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54
외전 6. 죽음의 신이 기록한 관찰 일지 2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태양신은 항상 제 모습을 어둠 속에 가리며 움직였다.
오래전에는 모든 어둠을 몰아내어 버릴 것처럼 눈부시게 뜨겁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다녔던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태양신은 그것이 속죄라고 하였다.
“궁금한 것이 있다.”
“오, 그래. 말해봐. 내가 기분이 꽤 좋으니, 오늘은 태양신 자네가 무슨 질문을 해도 하나는 답을 해주도록 하지.”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죽음의 신이여.”
“그래.”
“신에게 죽음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정말 없는 것인가?”
콰직.
죽음의 신 손에 들린 와인 잔이 산산이 부서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 안 좋아졌어.”
죽음의 신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자네의 물음에는 답을 해주지 못하겠군.”
“…누구보다도.”
태양신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보다도 죽고 싶어서 그 방법을 찾던 신이 자네 아니던가?”
“후우.”
죽음의 신은 깊은숨을 내쉬고는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방법은 찾지 못했다.”
죽음의 신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무엇도 담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역시 무거웠으나, 감정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태양신이여. 자네는 지금 영원한 죽음이 아닌 ‘죽음’을 찾고 있지. 그리고 그 ‘죽음’이 허락된 존재는 오로지 다시 새로운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들뿐이다.”
“…….”
“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살아가고 싶나?”
죽음의 신은 침묵하는 태양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 말했다.
“무엇을 바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허튼 꿈은 버리도록.”
그 목소리는 단호했다.
“과오를 짊어져야 하는 건 자네나 나나 같지 않나?”
한참 만에 태양신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지.”
잠시 두 신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죽음의 신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 정적 속에 물처럼 스며들었다.
그때, 태양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정적이라는 수면 밖으로 정신을 끌어올렸다.
“이수혁인가?”
죽음의 신 미간에 깊은 주름이 하나 파였다.
“자네가 데리고 있던 그 인간 말이야.”
투둑. 투둑.
허공에 떠 있던 관찰 일지 중 몇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음의 신이 나직이 말했다.
“빛덩이야.”
“…….”
태양신 이 자식은 참으로 눈치가 없다, 눈치가.
“빛덩이야, 걔 내 밑에서 일했던 애다. 건들지 마라.”
“…건들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
과거에 어둠 속성을 끔찍이도 싫어해 별별 짓을 다 저지른 미치광이가 이 빛덩이, 태양신이다. 죽음의 신은 상대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를 알아챈 듯 태양신은 짧은 한숨과 함께 읊조렸다.
“이수혁이 부럽더군. 새로운 삶을, 영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죽음의 신은 코웃음을 쳤다.
“빛덩이야. 착각하지 마라.”
그는 착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신에게 삶은 없다. 그저 존재하는 시간이 존재할 뿐.”
그것이 영원이 각인된 존재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이 죽음의 신, 자네의 답인가?”
“답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건 존재를 초월하는 법이었다.
“…이만 가보지.”
“그래, 얼른 가라, 가.”
죽음의 신은 비로소 자신의 공간에 홀로 남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몇 걸음을 옮긴 후, 허리를 숙였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관찰 일지 몇 권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을 집어 들려 또 한 번 허리를 숙였을 때. 그는 어느 날의 일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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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X번째 일지.
최정수는 제안을 거절했다.
김록수는 살아남았다.
신이 되면 인간에 대해, 그 속내에 대해 잘 알 줄 알았건만. 여전히 인간의 끝은 희미하게 보일지언정 그 속내는 알 수가 없구나.
그렇기에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힘을 가진 신은 영웅이 될 수 없지만, 한낱 모자란 힘을 지닌 인간은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일 터.
그런데, 이수혁 이놈은 무엇도 아니건만. 조금 특이한 아이구나. 볼 때마다 특이해.
두 사람을 내가 데려와야겠구나.
그런데 최정건이 조금 무섭다. 또 와서 사무실 집기 다 부수는 거 아냐?
방패쟁이 집에 숨으러 가야겠다. 아니다. 그놈은 최정건한테 약하니까, 아마 나를 잡아다가 최정건한테 가져다줄 거다.
그러면, 음, 태양신… 태양신… 창고에 몰래 가서 숨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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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신 되고 나서 처음으로 빗자루로 처맞아봤지.”
당연히 그 빗자루는 창고에 있던 것으로, 태양신을 모시는 녀석들이 쓰는 물건이었다.
‘죽는다. 오늘. 너는.’
‘신은 못 죽는데?’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지.’
나직이 읊조린 최정건이 빗자루로 검술을 펼치는데, 죽음의 신은 그때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했다.
‘안 죽는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군.’
‘응?’
‘아무리 패고 베어도 너는 안 죽을 거 아닌가?’
역시 최씨 가문 핏줄은 윗대로 올라갈수록 멀쩡해 보이지만 미친놈이 많다는 점을 아주 맹렬히 깨달은 날이었다.
“이때부터였던가?”
죽음의 신 관찰 일지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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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X번째
김록수는 회사에서 독종이라고 불리더라.
하기는 그럴 만했다.
동료들이 죽은 후에도 일이 밀린 적이 없었고, 늘 끼니를 잘 챙겨 먹었으며 옷차림도 단정했으니까.
빈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일에 미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녀석, 살아남은 이후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잘 먹으면 뭐 하나, 잘 자지를 못하는데.
물론 스스로는 수면에 관한 문제를 못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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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어야 함에도 살아남은 존재.
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질 수가 없었다.
그 존재가 죽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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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X번째 일지.
김록수가 외로워 보인다.
아니.
외로움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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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사락. 사라락.
일지가 이어졌다.
