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52
외전 5. 브렉 왕국 대공가는 어째서 무너졌나? 3
로잘린은 자신보다 작았던 손이 어느새 자신보다 커진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동생의 손은 흉터가 참으로 많았다.
존은 몇 년 전 변경 군사 훈련을 다녀왔고 지금도 검술 훈련에 매진한다고 들었다.
“다음 대 왕은 네가 되어야 돼.”
“…하아.”
로잘린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존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동생이 이렇게 한숨을 내쉬지만, 누구보다도 잘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재능이 많다고 한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자신에게는 감사하게도 재능이 꽤 있다.
그렇다고 동생보다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로잘린은 어릴 적 왕궁 높은 곳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하늘이 아닌 브렉 왕국의 풍경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동생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빛났다.
“내가 대공가를 정리하고 왕위 계승 후보자로서의 자리를 내놓을게. 그리고 바로 왕국을 떠나면 별다른 소리가 안 나올 거야.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떠나면 알아서 사람들이 판단을 할 테니까.”
“누나, 그건 곤란해.”
“왜?”
로잘린은 제 손을 잡은 동생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누나는 멋있게 그만둬야 돼.”“…….”
“불명예스러운 것은 누나에게 맞지 않아.”
로잘린은 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러면 네 자리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찾을 수도 있는데?”
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로잘린은 어렸던 동생이 훌쩍 컸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누나.”
존은 나직이 말했다.
“그런 것들 역시도 내 몫이야. 나는 자랑스러운 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돼.”
로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정말로, 이 왕국을, 이 땅을, 왕국민을, 그리고 가족들을.
사랑한다.
“…역시 왕은 네가 되어야 맞아.”
다시 눈을 뜬 로잘린의 눈동자는 한결 홀가분해진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눈동자는 가라앉으며 묘한 빛을 띠었다.
존이 누이에게 물은 순간이었다.
“누나, 그런데 음, 이렇게 세 분이서 대공가에 가도 돼? 왕실 기사들은 필요하지 않아? 궁정 마법사님도 계시고.”
“음.”
로잘린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동료들 쪽으로 시선을 옮긴 채 말했다.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어? 그, 그게-”
라크가 뭐라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할 때, 최한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담담하게 답했다.
“충분해.”
이미 낮에 수도 대공가에 다녀온 최한이 하는 말이었다.
* * *
“미쳤군……!”
“부정할 수가 없네. 그런데 자네는 어느 쪽이 미친 것 같은가?”
창밖을 연신 힐끗거리던 사람은 동료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동료는 멈추지 않고 이어 말했다.
“타국으로 가는 왕위 후계자를 건든 대공가? 아니면 그 대공가에 500년의 봉문을 하지 않으면 오늘부로 그 가문의 이름이 귀족 명단에서 사라질 것이라 말한 로잘린 왕녀?”
“…정말이지, 갑자기 왜 브렉 왕국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남자와 여자. 두 신문기자는 대공가 근처 한 저택에 잠입하여 창밖으로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로잘린 왕녀님도 대단한 사람이야. 어제 오후에 대공가로 봉문 건에 대한 전언을 보냈다지?”
“전언이라기보다는 선전포고지.”
“…왕실 쪽은?”
“잠잠해.”
왕궁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하지만 브렉 왕국은 현재 수도를 중심으로 온갖 말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로잘린 왕녀의 실종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방불명과 함께 그녀에게 습격을 가한 대공가에 대한 온갖 추측들이 넘쳐흘렀다.
“…대공가에서 사병을 만들었다니. 왕녀가 들고 온 증거가 확실하던데? 사병에게 왕녀 습격을 명령하는 서류에 대공가 인장이 새겨졌던데.”
“확실한 원칙 위반이야.”
로잘린은 실종 상태였다가 갑자기 왕국에 나타나 대공가의 습격과 함께 사병을 육성한 사실에 대해 알렸다.
대공가가 대대로 사병을 키워선 안 된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왕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었다.
“귀족들도 지금 조용하지?”
“모르지. 왕실도 귀족들도,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은 지금 살벌할 거야.”
“…잘못하다간 왕정파와 귀족파의 큰 정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어.”
“정쟁 수준으로 끝나면 다행이게?”
신문기자 중 한 명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정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피가 튀는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그리되면, 브렉 왕국의 평화는 깨지는 거야.”
“…끄응.”
그때였다.
끼이이익-
대공가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각, 다각, 다각.
말발굽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려왔다.
“미친.”
“…이판사판이군.”
기사단이 활짝 열린 대공가 정문에 도열했다. 모두 말을 탄 그들은 하루 이틀 수련을 한 이가 아닌 듯 그 기세가 상당했다.
기사단 뒤로는 얼핏 병사들도 보였다. 그들 역시도 꽤 오랜 훈련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저게 대공이 숨긴 병력의 전부는 아니겠지?”
“당연하지.”
여자는 시계를 쳐다봤다.
“곧이야. 로잘린 왕녀님이 올 거야.”
“왕실 기사단이랑 올까? 하지만 왕궁에서 기사단이 빠져나갔단 정보는 없는데!”
“몰라. 뭐 어떻게든 하시겠-!”
말을 이어가던 기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한 곳을 바라봤다.
대공가로 향하는 길.
그 길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단 세 사람.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이를 본 기자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왕, 왕녀님 맞지?”
대답하는 동료는 없었다.
동료도 놀란 얼굴로 한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붉다.
곧 봄비가 올 것처럼 회색빛으로 우중충한 하늘. 그 때문에 봄의 싱그러움은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살벌한 일이 생기는 날에 어울리는 날씨라 중얼거리곤 했다.
그 회색빛 하늘과 이를 닮은 도시 풍경 사이로.
