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43
외전 2. 우리 팀장님이 망나니가 되었어요! 3
순한 인상의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는 게 좋을 거야. 서두르면 경계심만 커질 테니까.”
케일 헤니투스의 암갈색 눈동자가 남자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그 시선에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능력자가 되는 게 꿈인가 보더라고. 네가 머무는 김록수는 상당한 능력을 지닌 자야.”
“그건 나도 안다.”
“그래? 벌써 몸 상태 파악이 끝난 건가?”
“아니. 다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무슨 힘을 지녔는지는 안다.”
“하긴, 김록수의 힘은 한 번에 다 파악할 수 없지. 그 녀석은 능력이 여러 개니까.”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조금 더 감정이 사라진 담담한 어조였다.
“아무튼 능력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니, 김록수의 능력이라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렇군.”
케일 헤니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지? 그냥 위치만 알려주고 가도 될 텐데.”
그는 말이 없는 남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 김록수라는 녀석과 아는 사인가?”
“…나는.”
현재 30대 중반인 김록수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남자는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당분간 네 담당이다.”
“…그 말은 앞으로 나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당신이 온다는 소리인가?”
“그런 셈이지.”
케일 헤니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툭 던지듯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지?”
“…내 이름은 왜?”
“넌 내 이름도, 나에 대한 진실도 다 알지 않나? 나도 당신의 정체 정도는 알아야지. 딱 봐도 김록수라는 녀석과 아는 사이 같은데.”
삐딱한 자세로 질문을 던져오는 케일 헤니투스는 김록수 모습을 한 채로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하. 짧은 탄식을 터트린 남자는 곧 입을 열었다.
“최정수. 내 이름은 최정수다.”
그는 모자를 다시 푹 눌러썼다.
그는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친구의 모습을, 아니, 친구의 몸 속에 들어간 전혀 모르는 타인을 향해 말했다.
“여기선 죽은 자의 이름이지.”
케일 헤니투스의 눈가가 살짝 들렸다. 최정수는 그 변화를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또한 네가 머무는 김록수의 죽은 친구이기도 하고.”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일 헤니투스는 제 몸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은 잘사나?”
최정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아직 몰라.”
“음.”
잠깐 침음을 흘린 케일 헤니투스는 툭 내뱉었다.
“나는 잘살 것 같다.”
그는 저를 바라보는 최정수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쪽지를 소중히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이 몸으로 아주 잘 살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어.”
최정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그렇지?”
케일 헤니투스는 쪽지를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바로 움직여야겠어.”
“그래. 가 봐.”
“다음에 또 보지.”
케일 헤니투스는 김록수 모습으로 서둘러 골목길을 벗어났다. 우아한 모습은 사라진, 조금은 다급하면서도 설렘이 서린 모습이었다.
최정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를 안 보는 게 좋은 일일 거다.”
그 말과 함께 골목길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최정수를 덮기 시작했다.
촤르륵. 최정수의 앞에 반투명한 양피지가 펼쳐졌다.
최정수는 거기에 적힌 것을 읽고는 이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할 일이 많네.”
스스스–
한 줄기 바람이 골목길을 훑고 지나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벌컥!
사무실 문이 거세게 열렸다.
“김민아 차장.”
“네, 팀장님.”
김민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가오는 김록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김록수는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오늘 나 조퇴한다.”
“네?”
김민아가 놀라서 쳐다봤지만, 김록수는 자리로 가서 외투를 입고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갑자기 조퇴요?”
“그래.”
현재 회사에서는 마 이사를 앞에 두고 김록수가 언급한 ‘퇴사, 엎는다’로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말의 주인공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두지 않은 채 말했다.
“나 오늘 할 일 다 했다만? 아냐?”
눈이 마주친 정소훈 대리를 향해 김록수가 물었고, 그에 정소훈은 어물쩍 대답했다.
“다 하시긴 했죠.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조퇴를-”
“하.”
김록수는, 케일 헤니투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라도 바삐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고 싶었다.
“팀장이란 자리도 불편한 게 많네. 그냥 내 마음대로 하게 확 사장 해버려?”
귀족가에서 살아왔으며, 서대륙 전쟁과 하얀 별과의 전투를 겪어본 케일 헤니투스였다. 그가 살펴본 바로, 이 몸 김록수는 마음만 먹는다면 사장 자리에 앉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1팀원들이 다 놀라서 쳐다볼 때, 케일 헤니투스, 아니, 팀장 김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사무실 문으로 향했다.
“아.”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신입 장세종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며 지나갔다.
“반찬 가게 주문해놨으니까, 가져가.”
“아.”
장세종은 갑작스러운 김록수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그대로네.’
행동이나 어투에 변화가 있을지언정, 장세종이 고작 2주일 알게 된 팀장을 따르게 만든 면모는 그대로였다.
무심하지만 주위 사람을 챙기는, 팀원을 걱정하는 마음. 그건 그대로였다.
“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정신을 차린 정소훈 대리가 나가는 김록수를 향해 물었고, 김록수는 잠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이내 묘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그 미소에는 설렘과 기쁨, 작은 걱정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담담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김록수는 사무실을 벗어났다.
