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66
2부 8화
“하지만 따질 건 따져야겠지.”
케일의 무심한 눈동자가 수이 칸에게로 향했다.
“팀장, 죽음의 신이 고작 우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겠죠?”
사냥꾼은 ‘가문’이라는 집단을 이뤘다.
케일은 그 집단의 크기를 ‘혈교’라는 단어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무협.
그 소설에서 꼭 등장하는 정파, 사파, 마교. 그 외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곳으로 북해빙궁과 혈교가 있었다.
‘직접 가봐야 그 세계에서의 혈교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세력이다.’
단순한 집단이 아닌 세력.
어쩌면 하얀 별이 이끌던 ‘암’보다 더 음험하면서도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런 곳을 우리끼리 처리하라고?
아무리 용에, 최한에, 동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리된다면.
‘분명 우리 쪽에서 많이 다칠 거다.’
사냥꾼 잡자고 동료들이 크게 다친다? 위험해진다?
케일이 죽음의 신이 준 신물을 받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케일의 시선이 실로 오랜만에 만난 팀장을 바라본다고 하기에는 날카로워졌다.
그에 수이 칸은 묘하게 느릿해 보이는 어투로 말했다.
“케일아, 죽음의 신은 염치가 없을지 몰라도. 내가 그런 신의 정보를 알려다 주겠나?”
“인간아! 내가 보기에도 죽음의 신은 염치가 없지만, 수이 칸은 안 그래 보인다.”
라온의 말에 최한도 동의한다는 듯 슬쩍 고개를 끄덕여왔다.
수이 칸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냥꾼 가문이 있는 세계는 각각 상황이 다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최소한의 조력자와 보조 집단이 각 세계마다 있다.”
“사냥꾼에 대항하는 집단입니까?”
“그런 집단도 있고, 죽음의 신과 계약하거나 혹은 그 신을 따르는 이들이지.”
수이 칸은 허공을 바라봤다.
“혈교가 있는 곳에는 방랑자가 가서 터를 닦아놓았다.”
방랑자.
이는 환생을 하지 않는 단생자가 죽은 후 갈 수 있는 한 갈래의 길이었다.
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용병처럼 방랑하거나.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최한과 최정수의 조상이었던 최정건이 바로 방랑자였다.
케일은 문득 팀장 이수혁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최정수가 터를 닦은 겁니까?”
“…그래.”
최정수도 단생자였다.
그 역시도 방랑자를 택했다.
“그곳에 가면, 잘하면 최정수를 만날 수도 있을 거다.”
수이 칸은 케일을 향해 말하면서도 그 눈동자가 최한에게로 향했다. 최한은 케일이 최정수를 언급한 순간부터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이 칸은 이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내 케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씨익,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세계에는 5대 선과 5대 마가 존재한다더군.”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싶었던 케일은 팀장의 성격을 알기에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중에 최정수가 있습니까?”
“그래.”
조금 장난기가 서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한 수이 칸의 모습에 최한이 슬쩍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5대 선 중의 한 명이겠군요.”
“아니.”
수이 칸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걔 검마다.”
“…네?”
최한이 되물었을 때, 수이 칸은 웃긴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대 검선을 뚜드려 패고 얻은 칭호라더군.”
아이구, 머리야.
케일은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아마도 허허 웃으며 그 얼굴로 별생각 없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을 것이 뻔했다. 최정수는 최한의 후손이 맞는지, 은근히 사고를 있는 대로 치고 다니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닌 겁니까?”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수이 칸은 담담하게 말했다.
“잘하면 만나서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정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케일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최한 역시도 그 침묵에 함께했다.
잠시 정적이 생겼고, 그 틈에 잠자코 생각을 정리하던 이가 입을 열었다.
알베르였다.
“어쨌든, 수이 칸 자네가 만약 타 차원으로 가야 한다면, 백마법사가 존재하는 세계부터 가야 할 확률이 높다고 했지.”
“그렇지.”
알베르는 중원이 뭐고, 무협이 뭐고, 혈마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다음 단계로 나아갈 일에 대한 것부터 물었다.
“그러면 백마법사가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이지?”
오르세나 공작가와 관련된 백마법.
어쩌면 국왕궁 파괴와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나아가 이제 사냥꾼은 로운 왕국에 있어 실존하는 위협이 되었다.’
어쩌면 이 동서대륙 전체에 그 위협이 퍼져나갈지도 몰랐다. 국왕궁과 공작가를 건드는 자들이 그 이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예상이었다.
그러니 알베르 입장에서는 그곳에 대해 아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이번에는 수이 칸이 처음으로 침묵했다.
그 침묵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수이 칸은 말문을 열었다.
