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56
외전 7. 백수를 꿈꾸는 그의 휴일 1
처음에는 몰랐지만, 최한이 본 그의 휴일은 쉬는 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회복기’였다.
물론 본인은 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나, 최한이 보기에는 전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휴일의 의미를 알아챈 그의 사람들은 그의 회복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다.
* * *
12월 31일.
새해를 앞둔 날.
해리스 마을 한편에 자리한 저택에서 올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최한은 어깨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투둑. 투둑.
그의 시선이 저택 마당 쪽으로 향했다.
‘눈사람 가족 만들어야 한다!’
라온의 외침으로 만들어진 꽤 많은 수의 눈사람들.
첫눈과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은 몇 번의 보수 끝에 아직까지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라온과 홍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사람 상태부터 확인한다고 했다.
최한은 눈사람 가족 중에 자신의 눈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고요하네.’
저택 안은 따스하면서도 고요했다.
조용했다.
“아니지.”
고요했지만, 조용하지는 않았다.
시끄럽지는 않지만, 마치 실로폰 소리처럼 맑고 통통 튀는 목소리들이 음악처럼 희미하게 부엌에서 들려왔다.
“비크로스야, 비크로스야.”
“…….”
“나 심심하다!”
“나도 심심한데!”
“…하아.”
“쿠키 만들기 나도 같이하고 싶다!”
“반죽 나 잘할 수 있는데!”
“…하아…….”
최한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이런’ 고요함이 조금 낯설었던 탓이었다.
겨울이 되면 ‘어둠의 숲’은 고요해진다.
언뜻 보기에는 평화롭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호수의 수면만을 본 것일 뿐, 그 아래는 보지 못한 것과 같았다.
어둠의 숲에 겨울이 오면 힘이 약한 동물들은 나뭇가지 밟는 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소리를 내면, 먹을 것이 줄어들어 어딘가에서 먹이를 찾고 있을 포식자의 귀를 사로잡을 테니까.
고요했지만. 피는 흘렀고, 비명은 들렸으며, 포식자의 식사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숨어있던 최한의 귀에는 잘 들렸다.
그 당시 최한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배가 고파 소리를 내려는 배를 움켜쥐며 허기를 참던, 그러면서도 죽을까 봐 무서워 차마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못했던 한없이 약했던 때의 자신을 비참하다고 여겼다.
물론 어느 순간 어둠의 숲에서 겨울을 나는 법을 터득하고 검술 실력이 성장해 어렵지 않게 그곳에서의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때의 고요함이 담은 것들은 매해 들어야 했다.
“비크로스야, 비크로스야. 진짜로 반죽해 보면 안 되나?”
“하고 싶은데…….”
‘이 고요함’과 ‘그때의 고요함’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두 시간 모두 다른 계절보다 평화롭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하나도 닮지 않았다.
냐아아옹.
최한은 2층에서 내려오는 회색 고양이를 보고 미소를 그렸다. 온과 함께 론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케일 님은?”
최한의 물음에 온은 괜히 최한의 발등 위를 한 번 툭 치고는 한숨처럼 내뱉었다.
“자는데.”
최한의 시선이 론에게로 향했다. 론은 손에 빈 접시를 든 채 냉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최한 역시도 입가의 미소를 지운 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대화가 필요치 않은 두 사람이었다.
“정말 많이 자는데.”
온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최한은 긍정의 의미로 온을 향해 팔을 벌렸다. 온은 최한의 품에 안겨 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정말 많이 주무시기는 하지.’
최한은 케일이 처음에 이 저택에서 쉰다고 했을 때, 그 쉰다는 의미에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고생을 많이 했던 케일이니,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래서 처음에 케일의 모습을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조금만 움직이고 잠만 자고 밥만 먹고 지낼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 며칠 지나면 저렇지는 않겠지 싶었다.
‘하지만 역시 케일 님은 달랐지.’
며칠이 지나고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케일은 저랬다.
어떤 의미로 참 한결같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조금 살이 쪘는데.”
온이 그를 보며 하는 말에 최한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려주었다.
파리했던 케일의 안색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리고 잘 먹어서 그런지 조금 살이 쪘다. 그래 봤자,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살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훨 좋아 보였다.
특히 의자에 드러눕듯이 앉아 과일을 먹을 때 케일의 표정은 참 편안해 보였다.
최한은 론, 온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늑대들은?”
최한은 뚱한 얼굴로 비크로스가 건네는 말에 살짝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조금만 더 수련하다가 온대.”
비크로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은 간식용 빵을 반죽하는 비크로스의 손길이 조금 더 빨라진 것을 보며 살짝 웃음을 흘렸다.
“뭐야?”
비크로스가 그런 최한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았지만, 그 냉혈한 표정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 최한으로서는 그저 코웃음을 쳐줬을 뿐이었다.
“하아.”
“비크로스야, 반죽하기 힘드나? 여기 나도 있다. 내 앞발 힘세다.”
“하아.”
라온이 동글동글한 앞발을 비크로스에게 들이밀었으나, 비크로스는 최대한 외면하려 노력하였다. 론은 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론이 빈 접시를 설거지했고 온이 어느새 최한의 품을 벗어나 그런 론의 곁으로 마른행주를 든 채 다가가고 있었다.
여러 소리가 들렸지만, 큰 소리는 아니었고 왠지 모르게 다들 평소보다 작게 말하고 있었다.