새빨갛게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대공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거 마나 맞지?”
“…어…….”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로잘린은 붉은 마나를 온몸에 휘감다 못해 있는 대로 그 기운을 발산하며 여유롭게 대공가로 향했다.
그리고 미소를 띤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어있는 구경꾼이 많네.’
그녀는 힐끗 손목을 쳐다봤다. 그곳엔 팔찌가 하나 있었다.
‘가져가거라.’
‘아바마마, 이건 궁정 마법사의 것 아닙니까?’
‘너 가지라고 하더구나.’
중급 마정석들로 이루어진 팔찌.
‘로잘린.’
‘네, 아바마마.’
‘이왕 그 길로 갈 것이라면, 최고는 안 되어도 되니. 네 꿈을 이룰 만큼은 성장했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로잘린, 네 몸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해. 알겠지?’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어머니는 대공가로 향하려는 로잘린의 옷자락을 연신 매만지며 물었다.
‘그런데 지낼 곳은 있니?’
‘네. 있어요.’
그녀는 불안해하는 왕비와 국왕에게 말했다.
‘좋은 동료들이 있어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사람이 아닌, 좋은 마법 동료인 용도 있지만.
로잘린은 제 말에 그제야 편안한 미소를 짓던 부모님을 한 번 더 떠올리고는 대공가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각.
그 순간, 기사단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왕과 비슷한 나이대의 한 남자였다.
대공이었다.
“생각보다 마법 실력이 상당하군. 굉장한 실력자였어.”
로잘린은 가볍게 응수했다.
“그래서 안 죽었죠.”
피식. 대공은 웃음을 흘렸지만, 뒤에 선 기사단은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로잘린은 기사단과 그 너머의 사병, 저택을 훑어보며 툭 내뱉었다.
“봉문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네요.”
대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백 년 봉문이라니, 그건 그냥 망하란 소리 아닌가?”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대공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고작 셋으로 뭘 하려는 것이지? 곧 왕실 기사단이 오는 건가?”
“왕실 기사단은 할 일이 있어요.”
로잘린과 대공의 대화는 무겁지 않고 평온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단은 검집에 손을 대고 있었고, 로잘린은 붉은 마나를 더 뿜었으면 뿜었지 그 양을 줄이지 않았다.
“왕실 기사단이 할 일이 무엇일지 궁금하군.”
“짐작하실 텐데요?”
“글쎄.”
왕실 기사단은 대공과 모의를 한 귀족을, 그리고 아직 모두 드러나지 않은 대공의 병력을 찾거나 혹은 찾은 곳을 부수기 위해 움직일 터.
“그럼 왕녀는 고작 이 셋으로 내 가문을 무너뜨릴 작정인가?”
로잘린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대공 역시도 미소를 지었다.
“오만하구나. 아무리 네가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내 병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든 쭉정이들이 아니야. 보아하니 타국에서 홀로 움직이며 동료들을 사귄 것 같은데, 그런 소꿉장난과 현실의 싸움은 많이 다를 것이다.”
“참-”
참, 말이 많네.
로잘린은 뒷말을 잇지 않은 채, 그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기사단이 그 행동에 그녀가 마법이라도 펼치는 줄 알고 움찔하며 긴장을 한 그때.
최한이 로잘린의 옆에 섰다.
스릉.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 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검은 오러.
“…소드 마스터!”
누군가 참지 못하고 뱉어낸 단어에 대공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기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으음.”
라크 역시도 주춤거리며 슬그머니 로잘린의 옆에 섰다.
그 순간, 로잘린은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 마나가 치솟아 오르며 잿빛 하늘로 향했다.
마치 작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태양이 아니었다.
싸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붉은 마나는 한데 뭉쳐졌고, 로잘린은 미소를 그렸다.
이를 본 대공은 뒤로 물러서며 기사단에게 손짓했다.
“쳐라!”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잘린은 잠시 하늘에 뜬 붉은 마나를 바라봤다.
나의 나라.
나의 왕국.
이 땅에서 오늘부로 왕녀 로잘린은 물러설 것이다.
‘아바마마. 큰일이에요.’
그녀는 국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 꿈을 이룰 만큼 성장하길 바란다는 말.
그런데 그 꿈이 꽤 크다.
‘저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되고 싶답니다.’
용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마법사가 되고 싶다.
오늘 브렉 왕국의 왕녀 로잘린은 사라지나, 이 땅의 마법사 로잘린은 이제 시작이다.
“로잘린.”
“누나.”
최한과 라크. 동료들이 그녀를 부른다.
로잘린은 이들에게는 자신이 마법사 로잘린임을 새삼 느끼며 입을 열었다.
“가자.”
붉은 마나가 대공가로 쏟아졌고, 인간을 벗어난 힘이 대공가를 무너뜨렸으며, 검은 오러가 대공가를 휩쓸었다.
대공가는 더 이상 귀족 가문이 아니게 되었으며, 그들을 따르며 브렉 왕국의 정보를 전달하던 이들도 소리소문없이 관직을 잃거나 작위를 잃었다.
“돌아가자. 라크, 너도 얼른 와.”
“응, 형.”
“…그래, 돌아가자.”
그리고 로잘린은 브렉 왕국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브렉 왕국으로 돌아온다.
곧 서대륙에 펼쳐질 전쟁으로부터 브렉 왕국을 돕기 위해.
물론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녀는 마법사였다. 어릴 적부터 마음 한편에 가져왔던 꿈대로.
-외전 5. 브렉 왕국 대공가는 어째서 무너졌나? 끝-
-다음 외전은 ‘죽음의 신이 기록한 관찰 일지.’ 입니다.-
안녕하세요, 유려한입니다.
5월 중에 종이책 관련 소식을 출판사와 공지를 통해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