 쥔 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의 국왕궁 주방 시종 및 하인들. 그들의 동공이 흔들렸고,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이는 알베르 크로스만도 마찬가지였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왕자님.”
케일 혼자만 어벙한 얼굴로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이건 궁 안의 정치 역학 관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얼빵한 놈이 저지른 사고였다.
조용하지만 수면 아래로 여러 가지가 오가는 왕궁.
그곳에 한 시종이 수면 아래를 들추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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