‘케일 님이 주무시기 때문이겠지.’
최한은 이 고요함이 좋았다.
“저녁에는 만찬으로 할까 하는데.”
“우아! 비크로스야, 너는 대단하다!”
“최곤데!”
“돕고 싶은데.”
온기가 담긴 대화를 들으며 최한은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건 처음 같다고 느꼈다. 분명 이런 때가 있었을 테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했다.
그래서 조금 슬플 뻔했지만, 그럼에도 이 온기가 좋아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한은 시선을 돌렸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봤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이런 순간을 만들어준, 이렇게 모두 함께할 수 있게 해준 그 중심이 되어주는 한 사람에게 유독 고마움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의 주인공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아.”
환기용으로 작게 열린 방 끝쪽 창문 틈새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징글징글하네.”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도, 늑대족 아이들은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무서운 것들.”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바위라도 부수려고 그러나?
…어쩌면 이미 바위는 부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떠오른 섬뜩한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하아.”
그는 몸을 한번 뒹굴거려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참, 시끄럽단 말이지.”
이 저택은 밖이고 안이고 간에 한쪽이 조용하면 한쪽이 시끄럽고. 한쪽이 소란스럽다 싶으면 다른 한쪽은 좀 차분해지고.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지금 저택 안은 모두 1층에 간 것인지 뭔가 부산스러운 것 같지만 조용했고, 대신 저택 밖은 올해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것인지 열정적인 훈련 소리에 소란스러웠다.
“…다르네.”
케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건만, 문득문득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면 과거의 기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훅 수면 위로 떠올라버리곤 했다.
케일은 어느 날의 휴일이 생각나 버리고야 말았다.
* * *
그날은 1년여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김록수가 연차를 쓰겠다고 말한 날이었다.
“김 팀장, 자네 지금 결재 서류를 들고 오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이 건이 중요한 건인 건 알지?”
회사에서 오랫동안 이사로 재직해온 마 이사는 손에 들린 서류를 흔들며 김록수를 바라봤다.
“글쎄요.”
“글쎄요는 무슨 글쎄요야. 김 팀장, 이 길드 협약 건이 체결되면 얼마나 큰 이득이 오는 줄 아나? 그런 일을 앞두고 연차를 쓰겠다니. 말이 된다고 보나?”
마 이사가 짜증과 화를 드러내며 말했다.
김 팀장과 함께 왔던 2팀과 3팀 팀장은 그런 마 이사의 짜증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따로 반박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마 이사가 들고 있는 저 서류 속에 담긴 길드 협약 건은 회사에 상당한 이득을 가져오리라 생각되는 건이었고, 그 건의 성사를 코앞으로 둔 시점에 협약 진행에 있어 핵심 세 팀 중 하나를 이끄는 1팀의 김록수 팀장이 빠진다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긴 했다.
“자네들도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마 이사가 두 팀장에게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하지만 두 팀장은 막상 마 이사의 편을 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마 이사 모르는 것 같지?’
‘어.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마 이사의 생각을 이해하면서도 김록수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2팀장은 짧은 눈빛 신호를 주고받은 후 입을 열었다.
“김 팀장이 없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협약서에 사인을 하는 일밖에 없는데, 그건 마 이사님께서 하실 일이니까요.”
“그 사인 하는 날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닌가? 응?”
2팀장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김록수 팀장은 이번 일과 관련하여 그가 해야 하는 실질적인 업무는 모두 끝내놓았다.
물론 마 이사가 말하는 협약서에 사인을 하는 행사 날은 중요하다. 마지막 단추니까. 하지만 마 이사와 길드장이 사인하고 악수하는 자리에는 김록수가 없어도 무방했다.
‘격식 따지는 마 이사 입장에서야 꼬장 부릴 만한 일이지만.’
그러니 이렇게 부장님이나 다른 분을 부르지 않고 실무를 담당하던 세 팀장을 부른 것이리라.
2팀장은 자신이 아무 말이 없자, 마 이사의 화살이 다시 김록수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내뱉는 말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김 팀장, 난 자네가 상당히 책임감이 강하고 능력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금 의구심이 들어? 팀을 자네에게 맡겨도 되나 싶단 이 말이야.”
저, 저 마 이사, 저 인간 조금만 더 하면 선 넘는 말을 할 것 같은데?
적어도 오늘은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고!
2팀장은 3팀장을 쳐다봤고,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던 김록수의 입이 열렸다.
현재 팀장 중 가장 어린 나이의 그.
“협약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살고 죽는 문제가 걸린 일은 아닙니다만.”
“뭐?”
마 이사의 미간이 확 찌푸려지며 그의 목소리가 커지려는 찰나.
“…이사님!”
3팀장이 입을 열었다.
“김록수 팀장. 지난 ‘1년’ 동안 주말에도 거의 출근하면서 쉬지도 않고 일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1년’ 동안에요.”
“누가 그 사실을 부정하나? 왜 하필 지금 연차를 쓰려고 하냐 이 말이야. 지난 1년 동안 고생한 건 나도 잘-”
마 이사는 말을 내뱉다가 잠시 멈칫했다.
1년.
김록수가 팀장이 된 지 1년.
그 시간을 깨닫는 순간, 그는 김록수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고생한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그 목소리가 한풀 꺾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