“그곳은 멸망한 세계다.”
뭐?
케일이 놀라서 환생한 팀장을 바라봤다.
알베르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곳은 죽은 마나가 땅의 80% 이상을 뒤덮어, 생명체가 살아갈 땅이 고작 20%가 안 되는 세상이다.”
알베르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죽은 마나로 뒤덮인 세계를.
이 세상에서는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죽은 마나에 노출되면 대부분 죽거나 심각한 중독에 빠진다.
“…그쪽과 이곳의 죽은 마나는 다른가?”
“아니. 같다. 보통의 생명체들에게 죽은 마나는 치명적인 독 그 이상이지.”
수이 칸의 적안에 알베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알베르는 그 눈동자가 꼭 피와 같아 보였다. 피를 머금은 듯한 눈동자가 알베르를 빤히 응시했다.
“그곳은 죽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지. 다크엘프, 흑마법사들이 귀족층을 이루었어.”
로운 왕국을 시작으로 하여 조금씩 다크엘프를 비롯한 어둠 속성 종족들이 인정받기 시작한 이 세계와 달리 그 세계는 그들이 권력자였다.
“아.”
수이 칸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그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황제는 반드시 한 가지 능력을 지녀야 해. 그 능력이 있어야 황족들도 황태자로 도전해볼 자격이 생기지.”
오독.
수이 칸은 손에 든 쿠키를 입안에 씹어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곳의 왕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다.”
그의 적안을 케일이 바라본 순간, 수이 칸도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망자들의 왕.”
망자.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만히 있던 최한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그리고 그 단어에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네크로맨서 메리.
수이 칸은 담담하게 최한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지닌 자는 그곳에서 후계자의 지위를 가진다. 방계든 직계든 상관없이 말이야.”
수이 칸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세상이랑은 딴판이지?”
하.
케일은 탄식을 흘리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무협 세계에, 죽은 마나로 뒤덮인 세계라.
“이야.”
빌어먹을.
케일은 속으로 거친 말을 내뱉으며 정면을 응시하다 알베르와 눈이 마주쳤다.
알베르는 단박에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난 못 간다. 나까지 왕궁을 비울 수는 없어.”
누가 같이 가자고 했나?
케일은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말하는 알베르를 그냥 쳐다봤다.
알베르는 그 무심한 시선에 괜히 양심이 찔려왔다.
‘…쉽지 않을 거다.’
첫 번째로 가야 할 수도 있는 세계가 죽은 마나로 뒤덮인 세상이다. 그건 멸망한 세계라는 표현이 딱 알맞은 곳이었다.
알베르 자신은 다크엘프 피가 섞여 죽은 마나와 가깝지만, 죽은 마나로 뒤덮인 땅은 일단 일반적인 작물이 자라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도 그곳이 정상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베르는 케일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가야 하나?”
왕궁과 동료.
상당히 중요한 두 가치에 대한 고뇌가 담긴 목소리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거렸다.
“…아뇨……?”
케일이 떨떠름하게 건넨 말에 알베르의 표정도 떨떠름해졌다.
“저하가 가면 로운 왕국은 어쩌게요?”
“…그렇지.”
알베르가 이상하게 잠잠해졌고, 케일은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로 이를 쳐다보다가 수이 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팀장. 한 가지 꺼림칙한 게 있습니다만.”
“뭐지?”
“사냥꾼이 차원 이동을 하는 데에 생명과 피를 대가로 사용한다고 했죠. 그럼 우리는요?”
케일의 말을 듣던 최한과 알베르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했다.
“팀장, 우리도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그때, 라온이 아주 단호하게 외쳤다.
“싫다! 우리가 왜 대가까지 내나! 계산이 안 맞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였다.
“신이든 뭐든 계산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순간 최한과 알베르마저 놀랄 정도로 엄중한 라온의 모습이었다.
“그렇지.”
당연하다는 듯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라온의 맨들맨들한 뒤통수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라온은 그에 씨익 웃으며 케일의 무릎 위에 볼살을 비볐다.
“참, 닮았네.”
수이 칸이 이를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알베르는 케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수이 칸의 모습이 영 그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았으나, 일단 이어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가는 신이 감당하지 않는다.”
그 순간.
쿠웅!
라온이 앞발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 사기꾼 신!”
“물론 우리가 감당하는 것도 아니다.”
라온이 조용히 쿠키를 집어 하나 먹었다.
케일은 쿠키 바구니를 라온 쪽으로 밀어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누가 대가를 감당합니까?”
그가 본 이 세계 혹은 차원이라는 것들은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무언가 제재를 가했고 대가를 혹은 균형을 원했다.
