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50
외전 5. 브렉 왕국 대공가는 어째서 무너졌나? 1
로운 왕국에 수도 마법 폭탄 테러로 인해 제드 국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축제가 아닌 악몽이 되었던 그때.
브렉 왕국에서도 큰일이 벌어졌다.
“…로잘린의 흔적을 찾지 못했나?”
“그렇습니다, 전하.”
국왕은 자신의 물음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정보부 수장을 보며 절로 옥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국왕을 비롯한 소수의 신하 몇 명만이 존재하는 회의실. 국왕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럴, 이럴 수가.”
로잘린 왕녀는 브렉 왕국에서 출발해 위퍼 왕국의 마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왕실과 하루에 한 번씩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연락이 끊겼다.
긴급 구조 신호를 마지막으로.
“…로운.”
“그렇습니다, 전하.”
마지막 신호가 온 곳의 좌표는 로운 왕국이었다.
브렉 왕국에서 위퍼 왕국으로 가려면 제국을 지나지 않는 이상 로운 왕국을 지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로운에서-?’
순간 국왕은 로운에서 로잘린에게 공격을 했나 싶었지만, 이내 쓸데없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이웃 왕국을 건들 이유가 로운에는 없다. 거기는 누가 건들지 않는 이상 평화를 추구하는 곳이니까.’
가장 오래된 왕국인 로운의 습성쯤은 파악하고 있었다. 남이 건들지 않으면 조용히 살아가는 왕국이지만, 건들면 악착같이 버티면서 달려드는 아주 징글징글하게 끈질긴 왕국이 로운이었다.
로운, 정글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브렉 왕국이니 그 점은 질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지?’
아니, 무엇보다도.
‘로잘린이 위퍼 왕국 마탑으로 향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주 적다.’
브렉 왕국 안에서도 아는 이가 적은데, 그것을 타국에서 알아차릴 확률은 거의 없다.
‘알아차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이 정보를 아는 극소수 사람 중 ‘한 내부자’가 타국에 정보를 알렸을 경우.
‘그리고 타국과 관련이 없다면.’
더욱더 이번 로잘린의 연락 두절에는.
‘내부자가 배후에 있다.’
브렉 왕국의 누군가가, 혹은 어떤 세력이 로잘린을 공격한 것이리라.
“전하.”
정보부 수장은 어두워지는 국왕의 표정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 괴물이나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으로 마법 영상통신구만 파괴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경, 그 말 진심인가?”
“…죄송합니다.”
이곳에 있는 다른 신하들은 몰라도 정보부 수장만큼은 로잘린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로잘린과 함께 떠난 이들은 왕궁의 그림자 중 일부로 국왕의 경호를 맡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이 괴물에 당하거나 돌발상황으로 연락이 끊긴다?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국왕은 저를 쳐다보지 못하는 신하들을 옥좌에 앉아 내려다보며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운 왕국에 협조 공문을 보내도록 하지.”
“전하, 그것은!”
외교부 소속 신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잘못하다간 이 일이 대륙 전체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럴 경우, 왕국의 위신이-”
“그만!”
쾅!
국왕은 옥좌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내가 왕국의 위신이 떨어지거나 다른 외교적인 틈이 생길 것을 모르고 이런 말을 하겠는가?”
한 왕국의 가장 유력한, 거의 확실시되다시피 하는 왕위 계승 후보자가 사라졌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며, 해당 왕국은 소재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 왕국의 위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잘못하다간 그 왕국과 거래 혹은 협박을 하기 위해 먼저 왕위 계승 후보자를 찾으려고 하는 세력이 나올 수도 있었다. 나아가 왕국에 더 좋지 못한 외교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시간이 오래 지났다.
더 이상.
국왕은 더 이상 이 사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내가 내 자식을 찾고자 이러는가?”
국왕의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에 신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국왕은 자신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로잘린이 누군가?”
시종장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브렉의 미래십니다.”
“그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시종장의 말에 반대하는 뜻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국왕은 자신의 딸이 아닌 브렉의 미래로서 로잘린을 평가했다.
