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4
73화.
“어떻게 알았습니까?”
“마나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지.”
부드러이 답하는 케일을 보는 헤롤의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맺혔다.
마나가 나에게 가르쳐 준다. 이 말은 지금은 죽어버린 마탑주가 자주 했던, 꽤 유명한 말이었다.
헤롤 코디앙. 그는 부족민과 마법사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 둘의 특징을 모두 가졌으며, 외양은 부족민을 전혀 닮지 않았다.
“…제 피를 약점으로 잡으실 생각입니까?”
케일은 바로 물음에 답을 하기보다는 시선을 돌려 20층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을 감상했다.
영웅의 탄생. 그 안에선 기억에 남는 조연급, 혹은 엑스트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중에 한 명이 헤롤 코디앙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홀로 낳다가 죽었고, 아버지는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 사실이 헤롤에겐 분노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지.’
‘영웅의 탄생’ 책에서는 오로지 작가와 독자만이 알 수 있는 단 한 줄로 그의 분노를 서글프게 만들어 버렸다.
그 자세한 내막은 책에서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만 마탑주가 젊을 적 수련 여행 도중에 만나 사랑을 했다는 말만 있었을 뿐.
케일은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마탑을 부숴 버린 마탑주의 아들에게 말했다.
“피가 무슨 죄라고 그것을 약점으로 잡나?”
헤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헤롤을 직시했다.
“어차피 급한 건 너희 쪽 아닌가?”
가을 추수의 계절이 오기 전. 봄을 넘기고 여름으로 향해가는 요즘. 마탑이 가져가는 세금을 견디다 못해 먹고살기 위해 일어선 자들.
그들의 욕구를 헤롤은 어느 정도 채워주어야 했다. 그래야 또 다른 광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툰카보다 더 전쟁을 원하는 자가 헤롤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의 씨를 말려 버리고 싶었다.
“…일행 중에 마법사 분이 계시더군요.”
“그렇지.”
마탑주만큼 마나를 느낄 줄 알지만 이를 사용할 수 없는 헤롤. 그가 로잘린의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용이야 논외의 존재라 못 느꼈겠지만.
헤롤은 담담하다 못해 태연하게 느껴지는 케일을 보며 물었다.
“로운 왕국에서 마탑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헤롤에게 명확하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탑은 내 것이다.”
헤롤은 마탑 꼭대기. 그 창밖을 보며 말하는 붉은 머리칼의 남자를 응시했다.
“난 내 걸 누구와도 나누지 않아.”
미쳤다고 그걸 왕국에 갖다 바치겠는가. 케일은 이곳까지 오느라 허비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마탑은 안락하고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성을 만들 재료가 되어주어야 했다.
헤롤의 눈빛이 복잡해지는 것이 케일에게 뻔히 보였다.
‘똑똑하게 미친놈이라 고민도 많나 보네.’
이 미친 녀석의 최종 목표는 마법사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로의 회귀였다. 고대의 힘. 오로지 타고난 순수한 힘과 신체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그는 동경했다.
우습게도 재능이 부족해 슬퍼하며 이를 뒤엎으려던 놈이 원하는 세상은 재능이 더 좌지우지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미친놈이라는 거지만.
“…케일 공자께서는 위퍼 왕국 내 마법사들을 원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진심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케일의 입가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에게는 라온 미르, 검은 용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마법사들 따위는 없어도 돼. 더 위대한 존재가 내 곁에 있거든.”
-…인간, 여기 참 풍경이 좋다! 위대한 나는 여기 있다, 인간!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헤롤은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되었든 마법사들은 왕세자가 빼돌릴 예정이었다. 어쨌든 얼추 헤롤의 생각이 맞았다 해도 어쩌겠는가. 눈앞의 케일은 아닌데.
‘물론 왕세자에게 살짝 도움을 줄 거지만.’
도움이라 칭하고 실상은 빚을 안겨줄 작정이었다.
“자, 헤롤 코디앙 참모장.”
헤롤은 복잡한 자신과 달리 상쾌해 보이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문을 가리켰다.
그 순간이었다.
“케일 님, 5분 되었습니다.”
둘만의 대화 시간은 끝이 났다.
최한이 열린 한쪽 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시간이 끝났음을 알림과 동시에 한마디를 더 이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오셨습니다.”
다른 분? 헤롤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을 때, 케일은 그에게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 사람들에게 듣도록.”
그 말이 끝나며 열린 한쪽 문으로 두 사람이 등장했다. 빌로스와 부집사 한스였다. 한스의 품에는 서류 가방이 한가득 안겨져 있었다.
케일이 왜 빌로스와 한스를 불렀겠는가. 이런 일에 써먹으려고 불렀지.