하얀 별과 세계에 대한 관찰. 그 외에도 다른 차원과 세계에 대한 관찰 내용.
죽음의 신이 보아야 하는 세계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확실히 많네.”
그럼에도 김록수에 대한 관찰이 틈틈이 그날그날 일지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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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 싸우다가 또 흉터가 큰 게 생겼다.
내가 이걸 볼 때, 옆에서 보고 있던 이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는데 신인 나지만 살짝 쫄았다.
저거 인간 맞나?
가끔 무슨 존재인지 의구심이 든다.
저거 분명 평범한 놈인데, 평범한 놈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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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록수 오늘 잠 푹 잠.
케이지도 잘 잔다.
케이지도 김록수도 무럭무럭 잘 자란다.
물론 둘 다 성인인데, 갈수록 덩치가 좋아진다.
케이지 얘는 신관인데, 파이터로 나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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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관리해야 할 차원이 있어서 바쁜데, 하얀 별 새끼가 자꾸 걸리적거린다.
사냥꾼 자식들이 안 그래도 온갖 곳 다 쑤시고 다녀서 열 받는데… 하… 하얀 별… 때리고 싶다.
힐링하려고 케이지를 봤다가 그녀가 술을 커다란 통째로 들이마시는 걸 보았다.
…그래, 뭐든 많이 먹으면 좋지.
음. 그런데 김록수는 좀 먹으면서 일해야 하지 않나?
앗, 최정수가 온다. 일지는 여기서 그만 써야지. 김록수 보고 있던 거 알면 무슨 꿍꿍이냐고 예의 있지만 살벌하게 쳐다볼 놈이다.
물론 나는 꿍꿍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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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죽음의 신은 손을 뻗었다. 또 다른 책이 한 권 허공에 떠오르며 그 안에 새겨진 글자들을 공중에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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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X번째 일지.
결국, 김록수와 케일 헤니투스의 몸을 바꿨다.
나의 마지막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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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록수는 변수이자 돌연변이였지.”
그리고 그 마지막 수는.
“최선이었다.”
죽음의 신에게는 그 수가 최선의 수였다.
“어떻게 생각해?”
“…내가 온 걸 알고 있었어?”
“당연히.”
어둠 속에서 작은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생자는 단지 사람만을 뜻하지 않았다. 모든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 어느 무엇이든 단생자가 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듯한 푸른 털을 지닌 늑대.
“죽음아, 네 수는 좋은 수가 아니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그 수를 이 아이가 좋게 만들었구나.”
작은 늑대의 앞발이 일지 위에 새겨진 김록수라는 글자를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그 아이 주위의 존재들 역시도 좋은 결과를 만들었구나.”
작은 늑대의 검푸른 눈동자에는 현기가 가득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한 덕분이지.”
“네 아이도 최선을 다했고.”
죽음의 신이 건넨 말에 늑대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죽음의 신은 그 모습을 안쓰러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집에는 왜 왔어?”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다.”
늑대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보지. 다른 이들 눈에 띄면 곤란하니.”
“…술 한잔할래?”
늑대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들에게 버림받은 존재와 같이 술을 마시면 자네도 버림받을지 몰라.”
“네 후손이 네 격을 찾아줄지도 모른다.”
“나는.”
늑대가 죽음의 신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신은 고대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신들만큼 짙은 기운을 품은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늑대는 읊조렸다.
“나는, 아이들의 평온만을 바랄 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늑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아.”
홀로 남은 죽음의 신은 제 몸을 옭아매는 것 같은 기운이 사라지자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긴 저 존재는 고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니. 어쩌면 격을 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지도.”
비록 지금은 이 세계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그 후손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지만.
“흐음. 늑대왕 후보가 라크라는 아이였던가?”
그 아이가 비밀을 풀 수 있다면 좋겠군.
정처 없이 떠도는 누군가에게도 돌아갈 곳이 생길 테니.
“아, 근데 진짜. 우리 집에 아무나 다 들어온다니까. 확 문을 잠가버려?”
일부러 제 영역에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해둔 죽음의 신이었지만, 이렇게 불쑥불쑥 여러 존재들이 찾아올 때면 귀찮음이 커지고는 했다.
“여어.”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고 죽음의 신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봉인된 신을 드디어 네 수중에 가뒀다고?”
“희망의 신이여.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대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큰 격을 지녔으며, 대체할 만한 능력을 지닌 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몇몇 신.
그중 한 명인 희망의 신이 죽음의 신을 찾아왔다.
그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자가 자신을 보러 왔다는 사실에 죽음의 신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무슨 일로 왔는지, 자네는 알 텐데?”
희망의 신은 특정한 때에 움직인다.
죽음의 신은 그때를 읊조렸다.
“희망이 나타나는 곳에.”
그리고.
“희망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희망을 품은 존재가 위험에 빠지기 전에.”
희망의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그렸다.
“그래, 잘 아는구나.”
죽음의 신은 어두운 공간에 깜박이는 작은 빛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희망의 신이었다.
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희미한 빛이지만, 어둠 속에서는 분명히 보이며, 또한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깜박이는 작은 존재.
하지만 저 빛은 결코 지금껏 한 번도 꺼지지 않았으며, 저 빛을 부술 수 있는 존재는 이 신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법칙’이라도 저 빛은 부술 수 없다고 하였다.
희망의 신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늘 저렇게 다녔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같은 신을 떠나서 ‘자격’을 지닌 존재만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아이야.”
희망의 신은 죽음의 신을 늘 ‘아이’라고 불렀다.
이 신에게는 모든 존재가 아마 ‘아이’이리라.
“‘자격’의 씨앗을 지켜주길 바란다.”
죽음의 신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동시에 깜박이던 작은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