“이 몸과 전대 국왕, 전전대 국왕. 아니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로잘린만 한 능력을 지닌 왕위 계승자는 없었다.”
국왕은 스스로의 그릇을 잘 알고 있었다. 전대 국왕인 아버지와 전전대 국왕인 할머니도.
특별하게 뛰어난 머리 혹은 특출한 능력을 지닌 이가 그간 왕가에 태어나지 않았다.
모두 고만고만한 두뇌에 평범한 재능을 지녔다.
물론 기본적으로 성실한 성격들이라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덕에 브렉 왕국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브렉 왕국을 올려줄 순 없었다.
하지만 로잘린이라면.
그 아이라면.
“그 아이는 뛰어난 아이야. 분명 브렉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것이다.”
국왕이 본 로잘린은 제왕학, 행정학에 있어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그 아이의 재능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군사학, 전술학. 그리고 마법.
국왕은 로잘린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분야들을 떠올렸고, 동시에 너무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된 서대륙을 생각했다.
‘오래 지속된 평화는 불길한 무언가를 불러오기도 하지.’
물론 불길한 무언가가, 전쟁과 같은 것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으면 더 좋다.
왜냐면 국왕은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로서 본 로잘린은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진 현명함에 온기를 담아 평화를 더 유지하는 쪽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국왕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지금 브렉의 위신이 떨어지는 것이 겁나느냐?”
잠시 위신이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브렉의 미래가 사라질까 그것이 두렵구나.”
국왕은 미래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전하.”
그때, 행정부 수장이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왕국 내 왕녀님의 부재가 알려지면 왕국민들의 혼란이 커질 것입니다.”
“…으음.”
“그 점은 깊이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네.”
브렉 왕국민들은 로잘린을 태양의 장미라 부르며 그녀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애정했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국왕은 이내 신하들에게 명했다.
“하루. 하루만 더 찾아보고 더 이상의 방도가 없다면, 차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하지.”
그렇게 또 한 번의 진전없는 회의가 끝났다.
* * *
끼익.
홀로 서재에 자리하고 있던 국왕은 문을 여는 소리에 입을 열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였거늘-”
“아바마마.”
“…존이구나.”
1왕녀 로잘린의 동생, 1왕자 존. 국왕은 애써 어깨에 힘을 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저를 걱정하는 아이의 눈빛에 어깨에 힘이 조금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왕비를 닮아 온기를 머금은 아들의 눈빛에 국왕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솔직한 감정을 조금 내뱉었다.
“…조금은 힘들구나. 하지만 힘든 티를 내어선 안 되겠지?”
“…아바마마.”
로잘린이 태양과 같은 아이라면 존은 달과 같은 아이였다. 유난히 함께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미안하구나. 너도 불안할 터인데, 내가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거늘.”
“괜찮습니다.”
존 왕자는 국왕의 이런 모습을 충분히 이해했다.
누이 로잘린이 없는 현재 아버지가 기댈 곳은 어찌 보면 자신뿐이리라. 평소 왕궁 문제라면 어머니 앞에서 약한 모습도 보이며 의논을 하셨을 테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아버지는 어머니의 앞에서 의연한 모습만 보이셨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존이었다.
“하지만, 아바마마.”
“그래. 말해보거라.”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존은 살짝 눈을 감았다.
힘들어하는 부모님, 그리고 불안해하는 동생들.
갈피를 못 잡는 수뇌부들.
아무리 막아도 조금씩 퍼져가는 실종 소식에 혼란스러워지는 왕궁.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누이.
로잘린 누님의 얼굴.
“아바마마. 누님은 분명 잘 살아계실 겁니다.”
“…존.”
“무언가 일어났다면 어떻게든 누님의 소식이 지금쯤은 이곳에 전해졌겠지요.”
누님이라면, 로잘린 누나라면.
“무소식이 희소식이신 분입니다. 아바마마, 누님의 성정을 아시잖습니까?”
아니, 어쩌면 아바마마보다 존 자신이 더 누나의 성정을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존은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솔직하게 그대로 내뱉었다.
“누님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존, 시신이라니- 그런 단어를-!”
“살아있다는 겁니다.”
“…존.”