헤롤은 자신의 어깨 위에 닿는 케일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툭, 툭. 케일은 부드러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 논의해 봐.”
그 여유로운 목소리에 헤롤은 탄식처럼 웃더니, 곧 평소의 흔하면서도 사람 좋은 얼굴로 돌아갔다.
“잘 논의해 보지요.”
그는 짧은 대답을 남겨두고 곧장 한스와 빌로스에게 다가갔다. 한스와 헤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빌로스가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공자님.”
“어.”
“계산은 그럼 일단 제 이름으로 할까요?”
대금 지급 방식은 빌로스를 가운데에 두고 행해졌다. 빌로스가 케일에게 돈을 받아 비마법사 연맹에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돈을 환전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였다.
물론 빌로스는 케일이 아니라, 왕가의 돈을 받아서 지불하겠지만. 그걸 비마법사 연맹이 지금 알 방도는 없었다.
“그래.”
“그럼 계약금을 걸고 한 달 내 지급으로 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그런데 말입니다.”
케일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입맛을 다시는 빌로스를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이 영 이상해, 케일은 꺼림칙한 얼굴로 어서 말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그, 얼마 생각하십니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위대한 건축물인 마탑. 사람들이 이동 장치를 제외한 모든 마법 장치가 산산이 다 부서졌다고 믿는 마탑. 그리고 왕국 내 백성들이 증오하는 건축물.
케일은 빌로스의 앞에 검지를 하나 펼쳤다. 그 검지를 본 빌로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더니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억이요?”
“아니.”
“십억이요?”
케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억?”
조심스러운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으로 알아서.”
보통 군량미로 최소 몇백억 겔론 이상이 한 달에 드는 것에 비하면 적은 돈 같지만, 지금은 급하게 왕국민들을 안정시킬 큰돈이기도 했다. 쓰기에 따라 천차만별일 금액.
거기다가 왕세자가 낼 돈이지, 케일이 낼 돈도 아니었다.
빌로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낮게, 하지만 아주 빠르게 속삭였다.
“다 망가졌는데요? 아니, 원래 마탑이라면 천억도 부족하죠. 엄청나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법장치들은 아예 가동이 불가능한데요?”
“그러니까 최대 백억이란 소리지. 뼈대만 남은 건물로 치고 깎아버려. 아, 그리고 돈을 더 써도 되니 인근 땅까지 넉넉히 사.”
“…네?”
“이 마탑 가격만큼 팔 게 있거든.”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
빌로스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전 모르겠습니다만, 무엇이든 이윤은 최대가 되어야겠지요?”
“그렇지.”
“일단 깎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케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빌로스는 그 미소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간신과 같은 미소를 매달았다.
“큰돈 단위가 나오니 심장이 떨립니다, 공자님.”
“신나서 뛰는 것이겠지.”
빌로스는 케일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느긋하게 헤롤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비마법사 연맹은 마탑을 쓸데가 없고, 왕국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마탑을 부수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럴 바엔 이득이라도 취하는 게 나았다.
“케일 님.”
최한과 비크로스가 다가왔다. 비크로스는 마탑주 방 안으로 둘러보더니, 케일에게 물었다.
“사면 청소하실 겁니까?”
그 물음에 케일은 부드러이 답했다.
“싹 치워 버리게.”
비크로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케일은 창가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은 더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밤에 올 테니까.
***
케일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런 그에게로 툰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안 좋다고?”
“그래.”
케일의 무심한 답에 툰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변은 아주 시끄러웠다. 부족민들은 새로운 전사를 반기는 축배를 즐기고 있었다.
툰카도 현재 그들의 예산을 모르는 것이 아닐 터,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위상이 더 중요했고, 전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했다. 그렇기에 참모진도 이 저녁의 축배 시간을 준비한 것이리라.
“…약한 놈.”
퉁퉁 부은 얼굴로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영 탐탁지 않아 하는 툰카에게 케일은 최한을 가리켰다.
“그래도 주인공은 있으니 상관없을 텐데. 그리고 난 약하니 쉬어야지.”
케일이 마찬가지로 탐탁지 않아 하는 최한을 살짝 밀자, 최한은 어기적어기적 툰카 일행 근처로 갔다. 그 옆에는 당연히 힐스만이 있었다.
“하하하! 이 위퍼 왕국의 전사들의 낭만이 느껴지군요! 축배라니! 멋집니다!”
역시 부단장은 사회생활을 좀 했다.
“그럼 이만.”
케일은 미련 없이 축배 장소를 떠났다. 그런 그의 호위로 달라붙은 이가 비크로스였다. 그는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케일 일행의 천막으로 향하며 물었다.
“그냥 천막 앞만 지키면 됩니까?”
“어, 나는 잔다.”
“그런 것으로 알죠.”