그러니 대가가 없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또한 그 대가가 후에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해가 되어선 안 되었다. 그럴 바에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대가는 세계가 감당한다.”
“…그게 무슨 말이죠?”
최한이 되물었고, 수이 칸은 답했다.
“우리가 이동하려는 ‘그 세계’가 대가를 감당한다는 소리다.”
으음.
잠시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을 하던 수이 칸은 이내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해 예를 들자면. 백마법사가 있는 세계의 사냥꾼 가문은 통칭 ‘검은 피’다.”
붉은 피, 하얀 피에 이어 새롭게 알게 된 사냥꾼 가문.
검은 피.
“그 검은 피가 있는 세계는 아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하나의 세상이 원한다.
“사냥꾼을 모조리 말살시키기를.”
한 존재를 없애기를 원한다.
“…왜요?”
“그 세계가 살아남기 위해서.”
으음.
질문을 던졌던 최한이 침음을 흘렸고, 수이 칸은 담담하게 말했다.
“사냥꾼이 그 세계를 그렇게 만들었거든.”
알베르의 표정이 한없이 굳어졌다.
한 세계가 죽은 마나로 거의 뒤덮였다.
그걸 사냥꾼 전체도 아닌 가문 하나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미친.’
거친 말이 절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꾹 누르는 알베르였다.
그 와중에도 수이 칸은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우리가 차원 이동해서 모든 사냥꾼을 몰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을 준 크기만큼 뒤틀어진 균형을 그쪽 세계가 감당한다는 소리지.”
“다른 세계도 다 사냥꾼 몰살을 원하는 겁니까?”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 최한에게 수이 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진 않아. 각 세계가 원하는 목적은 다 달라. 다만 ‘사냥꾼’과 관련된 어느 정도의 합의는 도출했다고 할 수 있지.”
생각에 잠겨있던 케일이 입을 열었다.
“그 세계-”
“백마법사가 있는 세계는 샤올렌 행성이다.”
“네. 그 샤올렌 행성이라는 곳에도 조력자가 있습니까?”
“그래. 만나지는 못했지만, 있다고 듣기는 들었다.”
수이 칸이 조금 묘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팀장이 이런 표정을 짓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에 되려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요? 뭐 있습니까?”
“…거기는 정화의 불을 모시는 신도들이 있다. 그들이 조력자야.”
정화의 불?
케일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수이 칸을 바라봤고, 그때 라온이 케일의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인간아! 네가 가진 힘이랑 비슷하다! 네 불벼락으로 죽은 마나 정화할 수 있는데!”
“…어?”
케일의 입에서 어벙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수이 칸은 어깨를 으쓱였다.
“묘하지? 나도 조금 그 점이 걸리는데, 조력자이니 나쁘지는 않을 거다.”
“더 자세한 건 모릅니까?”
“모른다. 죽음의 신이 알려주지 않았거든.”
“음.”
케일은 잠시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알베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톡. 톡. 그의 검지가 소파 팔걸이를 두드렸다.
알베르는 저를 쳐다보며 검지로 소파를 두드리는 케일의 작태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지?”
불안하게.
알베르는 뒷말은 삼켰다.
“저하.”
케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죽음의 신 교단에 뭐 약점 없습니까?”
“아.”
알베르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신물 받게?”
“네. 신물을 제가 가지기는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케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신물은 사냥꾼을 상대하는 동안 요긴하게 쓰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신전에서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설명을 요구한다면 곤란했다.
‘주교가 말이 꽤 잘 통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럼에도 대화에, 협상에 사용할 무기는 많으면 좋았다.
케일은 알베르에게 이어 말했다.
“그리고 신물을 제가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편이 왕국에 좋겠죠?”
퍼슬시 전투.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퍼슬시는 처참해졌다.
국왕궁이 무너졌고 국왕이 실종되었으며, 공작가가 불탔다.
곧 플린 상단주의 죽음도 알려질 터.
내막을 모르는 타 왕국은 로운 왕국의 악재와 대륙의 평화가 함께 찾아와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로운 왕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빠질 터.
‘그런 때에 신물이 로운 왕국 사령관에게 주어진다.’
신이 내린 물건을 받아든 케일 헤니투스.
알베르는 그 소식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로운 왕국 사람들에게 아주 귀중한 희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입에 오르내리는 걸 싫어하면서, 은근히 이럴 때는 눈감아준단 말이지.’
무뚝뚝해 보이는 케일의 속내를 짐작한 알베르는 고마움을 담아 오늘 하루 중 가장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죽음의 신 교단에 관한 모든 정보를 주지. 약점도 있다.”
“좋습니다.”
케일은 일행에게 말했다.
“곧바로 주교를 만나러 가죠.”
방향을 정했으니, 후딱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