“아바마마. 누님은 분명 살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찾고 있을 겁니다.”
존은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국왕에게 말했다.
“누님은 자신을 ‘행방불명’ 상태로 만든 원인 혹은 흉수를 찾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찾아내면.”
왕국민들은 누이를 태양의 장미라고 부른다고 했다.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존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그런 분이시죠.”
불이다.
누님은 불과 같은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온기지만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되는. 그런 사람. 태양의 ‘장미’보다는 ‘태양’ 그 자체에 어울리는 사람.
“아바마마.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래, 고맙구나.”
존은 국왕이 그의 말을 단순한 위로를 위해 건넨 희망에 가득 찬 말로 알아들은 듯했지만,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존. 나 없는 동안 잘 부탁해.’
‘누님도 몸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에이. 나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
존은 로잘린이 위퍼 왕국으로 떠나기 전 인사를 나눴던 순간을 떠올렸다.
‘없을 겁니다. 누님이 무슨 일을 벌이면 몰라도.’
‘…존은 나를 참 잘 알아. 신기해.’
모를 수가 없다.
아마 이 세상 사람들 중 가장 많이 로잘린의 등을 바라보며 그녀를 따라온 사람은 자신일 테니까.
‘누님.’
그렇기에 누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존은 알고 있었다.
“후우.”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는 국왕의 서재를 빠져나와 자신의 궁으로 향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어찌 되었든 어서 돌아오십시오, 누님. 마음에 불안이 싹트기 전에요.’
아바마마 앞에서 확신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안은 늘 마음 언저리에 맴돌며 싹이 피어날 틈을 찾고 있었다.
꾸욱.
존은 제 가슴 위를 손바닥으로 누르다가 이내 영상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로잘린의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 * *
그리고 그날 밤, 로운 왕국에 마법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브렉 왕국은 물론 서대륙 전체에 알려진 그날 밤.
존은 늦은 밤 아버지와 어머니의 처소를 은밀히 찾아갔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드물게 존의 평온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혹은 들뜬 듯 울렸다.
“…존?”
왕비마저 놀라서 아들을 바라봤을 때, 존은 품에서 영상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이미 꺼져버린 영상통신구였지만, 방금까지 마법을 펼쳤던 듯 열기가 남아있었다.
“누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
“저, 정말이니?”
국왕과 왕비가 놀라는 것과 동시에 존은 시종장에게 손짓했다. 더불어 국왕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딘가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촤락-.
철저한 경계가 이루어지는 공간. 존은 국왕과 왕비의 손을 각각 잡으며 말했다.
“로운 왕국에서 누님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몸은? 몸은 괜찮아 보였니?”
연신 질문을 쏟아내려는 국왕과 왕비에게 존은 손에 힘을 주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제가 보기에 좋아 보이셨습니다. 현재 좋은 친구를 만나 안전한 곳에 편히 계신다고 합니다. 다만.”
다만?
국왕은 존의 마지막 말에, 왕비는 존의 굳어진 표정에 덜컹 심장이 내려앉았다.
존은 그런 부모님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다만, 누님께서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그리고 곧 오신다고 했습니다. 비밀리에요.”
존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대공은 잘 계시냐고 묻더군요.”
그 순간 국왕과 왕비는 존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에 감도는 같은 감정을 알아챘다.
조용히.
아주 은밀하게.
국왕의 수호대가 궁을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현 국왕이 왕이 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 *
덜컹.
마차가 가볍게 들썩였다. 최고급 마차라 그런지 그 충격은 미미했다.
“로잘린.”
“음?”
로잘린은 서류에서 눈을 떼 맞은편을 바라봤다. 최한이 어둡게 물든 밤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러겠노라고 했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자세히 듣지 못했어.”
“음. 그렇네.”
로잘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라크가 소심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미소를 지었다.
최한과 라크.
두 사람은 브렉 왕국으로 가겠다는 그녀와 함께 기꺼이 가겠다고 나서준 고마운 이들이었다.
“음.”
로잘린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브렉 왕국에 유일한 대공가가 있거든? 200여 년 전에 생긴 대공가인데. 그걸 없앨 거야.”
그리고.
“왕위를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