비크로스는 말이 잘 통했다. 쓸데없는 설명도 필요 없었고.
그렇기에 케일은 천막 안에 세 명을 집합시켰다. 물론 그 세 명을 보기 위해서는 허리를 숙여야 했다.
땅바닥에 온과 홍, 라온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찾았나?”
온과 홍이 씨익 웃어 보였다.
“어딘지 감이 오는데!”
“대강 그 근처는 찾은 것 같은데!”
아주 신이 났다.
케일은 이미 야행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는 검은 용 라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탑주 방까지. 부탁해.”
케일과 온, 홍, 라온은 비행 마법과 투명화 마법으로 사람들 눈을 피해 20층 마탑주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예전에 모든 알람 마법 장치가 부서졌고, 축배를 드느라 입구에만 감시 인원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이는 툰카의 강력한 명령이었다. 참 이럴 땐 도움이 되
는 놈이었다.
와아아아아-
하하하하-
웃음과 박수 소리, 심지어 노랫소리까지 울려 퍼지며 한데 뭉쳐 불빛 아래에서 춤을 추는 부족민들과 병사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잔치를 벌여 신이 난 듯했다.
케일은 마법 주머니를 대충 허리에 걸며 고양이들을 바라봤고,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케일을 안내했다. 은신의 묘족답게 은밀하게 움직인 그들을 따라 케일은 계단을 내려갔다. 마법 장치는 기록이 남기에 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케일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그는 정확히 15층 계단에서 멈춰 서며 물었다.
“…어디에 있지?”
뮐러에 대해 ‘영웅의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계단의 벽일까. 어디쯤 위치일까.
홍이 윤기가 흐르는 붉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지하 1층이요!”
제기랄. 위치 선정을 잘못했다. 케일은 한숨을 참으며 조용히 바람의 소리를 사용하고는 고양이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라온에게 말했다.
“따라와.”
케일의 몸이 아주 빠르게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타닥, 타닥. 입구 문을 지키고 있을 병사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마탑은 지상 20층, 지하 3층 구조로 알려져 있었다.
“대, 대단한데!”
“순식간인데!”
-약한데 발톱만큼 빠르다, 인간!”
평균 7세의 칭찬을 들으며 케일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여기쯤이라고?”
“네!”
쥐 수인족 냄새가 난다고 고양이들이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이 아이들이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케일이야 책을 읽어 위치만 알면 열 수 있었다.
‘참 쓸데없는 걸 많이 적어뒀단 말이야.’
‘영웅의 탄생’은 한 줄이라도 지나가는 조연들과 엑스트라에 대해 꼭 설명을 해주었다. 그 덕이었다.
케일은 마법 주머니에서 작은 쇠막대기를 꺼냈다. 온과 홍이 흠칫하며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그 막대기로 벽을 두드리며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갔다.
탕.
타닥.
“어디 있을까나?”
탕.
타닥.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희미한 야광석이 박힌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며 흥얼거렸다.
케일은 굶어 죽을 뻔하다가 압사되어 온몸이 부서지고, 더불어 가족들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을 보면서 죽어야 했던 불쌍한 엑스트라, 뮐러를 구할 수 있어 그래도 꽤 기분이 좋았다.
탕.
타닥.
그러나 그의 뒤를 따라오는 고양이와 용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때였다. 케일이 한 계단을 내려서며 벽을 두드렸다.
퉁.
“찾았네.”
다른 벽과 똑같아 보이지만 저 안은 다른 벽과 다를 것이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마법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그리고 벽을 더듬었다.
섬세함을 요하는 일이라, 케일은 꽤 신중했다.
‘벽에 별 모양으로 다섯 개 의 홈이 일정하게 있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케일은 별 모양의 다섯 개 홈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별 모양들의 중심에 마정석을 대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리릭. 작은 소리와 함께 벽이 움직이며 마정석을 삼켜 버렸다. 케일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기이이이익. 기괴한 소리가 나면서 서서히 벽이 열렸다. 그 안에 아주 작은 사람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케일은 조금씩 보이는 얼굴을 보며 다정히 인사하려 했다.
“…음?”
그런데 이상했다.
“흐어어어엉.”
아주 작은 겁쟁이가 오들오들 떨면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아니, 연쇄살인마라도 마주한 듯 창백한 얼굴로 케일을 보며 덜덜덜 떨고 있었다.
케일이 그를 구해준 영웅으로서 뮐러를 착실히 빼먹으려던 의도와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허어엉, 히끅!”
심지어 딸꾹질까지 했다. 케일은 일단 뮐러에게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안녕?”
그런데 뮐러는 더 덜덜 떨며 겁을 집어먹었다. 온과 홍, 라온은 뮐러를 안쓰러이 바라봤다. 케일은 의아했다.
이 자식이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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