사무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
정소훈 대리가 허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장세종은 갑자기 사무실의 분위기가 밝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죽을까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차 대리가 내뱉은 말에 선임들이 동의를 표하며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 * *
그리고 지금 현재. 서류를 한가득 들고 오던 장세종은 1팀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는 것을 보았다.
“저 망나니 같은 놈!”
“하아.”
마 이사와 김 본부장이 각기 분노와 한숨을 토해내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장세종이 한껏 움츠러든 채 인사를 건넸지만 두 사람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 뒤를 따르는 비서실 직원들이 살짝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으음.’
대충 무슨 일이 있었을지 가늠이 된 장세종은 열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팀장 김록수가 조금 전까지 회의를 진행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테이블 근처 의자에 앉은 채 장세종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자세는 한껏 늘어지고 삐딱해 보였으며 자유로웠다.
물론 녹차가 든 찻잔을 쥔 손은 참으로 우아했다.
“오늘 점심은 라면 어떤가?”
“…팀장님. 또 한판 하셨어요?”
“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냥 퇴사하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김록수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독종 김록수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기고 있었다.
퇴사 희망자 김록수.
그게 새로운 별명이었다.
조금만 마 이사나 길드, 타 단체에서 수작을 부리려고 하면 퇴사를 언급하며 회사를 발칵 뒤집어댔다.
그 모습이 시건방지고 방종하다고 하여 윗선에서는 망나니라고 욕하기도 한다고 했으나.
“…흐음. 뭘 사지? 막내야, 요즘 어린 애들은 무슨 책 읽는지 알아?”
“글쎄요.”
장세종이 보기에 김록수는 여전해보였다.
물론 자세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팀장님, 마 이사 자꾸 건드려도 되겠습니까?”
차 대리의 물음에 김록수는 나직이 읊조렸다.
“자신의 책무를 똑바로 행하지 않으면 치워야지.”
언제 나태했냐는 듯, 그의 주위를 감싸는 기세는 날카로웠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 자의 날카로움과 세월의 연륜이 느껴졌다.
물론 이는 김록수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몸을 쓰는 케일 헤니투스 역시도 많은 전투와 전쟁을 넘나들며 김록수와 비슷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슷했다.
잃은 후, 싸워온 자들만의 분위기일지도 몰랐다.
이를 알 리 없는 팀원들에게 김록수는 다르지만 여전한 팀장이었다.
“하아. 술이 땡기는데. 땡땡이칠까.”
저런 모습을 빼면 말이다.
* * *
“음.”
김록수의 몸을 쓰는 케일 헤니투스는 눈을 떴다.
“신기하네.”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가 야근을 하던 사무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그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그 꿈속에서 ‘진짜 김록수’를 만났다. 이 몸의 주인이자 또 다른 세상에서 케일 헤니투스의 몸을 쓰는 사람.
그를 만난 건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었다.
“흐음.”
그는 고개를 돌렸다.
창밖은 밤이 되어 어둠이 내려 앉아있었다.
창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래.”
이제 내가 김록수지.
더 이상 그는 자신을 ‘케일 헤니투스’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는 이제 ‘김록수’다.
그는 자신이 또 다른 세계의 케일 헤니투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난 이 몸으로 내 목숨을 마무리할 생각이야. 그러니 이제 케일 헤니투스란 이름은 버리고 김록수란 이름으로 살 생각이지.’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반드시 지킬 거야. 내 주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띵-!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김록수는 폰을 열었다.
문자를 확인한 김록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내일은 환생한 어머니를, 아니, 조카를 보러 보육 시설에 가는 날이다. 경계심과 두려움이 많았던 아이는 어느새 그를 삼촌으로 부르며 따랐다.
조만간 그는 절차를 밟은 후 조카와 진짜 가족이 될 예정이었다. 환생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떠나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는 문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최정수.”
“왜?”
여전히 검은 모자에 검은 가죽 재킷 차림의 최정수가 사무실 한편에 서서 김록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소문없이 들어선 최정수였으나, 김록수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늘 최정수는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나타나 있었으니까.
“케일 헤니투스 보러 갈 생각 없냐?”
“…….”
김록수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어렸다.
“너도 좀 편하게 살아.”
“야근하면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하긴 그렇지.”
김록수는 서서히 그림자 속에 스며들며 사라져가는 최정수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언제 만나러 갈 생각이야?”
“조만간.”
최정수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서렸다.
“조만간 나는 보러 갈 생각이다.”
“말이 조금 이상한데? 그러니까, 너는 일단 보러 갈 것이지만 저쪽은 네가 보러 온 걸 모를 수도 있단 소린가?”
“글쎄.”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최정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록수는 남은 어둠을 지켜보다가 이내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얼른 야근을 끝내고 내일 조카를 보러 갈 준비를 해야 했다.
“바쁘네, 바빠.”
투덜거리는 김록수의 입가에 스며든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외전 2. 우리 팀장님이 망나니가 되었어요! 끝-
-다음 외전은 ‘왕세자를 건들지 마시오.’입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유려한입니다.
즐겁고 평온한 설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2월 28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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